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나자 시민들 보수 촉구 / 명품회사들 재정 적극 지원 / 17개월동안 작업해 '새단장'…역사성 부각 자료수집 '열공' / 복원전문업체 3곳 머리 맞대 / "원형에 맞춰 최대한 똑같이"
지난달 24일과 27일 두 번씩이나 마주했던 로마의 폰타나 디 트레비(이하 트레비 분수). 이탈리아 로무 폴리 대공의 궁전 앞에 있는 이 분수는 장구한 세월을 거쳐 온 유적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이제 막 지은 건축물 같았다. 분수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새하얀 조각상과 장식들은 250여년 묵은 유적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선명했다. 문화재 복원전문가들이 지난 17개월 동안 치열하게 보수작업을 한 결과다.
당시 막바지 보수 작업이 한창이던 트레비 분수는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비계 등 작업 구조물이 걷혀지고 80%이상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높이가 낮고 투명한 안전펜스만이 남아있어, 관광객들은 빛을 뿜는 유적과 함께 복원작업 현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우연찮게 한국에서 온 전주 사람을 만났다. 역사교사를 하다가 퇴임한 김봉섭씨(61·전주시 삼천동)는 “공개된 보수현장이 사람들에게 역사 유적에 대한 호기심과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살아있는 역사교육 현장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실복원으로 논란이 끊이질 않지만, 숭례문 같은 경우에도 복원현장을 대중에게 공개했던 점은 좋은 취지였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주위를 돌아보니 현장의 관광객들은 트레비 분수의 보수현장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세 갈래 길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트레비 분수는 상당히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1629년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스케치에 의해 토대가 만들어졌고, 이에 기초해 니콜로 살비가 1732년~51년까지 건조했다. 1762년 주제페 판니니에 의해 완공됐다. 분수 중앙에는 바다의 신인 넵툰(포세이돈)의 조각상이 서 있고, 양 옆에는 ‘풍요로움’과 ‘유익함’의 여신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 위에는 로마의 수도교 역사를 나타내는 얕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지난 198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역사적인 명성과 달리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990년대 초 이래 한번도 보수 작업에 들어가지 않아 꾸준히 논란의 중심에 섰고, 지난 2007년에는 물을 공급하던 ‘아쿠아 베르지네’ 지하수로에 구멍이 나 분수대가 말라붙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 전례 없는 추위와 함께 분수의 코니스(서구식 건축에서 처마 끝을 완성하는 부재)가 떨어져 나갔다. 시민들의 보수 요구가 빗발쳤다.
공공시설물 유지 보수예산이 감축된 로마시는 재정모금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팬디를 비롯한 명품 브랜드 회사들이 유적 살리기에 나섰다. 특히 패션 브랜드 팬디는 218만유로(약 27억3854만원)를 기부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역은 트레비 분수 앞 안전펜스에 붙여져 있다. 명품 회사의 지원 덕분에 개·보수 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27일 현장에 있는 복원전문가들은 한창 마무리 작업에 분주했다. 1762년 완공됐던 그 모습 그대로 새하얀 대리석이 드러난 가운데, 곳곳에서 보수 점검에 몰두하고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분수대쪽에 포진돼 대리석의 ‘마지막 때’를 벗겨내고 있었고, 팀장급들은 매뉴얼을 들고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점검하고 있었다. 현장에 있는 인원을 세어보니 얼추 30명은 되어보였다.
복원 전문가 안젤라씨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안젤라씨는 “문화재 복원 전문업체 3개가 참가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재 보수공사가 시작될 당시 로마시가 문화재 복원업체들을 상대로 모집공고를 내 많은 업체가 몰렸는데, 이 중 세 개 업체가 선정됐다”고 덧붙였다. 트레비 분수 보수 업체는 A.R.A, C.B.C, Teeni.com이다. 그는 C.B.C에 소속돼 있고, 직급은 팀장급이다.
안젤라씨에 따르면 이탈리아에는 유적 보수업체가 300여개 정도 되며 법인 회사 형태로 존재한다. 거의 다 영리회사며 복원 전문가 자격증이 반드시 있어야 일할 수 있다. 한국과 같이 국보 및 보물급 문화재를 비자격자나 무등록 업체가 수리하다 적발되는 상황은 거의 발생되지 않는다.
안젤라씨는 복원과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복원에 참가하는 3개 업체는 각기 다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업체다. 가령 한 회사는 대리석의 때를 벗겨내는 데전문성이 있고, 한 회사는 파손된 부분을 메꾸는 데 전문성을 가졌다. 다른 회사는 문화재에 색을 입히는 데 특화됐다. 이들 회사는 서로간의 협의를 통해 복원전략을 세운다.
안젤라씨는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현재 보존·관리 상태를 점검한 뒤 업무를 상황에 맞게 배분한다”며 “논의단계만 해도 수 차례를 거친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젤라씨는 특히 복원전의 공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역사성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그는 “같은 바로크 양식이라고 하더라도 당대에 사용됐던 용도에 따라 건축방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며 “적은 차이 같지만 완벽한 복원을 위해 최대한 근거자료를 많이 수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확한 고증을 위해 국회도서관이나 로마 국립박물관에서 건축관련 사료를 참고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며 “니콜살비와 주제페 판니니가 분수대를 만들었던 것과 똑같이 하려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문화재는 국가의 전유물도 역사의 자랑스러운 흔적도 아닙니다. 역사적 가치를 시민들에게 되돌려준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문화재 보호 첨병
- 국립 복원학교 운영 헌법에 의무 명시도
트레비 분수가 유럽의 명소란 타이틀을 갖게 된 것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복원기관과 문화재 보호 의무가 명시된 헌법이 문화재 보존의 첨병역할을 하고 있다.
로마에는 문화재 보존·복원을 위한 국립복원학교가 있다. 1939년에 설립된 이 학교는 5년제 과정으로 매년 최대 15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교수 1명에게 배정되는 학생수는 법률상 최대 5명이다. 주로 실무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문화재 재질별로 크게 셋으로 나눈 교육과정을 거치게 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보수·복원 기관인 국립복원연구소 피렌체전시관지부도 소수 인원을 선발해 현장실습을 강조한다. 해마다 5명을 선발해 5년간 가르친다. 지난해에는 볼로냐에 있는 산 페트로니오 성당 보수 작업에 참여했다. 문화재 보수·복원 업체 C.B.C의 팀장인 안젤라씨는 “배우는 과정에서 문화재를 직접 경험하면 책임감과 자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유적지 관리 부실로 도마위에 오르긴 했지만, 헌법에 국가의 문화유산 보호의무를 명시한 것도 인상적이다. 헌법 9조는 이탈리아 공화국에 문화유산 보호와 관련 기술 발전을 의무화하고 있다. 안젤라씨는 “법률상 문화재 보호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조항이다”며 “경제관련 법안보다 상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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