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북을 방문하여 새만금에 민간투자 10조원과 정부예산 5690억 원을 들여 수상태양광과 해상풍력제조업단지를 설치하는 등 이곳을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로 조성할 계획임을 밝혔다. 처음 이 소식을 들은 대다수 도민들은 환황해권 경제 중심지로 개발될 것으로 믿어왔던 새만금이 고작 태양광 단지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하는 의혹이 왈칵 들었을 것이다. 정부와 민주당은 새만금 재생에너지단지 개발 사업은 결코 새만금 개발방향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새만금에 새로운 엔진을 달기 위한 것이라는 말로 도민들을 달랬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단지 개발사업의 기대효과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사실 지난 30년 동안 역대 정권들은 선거 때마다 장밋빛 새만금개발 공약을 내세우다 선거가 끝나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곤 하였다. 개발 방향과 내용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수시로 바뀌고 개발 속도는 굼벵이만도 못했다. 새만금이 개발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해서 속이 다 터질 지경이다.
새만금 하면 1935년에 발표된 김유정의 ‘봄봄’이라는 단편소설이 떠오른다. 소설의 주인공은 점순이와 혼인하기 위해 돈 한 푼 안 받고 점순이 집에 데릴사위 겸 머슴으로 들어간다. 우직하고 바보스러운 주인공이 온갖 고초를 겪고, 주인의 농간에 놀아나면서도 모든 걸 참고서 3년 동안 죽어라 일만하고 기다렸지만 굳게 약속했던 혼인을 시켜주지 않는다. 혼인을 시켜주지 않는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점순이 키가 작으니 더 클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결국 간교한 주인의 농락에 놀아난 주인공은 그리도 원하는 점순이와의 혼인도 치르지 못하고 쫓겨나고 만다는 줄거리다.
지난 30년 동안 전라북도는 정부에 새만금 개발 속도를 올려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그럴 때 마다 정부는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새만금에 모든 것을 걸었던 전라북도는 새만금 때문에 전북 지역의 다른 개발 카드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시도와의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스스로 양보하거나 양보를 강요받아왔다. 우리 스스로가 새만금을 볼모로 가둬버린 셈이다. 전북의 다른 좋은 개발 카드들을 버리고, 다른 지역에 양보를 하면서까지 지켜왔던 새만금의 앞날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최근 전북연구원이 실시한 전북의 미래를 위한 어젠다 연구 결과는 흥미롭다(전북연구원 이슈브리핑 175호). 지난 6월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전북도지사 후보들이 내세운 공약들을 분석하였더니 모든 후보들이 새만금 개발 어젠다를 가장 중요시하였단다.
그러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새만금 어젠다의 우선순위가 5위에 불과하였다. 반면에 산업경제, 일자리, 청년, 농생명 순으로 중요한 어젠다로 꼽았다고 한다. 결국 표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은 새만금을 가장 중요하게 외치지만, 전문가들은 전북의 미래 발전을 위해서는 새만금이 아니라 다른 분야를 더 우선시해야한다는 주문인 것이다.
새만금 피로 증에 걸린 전북인에게 새만금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인지를 물으면 아마도 ‘희망’ ‘꿈’ 등의 긍정적인 단어보다는 ‘지겨운’ ‘불확실한’ 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이 더 많을 것이다. 냉철히 다시 생각해보자. 정말로 새만금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과 같은 약속의 땅인가? 아니면 새만금이 오히려 전라북도 전체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두 손에 꽉 움켜쥐고 있는 구슬 때문에 더 좋은 구슬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와서 새만금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계속 올 인해서도 안 된다. 어느새 계륵이 되어버린 새만금. 이제는 제발 새만금 굴레로부터 좀 벗어나자.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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