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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6) 2장 대야성 ⑤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성주, 힘들 것 같소.”

 

전택이 말하고는 외면했다. 깊은 밤, 오늘도 전택이 술병을 차고 뒷문으로 숨어들어와 둘이 술을 마시고 있다. 긴 숨을 뱉은 전택이 말을 이었다.

 

“대장군은 편지도 주지 않았소. 증거가 될까봐 그랬겠지. 나중에 보자는 건 어렵다는 뜻이지요.”

 

“이 사람아, 왜 사람을 보냈어?”

 

진궁이 나무랐지만 곧 쓴웃음을 지었다.

 

“대장군도 제 앞가림을 겨우 할 정도네. 김품석과 김춘추하고 내 일 때문에 갈등을 일으킬 수는 없어.”

 

“억울하지 않습니까?”

 

전택이 눈을 부릅떴으므로 진궁은 외면했다. 오후에 전택은 김유신에게 심부름을 보냈던 부하의 전갈을 받은 것이다. 보기당의 대군을 거느리고 북상하던 대장군 김유신은 전택이 보낸 편지를 읽고 나서 곧 불에 태우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중에 보자면서 돌려보냈다고 했다.

 

“아무려나 같은 가야인으로 이럴 수가 있소? 김춘추한테 말 한마디 해주면 될 텐데.”

 

“이봐, 급벌찬. 그만하게.”

 

“개뼈다귀 같은 성주 놈은 지금도 술타령이요.”

 

“…….”

 

“김품석이 그놈이 나쁜 놈이지.”

 

이제 칼끝이 김품석에게 옮겨졌다.

 

“그놈도 개뼈다귀 아닙니까? 우리 가야인은 신라의 종이 되었소.”

 

“술 취했나?”

 

“난 이까짓 9품 벼슬은 안할랍니다.”

 

술에 취한 전택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진궁을 보았다.

 

“처자식도 고향에 있으니 옷 벗고 돌아갈거요.”

 

“…….”

 

“성주께서도 같이 가십시다. 아마 무장(武將)의 절반 이상이 따라 나올겁니다.”

 

“죽었겠지.”

 

불쑥 진궁이 말하는 바람에 전택이 말을 멈추고 딸꾹질을 했다. 진궁이 흐려진 눈으로 전택을 보았다.

 

“내 편지를 보였다면 죽었을 거야.”

 

“성주, 무슨 말씀이오?”

 

“내가 죽으라고 쓴 편지니까.”

 

“누구한테 편지를 쓰신 거요?”

 

“이보게, 급벌찬.”

 

눈동자의 초점을 잡은 진궁이 전택을 보았다.

 

“내가 그날 밤 백제 장수 계백의 편지를 받았다네.”

 

숨을 죽인 전택에게 답장까지 써 준 이야기를 마친 진궁이 빙그레 웃었다.

 

“고화가 그 편지를 읽었다면 자결했을 거네.”

 

“성주, 과연 그렇게 될까요?”

 

“뭐가 말인가?”

 

“계백이 제 종이 뻔히 자결할 줄 알면서 성주 편지를 보여주겠습니까?”

 

“그 생각도 했어.”

 

“성주가 계백하고 편지 왕래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죽은 목숨이요.”

 

“그대에게 밝혔지 않은가?”

 

“저한테 목숨을 맡기셨다는 말씀이군요.”

 

어깨를 부풀린 전택이 빙그레 웃었다.

 

“성주, 제가 성주하고 몇 년 인연입니까?”

 

“15년쯤 되었지?”

 

“16년이요. 그동안 성주의 은덕을 많이 입었소.”

 

“같은 가야인으로 서로 도왔을 뿐이지.”

 

“제가 변복을 하고 백제 땅으로 들어가지요.”

 

술병을 든 전택이 병째로 남은 술을 두 모금 삼키더니 진궁을 보았다.

 

“계백을 만나겠습니다.”

 

“…….”

 

“먼저 계백의 종이 되어 있는 고화 아가씨가 살아있는가부터 확인을 해야겠지요.”

 

“…….”

 

“살아있다면 계백이 의지할만한 무장이니 털어놓겠습니다.”

 

“뭘 말인가?”

 

진궁이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전택이 이만 드러내고 소리없이 웃었다.

 

“김유신이 신라에 붙어 출신한 것처럼 우리는 백제에 붙어 이름을 높입시다. 가야인의 이름을 말씀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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