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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 1장 칠봉성주(七峯城主) ②

글 이 원 호 그림 권 휘 원

 

“강이 산줄기를 따라 흐르고 있어서 방어에 아주 적당합니다.”

 

장덕 진광이 성을 안내하면서 말했다.

 

“10명으로 능히 1백여명의 적을 막을 수가 있지요.”

 

석성(石城)은 높이 15자(4.5m) 정도인데다 틈이 많아서 넘기에 어렵지가 않다. 그러나 산 아래쪽 강이 막힌데다 숲이 짙어서 칠봉성(七峯城)은 지금까지 한번도 함락된 적이 없다고 했다. 계백이 성루에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왼쪽은 넓은 평야였고 바다에 닿는다. 그리고 오른쪽은 산맥이 펼쳐져 있다. 마치 칠봉성을 뒤에서 막아주는 것 같다. 평야쪽으로 군데군데 마을이 보였는데 이곳저곳에서 밥짓는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성주께선 연남군에서 기마대장을 지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문득 진광이 말해서 계백이 시선을 주었다. 진광은 30대 초반쯤으로 계백보다 10년쯤 연상같다. 진광이 웃음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열흘쯤 전에 군(郡)의 도사(道使)가 다녀갔거든요. 공을 많이 세우셨다고 하더군요.”

 

“싸울 기회가 많았으니 죽기 아니면 살아서 승진하는 것 외에 다른 수가 있겠나? 덕솔이 그곳에 있었다면 지금은 군장(郡將)쯤 되어 있을 거네.”

 

“과분한 말씀.”

 

젊은 상관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 가셔진 진광의 어깨가 늘어졌다. 성주로 부임한 계백은 장신의 호남이다. 눈매가 날카롭고 입은 꾹 닫쳐져서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웃을 때 보면 얼굴이 환해진다. 진광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계백은 지금까지 바다건너 대륙의 백제령인 담로(檐魯) 연남군에서 기마대장을 지냈다. 가족은 없고 시종 하나만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그때 발을 뗀 계백이 말했다.

 

“대륙에서는 당과 싸우고 귀국해서는 신라와 싸우게 되는구려.”

 

“전시(戰時)지요.”

 

옆을 따르면서 진광이 말을 이었다.

 

“이곳 칠봉성은 내지여서 가끔 신라군의 기습군에게 피해를 입을 뿐입니다.”

 

성루를 내려간 계백이 이제는 전력 점검을 했다. 칠봉성의 보유 병력은 기마군 125인, 보군 236인이며, 말은 220필, 보유 양곡은 110일분이다. 성(城) 지휘부는 나솔 관등의 성주 계백과 보좌역인 장덕 진광, 그리고 소장급 10품 계덕 2명과 11품 대덕 3명, 조장 보좌역격인 12품 문독 3명, 13품 무독 4명이 있다. 전력 점검을 마친 계백이 성안의 마룻방에 진광과 계덕, 대덕급의 조장들을 불러 둘러앉았다. 진광이 먼저 보고했다.

 

“칠봉성에서는 근처 50리 안의 9개 마을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가구수 5백호 정도에 3천명쯤 되는데 각 마을에 연락병과 정탐병을 배치시켰습니다.”

 

“작년에 신라군이 기습해왔나?”

 

계백이 오면서 들었던 말을 물었더니 진광이 대답했다.

 

“예. 원산(元山) 마을이 기습을 당했지요. 밤에 갑자기 기습을 해서 성에서 출동했을 때는 사라진 후였습니다.”

 

“신라 별동군인가?”

 

“아닙니다.”

 

나선 사내는 계덕(季德) 왕수, 30대 후반쯤으로 수염이 잡초처럼 무성한 사내다. 어깨를 핀 왕수가 말을 이었다.

 

“국경 근처의 고선성에서 나온 기마군입니다. 그때 잡아간 마을 사람들이 지금 그곳에서 종이 되어 있습니다. 일부는 팔려갔구요.”

 

그러자 진광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왕수는 세작을 관리합니다. 성을 지키려면 세작도 관리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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