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1-28 23:42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chevron_right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일반기사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① 프롤로그] 문화재 원형 지켜 관광자원 활용하는 유럽서 배운다

▲ 찬란한 고대 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로마역사지구 내에 있는 콜로세움. 티투스 황제시대에 지어진 거대한 원형경기장이고, 로마의 우수한 건축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로마=안봉주 기자

지난 7월 익산 미륵사지·왕궁리 유적을 비롯해 충남 공주·부여 유적을 포함한 백제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 등재로 전북은 고창 고인돌유적과 함께 2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한국이 보유한 세계유산은 모두 12개. 적지 않다. 그러나 등재 이후 이들 유산을 둘러싼 과제는 더 많아졌다. 보존과 관리는 미흡하고 이 유산들을 관광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는 길도 막혀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등재만을 위한 등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유산으로의 등재는 큰 의미를 갖는다.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곧 세계적인 관심을 모을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문화유산의 원형을 잘 보존하면서도 성공적으로 관광자원화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문화유산의 가치를 주목해 보존과 관리에 힘써온 나라에는 이들 문화유산으로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한 도시가 적지 않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이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세계문화유산 도시들의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 정책은 치밀하고 지혜롭다. 시민들의 일상은 도시 곳곳에서 함께 숨쉬는 문화유산으로 더욱 풍요롭고,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은 이 도시의 문화적 힘에 감동하고 열광한다.

 

이제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가 길을 찾을 차례다.

 

△백제의 고도(古都)의 흔적, 왕궁리 유적지와 미륵사지= 왕궁면 왕궁리와 금마면 동고동리에 위치한 왕궁리 유적지는 오랜 세월 백제사의 변방이었다. 그러다가 1971년 일본 교토대학의 마키타 타이료 교수가 교토 청련원(靑蓮院)에서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를 발견하면서 백제 역사의 중앙으로 진입했다. 중국 육조시대에 쓰인 이 기록에는 무광왕(백제 무왕)이 지모밀지(枳慕蜜地-익산으로 추정)로 천도했던 사실과 제석정사(帝釋精寺-왕궁리에 있었던 절)의 화재기사가 담겨 있다. 이를 계기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각종 지리지(地理志)등 익산 관련 사료들을 재점검하는 작업이 시작됐고, 1970년대부터 진행된 익산지역 백제유적 발굴은 힘을 얻었다.

▲ 익산 미륵사지

1989년부터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의해 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6년간의 발굴 조사결과 관세음응험기에 나온 제석정사터를 비롯해 성벽과 관련된 문지의 흔적, 명문이 새겨진 기와와 도가니 등 수 천여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화장실터 3기도 발견됐는데 그 곳에서 뒤처리용 막대, 짚신 등이 출토됐다. 토양 분석결과 회충·편충·간흡충의 기생충 알도 확인됐다. 현재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유적으로 꼽히며 내부엔 왕궁리 5층 석탑이 있다. 면적은 21만 6862㎡다.

 

금마면에 위치한 미륵사지는 동아시아 최대의 가람이다. 신라 대표사찰인 황룡사보다 더 크다. 가람 내부에 있는 미륵사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되는 과도기적인 양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립된 3개 사찰을 묶어놓은 듯한 3원식 가람배치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 왕궁오층석탑

미륵사는 17세기 무렵 폐사돼 지금은 절터에 석탑만 남아 있지만, 백제의 역사를 규명해주는 귀중한 자산이다. 특히 지난 2009년 석탑을 해체할 때 발견된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탑에 봉안된 불사리를 담은 용기)는 백제사의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줬다. 가로 15.3㎜, 세로 10.3㎜, 두께 1.3㎜의 얇은 금제박판으로 만들어진 사리봉안기는 미륵사 창건 배경, 발원자, 석탑 건립연대 등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3중 사리기(사리를 모신 그릇), 각종 장신구, 유리구슬, 직물 등 9600여점의 유물이 발견돼 큰 화제가 됐었다.

 

미륵사 탑에 관한 안쓰러운 사연도 있다. 1915년에 무너졌던 석탑을 일본인들은 콘크리트를 발라 버티게 했다. 87년 동안 버티던 석탑은 2002년 해체됐으며 2017년에 보수정비 작업을 마친다. 본래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7층 이상의 부재가 발견되지 않아 6층으로 복원될 계획이다.

 

△ 진정한 백제고도로 거듭나기= 백제고도지역은 본래의 모습이 일그러져 있다. 근대 이후 산업화와 더불어 유적 주변의 난개발이 이루어져서다. 각각의 고대유적들은 역사적인 연결고리 없이 개별적으로 보호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으로부터 비롯됐다. 당시의 법은 개별문화재만을 대상으로 보호·관리를 실시했다. 유적과 관련한 유적경관이나 주변 시설물에 대해선 법적 보호를 하지 않거나 소홀하게 취급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2004년 ‘고도보존 특별법’이 지정됐지만, 재정확보문제와 주민반발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익산 백제역사지구 같은 경우도 지적한 바와 같다.

 

역사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이런 부분들이 관광 활성화에 저해될 수 있다며 여러 가지 대안을 제기한다.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은 “주변 경관이나 시설과 무관하게 형성된 고대도시는 없다”며 “한국 같은 경우 왕도를 형성하는 전근대 시기 도성체계의 배경을 고려해 역사유적지구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주성 전주교대 교수는 “미륵사탑과 왕궁리 5층 석탑밖에 없어서 관광객에게 보여줄 게 없다”며 “한계가 있는 역사 복원에만 힘쓰지 말고 스토리텔링 할 수 있는 유형의 관광자원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탈리아 베로나에 가면 줄리엣의 집이 있는데, 주변유적과 스토리텔링이 잘 이뤄져 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다”고 사례를 제시했다.

 

이밖에 전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과제는 쌓여있다. 숙박시설 마련, 인지도 상승, 세계유산 해설사 양성, 외국인 대상 소개 사이트 준비 등 여러 가지다.

 

△ 프랑스와 이탈리아 세계유산 개관=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고대, 중세 때와 마찬가지로 수천 년, 수백 년 전의 문화재를 보호하며 ‘고도’로서 위엄을 유지하고 있다.

 

도시에 위치한 건축물들은 역사의 지층을 대변하며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고대, 중세의 건축물들이 도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그 안에 주택, 시장, 관공서, 미술관 등이 있다. 시민들의 생활공간 자체가 세계유산인 셈이다.

▲ 퐁피두 센터에서 바라본 파리의 전경. 도심안에 남아있는 중세의 건축물들이 역사의 지층을 대변하며 조화롭게 어우러져있다. ·파리=안봉주 기자

파리, 아비뇽,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등 5개 도시는 ‘옛 것이 예술’이 된 대표적인 도시다.

 

파리의 세느강 주변은 에펠탑, 개선문, 세느강의 다리, 노트르담 사원 등 세계유산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도시의 매력을 한층 배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교황의 유배지’로 유명한 아비뇽은 교황궁전과 성곽 등 역사 유적 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10개의 탑으로 둘러싸인 교황궁전은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모습이다.

 

로마에는 고대 로마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는 로마역사지구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개선문, 카라칼라 목욕장, 산타 마리아 마조레 교회 등이 대표 유적이다. 이와 함께 로마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 콜로세움이 있다. 나폴리는 장구한 세월 화산재에 파묻혀 있다가 다시 태어난 ‘폼페이 유적’으로 유명하다.

 

마피아의 도시, 영화 ‘대부’ 로 유명한 시칠리아는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고대 그리스 극장, 신전 등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타오르미나는 고대의 유적지가 널리 분포돼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진 그리스 극장과 주변의 움베르트 거리가 관광명소다.

 

△ 보존과 활용의 모범사례= 유럽의 세계유산들이 보존이 잘 돼 있는 이유는 문화재 보존 관련 법률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헌법에 국가의 문화유산 보호의무를 명시해뒀으며, 프랑스에서는 국립 역사문화재 및 유산 유적 관리청에서 실질적인 감독·관리를 하고 있다.

▲ 파리 노트르담 성당. 12세기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성당으로 파리를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파리=안봉주 기자

법률 등에 따르면 도심에 위치한 유적지구에 있는 건물은 임의로 구조를 변경할 수 없다. 변경작업은 건물 색깔까지 역사적 맥락을 따지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뒤 시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미쉘 갈반 아비뇽 시청 문화관광부 디렉터는 “문화재로 인한 재산권 행사, 개발 제한 등이 발생하는 것은 유럽인들에게 일반적이다”며 “문화재는 생활의 일부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관광마케팅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일부 유명 유적지에는 다수의 문화해설사가 대기하고 있다. 시 단위로 문화설사가 14명만 있는 익산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다국어로 된 유적지 설명, 스마트폰 앱 이용한 유적해설, 역사 마케팅 등 다양한 홍보방법을 동원한다.

 

전문가들도 한국과 다른 관점으로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방안에 대해서 접근한다. 폼페이 유적 복원현장에서 만났던 복원전문가 꼴리나와 알베르토는 “우리는 복원한다기 보단 주로 보수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며 “최대한 훼손을 안하는 범위에서 공사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어 “관광객들이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복원을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