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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⑩ 전문가 좌담회] "역사적 가치 철저히 고증…관광콘텐츠 개발 서둘러야"

백제고도 잠에서 깨다기획취재 과정에서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유적의 보존관리 부실과 가시적으로 보여줄 게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익산의 왕궁리와 미륵사지는 역사적인 연결고리 없이 따로 떨어져 있어 고도의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심심하다는 평가를 하는 이유다. 백제고도 잠에서 깨다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역사적 가치를 철저히 고증하고, 관광객이 볼 수 있는 가시적 관광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또 역사학계와 행정이 꾸준히 연계해서 유적관련 정책방향을 개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일시장소 = 12월 18일 전북일보사 편집국장실△사 회 = 김세희 기자△토론자 = 김미란 전라문화유산연구원 상임이사, 김주성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박광수 익산시청 역사문화재과 과장, 홍경술 미륵사지유물전시관 관장-사회= 지난 7월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으로 내세우기엔 아직도 많은 과제가 쌓여있다.△김주성= 우리가 두 개의 세계유산을 갖고 있다는 건 자랑스럽다. 하지만 관광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두 유적지에 각각 탑 하나씩만 있고, 고고학적인 주춧돌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두 번, 세 번 오고 싶다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런 부분 때문에 다른 지역의 백제역사유적지구와 비교해봤을 때, 평가에서 밀리고 있는 느낌이다.△홍경술= 세계유산이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세계유산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생각했을 때 보편적이고 후대까지 남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자치단체장들은 세계유산의 보존과 관리보다는, 그 유산을 활용한 관광마케팅에 치중하고 있다. 관리부분에 투자를 많이 해 유적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김미란= 등재유산으로 지역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서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장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장기프로젝트를 가지고 유산자체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연구는 유산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를 복원하는 일이다. 유적은 역사성을 담보할 때, 보는 사람들에게 더 큰 파급효과를 낸다.△박광수=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련 행정을 담당하다 보니 할 말이 많다. 김 이사님께서는 등재 유산에 대해 학술적 규명을 바탕으로 그 가치를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때문에 익산시에서 매년 2번 정도 전국적인 학술대회를 열었다. 앞으로도 백제학회, 한국 고대사학회 등 전국에서 열리는 역사 관련학회에 계속 참여할 예정이다. 관련 예산을 4000~5000만 원 정도 편성했다. 마한, 백제라는 틀 속에서 익산에 있는 세계유산에 담겨있는 역사적 사실과 가치를 규명해 내기 위한 학술대회를 계속하고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김주성 교수님께서는 미륵사지나 왕궁리 유적이 세계유산 평가를 할 때 다른 지역에게 밀리는 게 아니냐고 하셨다. 우리 역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실사를 잘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미국의 전문가를 2번 초청해 예비실사를 진행했다. 당시 전문가들이 익산의 문화유산을 실사할 때, 공주나 부여의 유산을 실사할 때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을 투자했다. 미륵사지 유적과 왕궁리 유적이 공주 부여의 그것보다 더 역사적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익산 세계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통해 어떻게 지역경제를 되살리며 시민들의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역 전문가분들께서 큰 관심을 가지고 조언과 질책을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김주성= 탑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땅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줬다는 사실, 브랜드로서 최고의 가치가 있어서다. 하지만 익산 세계유산은 브라질의 이구아수폭포나 미국의 그랜드캐년처럼 수려한 경관을 가진 건 아니다. 따라서 그 가치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게 우리의 과제다. 관광객들에겐 익산과 관련된 백제의 역사보다 관광요소들이 매력을 끌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김 기자가 로마의 뜨레비 분수를 소개했었는데 사람들에겐 뜨레비 분수가 언제 어떻게 조성됐는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근처에 있는 아이스크림 집을 소개하는 게 그 곳을 갔다왔다는 좋은 증거가 될 수 있다. 즉 우리가 역사성을 부각시킨다고는 하지만 관광객들은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지는 않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샘솟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박광수= 익산 세계유산은 매장문화라 시각적인 감흥을 찾기 힘들다. 따라서 익산시에서는 차세대실감형 콘텐츠사업에 5억 원 정도의 예산을 편성했다. 3D기술을 통해 홀로그램을 만든다든지, 가상현실시스템을 구현하는 콘텐츠다. 현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옛 토목건축의 자취를 보여주는 유구(遺構)나 매장문화재 건물에 탑재하면 해당 문화유산의 가치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걸로 생각한다.△김미란= 두 분 말씀에 공감한다. 그래도 유산의 활용을 위해선 학문적 연구와 실용적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또 현재 익산시가 세계유산과 관련해 진행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를 시민들과 공유할 필요도 있다 시민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어서다. 연구단계에서부터 시민들과 공유를 해서 함께 가자는 의미다. 물론 그렇게 되면 힘들고 더딜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우리 대에 사업을 마무리하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밑바탕을 제대로 깔아놓는 것이 우리 세대에서 해야 하는 과제다.-사회=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갔더니 수천 년 수백 년 전의 문화재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고대의 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관광객들 역시 이런 부분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반면 한국의 경우 고대 유적들이 역사적 연결고리 없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고도의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박광수= 문화재와 사람이 어우러진 경우가 외국에는 많다. 그 자리에서 발굴이 이뤄지고, 이를 볼 수 있도록 해서 관광자원화한다. 반면 한국은 유적이 발굴되면, 주변을 철거해버리고 해당 유적만 보존한다.특히 익산의 경우는 세계유산들 주변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고 각 유적간 거리도 멀다. 심심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주나 부여, 공주는 문화재주변에 사람이 살고 있다. 익산과 다른 지역의 세계유산을 비교할 때 이런 차이점을 고려하면서 대안을 내주셨으면 좋겠다.△김주성= 익산 유적지는 앞으로 우리가 그림을 채워나갈 흰 도화지와 같다.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간의 거리는 멀다. 하지만 왕궁리 옆에는 제석사가 있다. 이 두 유적을 하나로 묶고, 앞에 있는 도로를 오밀조밀한 골목길로 꾸며보는 건 어떨지 싶다. 이후 그 골목에 상권을 들어서게 하는 방법을 제안해본다. 그리고 보석가공단지와 코스를 연결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보석가공단지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산업이다. 미륵사 같은 경우는 그 위의 산에 사자사가 있고, 미륵산성이 있다. 다소 거리가 있지만 옆에 쌍릉이 있다. 이 부분도 연결해볼 만하다.유럽을 사례로 들어보겠다. 유명한 관광지 빼고는 많은 부분들이 골목관광이다. 골목길을 따라가며 느끼는 정취를 많이 강조한다. 익산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다. 김미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연구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익산시에서 홀로그램을 활용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복원이 잘못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 연구를 바탕으로 수정 보완한 뒤,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재복원해야 한다.△홍경술= 아직 IT기술이 유물을 완전히 복원할 수 있는 단계에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홀로그램을 보여주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주에서 사용하는 경우를 봤는데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매장문화와 유구를 연결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전문해설사가 사료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효과가 있다.스토리텔링도 다양화해야 한다. 백제 이외 다른 시대와 연관 지은 역사 이야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 등을 소재로 쓸 수 있다.△김미란= 행정에서 정책을 입안할 때, 학계와 연계해 꾸준히 갈 필요가 있다. 유적 관련 행정에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하면서, 앞서 나온 대부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박광수= 동감한다. 김이사님 말대로라면 가장 바람직한 유적 관련 행정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익산시가 큰 틀에서는 역사와 행정이 연계해서 가고자 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현재 5년에서 10년까지의 큰 플랜을 가지고 있다. 익산이 지향하는 방향은 역사문화도시다. 2차년도 사업으로 역사문화도시를 위한 기본 연구 용역을 국토학회하고 같이 하고 있다. 도시계획측면에서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사이의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 나가야 할 것이냐, 도시 전반차원에서는 어떻게 가야 하는가 등에 대한 관련 용역 등을 추진하고 있다.△김주성= 익산은 천도설이 있을 정도로 백제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왕궁리와 미륵사지가 그것을 증명한다. 무왕이 사비와 익산을 왕래한 통로, 즉 어도(御道)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도시계획 속에 이런 역사적 가치가 묻히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박광수= 공감한다. 기존의 도시계획은 역사성에 대한 고려 없이 구획을 바둑판처럼 나누고 도시를 만들어나갔다. 적어도 익산이 그러면 안 된다. 도시 계획을 입안할 때, 어도를 찾는 건 우리의 숙명이다.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나려면 이런 부분을 장기 계획 속에 넣어놔야 한다. 유적과 유적이 연계돼 역사성과 고도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길을 만들 계획이고, 이런 관점에서 용역을 진행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사회= 한국도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을 만든 뒤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하지만, 다소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홍경술= 본래 취지는 백제역사지구가 있는 지역을 한데 묶어 관리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각 자치단체에서 진행하는 유적 보존관리와 관광마케팅의 성격이 달라 통합하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통합관리사업단에서 전담하다보면 자치단체의 실정을 모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힘들다.△박광수= 통합관리사업단의 업무를 정확히 알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사업단은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통합 홍보나 모니터링만을 담당한다. 문화재 현장에서 이뤄지는 사업은 안 한다. 즉 전체 사업을 담당하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얘기다. 전체적인 고도 보존과 세계유산 통합 검사는 문화재청에 담당하고 있고, 유적관리와 관광마케팅은 자치단체에서 담당한다. 그러나 지역민들은 큰 기관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사회= 전북과 충남의 백제역사유적지구가 한 몸으로 가야 세계유산으로 가치를 빛낼 수 있다는 게 태생적 기반이자 특징인 것 같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각자만의 가치를 구현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빛낼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김주성= 7세기 백제문화의 예술적 완숙미가 왕궁리와 미륵사지에 집약돼 있다. 그 가치를 차별성 있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당대 신라와 고구려의 불상과 대비시키면 백제불교미술의 우수성을 확연히 볼 수 있다. 또 동아시아에서 미륵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계속 탐구한다면 충분히 가치가 조명될 수 있다고 본다.△홍경술= 흔히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공주나 부여는 패망 역사라고, 부정적인 기억만 있는데 익산의 미륵사지나 왕궁은 무왕이라는 절대적인 부흥기를 가지고 있었을 때이다. 최전성기의 문화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마한에서 백제로 가는 연결고리가 남아있기도 하다. 또 공주나 부여보다도 익산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관심이 높다. 익산에 대해 그런 긍정적인 평가와 관심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김미란= 유럽의 문화유산은 시민들의 삶속에 녹아있는 문화유산들이다. 우리는 사이트만 있는 문화유산이라 강점을 살려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미륵사지는 백제 고도의 정신문화가 담겨있다. 미륵신앙 관련 종파인 요식종인데, 관련 사찰들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김제 금산사다. 현대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정신문화를 조명해서 부각시키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박광수= 우리 익산시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제시됐다고 본다. 현재 익산시가 하고 있는 역사문화콘텐츠 사업에 관해서는 문화재청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기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무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전북도의 지원이 미흡한 것 같다. 가령 미륵사지와 금마 사이에 존재하는 석상들이 풍수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가치가 있는데 정작 탐방로가 없다. 이를 연계하는 도로가 지방도다. 세계유산도 됐고 전북을 대표하는 관광지라면 전북도에서 탐방로 조성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 (끝)

  • 기획
  • 김세희
  • 2015.12.25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⑨ 백제역사유적지구 실태] 훼손·균열·파손…세계유산 등재 문화재 곳곳 부실 관리

세계유산 등재의 근본 목적은 보존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잘 활용해서 관광수입을 올릴 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할 수 있을지를 우선순위로 정해야 합니다.한국 백제사 1호 박사인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의 말이다.역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문화재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백제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에도 문화재 보존관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세계유산의 관광자원화를 위해서는 유산의 정확한 고증,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한국의 세계유산은 깨지고 뒤틀리고 있다는 지적이 매년 제기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백제 역사지구에 앞서 등재된 여러 유적들이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안전도 검사에서 가장 낮은 등급을 받는 등의 문제를 보이고 있다. 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실태를 파악해 본다.△유네스코 등재만으로 끝? 치료가 시급한 문화재들= 지난해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 문화재청이 실시한 안전도 특별점검에서 천장균열, 기둥 옹이 탈락, 여담 균열 및 파손 등으로 보수정비가 필요한 E등급 판정을 받았다. 앞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의 첨성대, 수원화성도 상태가 심각했다. 첨성대는 표면에 지의류(地衣類)에 따른 오염과 변색, 균열현상이 조사됐고, 수원화성은 화홍문 누각 바닥 일부가 습기와 관리부실로 부식이 심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첨성대는 자동계측 모니터링이 필요한 D등급을, 수원화성은 남한산성과 마찬가지로 E등급을 받았다.그렇다면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어떨까.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백제역사지구에서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재는 공주의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부여의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나성,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이다. 이들 8개의 유적가운데 5개가 E등급이 나왔다.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나성,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리 5층 석탑 등이 그것이다.공산성은 기초 불안정, 부분 침하, 이격(벌어짐), 돌출 등이 문제였고, 송산리 고분군은 무덤 내부의 전돌과 석회에서 열화 및 훼손이 발생한다고 지적받았다. 특히 공산성 내부 11개 구간은 국립문화재연구소로부터 위험구간으로 판정받았다. 현재 공산성은 공주대학교 주관으로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있고, 송산리 고분군은 내부 보존관리상태를 조사하고 있다.부여의 나성 같은 경우 문화재 관리부실로 E등급을 받은 건 아니다. 문화재청은 보존관리를 위한 지표발굴조사, 정밀실측, 종합정비계획 수립 등이 필요한 문화재도 E등급으로 판정한다. 실제, 나성은 발굴정비가 진행되고 있다.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은 종합정비계획이 시행중이기 때문에 E등급을 받았다.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한 차례 무너졌다. 이 때 일제는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보수했다. 결국 일제가 바른 콘크리트 185톤을 치과 치석용 드릴로 떼어 낸 끝에, 지난 2010년 해체를 완료했다. 이달부터 본격적인 재조립에 들어갔다. 지난 16일 현장설명회가 열렸고, 기단부 가운데 세 번째 심주석을 올리는 작업이 진행됐다. 문화재청은 석탑에 대해 보수정비 과정 및 결과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익산 왕궁리 5층 석탑은 관리보존에 문제가 있었다. 표면이 이끼류, 지의류 등에 의해 오염돼 흑화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또 석탑 부재들이 일부 빠지고, 옥개성 등에 일부 균열 현상이 일어났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보존처리를 추진하고 있다.당장 보수정비가 필요하지 않지만, 문화재의 변형, 균열 때문에 정밀조사가 필요한 유적도 두 개나 있다.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과 익산 미륵사지 동탑으로 D등급을 받았다.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남측면 1층 옥개부가 일부 파손됐고, 석탑의 뼈대를 이루는 부재(部材)간 이완현상이 나타났다. 지난달 20일 들렀던 현장에서는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는 전기장치가 설치돼 있었다.익산 미륵사지 동탑은 1층 탑신 기둥, 면석, 옥개석 받침 등에 일부 균열이 관찰됐다. 특히 이 탑은 지난 1993년 복원 후 고증 논란에도 휩싸였기 때문에 문화재청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립문화재 연구소는 고증연구를 통한 재정비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연구소에서는 이 탑에 대해 구조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문화재 관리계획 유럽과 대조=우리보다 훨씬 앞서 문화유산의 가치를 주목해 보존과 관리에 힘써온 유럽에서는 문화유산으로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한 도시가 적지 않다. 이들의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 정책은 치밀하고 지혜롭다. 자치단체마다 세부적인 문화재 관리계획을 갖고 있으며, 중앙의 문화유산 관련 행정체계가 국가의 핵심부서로서 기능한다. 수십 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행정체계를 마련해온 결과다. 문화유산 관리 예산을 확보하는 데도 탄력적이다. 예산이 부족할 경우 포럼을 개최해 대기업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벌이기도 한다.한국도 유럽과 같이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중앙과 자치단체,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복수의 관계자는 백제역사유적지구 평가결과를 토대로 오랜 시간 유지되어온 문화재 중 보존 과학의 미비로 구조적 결함이 발견된 문화재들은 긴급 보수가 요구된다며 체계적인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문화재청 관계자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후 내년 신규예산으로 89억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확보 예산은 주로 공주 공산성 주변 불량경관 지역 토지매입, 부여 관북리 유적 주변 토지매입 및 나성 성곽 정비, 익산 왕궁리 유적 정비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그러나 현재 문화재청은 아직 세부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상태다. 지난 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현재 문화재청과 자치단체가 합동으로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준비단이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정비 기본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내년에 이르러서야 지역별단계별 세부 추진계획을 마련해 복원 정비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전문가들은 인증마크를 단 세계유산의 관리와 운영이 부실한 상황에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김미란 전라문화유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세계유산 등재에만 무게를 실을게 아니라 평소때부터 문화유산 자체에 먼저 관심을 갖고 고증과 정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아비뇽 시청의 미쉘갈반 문화관광디렉터도 문화재 관리계획은 단기, 중기, 장기간으로 나뉘어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세우는 것이라며 그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미쉘갈반 디렉터는 이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 전에 문화재 상태 점검표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중앙과 자치단체, 문화재 전문가와 연관시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세부계획을 세워놔야 한다고 지적했다.△예산문제 핑계되며 보수정비 미뤄= 지난해 6월 남한산성이 문화재청의 문화재특별종합점검에서 사적 57호가 E등급을, 행궁이 D등급을 받은 뒤, 경기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이효경 의원(새정치연합성남1)과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장 간 갑론을박이 벌어진 적이 있다.당시 이 의원은 매년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도 이런 등급을 받은 것은 문화재 관리에 허점이 있는 것이라며 관리부실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예산부족 때문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본지가 지난 4일 공주, 부여, 익산 등 자치단체의 해당부서에 전화를 걸었을 때도 마찬가지의 예산부족이라는 앵무새 답변만 되돌아왔다.이들 각 자치단체들은 문화재 관리담당부서를 세분화시켜 업무를 나누고 관리대상 문화재에 대해서 정비 계획을 세워놓고는 있다. 그러나 복수의 관계자들은 관리가 부실한 문화재가 수시로 점검을 해서 전문가의 고증과 전통공법에 맞춰 정비에 들어간다면서도 긴급보수 사업비로 문화재청에 예산신청을 했을 때, 청으로부터 예산이 들어와 부족한 예산이 메꿔져야 본격적인 정비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전문가들 역시 자치단체의 예산 문제 호소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계획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방향성을 잡고 가야 부족한 예산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남해경 전북대 교수는 지난 3일 열린 전북역사 재조명 백제문화융성프로젝트 학술포럼에서 전북도의 백제관련유산 정비는 방치된 부분도 있고, 정비를 하더라도 기초적인 수준의 안내판, 탐방로, 잔디식재, 부분정비 등이 이뤄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관광자원화를 위해 적극적인 정비를 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남 교수는 이어 문화재 지킴이 등을 세워 문화재 정화활동 등을 할 수 있는 자생적인 보호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기획
  • 김세희
  • 2015.12.24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⑧ 백제역사유적지구 다시 보기] 세계유산 도시, 찬란한 백제문화 다시 꽃 피운다

공주부여익산의 백제 유산을 묶은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재조명 받고 있다.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의 유산으로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다. 기원전 18년부터 서기 660년까지 거의 700년을 존속한 백제. 장구한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백제의 역사를 만났다. 미완의 유적지구라 갈 길은 멀지만 곳곳에서 백제문화의 우수성이 돋보인다.△떠오르는 백제고도(古都) 익산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부여의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비해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가 담긴 삼국유사의 기록이 유일하다 할 정도로, 공주나 부여에 비해 관련 기록이 부족해서다.그러다가 1971년 무왕의 지모밀지(枳慕蜜地-익산으로 추정) 천도 사실이 담긴 사료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가 일본에서 발굴되면서 조명받기 시작했다. 1989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의해 발굴조사가 시작된 이래 26년간 진행 중이다.발굴과정에서 성벽과 관련된 문지의 흔적, 명문이 새겨진 기와, 제사 관련 유적. 왕실기원사찰로 알려진 제석사터, 무왕과 그의 왕비릉으로 전해오는 쌍릉 등이 발견됐다. 고대 궁성 관련시설의 대지조성과 축조, 공간구획에 대한 새로운 자료도 확보되고 궁성의 계획적인 설계에 의한 축조양상도 확인됐다. 지난 8월21일에는 왕궁리 유적 서남편 일대(8300㎡)에서 철제솥과 토기 등의 유물 10여점과 함께 왕궁부엌으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발견됐다.최근 들어서는 왕궁리 유적 주변이 시가지로 기능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왕궁리 유적에서 동남쪽 1.3㎞정도 떨어진 곳에서 우물터가 발견됐다. 왕궁리와 제석사지 사이, 궁 남쪽의 탐리마을에서는 기와편, 건물터 등 생활유적도 발견됐다.이신효 왕궁리 유적전시관 학예연구사는 고대도시는 일반적으로 왕궁 주변에 사찰, 주택, 공방, 시장 등이 형성된다며 생활유적과 더불어 왕궁리 유적 인근에 도로 흔적과 조경지 흔적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제대로 도시의 형태를 갖췄던 것 같다고 말했다.현재 역사학자들은 남아있는 문헌기록과 유적발굴 성과를 토대로 고대 익산의 위상에 대해 여러 해석을 한다. 우선 일본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근거해 무왕이 부여에서 익산으로 천도했다는 설이 있다. 또 무왕의 출생지이자 성장지인 익산이 수도였다기보다는 수도와 동일한 행정구역인 별부(別部)로 편성돼 수도의 일부로 여겨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와 함께 별궁설(別宮說), 행궁설(行宮說) 등이 있다.전주교대 김주성 교수는 학자들마다 이견은 있지만 왕도와 직접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은 공통적으로 인정한다며 익산은 백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밖에 익산에는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 외에도 서동생가터, 용샘, 익산토성(오금산성), 사자사지(師子寺地), 미륵산성 등 백제 관련 유적이 많다.△스토리텔링의 선두주자 공주백제 678년의 역사 중 64년 동안 수도로 기능했던 공주. 백제의 두 번째 수도이자, 동성왕과 무령왕 때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던 곳이다.세계유산으로는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이 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따로 떨어져있지 않다. 공주지역 백제유적 분포의 특징은 왕성과 직접 관련된 유적인 송산리 고분군, 공산성 등이 공주시가지 북쪽으로 금강에 인접해 일정한 권역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시의 북쪽 외곽에서 확인된 수촌리 유적 같은 경우 공산성 등 왕성관련 유적과 더불어 공주지역의 백제문화를 이해하는 데 주목되는 문화재다.공산성은 도읍지인 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이다.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 성곽의 전체 길이는 2660m이며 석성이 1770m, 토성이 나머지다. 현재 남겨진 성곽은 석성이든 토성이든 조선시대에 수축된 것으로, 반복적으로 개보수된 것임을 알 수 있다.다만 토성구역에서 외성부분에 백제시대의 석축 흔적이 남아있어 이 성이 본래 토성으로 조성됐고, 당시 부분적으로 석축으로 개축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성은 1980년대 이후 10여 차례 이상 발굴조사가 이뤄졌다.특히 1986년도 조사에서는 왕궁지로 추정되는 곳이 발견돼, 왕성으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학설도 제기됐다. 현재도 성 내부 곳곳에서 공주대학교 주관 하에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며, 마면주(말의 얼굴에 씌우던 투구), 옻칠마갑(말에 씌우는 방어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성을 돌 때는, 서쪽에 있는 금서루를 출발해 연지와 만하루, 진남루를 거쳐 다시 금서루로 돌아오는 데 한 시간 반 정도면 충분하다. 특히 밤에는 조명이 켜지면서 백제의 역사만큼이나 화려한 야경이 펼쳐진다. 또 성 내부에 활쏘기 체험, 백제 탈 만들기 등 여러 체험 행사장이 있어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공산성에서 금강을 끼고 서쪽방향으로 가다보면 송산리 고분군이 있다. 이 고분은 백제 웅진시대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본래 17기의 무덤이 있었지만 현재는 무령왕릉을 포함해 7기만 복원돼 있다. 무령왕릉을 제외한 나머지 고분은 도굴을 당해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 번호로만 불린다.그러나 무령왕릉이 있어 백제문화의 진수를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다. 이 무덤은 지난 1971년 내부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배수로를 정비하다가 우연히 발견됐다. 왕와 왕비의 금제관장식을 비롯해 왕릉을 수호하기 위한 석수(石獸), 중국과의 교류를 증명하는 화폐 오수전, 무덤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묘지석 등 108종 2906점에 이른다. 특히 묘지석 앞면에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斯麻王)은 계묘년(523) 5월7일 62세로 돌아가셨고 을사년(525년) 8월12일에 안장됐다고 기록돼 있다. 일본 서기에도 무령왕의 이름이 사마(斯麻)로 쓰여 있어 기록은 일치한다.아쉽게도 현재는 무령왕릉 내부를 구경할 수 없다. 문화재보존을 위해 지난 1997년 7월부터 영구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해서다. 단지 실물과 같은 모형을 송산리고분군 모형전시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무령왕릉과 송산리 고분군 56호분을 정밀하게 재현해 고분과 동일하게 만들어 무령왕릉 재현, 송산리고분군 발굴과정 등을 볼 수 있다. 인근에는 역사문화 콘텐츠와 IT기술을 접목해 백제문화를 재현해서 보여주는 웅진백제역사관이 있다. 또 무령왕릉 내부에 있는 유물 중 국보 12점 등은 국립 공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해 백제, 세계인을 맞이하다란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12월말까지 연다. 각종 백제 유물 100여점을 구경할 수 있다.△백제 마지막 역사 고스란히 부여부여(사비)는 백제의 마지막 왕도다. 서기 538년 성왕은 538년 웅진(공주)시대를 마치고 사비로 천도했다. 이후 123년간 백제의 수도로 자리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는 정림사지가 있었다. 현재는 절터만 남아있지만 내부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예전 모습대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단 한 번도 해체작업을 하지 않은 유일한 석탑이다. 고고학자들이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탑 하나에 금당 하나가 일직선으로 배치된 전형적인 백제 가람이다.이 탑에는 백제 패망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있다. 일제시기까지 평제탑(平濟塔)이라 불렸는데, 1층 탑신에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제 평정의 전공을 새겼음에 연유한다. 소정방은 탑에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碑銘)이란 문구를 새겼다. 왕도의 중심에 있던 탑에 개인의 전공을 새긴 사례는 매우 드물다. 패망한 나라의 왕족들이 가졌을 좌절을 짐작해볼 만한 흔적이다.부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부소산성과 능산리 고분, 관북리 유적지, 나성 등 네 곳이다. 네 곳의 세계유산은 백제의 사비천도가 치밀한 계획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증명한다. 전체가 긴밀한 상호관계를 가지고 배치돼 있다.관북리 유적은 백제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익산 왕궁리 유적과 동일한 대형 건물지와 정연한 도로망 흔적, 하수도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현재도 조사 중이다. 능산리 고분군에는 왕과 왕비 등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있다. 나성 밖에 위치하고 있으며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도시 한복판에 조성했던 이전 시기의 왕릉군들과는 다른 입지 여건을 보여준다. 발굴조사 이전에 대부분 도굴되었지만, 고분군 서쪽 절터에서 567년에 제작된 석제 사리감과 함께 금동대향로가 출토돼 이 고분이 왕실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나성은 사비의 동쪽 부분을 방어하던 성곽시설이다. 북, 서, 남쪽은 금강이 천연방어막 역할을 했기 때문에 동쪽 부분만 인공적인 방어시설(나성)을 설치했다. 나성은 동아시아에서 새롭게 출현한 도시 외곽성의 가장 이른 예 중의 하나로 도시 방어의 기능을 가질 뿐만 아니라 도시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상징적 경계로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왕궁을 비롯해 관아, 민가, 상가, 방위시설 등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소산성은 동성의 방어거점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에 낙화암과 고란사가 있다. 백제의 패망 직전 삼천궁녀가 투신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낙화암은 백마강을 다니는 황포돛대를 타고 운치있게 바라볼 수 있다. 현재 정림사지에서 2㎞거리의 구드래나루터에서 백마강을 일주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기획
  • 김세희
  • 2015.12.10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⑦ 옛 것이 예술이 된 '시칠리아'] 재건 작업만 100년…웅장한 '바로크 도시'로 부활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서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시칠리아는 그 만큼 매력적인 섬이다. 영화 대부와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이 섬은 경관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유서 깊고 다채로운 유적으로도 유명하다.지중해 최대의 섬이면서 지리적으로는 로마, 그리스, 아프리카 본토와 가까웠던 시칠리아는 다양한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반도와는 구분되는 독특한 문화를 갖게 됐다. 이 섬 안에서는 그리스식 사원, 바로크 양식의 성당, 로마의 원형경기장, 아랍 양식의 건축물 등 갖가지 문명의 유적을 볼 수 있다.대체로 보존도 잘 돼 있어 많은 유적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리스 건축양식인 도리아 양식이 도드라지는 아그리젠토 고고지구, 로마인들의 저택인 카살레의 빌라로마나, 유럽 바로크 양식의 절정기를 보여주는 시칠리아 남동부 발 디 노토의 후기 바로크 도시 등 6개다. 이들은 당대의 역사상을 온전히 전해준다.이 중 카타니아, 라구사, 시라쿠사 주 등 8개 도시가 포함된 시칠리아 남동부 발 디 노토의 후기 바로크 도시는 문화재 재건의 바람직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들은 17세기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됐었다.또 작은 천국이라 불리는 타오르미나는 고대의 유적지가 널리 분포돼 있다. 이곳에 있는 타오르미나 원형극장은 보존 상태가 우수하며, 오늘날에도 오페라와 연극공연 등을 연다. 인근에 있는 움베르토 거리는 사시사철 관광객이 붐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풍의 건물과 이오니아해의 전경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시칠리아 역시 유럽의 많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문화유산과의 공존이 생활화된 곳이다. 빛바랜 문화재들과 낡고 스산한 골목이 주를 이루지만 주민들은 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다.시칠리아는 제주도의 14배 크기다. 본지에서는 카타니아와 타오르미나를 중심으로 소개한다.△7전 8기의 역사도시 카타니아=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인 카타니아는 자연재해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근처에 있는 해발 3350m의 활화산, 에트나 화산 때문이다. 이 화산은 기원전 264~241년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 기간 중에 폭발했으며, 그 뒤로도 200여 차례나 더 폭발했다.특히 17세기에 일어난 화산폭발과 지진이 큰 피해를 입혔다. 1669년의 에트나 화산폭발과 24년 후인 1693년에 일어난 지진은 9만30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7세기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고 일컬어질 정도였다.자연재해에 의한 비극 때문에 많은 고대 유적이 소실됐으며, 17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장기간에 걸쳐 도시 재건작업이 이뤄졌다.100년 동안의 재건작업이 끝난 후 카타니아는 지진에 강한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넓은 거리와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섰다. 17세기의 대표 건축양식인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됐다. 이 양식은 기본적으로 성과 수도원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재건된 유적들은 주로 두오모 광장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다. 11세기 노르만 시대 양식을 간직한 성 아카다 대성당, 현재 시립박물관으로 사용되는 13세기의 우르시노 성,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등 22개가 그것이다. 이 중 10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돼 있다.이들 중 가장 주의 깊게 볼 유적은 스테시코로 광장의 지하에 있는 로마 원형 야외극장이다. 중세 유적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카타니아에서 보기 드문 고대 유적이다. 〈카타니아 유적 자료집〉에 따르면 2~3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약 16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화산폭발로 오랜 세월 지하에 묻혀 있다가 18세기 초에 발견됐으며, 1906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다. 현재 극히 일부 벽면만 발견됐고, 많은 부분이 아직도 지하에 묻혀있다. 발굴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스테파노 씨는 야외극장이 묻혀있는 지하 위에도 17~18세기에 재건된 성녀 아가타가 투옥됐던 감옥, 성 아가타 성당 등 문화재가 있어 발굴에 어려움이 있다며 자칫 지상에 있는 유물까지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두오모 부근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에트네아 거리가 있다. 카타니아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중세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줄지어 있다. 건물은 레스토랑과 각종 상점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민들의 생활공간 자체가 유적지인 셈이다. 마치 중세의 어느 거리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시칠리아에서 역사교사를 하고 있는 알렉산드로 씨는 본래는 고딕양식,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재돼 있었지만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붕괴됐고, 바로크 양식으로 통일됐다며 이 구간은 중세도시 복원을 위한 집단적인 노력이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었던 현장이다고 말했다.△역사유적과 자연경관과의 조화, 타오르미나= 시칠리아섬 동쪽 기슭 해발 200m의 고지대에 있는 타오르미나는 오래된 역사를 일깨워 주는 유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13세기의 산 니콜로 대성당, 로마의 나우마치아(고대 로마인들이 해상 전투를 재현하기 위해 물을 채웠던 건물), 오래된 성벽의 잔해, 타오르미나 원형 극장 등이 바로 그것이다.이들 중 백미는 타오르미나 원형 극장이다. 기원전 3세기에 지어졌던 이 극장은 뛰어난 보존력을 자랑한다. 당대의 설계대로 지어진 벽돌이나 구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원형극장 가이드인 로베르토 씨는 파손된 벽돌을 복원할 때도 기존에 존재했던 모양 그대로 한다고 말했다. 이 극장에서는 매년 여름마다 오페라와 그리스 고전극, 콘서트, 영화 축제 등이 열린다. 상당히 오래된 유적인데도 음향효과가 뛰어나다. 로베르토 씨는 청중들의 소음과 같은 저주파 소리는 흡수하고, 공연자의 고주파 소리는 증폭시켜주는 구조다며 석회암 계단구조가 이 같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유럽에서 가장 눈부시고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기도 한다. 극장의 관람석에서는 무대 뒤편으로 에트나 산의 정상과 이오니아해, 이탈리아 반도와 유럽대륙까지 보인다.자연경관과 역사유적과의 조화는 관광객의 발길을 끈다. 타오르미나 원형극장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이 시칠리아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은 장소다.△시칠리아 문화유산의 이면= 고대, 중세의 다양한 유적들을 자랑하는 시칠리아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문화재 역시 눈에 들어온다. 수백 년은 됨 직한 유적에는 잡초가 자라고 낙서로 더럽혀진 곳도 상당수였다. 17~18세기에 지어진 성 아가타 성당, 비스카리 궁전 등이 그런 경우였다. 유적들을 까맣게 덮은 때자국은 매연과 공기 중 화학작용 등으로 생기는 것인데, 제 때에 제거하지 않을 경우 대리석을 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이탈리아에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청용 씨는 이탈리아 본토 역시도 경제위기 때문에 문화재 정비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본토에서도 경제상황이 열악한 시칠리아도 같은 원인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시민으로부터 선호받지 못하는 유적지도 있다. 바로 아그리젠토 고고지구다. 이 유적은 화려한 그리스 신전과 로마의 저택, 고대 묘지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유적지 주변에 자연경관이 좋지 않고, 다른 유적지와의 거리도 멀다. 한국 대다수의 유적과 마찬가지로 산지에 문화재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경우다. 시칠리아의 한 식당 종업원은 정말 심심한 유적지다고 말했다.■ 활력 넘치는 카타니아 명물 어시장두오모 광장을 둘러싼 유적지 사이에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다. 카타니아의 명물, 어시장이다. 시원하게 물을 내뿜는 아메나노 분수의 뒤에 있는 공터에 펼쳐진다.이른 아침부터 열리는 어시장은 진풍경을 연출한다. 한국의 수산시장처럼 구획을 정리해놓고 판매하는 게 아니다. 공터에 먼저 도착한 상인이 이리저리 난잡하게 판을 펼쳐놓고 어류를 판매한다. 먼저 자리 잡는 사람이 임자다.참치와 조개, 새우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에서는 바다 냄새가 물씬 느껴진다. 시칠리아 바다에서 이제 막 잡은 해산물을 팔기 때문이다.시장은 왁자지껄하고 활력이 넘친다. 생선 값을 흥정하는 이탈리아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따라서 어시장 근처에는 지나가던 발길이 멈추고 구경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가이드인 박청용 씨는 해외 관광객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어시장은 흥밋거리다고 말했다.

  • 기획
  • 김세희
  • 2015.12.03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⑥로마 명물 '트레비 분수' 복원현장] 250년 넘은 세계문화유산…다시'찬란한 빛'뿜는다

지난달 24일과 27일 두 번씩이나 마주했던 로마의 폰타나 디 트레비(이하 트레비 분수). 이탈리아 로무 폴리 대공의 궁전 앞에 있는 이 분수는 장구한 세월을 거쳐 온 유적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이제 막 지은 건축물 같았다. 분수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새하얀 조각상과 장식들은 250여년 묵은 유적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선명했다. 문화재 복원전문가들이 지난 17개월 동안 치열하게 보수작업을 한 결과다.당시 막바지 보수 작업이 한창이던 트레비 분수는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비계 등 작업 구조물이 걷혀지고 80%이상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높이가 낮고 투명한 안전펜스만이 남아있어, 관광객들은 빛을 뿜는 유적과 함께 복원작업 현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우연찮게 한국에서 온 전주 사람을 만났다. 역사교사를 하다가 퇴임한 김봉섭씨(61전주시 삼천동)는 공개된 보수현장이 사람들에게 역사 유적에 대한 호기심과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살아있는 역사교육 현장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실복원으로 논란이 끊이질 않지만, 숭례문 같은 경우에도 복원현장을 대중에게 공개했던 점은 좋은 취지였다고 본다고 덧붙였다.주위를 돌아보니 현장의 관광객들은 트레비 분수의 보수현장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세 갈래 길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트레비 분수는 상당히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1629년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스케치에 의해 토대가 만들어졌고, 이에 기초해 니콜로 살비가 1732년~51년까지 건조했다. 1762년 주제페 판니니에 의해 완공됐다. 분수 중앙에는 바다의 신인 넵툰(포세이돈)의 조각상이 서 있고, 양 옆에는 풍요로움과 유익함의 여신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 위에는 로마의 수도교 역사를 나타내는 얕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지난 198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하지만 역사적인 명성과 달리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990년대 초 이래 한번도 보수 작업에 들어가지 않아 꾸준히 논란의 중심에 섰고, 지난 2007년에는 물을 공급하던 아쿠아 베르지네 지하수로에 구멍이 나 분수대가 말라붙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 전례 없는 추위와 함께 분수의 코니스(서구식 건축에서 처마 끝을 완성하는 부재)가 떨어져 나갔다. 시민들의 보수 요구가 빗발쳤다.공공시설물 유지 보수예산이 감축된 로마시는 재정모금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팬디를 비롯한 명품 브랜드 회사들이 유적 살리기에 나섰다. 특히 패션 브랜드 팬디는 218만유로(약 27억3854만원)를 기부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역은 트레비 분수 앞 안전펜스에 붙여져 있다. 명품 회사의 지원 덕분에 개보수 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27일 현장에 있는 복원전문가들은 한창 마무리 작업에 분주했다. 1762년 완공됐던 그 모습 그대로 새하얀 대리석이 드러난 가운데, 곳곳에서 보수 점검에 몰두하고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분수대쪽에 포진돼 대리석의 마지막 때를 벗겨내고 있었고, 팀장급들은 매뉴얼을 들고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점검하고 있었다. 현장에 있는 인원을 세어보니 얼추 30명은 되어보였다.복원 전문가 안젤라씨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안젤라씨는 문화재 복원 전문업체 3개가 참가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재 보수공사가 시작될 당시 로마시가 문화재 복원업체들을 상대로 모집공고를 내 많은 업체가 몰렸는데, 이 중 세 개 업체가 선정됐다고 덧붙였다. 트레비 분수 보수 업체는 A.R.A, C.B.C, Teeni.com이다. 그는 C.B.C에 소속돼 있고, 직급은 팀장급이다.안젤라씨에 따르면 이탈리아에는 유적 보수업체가 300여개 정도 되며 법인 회사 형태로 존재한다. 거의 다 영리회사며 복원 전문가 자격증이 반드시 있어야 일할 수 있다. 한국과 같이 국보 및 보물급 문화재를 비자격자나 무등록 업체가 수리하다 적발되는 상황은 거의 발생되지 않는다.안젤라씨는 복원과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복원에 참가하는 3개 업체는 각기 다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업체다. 가령 한 회사는 대리석의 때를 벗겨내는 데전문성이 있고, 한 회사는 파손된 부분을 메꾸는 데 전문성을 가졌다. 다른 회사는 문화재에 색을 입히는 데 특화됐다. 이들 회사는 서로간의 협의를 통해 복원전략을 세운다.안젤라씨는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현재 보존관리 상태를 점검한 뒤 업무를 상황에 맞게 배분한다며 논의단계만 해도 수 차례를 거친다고 말했다.이뿐만이 아니다. 안젤라씨는 특히 복원전의 공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역사성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그는 같은 바로크 양식이라고 하더라도 당대에 사용됐던 용도에 따라 건축방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며 적은 차이 같지만 완벽한 복원을 위해 최대한 근거자료를 많이 수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확한 고증을 위해 국회도서관이나 로마 국립박물관에서 건축관련 사료를 참고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며 니콜살비와 주제페 판니니가 분수대를 만들었던 것과 똑같이 하려한다고 덧붙였다.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문화재는 국가의 전유물도 역사의 자랑스러운 흔적도 아닙니다. 역사적 가치를 시민들에게 되돌려준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이탈리아 문화재 보호 첨병- 국립 복원학교 운영 헌법에 의무 명시도트레비 분수가 유럽의 명소란 타이틀을 갖게 된 것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복원기관과 문화재 보호 의무가 명시된 헌법이 문화재 보존의 첨병역할을 하고 있다.로마에는 문화재 보존복원을 위한 국립복원학교가 있다. 1939년에 설립된 이 학교는 5년제 과정으로 매년 최대 15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교수 1명에게 배정되는 학생수는 법률상 최대 5명이다. 주로 실무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문화재 재질별로 크게 셋으로 나눈 교육과정을 거치게 한다.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보수복원 기관인 국립복원연구소 피렌체전시관지부도 소수 인원을 선발해 현장실습을 강조한다. 해마다 5명을 선발해 5년간 가르친다. 지난해에는 볼로냐에 있는 산 페트로니오 성당 보수 작업에 참여했다. 문화재 보수복원 업체 C.B.C의 팀장인 안젤라씨는 배우는 과정에서 문화재를 직접 경험하면 책임감과 자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2000년대 들어 유적지 관리 부실로 도마위에 오르긴 했지만, 헌법에 국가의 문화유산 보호의무를 명시한 것도 인상적이다. 헌법 9조는 이탈리아 공화국에 문화유산 보호와 관련 기술 발전을 의무화하고 있다. 안젤라씨는 법률상 문화재 보호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조항이다며 경제관련 법안보다 상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기획
  • 김세희
  • 2015.11.27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⑤ 이탈리아 폼페이 고고지구] 세계유산 박탈 위기 딛고 '보존·관광마케팅 성공' 부활

문화재는 기억과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늙고 죽기 때문이다. 제대로 보살피지 않아 형체가 사라지면, 결국 기록 속에만 존재한다. 학자들이 역사를 완벽히 복원할 기회도, 후대의 사람들이 조상의 생활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진다.그만큼 문화재의 형체는 가치가 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듯이, 인간은 글자로 만족하지 못하고 눈으로 보려하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재들이 치료를 필요로 하고 있다.이런 점에서 폼페이는 좋은 선례다. 18세기부터 현재까지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최적의 유적이다. 2000년 전 화산폭발로 인해 생긴 화산재가 문화재의 훼손을 막아줘 어느 고대도시보다 완전한 형태로 발굴됐다.그러나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허술한 관리로 건물의 붕괴가 잇따랐다. 지난 2011년에는 긴급 보호대책이 필요한 위기유산으로 지정될 우려도 있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유럽연합(EU)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대규모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지난달 24일 찾았던 폼페이는 곳곳에서 보수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복원 전문가 알베르토(43)와 코린나(37)로부터 유적지 복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복원에 대한 생각과 자세, 과정 등을 말했다. 위기에 처한 폼페이 유적지가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문화재의 관리부실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 한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폼페이 고고지구의 사례는 우리가 겪고 있고, 앞으로 반면교사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참고할 만하다.△폼페이 유적의 발굴과 위기= 나폴리에서 27km 떨어진 폼페이 고고지구는 기원후 79년 8월24일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인해 화산재에 묻혀 사라진 도시가 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도시를 완벽하게 뒤덮은 4~6m 두께의 화산재 때문에 2000년 전에 사라졌던 도시가 고도(古都)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폼페이 고고지구는 18세기 나폴리 왕실의 후원에 의해 발굴이 본격화됐다. 250년 이상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옛 시가의 약 5분의 4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다.이 도시에서는 신전, 대저택, 수도교, 유곽, 프레스코화 등 고대 로마의 정치, 경제, 사회, 미술, 건축술과 성 의식 등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유적이 발견됐다.포장된 도로와 호화로운 대저택, 빵집, 세탁소, 음식점을 포함한 수백 개의 상점들, 그리고 공중목욕탕을 갖춘 문명화된 고대도시였다. 이와 함께 30여개 이상의 유곽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간이음식점에는 음식조리대와 업장, 업장 장식을 위한 벽화, 그리고 곡식을 갈던 맷돌과 오븐까지 갖추고 있었다.심지어 화산폭발 당시 죽음에 직면한 주민들의 생생한 모습도 석고의 형태로 발굴됐다. 뱃속에 있는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엎드려 있는 임산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개 등 다양하다.그러나 문화재 강국이라 불리던 이탈리아도 처음부터 선진적이고 모범적인 복원을 해내진 못했다. 폼페이 고고지구에서는 지난 2010년부터 검투사의 집, 도덕주의자의 집 등이 붕괴됐다. 지난 2014년에는 폭우 때문에 비너스 신전을 받치고 있는 석조구조물 일부와 포르타 노체라 공동묘지에 있는 한 무덤의 돌벽 3.5m 구간이 무너졌다. 붕괴이유는 2차 대전 당시 손상된 폼페이 건축물을 1940년대에 졸속으로 복구해서다.결국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의 감시단에 의해 위기유산으로 지정될 위기에 처했다. 위기유산으로 지정되면 세계유산 등재가 말소될 수도 있다. 유적에 대한 부실 관리로 국제사회의 우려를 샀던 이탈리아 정부는 2013년부터 그랜드 폼페이 프로젝트라고 이름붙인 대대적인 폼페이 보수 작업에 착수했다.△문화재 복원 이어 관광마케팅도 한몫= 폼페이 고고지구는 지난 2년 동안 복원에 대대적으로 힘쓴 결과, 거의 완벽한 상태로 고대도시를 재현해냈다. 수천 년 수백 년 된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복원돼 고대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복원현장에서 만난 알베르토 씨는 지난 2013년부터 회반죽 벽화로 유명한 신비의 저택을 비롯해 16개 유적 보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이중 3개의 프로젝트가 완료돼서 정부가 발표했고, 현재 발표되지 않은 일부도 거의 완료된 상태다. 현재 우리가 보수하는 유적지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 유적지는 올해 12월까지 작업한다고 말했다.그 동안의 실책도 반면교사 삼아 유적지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실제 비극시인의 집과 선술집 등 여러 건물들 중 훼손우려가 있는 곳은 유리판을 세워 관람객을 통제하고 있었다.문화재 복원에 이어 관광마케팅에도 발군이다. 유적이 위치한 곳곳의 기둥에는 오디오 가이드가 설치돼 있어 각 유적의 성격과 역사적 유례를 들을 수 있다. 매표소 근처에 위치한 비너스 사원의 벽면에는 복원한 벽면과 옛 벽면을 색깔로 구분해 놓아 관광객들에게 유적지의 현 상태를 알려준다.이외에 고고지구 인근의 베수비우스 화산, 나폴리에 있는 세계유산과 연결된 교통편이 있어 관광객들이 역사를 다채롭게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폼페이 고고지구의 연간 관광객은 300만명 정도다.△ 메디컬센터 운영 등 관광객 배려= 폼페이 고고지구 내 공회당 인근에는 응급의료센터가 있다.의료센터에 따르면 무더운 여름에 유적지를 관광하다가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환자가 종종 발생해 세웠다고 한다. 그렇다고 응급환자만 치료하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관광하다가 몸에 이상이 생기면 운영시간 내에는 언제든지 치료받을 수 있다.내부에는 각종 의료도구, 환자용 침대, 이동식 들것 등 다양한 의료도구들이 구비돼 있다.운영비는 이탈리아 내무부에서 100% 지원한다. 크리스마스와 명절을 제외하고는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운영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다. 치료비는 무료다.의료센터 관계자는 폼페이 고고지구 전체를 관할한다면서도 여태까지 환자들을 100% 구조해 치료했다고 말했다.● 폼페이 유적 어떻게 복원하나전문가에게 듣다 "후세 사람들 잘 알아볼 수 있게 원형 그대로 되살려야"폼페이 고고지구 유적복원 현장은 안전펜스가 둘러쳐져 있었고 관광객의 접근을 통제했다. 보수를 하는 유적은 비계 등 작업 구조물이 둘러싸고 있었다. 햇살이 작렬하는 현장에서 복원전문가들은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복원 토대가 기록된 기초조사자료를 보며, 신중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복원이 완료된 뒤 드러난, 일부 유적에서는 장인의 정성이 돋보였다.현장에 있던 복원전문가 알베르토씨와 코린나씨는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폼페이 고고지구의 복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줬다. 알베르토씨는 피렌체 복원전문학교를, 코린나씨는 베니스 복원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학교에서 5년 동안 전문과정을 이수한 뒤, 지난 2000년부터 현장에 뛰어들었다.-복원을 할 때 문화재의 원형을 고려한 정비방법을 철저히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옳은 말이다. 근거자료가 없는 문화재 복원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복원전문가가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복원을 왜 하는 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복원에 대한 깊은 고민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고대의 유적지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원된 유적지를 후대의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관광객들이 복원해놓은 신전, 상점, 대저택, 목욕탕 등을 본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관광객들은 해당공간을 보고 고대 로마인들이 생활했던 모습을 바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복원을 관광객들을 끌기 위한 상업적 목적만으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드러내야 관광객들이 흥미를 갖고 유적지에 몰려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복원하는 유적을 위한 재정지원 규모는.유럽연합에서 투자형식으로 지난 2013년부터 100% 지원하고 있다. 투자금은 총 1억 500만 유로다. 단 무상지원은 아니다. 폼페이 고고지구의 입장료 11유로 중 1~2유로씩을 유럽연합에서 가져간다.- 어떤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는가.건축, 벽화, 벽, 그림 전문가 등 각 부문 유적 전문가와 역사학자, 정부와 자치단체 공무원 등이 함께 논의를 한다. 공동작업 형식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보존과 관리에 대해 한국에 조언할 말이 있다면.우리는 복원한다기 보단 주로 보수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훼손된 부분만 전략적으로 고치기 때문이다. 나머지 부분은 복원에 필요한 기술이 완벽하게 개발될 때까지 기다린다. 문화재의 복원과 보수는 속도전이 아니다. 상당히 섬세하고 지루한 작업이다.

  • 기획
  • 김세희
  • 2015.11.24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④ 파리의 문화 용광로, 센 강변] 정부·자치단체 문화재 보존 합심…도시 전체가 세계유산

IS(극우주의 성향이 강한 무슬림 무장 단체)의 테러가 발생하기 3주 전인 지난 10월21일, 프랑스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선망하는 여행지다웠다.센 강변을 중심으로 펼쳐진 역사 유산들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루브르 미술관부터 에펠탑까지, 콩코드 광장에서부터 크고 작은 궁전 등 건축유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부드러운 가을 햇살은 건물들의 색감을 돋보이게 했다. 강물은 도시를 가로지르며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강변과 다리 곳곳에는 가족, 친구,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도시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거리의 악사들은 수준급의 연주를 선보여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파리의 대동맥인 센 강 일대는 센 강변의 파리(Paris, Banks of the Seine)라는 명칭으로 1991년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지역 자체가 세계유산에 등록된 특이한 경우다. 하나의 특정 유적건축물보다 지역 전체가 문화 유산적 가치가 높다는 게 유네스코의 설명이다. 문화부 등 정부 부처와 자치단체가 유산 자체의 보존관리시스템을 최우선에 두고 효과적으로 관리 보존해왔기 때문이다.이는 최적화된 관광자원 개발과 결합된다. 파리에서는 센 강변 일대를 중심으로 역사문화적 자산을 활용한 문화제와 각종 이벤트 등이 풍부하다, 지역이 보유한 역사유산과 이를 활용한 문화콘텐츠를 조화롭게 결합했다. 이로 인해 많은 해외 관광객들이 파리를 찾는다. 지난해 파리시 방문객 4700만명 중 절반은 외국인이었다.△세계유산 파리의 센 강변파리는 도시문화유적 인프라를 갖춘 관광도시로 유명하다. 이 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센 강변은 가장 중요한 축이다. 센 강 좌우 주변은 파리의 랜드마크인 에펠탑, 개선문, 센강의 다리들, 루브르 미술관, 노트르담 성당, 오르세 미술관 등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이 즐비하다. 주로 12~15세기에 유행하던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들은, 역사의 지층을 대변하며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도시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요인이다.19세기 파리 시장이었던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의 파리 개조 계획의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다. 철도의 발달에 발맞춰 신설된 대로와 가로수길, 광장 등이다. 또 도시 곳곳에 파리의 역사물 표지판과 유적지구를 형성하는 데 공헌한 인물의 기념비 등이 가로 조형물로 남아 건축유산들을 빛내준다.이런 유서 깊은 지구가 형성되기까지는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이 있었다. 등재 당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실사보고서에 따르면, 파리는 도시 경관의 연속성과 개방성을 유지하기 위해 조망권의 스카이라인까지 고려해 도시건축개발을 제한했다.시민들의 협조도 한몫 했다. 센 강 주변의 건축물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돼 있는 곳이 없다. 프랑스 대사관과 자주 교류를 하는 리옹한글학교 서제희 교장은 실외기에서 발생하는 열로 인해 벽면이 손상될 우려가 있어서 그렇다면서 생활하는 데 불편해도 시민들이 국가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기꺼이 감내한다고 말했다.△프랑스의 숨은 진면목, 치밀한 문화유산 관리 행정체계센 강변의 유적이 잘 보존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찍부터 문화유산 관련 행정체계가 국가의 핵심부서로 기능한 데서 찾을 수 있다. 1940년대부터 앙드레 말로 같은 뛰어난 문화 행정관이 출현해 체계적인 문화행정 기반을 확립해왔다. 문화와 관광을 담당하는 부서 사이에 소통 채널인 범 부처협의회를 통해 마찰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다.이러한 연장선상에서 1970년대부터 정부부처와 자치단체가 문화유산을 효과적으로 관리보존하는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1998년부터는 정부기관으로 국립건축문화유산관리국을 두고 있으며, 산하기구로 국립 역사문화재 및 유산유적 관리청을 설치해 실질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 노트르담 성당이 이곳에서 관리하는 대표 문화유산이다.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중앙 부처의 지원을 받는 지방문화유산관리국과, 지역의 문화유적 복원작업을 주로 담당하는 지방문화유산보전관리청이 있다. 두 기관이 연계해서 지역문화유산을 관리한다.이밖에 왕궁은 국가 관할로 국립박물관 관리국에서 관장하고 있다. 왕궁 등을 개조한 루브르 미술관, 베르사이유 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부 문화재나 유적 같은 경우 해당 지역 지자체에 소속돼 있거나 일부 개인소유로 등록돼 있는 경우가 있다. 에펠탑이나 아비뇽 교황궁전이 대표 사례다.해당기구들은 유적지의 전체 보존 상태를 점검한 뒤 문화부에 보고하고 있다. 이 중 세계유산은 국가차원의 검사절차를 걸쳐 정기적인 보수, 관리를 하고 있다. 또 정기적으로 관광객을 제한해 문화유산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데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프랑스 문화부에 따르면 유명 관광지로 알려진 문화유산인 경우, 관광전략 마케팅보다 유산 자체의 보존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문화유산과 도시 관광 결합효과적으로 관리된 문화유산은 관광자원으로 연결된다. 센 강변의 건축물들은 각각 현대의 관광콘텐츠와 융합한 상태로 존재한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 앞에 세워진 유리로 된 피라미드가 그렇다. 중국 출생의 미국인 건축가 I. M. 페이가 설계한 이 피라미드 내부에는 휴게실과 기타 시설이 있다. 또 이곳을 통해 모든 전시관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놨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고려한 설계다.이밖에 특이한 외형의 건축물이 있어 관광객들의 관심을 끈다. 이 건축물의 관계자는 관광객의 70% 정도가 이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한다고 말했다. 바로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다.지난 1977년에 개관된 이 센터는 하수관과 배수관이 겉으로 드러나, 마치 짓다만 건물 같은 독특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내부에는 공업창작센터, 음향음향의 탐구와 조정연구소, 파리국립근대미술관 등이 있어 문화의 공장이라 불린다.전통유산 건축물과 도시공간을 활용한 축제도 다채롭다. 지난 1982년부터 시작된 음악축제는 많은 관광객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지역민이 직접 기획하는 이 축제는 각 구역의 특색에 맞춰 음악을 선정한다. 가령 루브르 박물관 주변은 고전음악, 라디오프랑스 지구는 세계 각국의 음악, 전통 지역에서는 옛 샹송 등을 선보인다. 이밖에 파리 야경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되는 백야제,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 테크노 퍼레이드가 있다.관광객들이 이 모든 것들을 즐길 수 있는 편의도 제공된다. 각 유적지를 다니는 투어버스가 바로 그것이다. 버스를 탄 상태에서만 유적지를 관람하는 게 아니다. 각 구역의 정류장에서 내린 뒤 원하는 유적을 구경한 뒤, 다른 버스로 갈아탈 수도 있다.이러한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프랑스를 찾는 외국관광객의 80%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센 강 주변에 머문다는 게 프랑스 여행부의 분석이다.■ 파리에서 발생한 연쇄 테러로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 기획
  • 김세희
  • 2015.11.19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③ 아비뇽 시청 문화관광 디렉터 미쉘 갈반씨] "중세 원형 그대로 간직…문화재 보존, 전문가와 소통하라"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 이 두 마리 토기를 잡은 게 아비뇽이다.매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이 도시는 중세의 풍경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도시에 존재하는 견고한 석조건물들은 14세기 때 모습 그대로다. 이 도시의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정책이 얼마나 치밀하고 지혜로운지 보여준다.역사 관광마케팅 역시 뛰어나다. 특히, 교황의 성격에 맞춰 차와 다과의 양을 계산해서 파는 교황궁전 내부에 있는 가게는 인상적이다. 아비뇽 페스티벌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7월 아비뇽 시 전역에서 3주간 열리는 이 축제에는 연극, 춤, 뮤지컬, 현대 음악 등이 공연된다. 축제 기간 동안만 연간 5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이 모든 것을 위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이가 있다. 아비뇽 시청의 문화관광부 디렉터 미쉘 갈반이 그 주인공이다. 문화관광부 디렉터란 지역 문화유산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전문가다. 그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 예산수립, 관광마케팅 등 전 분야를 담당한다.인터뷰는 아비뇽 시청 별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그는 문화재 보존복원 계획, 관리기술, 예산 수립, 문화재 복원 인재 양성, 관광마케팅 대안 등 여러 부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특히 문화재 원형을 고려한 보존과 이를 위한 전문가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취재도중 그는 사무실 창문 맞은편 건물에 조명등과 가까이 있는 작은 성모마리아 상(16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을 가리키면서 조명에서 나오는 열에 의해 석조상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며 조명을 설치하는 사설회사와 문화재 전문가와의 의견 조율이 제대로 안됐기 때문에 저런 실수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재임기간에 반드시 바로 잡을 것이다고 강조했다.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강의를 듣는 듯 특별했다.- 중세 문화유산의 원형이 거의 훼손되지 않고 보존돼 있다.아비뇽의 문화유산은 거의 석조로 돼있다. 그 시대에 쓰였던 돌 중 버려진 돌들이나, 같은 시기의 문화재를 보수하고 남은 돌 등을 쓴다. 즉 14세기 건물을 복원할 때는 당시에 쓰였던 돌을 그대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심지어 돌의 재질까지 맞추려고 노력한다.- 철저한 고증이 필요해 보인다.당연한 말이다. 아무나 할 수 없다. 정부나 자치단체의 문화관광부 디렉터, 역사학자 등 전문가들이 모여 해당 시대의 유물을 고증한다. 건축가들도 프랑스 건축협회가 지정한 사람들만 참가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합류할 때도 있다. 고증이 끝나면 문화재의 특성에 맞춰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 가령, 창문이나 창틀은 어떻게 복원 할 것인지, 벽화는 어떤 기법을 사용해 보수할 것인지, 어떤 전통공법으로 활용해야 하는 지 등 세부적인 내용들이다.- 당대에 존재했던 건축물의 외형, 내부구조, 제작 방식 등을 상세하게 고려하는 것 같다. 반면, 한국의 석굴암 같은 경우 시멘트로 복원했다가 내부에 습기가 생기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됐다. 한국의 유적 복원 상황에 대해 아는가.한국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잘못된 복원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석굴암같이 시멘트를 바르면 습기를 흡수하거나 물기를 제거하는 효과가 나지 않는다.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들은 습기가 많은 자연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수백 년 수천 년을 버텨왔다. 당시에 쓰인 자재와 공법만으로도 환기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원형을 고려한 정비방법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화재 보수복원과 관련한 재정은 어떻게 마련하는가.정부에서 40%정도 지원해주지만 부족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의 경우 복원작업을 하는데만 300만 유로(한화 37억여 원) 정도의 예산이 든다. 게다가 우리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뿐만 아니라 국가지정 유산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모두 합쳐서 105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의 날에 1주일 동안 포럼을 개최한다. 포럼을 열면 프랑스에 있는 대기업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벌인다. 이 때 관심을 끌어 문화재 보수복원에 대한 투자를 유도한다.- 문화재 관련 전문인력은 어떻게 양성하는가.아비뇽 대학 석사과정에 복원 문화유산 관련 학과가 있다. 학생들에게 문화재 복원, 역사 이론, 가이드 등 크게 셋으로 나뉜 교육 과정을 거치게 하며, 현장 실습 비율을 절반으로 해 실무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문화재에 대한 관리도 엄격하다고 들었다. 역사 지구 안에 있는 건물은 임의로 구조를 변경할 수 없다고 하던데.유산환경규제 보호법에 따른 것이다. 아비뇽 성벽 내의 모든 기념물들을 포함해 1913년에 제정된 역사기념물 보호법과 1930년 문화등급지구 법에 따라 보호된다. 구역 내의 건물들은 구조와 색깔 등 소유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규제에 대한 주민 반발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민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문화관광도시로 관광수입으로만 먹고 산다. 다른 부분을 통해서 소득을 창출하긴 힘들다. 우리에겐 그 만큼 문화유산이 중요하고, 규제를 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건물 소유주가 임의로 구조를 변경할 경우, 변경비용보다 두 배의 비용을 벌금으로 내게한 뒤 원래대로 변경하도록 한다.- 관광수입으로만 먹고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아비뇽 페스티벌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이 축제에는 연간 5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현재 아비뇽은 관광객 수에 비해 숙소가 많이 부족하다. 더구나 3주만 열리는 축제 때문에 예산을 들여 숙박업소를 증축할 순 없다. 이때 시민들이 자신의 거주지를 관광객에게 숙소로 대여해주고 휴가를 떠난다. 그만큼 문화유산 관광업이 중요하다는 걸 방증한다.- 인터뷰에 성심성의껏 응해줘서 감사하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아비뇽 교황궁전에는 연간 60만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관광객이 많은 만큼, 그로부터 생성되는 열 때문에 궁전 내부의 벽화가 손상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말, 사슴, 들소 등 100여점의 동물상이 그려진 구석기 시대의 유물, 라스코 동굴 벽화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 1945년부터 1963년까지 일반에게 공개됐지만, 벽화에 곰팡이가 생기는 등 보존에 문제가 많아 현재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재 관광객에게 공개된 유적은 복제유물이다. 우리도 지금 이런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아비뇽 문화유산 관리계획] 장기적 관점 반영해 상세한 내용 담아미쉘 갈반이 인터뷰를 하면서 공개한 문서 아비뇽 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관리 계획은 상당히 체계적이다.아비뇽 시의 문화관광부, 보끌뤼즈 문화유산 관리과, 자치단체 건축역사문화보존 기관인 DRAC PACA의 주관 하에 만들어진 이 계획은 문화유산 관리에 관해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세계유산 등재에 따른 직간접적 경제적 효과, 세계유산과 도시환경(유적 보존 상태에 관한 평가)에 관한 점검표, 보존 기준 확립과 투자 등의 프로젝트, 문화유산 코디네이터 양성계획 등이 나와 있다.이 중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세계문화유산 관리정책은 시의 다른 정책서비스들(문화, 도시계획, 기술)과 통합되지 못하면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문화유산의 장으로서 모든 관리계획을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 개별 문화유산만 보호할 것이 아니라 도시 자체를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관리계획에는 세계유산 지정지역 인근을 난개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변지역을 완충지대로 지정하고 있다.이밖에 미쉘 갈반이 인터뷰 중에 언급했던 교황궁전 내 벽화의 예방보존 프로그램을 비롯해 문화유산 관광서비스, 교육 서비스 등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다. 그는 세계유산 등재 및 관리를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광범위한 지침을 제공하는 전략적 프로젝트다며계획을 바탕으로 20년 동안 조례를 만들어간다고 말했다.

  • 기획
  • 김세희
  • 2015.11.17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② 중세·현대 공존하는 '아비뇽'] 쇠락한 교황의 슬픈 역사…민·관 열정으로 다시 꽃 피우다

중세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아비뇽. 아비뇽 유수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유명한 이 도시는 권좌에서 쫓겨난 교황의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4세기 당시 이곳에 머물렀던 교황들은 고뇌하고 번민하다 떠나갔지만, 당시의 흔적들은 그대로 보존돼있다. 50m의 높이를 자랑하는 교황궁전, 프랑스의 민요 아비뇽 다리 위에서로 유명한 생 베네제교 등 즐비하다. 국가의 지원과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복원전문가들의 땀과 노력, 시민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중세의 재현에 완벽하게 성공한 이 도시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현대를 살아가는 아비뇽의 사람들은 중세의 공간속에 살고 있다. 말 그대로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다.△중세역사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공간= 아비뇽 역사지구는 말 그대로 유적의 도시였다. 아비뇽 시에 따르면 이곳에는 모두 105개의 문화재가 있다. 지역 일대는 11세기부터 교황이 건설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세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풍경들이다.역사지구 안에는 교황궁전, 로마네스크 후기의 대성당 등 14~16세기의 교회, 17~18세기의 성 등 사적 건축물이 즐비하다. 현대적인 패션 부티크, 갤러리 등도 모두 중세시대 건물의 외형을 갖춘 공간에 입점해 있으며, 시대를 거스르는 오래된 저택들도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다. 시청경찰서 등 관공서와 대학도 사적으로 지정된 건물 내에 있다.국민의 생활과 단절된 채 존재하는 국내 유적지구와는 사정이 달랐다. 역사유적지구가 우수한 보존 상태를 보여주고, 지금도 사용하는 게 신기해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느냐고 미쉘갈반 아비뇽 시청 문화관광부 디렉터에게 물었다.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관리는 문화재 복원학교 등에서 양성된 정예인력이 하고 있고, 토지소유주가 유적을 마음대로 변형할 수 없게끔 우리가 제지를 하고 있다.함께 현장을 찾은 서제희 리옹 한글학교 교장은 (각종 제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유적을 생활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60만 관광객 찾는 아비뇽의 상징, 교황궁전= 아비뇽 역사지구 중앙에 위치한 교황궁전은 뛰어난 보존력을 자랑한다.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교황의 불안감이 궁전 곳곳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어서다. 당시를 살아갔던 교황에겐 슬픔의 흔적일 수 있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겐 매력적인 요소다.높이 50m, 1만5000㎡의 교황궁전은 두께 4m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팎으로는 삼엄한 경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성벽 사이사이 침략해오는 적을 향해 활을 쏘고 포탄을 날릴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존재했다. 심지어 궁전 안쪽 뜰에는 당시 쓰였던 돌 포탄까지 있다. 14세기 교회권력이 쇠락하면서 프랑스군으로부터 교황 자신을 방어하려 했던 흔적이다.전쟁 영화에 나올 법한 외관으로 씁쓸한 이면을 간직한 것 외에, 궁전 안뜰에 바닥을 복원하는 현장이 눈길을 끈다. 복원현장에 걸려있는 해설문에 따르면 20년에 걸쳐서 복원 중이다. 섣부른 복원으로 원형논란을 유발하고, 복원유적에 균열이 생기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이와 함께 궁전 내부에는 복원과정을 설명해주는 영상자료실이 있다. 어떤 것이 더 증축되고, 예산은 얼마나 드는 지 설명하는 영상이 상영된다.관광객들을 매료시킬만한 것도 상당수다. 각 성벽마다 당시 재위했던 교황의 얼굴과 궁전을 쌓는 데 공헌했던 귀족들의 얼굴이 새겨져있다. 또 궁전 4층에 위치한 전시실에는 역대 교황들에 대한 소개와 바닥타일, 프레스코 등이 소규모로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7개 국어로 설명된 해설서가 비치돼 있다. 유적지 설명이 대부분 모국어로 돼있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불편을 주는 한국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이외에도 궁전 아래층에는 당시 살았던 교황들의 성격에 맞춰 차와 다과를 종류별로 파는데, 관광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서제희 교장은 비록 한 공간이지만 역사 유적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하는 지 엿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사례다고 평가했다.△붕괴현장이 예술로 승화된 생베네제교(아비뇽 다리)= 교황궁전 외 또 다른 관광명소가 아비뇽 다리로 알려진 생 베네제교다. 12세기에 처음 지어진 이 다리는 21개의 교각에 22개의 아치가 있는 900m 길이의 다리였지만, 17세기말 홍수로 파괴돼 현재는 아치형으로 된 교각 4개만 쓸쓸히 남아있다.다리 근처에 있는 자료관에서는 옛 아비뇽의 화려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아비뇽 성벽에서 연결되는 다리의 시작부분에는 생 니콜라 예배당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다리는 붕괴되고, 유적은 덩그러니 하나 남아있지만, 해가 넘어가기 직전의 다리의 모습은 다르게 다가왔다. 마치 동화 속 공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유적을 더 유서 깊게 만든다.당시 다리 중턱에서 만난 관광객 이브 씨는 교황궁전과 론강을 바라보며 중세시대의 유적과 풍광을 경험할 수 있다는 데 아비뇽의 매력이 있다며 역사유적이 매혹적인 예술품처럼 다가온다고 말했다.매표소에 따르면 이 다리는 연간 30~40만 정도의 관광객이 찾는다. 매표소 직원인 투르니에르 스테판씨는 어릴 때부터 들었던 다리와 관련된 민요가 많은 관광객들을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아비뇽 성벽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축대 중간과 매표소에는 민요 아비뇽 다리 위에서가 펼쳐져 있다. 전래되는 민속음악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다.● 교황 성격 오롯이 담긴 역사 관광마케팅 '눈길'교황의 성격을 역사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 당시 교황의 성격에 맞춰 차와 다과를 다양하게 파는 가게다. 교황궁전 입구 부근에 위치해 있다.가게의 진열대 위에는 교황의 이름이 적힌 큰 상자가 있고, 그 양 옆에는 차를 포장해놓은 종이상자가 놓여있다. 종이상자에는 교황의 성격이 묘사돼 있다. 가령 어떤 교황은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졌고, 어떤 교황은 불만이 많고 다혈질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식으로 자세하게 풀어놨다.교황의 성격에 따라 허브가 담긴 양이 다르고, 여기에 오렌지나 계피과일 등을 첨가해 당시 교황의 취향에 맞춰서 판매한다.이러한 점들이 관광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서제희 교장은 한국도 역사 인물에 관련된 스토리를 가시화해 역사관광마케팅을 할 수 있다며 사료를 바탕으로 유적과 관련된 인물의 이야기를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 기획
  • 김세희
  • 2015.11.13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① 프롤로그] 문화재 원형 지켜 관광자원 활용하는 유럽서 배운다

지난 7월 익산 미륵사지왕궁리 유적을 비롯해 충남 공주부여 유적을 포함한 백제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 등재로 전북은 고창 고인돌유적과 함께 2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한국이 보유한 세계유산은 모두 12개. 적지 않다. 그러나 등재 이후 이들 유산을 둘러싼 과제는 더 많아졌다. 보존과 관리는 미흡하고 이 유산들을 관광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는 길도 막혀있기 때문이다.전문가들 사이에서 등재만을 위한 등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세계유산으로의 등재는 큰 의미를 갖는다.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곧 세계적인 관심을 모을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문화유산의 원형을 잘 보존하면서도 성공적으로 관광자원화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우리보다 훨씬 앞서 문화유산의 가치를 주목해 보존과 관리에 힘써온 나라에는 이들 문화유산으로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한 도시가 적지 않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이 대표적인 예다.프랑스와 이탈리아 세계문화유산 도시들의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 정책은 치밀하고 지혜롭다. 시민들의 일상은 도시 곳곳에서 함께 숨쉬는 문화유산으로 더욱 풍요롭고,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은 이 도시의 문화적 힘에 감동하고 열광한다.이제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가 길을 찾을 차례다.△백제의 고도(古都)의 흔적, 왕궁리 유적지와 미륵사지= 왕궁면 왕궁리와 금마면 동고동리에 위치한 왕궁리 유적지는 오랜 세월 백제사의 변방이었다. 그러다가 1971년 일본 교토대학의 마키타 타이료 교수가 교토 청련원(靑蓮院)에서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를 발견하면서 백제 역사의 중앙으로 진입했다. 중국 육조시대에 쓰인 이 기록에는 무광왕(백제 무왕)이 지모밀지(枳慕蜜地-익산으로 추정)로 천도했던 사실과 제석정사(帝釋精寺-왕궁리에 있었던 절)의 화재기사가 담겨 있다. 이를 계기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각종 지리지(地理志)등 익산 관련 사료들을 재점검하는 작업이 시작됐고, 1970년대부터 진행된 익산지역 백제유적 발굴은 힘을 얻었다.1989년부터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의해 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6년간의 발굴 조사결과 관세음응험기에 나온 제석정사터를 비롯해 성벽과 관련된 문지의 흔적, 명문이 새겨진 기와와 도가니 등 수 천여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화장실터 3기도 발견됐는데 그 곳에서 뒤처리용 막대, 짚신 등이 출토됐다. 토양 분석결과 회충편충간흡충의 기생충 알도 확인됐다. 현재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유적으로 꼽히며 내부엔 왕궁리 5층 석탑이 있다. 면적은 21만 6862㎡다.금마면에 위치한 미륵사지는 동아시아 최대의 가람이다. 신라 대표사찰인 황룡사보다 더 크다. 가람 내부에 있는 미륵사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되는 과도기적인 양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립된 3개 사찰을 묶어놓은 듯한 3원식 가람배치는 세계에서 유일하다.미륵사는 17세기 무렵 폐사돼 지금은 절터에 석탑만 남아 있지만, 백제의 역사를 규명해주는 귀중한 자산이다. 특히 지난 2009년 석탑을 해체할 때 발견된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탑에 봉안된 불사리를 담은 용기)는 백제사의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줬다. 가로 15.3㎜, 세로 10.3㎜, 두께 1.3㎜의 얇은 금제박판으로 만들어진 사리봉안기는 미륵사 창건 배경, 발원자, 석탑 건립연대 등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3중 사리기(사리를 모신 그릇), 각종 장신구, 유리구슬, 직물 등 9600여점의 유물이 발견돼 큰 화제가 됐었다.미륵사 탑에 관한 안쓰러운 사연도 있다. 1915년에 무너졌던 석탑을 일본인들은 콘크리트를 발라 버티게 했다. 87년 동안 버티던 석탑은 2002년 해체됐으며 2017년에 보수정비 작업을 마친다. 본래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7층 이상의 부재가 발견되지 않아 6층으로 복원될 계획이다.△ 진정한 백제고도로 거듭나기= 백제고도지역은 본래의 모습이 일그러져 있다. 근대 이후 산업화와 더불어 유적 주변의 난개발이 이루어져서다. 각각의 고대유적들은 역사적인 연결고리 없이 개별적으로 보호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으로부터 비롯됐다. 당시의 법은 개별문화재만을 대상으로 보호관리를 실시했다. 유적과 관련한 유적경관이나 주변 시설물에 대해선 법적 보호를 하지 않거나 소홀하게 취급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2004년 고도보존 특별법이 지정됐지만, 재정확보문제와 주민반발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익산 백제역사지구 같은 경우도 지적한 바와 같다.역사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이런 부분들이 관광 활성화에 저해될 수 있다며 여러 가지 대안을 제기한다.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은 주변 경관이나 시설과 무관하게 형성된 고대도시는 없다며 한국 같은 경우 왕도를 형성하는 전근대 시기 도성체계의 배경을 고려해 역사유적지구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김주성 전주교대 교수는 미륵사탑과 왕궁리 5층 석탑밖에 없어서 관광객에게 보여줄 게 없다며 한계가 있는 역사 복원에만 힘쓰지 말고 스토리텔링 할 수 있는 유형의 관광자원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김 교수는 이어 이탈리아 베로나에 가면 줄리엣의 집이 있는데, 주변유적과 스토리텔링이 잘 이뤄져 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다고 사례를 제시했다.이밖에 전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과제는 쌓여있다. 숙박시설 마련, 인지도 상승, 세계유산 해설사 양성, 외국인 대상 소개 사이트 준비 등 여러 가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세계유산 개관=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고대, 중세 때와 마찬가지로 수천 년, 수백 년 전의 문화재를 보호하며 고도로서 위엄을 유지하고 있다.도시에 위치한 건축물들은 역사의 지층을 대변하며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고대, 중세의 건축물들이 도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그 안에 주택, 시장, 관공서, 미술관 등이 있다. 시민들의 생활공간 자체가 세계유산인 셈이다.파리, 아비뇽,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등 5개 도시는 옛 것이 예술이 된 대표적인 도시다.파리의 세느강 주변은 에펠탑, 개선문, 세느강의 다리, 노트르담 사원 등 세계유산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도시의 매력을 한층 배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교황의 유배지로 유명한 아비뇽은 교황궁전과 성곽 등 역사 유적 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10개의 탑으로 둘러싸인 교황궁전은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모습이다.로마에는 고대 로마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는 로마역사지구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개선문, 카라칼라 목욕장, 산타 마리아 마조레 교회 등이 대표 유적이다. 이와 함께 로마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 콜로세움이 있다. 나폴리는 장구한 세월 화산재에 파묻혀 있다가 다시 태어난 폼페이 유적으로 유명하다.마피아의 도시, 영화 대부 로 유명한 시칠리아는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고대 그리스 극장, 신전 등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타오르미나는 고대의 유적지가 널리 분포돼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진 그리스 극장과 주변의 움베르트 거리가 관광명소다.△ 보존과 활용의 모범사례= 유럽의 세계유산들이 보존이 잘 돼 있는 이유는 문화재 보존 관련 법률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헌법에 국가의 문화유산 보호의무를 명시해뒀으며, 프랑스에서는 국립 역사문화재 및 유산 유적 관리청에서 실질적인 감독관리를 하고 있다.법률 등에 따르면 도심에 위치한 유적지구에 있는 건물은 임의로 구조를 변경할 수 없다. 변경작업은 건물 색깔까지 역사적 맥락을 따지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뒤 시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미쉘 갈반 아비뇽 시청 문화관광부 디렉터는 문화재로 인한 재산권 행사, 개발 제한 등이 발생하는 것은 유럽인들에게 일반적이다며 문화재는 생활의 일부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관광마케팅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일부 유명 유적지에는 다수의 문화해설사가 대기하고 있다. 시 단위로 문화설사가 14명만 있는 익산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다국어로 된 유적지 설명, 스마트폰 앱 이용한 유적해설, 역사 마케팅 등 다양한 홍보방법을 동원한다.전문가들도 한국과 다른 관점으로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방안에 대해서 접근한다. 폼페이 유적 복원현장에서 만났던 복원전문가 꼴리나와 알베르토는 우리는 복원한다기 보단 주로 보수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며 최대한 훼손을 안하는 범위에서 공사를 진행한다고 말했다.그들은 이어 관광객들이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복원을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기획
  • 김세희
  • 2015.11.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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