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총선 출마 선언, 출판기념회, 사무실 개소식이 열리고 있다. 후보자 정보를 알리고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응답해달라는 문자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애면글면하는 후보자들과는 달리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하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이 저절로 붉어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태풍과 천둥, 벼락이 몇 개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후보자들이 출마를 결심하게까지 쏟아낸 고뇌와 시련이 어찌 대추 한 알만 못하겠는가.
나는 오랫동안 각종 선거 출마자들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수많은 얘기들을 직간접으로 들어왔다. 이와 관련된 연구도 해왔다. 아울러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총선을 70여 일 남겨놓은 이쯤에서 출마자들, 특히 정치신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들을 들려주고 싶다.
무엇보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이니 정치가 자신에게 정말로 가치 있고, 적성에 맞는 일인가를 냉정히 한 번 더 평가해보기를 바란다. 그동안 자기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잘해왔던 일을 포기하고 많은 시간과 돈, 열정을 쏟아부을 만큼 정치가 가치 있는 일인가를 마지막으로 판단해 보기 바란다. 또한 정치가 정말로 자기 적성에 맞는지도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자기 적성에 맞지도 않는데 뒤늦게 정치판에 잘 못 뛰어들어 실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현역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을 보면 한단지보(邯鄲之步)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연나라 청년이 한단 사람의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원래의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리고 기어서 돌아왔다는 고사. 본분을 잊고 남의 흉내를 내다가는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다. 한 분야에서 하던 일을 계속했더라면 개인과 국가적으로도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다.
정치를 오래 한 은퇴 정치인은 “경험해보니 정치는 잘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얼굴 두꺼운 사람이 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추악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이 정치선거판이다. 티끌만 한 흠집이 눈덩이로 뻥튀기되고, 미담이 험담으로 바뀌고, 터무니없는 유언비어, 조롱, 비난이 난무하는 곳이 선거판이다. 선거운동을 하려면 얼굴에 철판 깔고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끄떡하지 않는 맷집과 정치 근육을 갖춰야 한다.
선거판에 통용되는 ‘3분의 1 법칙’을 잊어선 안 된다. 선거운동을 하다 보면 주변에 지지자들로 가득해서 당선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지지한다고 한 사람 중 1/3은 투표장에 가지 않고, 1/3은 다른 후보를 지지하며, 오직 1/3만이 찍는다고 한다.
선거란 승자보다 패자가 더 많은 법.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면 좋은 일이지만 불행히도 낙선하게 됐을 때 닥쳐오는 여러 후유증을 잘 이겨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선거에서 떨어진 낙선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인간에 대한 배신감, 불신감이란다. 선거판은 친구도 원수도 없다. 그래서 “밤 잔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라는 속담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 선거판이다. 이 밖에도 낙선자들에게는 경제적 타격, 가족 간의 불화 등이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남는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 것이다.
선거는 로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현실이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정치 욕망은 느닷없이 햇빛처럼 스며들었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유령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얼마 남지 않은 여행길에 행운을 빈다.
/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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