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계백이 함성 소리에 눈을 떴다. 먼 쪽에서 울리는 함성이다. 벌떡 상반신을 일으켰을 때 서진이 이불을 끌어 가슴을 가리면서 따라 일어났다. 갑자기 터진 함성에 문밖은 소란해졌다. 옷을 걸친 계백이 밖으로 나왔을 때 위사장 하도리가 마당에서 소리치듯 말했다.
“당군의 공격이오!”
“이 시간에?”
계백이 동녘 하늘 보았다. 아직 날도 밝지 않았다. 석달이 되는 동안 당군이 새벽부터 공격하는 것은 처음이다.
“당군이 서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하도리의 두 눈이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다.
“서문을?”
계백이 갑옷 허리끈을 여미면서 마당으로 내려왔다. 서문은 백제군이 맡은 것이다. 당군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공방전을 치르면서 서로 부르고 답하며 욕설은 욕설로 상대하다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계백이 서문으로 달려갔을 때 하늘은 부옇게 밝기 시작했지만 공격은 절정에 올라 있었다. 당군(唐軍)은 이번 안시성 공격에 모든 기구를 다 동원했는데 현장에서 만든 것도 많았다. 구름사다리인 운제는 말할 것도 없고 포차로 돌을 쏘아 성벽과 성안 가옥을 부쉈고 당차, 충차, 누차 등을 동원하여 성벽과 성문을 깨뜨렸고 불화살을 쏘았다. 그때 마침 2대의 운제가 위쪽에 당군을 가득 싣고 다가왔는데 평상시와는 다르다. 계백이 그것을 보고는 소리쳤다.
“준비해라!”
오늘밤 서문을 맡은 장수는 나솔 윤진. 목청이 터질 것처럼 소리쳐 독전을 하고 있다. 그때 어둠을 뚫는 것처럼 운제(雲梯) 2대가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 운제는 2대를 연결시켜 통로를 만들어 놓고 그 통로에 가득 당군을 태우고 있다. 운제 2대와 통로에 태운 당군은 수백명이다. 이 수백명이 성벽 위로 쏟아지면 당해내기 어렵다.
“쏘아라!”
장수들이 목이 터져라 하고 외쳤지만 운제는 괴물처럼 다가왔다. 이쪽에서 쏜 불화살에 운제 곳곳이 불에 타고 있었지만 워낙 튼튼하게 만들어서 부서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덩이가 다가오는 터라 더 위협적이다. 운제의 밑쪽에는 거대한 나무바퀴가 10여개나 달려 있었는데 당군 수천명이 뒤쪽과 아래쪽에서 밀고 있다. 계백이 마침내 허리에 찬 장검을 빼 들었다. 윤진이 다시 소리쳤다.
“기다려라!”
아래쪽 당군이 내지르는 함성과 백제군이 맞받아 지르는 외침이 천지를 진동하고 있다. 오늘 당군은 결판을 내려는 것 같다. 운제 2대를 묶은 괴물의 크기는 길이가 250자(75m), 높이가 1백자(30m)였고 각 운제의 두께는 50자(15m)가 넘는다. 당군은 그동안 이 괴물 덩어리를 만든 것이다. 계백이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기다려라! 놈들이 쏟아질 때까지!”
이제 운제가 20자(6m) 거리로 다가왔다. 운제 위에 탄 당군의 눈도 보인다. 그때다. 운제가 앞쪽으로 기우는 것 같더니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성벽 위로 넘어졌다.
“우와앗!”
당군의 함성이 진동했고 그 순간 운제와 통로에 가득 타고 있던 당군이 성벽 위로 쏟아졌다. 수백명이다. 그때 계백과 윤진, 화청까지 소리쳤다.
“그물을!”
그 순간 좌우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십명의 백제군이 일제히 그물을 당겼다.
“우왓!”
보라. 성벽 위로 그물이 펼쳐지면서 쏟아진 당군을 물고기처럼 덮어버렸다. 거대한 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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