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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완주 통합과 김관영 안호영의 다른 선택

벌써 네 번째 도전이다. 하지만 전주·완주 통합은 여전히 터덕거리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통합으로 인해 얻을 게 없고 오히려 지역 발전이 후퇴한다고 말한다. 일찍이 한비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의리도 인정도 아닌 오직 이익뿐이라고 하였다. 완주군민들에게 통합으로 인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일부에서는 관 주도보다는 민간인 주도로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명분은 좋지만, 실상을 모르는 순진한 소리다. 나는 2009년 순수 민간 주도로 두 번째 통합운동을 추진했지만, 처절히 실패해본 경험이 있다. 민간단체는 자금과 조직 면에서 결코 관을 넘을 수 없다. 찬성 측이 주민들을 만나거나 정보를 전달하고 싶어도 완주 군의 이장, 통반장, 관변단체장 등 관 조직으로 잘 구축되어있는 방어막을 뚫기 어렵다. 그래서 다수의 완주군민은 찬성 측 의견을 접할 기회가 없는 폐쇄 공간에서 반대 측 논리와 주장만 계속 메아리치는 일종의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가 일어나 반대 목소리가 더욱더 증폭되고 강화되고 있다. 관, 특히 정치인이 힘을 보태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이번 네 번째 통합 시도의 성패는 김관영 도지사와 안호영 국회의원 두 사람에게 달려 있다. 김관영 지사에게 전주·완주 통합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시험대가 될 것이다. 128년 동안 지켜온 ‘전라북도’ 간판을 내리고 ‘전북 특별자치도’ 간판을 새로 단지 한 해가 저물어 가지만 도민들은 뭐가 달라졌는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첫해는 준비기간이라 그렇다 쳐도 내년부터는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간판을 새로 단 가게들이 새로운 깜짝 메뉴를 선보이듯이 전북 특별자치도 역시 강력하고 인상적인 메뉴를 첫 작품으로 내놓아야 한다. 아무래도 첫 작품은 내년 5월에 출시될 전주·완주 통합이 될 것이다. 우리 전북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에 있어서 전주·완주 통합보다 더 강력한 게 또 있을까 싶다. 역대 도지사들이 모두 통합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선되고 나서는 한결같이 태도가 바뀌었다. 과거 도지사들의 소극적이고 방관자적 태도가 통합 실패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다행히 역대 지사들과는 달리 김관영 지사는 취임하고서도 이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과연 김 지사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 역대 지사들이 해결하지 못한 전북의 수십 년 숙원을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반면에 안호영 의원은 김 지사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지난날 통합 시도 실패는 전적으로 당시 완주 국회의원의 작품이었다. 특히 2013년 주민투표를 앞두고 사전 여론조사에서는 통합찬성 여론이 우세하였음에도 당시 완주 국회의원이 도지사는 물론이고 완주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통합을 무산시켰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안호영 의원은 전북발전을 저해시킨 대표적인 정치가로 손꼽히는 전임자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려 한다. 안의원이 왜 넓은 길을 놔두고 좁은 길로, 미래가 아닌 과거의 길로 가려는지 모르겠다. 안의원이 가고 있는 길은 시대 정신과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소수의 개인과 집단만을 위하는 정객,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고 오직 다음 선거만을 노리는 정치꾼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 알량한 동네 권력 맛에 취해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스스로 단축하는 미욱한 선택을 해서도 안 된다. 전북의 소중한 정치자산인 3선의 안의원은 무엇이 완주의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인지를 잘 헤아리고 전북 전체를 위해 큰 정치를 해주기를 바란다.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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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9 11:27

도민들의 전북 사랑이 시들고 있다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 만물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법. 개인이나 집단의 생각, 가치관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지만 이것 역시 세월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나는 지난 30여 년 동안 전북도민들의 의식을 주기적으로 조사한 바 있다. 그중에서 1992년, 2011년 조사 결과와 여기에 전북연구원의 ‘2022 전라북도민 의식구조조사’(이중섭, 최윤규, 성지효) 결과를 가지고서 30년의 의식 변화를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세월의 흐름에 따라 도민들의 의식과 기질도 적지 않게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전북도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자 하는 비율이 30년 동안 꾸준히 줄어들었다.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1992년 45.7%, 2011년 52.2%, 2022년 57.1%였다. 얼핏 겉으로 보면 희망적인 변화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2022년 조사를 연령별로 분석해보면 40대 이하 젊은 연령층에선 여전히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 의사가 절반을 넘는다(20대 59.2%, 30대 51.5%, 40대 58.0%). 대조적으로 50대 44.1%, 60대 이상은 22.7%만이 이주 의사를 보였다. 이렇게 젊은 층에서 이주 의사가 여전히 높음에도 지난 30년 동안 전체적으로 이주 의사가 줄어든 것은 전적으로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주 의사가 낮은 50대 이상의 고연령층이 18세 이상 전체 인구의 56%를 차지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이주 의사 비율이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젊은 층에서 전북을 떠나고자 하는 비율이 여전히 높은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자 하는 이유도 세월 따라 달라졌다. 1992년에는 ‘자녀나 본인의 교육 문제’와 ‘문화시설과 혜택 부족’이 1, 2위를 차지했다. 2011년엔 ‘문화시설과 혜택 부족’, ‘직장이나 사업 문제’가 주된 이유였다. 2022년엔 ‘문화시설과 혜택 부족’, ‘전북이 낙후되어서’가 가장 많았다. 30년 전에 가장 큰 이유였던 교육 문제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젊은 층이 크게 줄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민들의 자긍심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다. ‘전북 사람인 것이 자랑스럽다’라는 긍정 응답이 2011년 60.8%에서 2022년 45.0%로, ‘전북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는 74.6%에서 52.8%로 크게 줄었다. ‘전북인은 인심이 좋다’는 응답 역시 1992년 83.2%, 2012년 77.9%, 2022년 60.7%로 큰 변화를 보였다. 전반적으로 30여 년 동안 인구의 고령화로 인해 도민들이 전북을 떠나고자 하는 전체 비율은 줄었다. 그러나 젊은 층에서는 지역을 떠나고자 하는 비율이 여전히 높다. 또한 지역에 대한 자긍심과 생활 여건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도민들의 의식 변화는 전북의 현재와 미래 삶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전북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 떠나려는 사람부터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 문화시설과 혜택 확충, 도민들 간의 신뢰와 유대 강화 등을 통해 전북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줘야 한다. 긍정은 긍정을 낳고, 부정은 부정을 키운다. 일단 전북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도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긍정으로 바꿔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군수들의 적극적인 개선 노력만이 희망의 홀씨가 될 수 있다. 희망의 홀씨가 널리 퍼져 긍정 에너지가 넘실대는 행복의 땅 전북에서 살아보고 싶다. /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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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27 15:38

전주·완주 통합을 위한 라스트 댄스

화천 겨울 축제로 유명한 산천어가 있다. 산천어는 송어 중에서 바다로 나가지 않고 하천에만 서식하는 물고기다. 바다로 나가지 않은 산천어는 몸길이가 20cm에 불과하지만, 바다로 나간 송어는 60cm에 달한다. 비단잉어 코이도 그렇다. 어항 속의 코이는 기껏 몸길이가 10cm에도 못 미치지만, 좀 더 넓은 수족관에서는 30cm까지 자란다. 이런 코이가 드넓은 강으로 나가면 120cm까지 커진다. 이처럼 모든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의 지배를 크게 받는다. 지역의 자치단체도 마찬가지로 주어진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와 내용이 결정된다. 전주와 완주 주민들이 더 크고 넓은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자 네 번째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통합의 성공사례로 잘 알려진 여수와 청주도 3전 4기 끝에 어렵게 열매를 맺었다. 나는 2009년 김병석 대표 등과 함께 ‘전주·완주 통합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민간인 중심의 통합운동을 벌인 바 있다. 당시의 실패 경험을 교훈 삼아 성공을 위한 방안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완주 정치인들에 대한 통합 후 정치적 보상을 공개적으로 약속해줘야 한다. 아울러 완주군 공무원들에 대한 인사상 차별과 불이익 방지도 없을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 2009년, 2013년 실패는 완주의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통합되면 국회의원 의석은 3석에서 4석으로 늘어나기에 안호영 의원의 거취는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통합 후 시장과 시 의장, 의회 상임위원장, 부속 기관장, 관변단체장 등의 자리가 문제다. 이 문제는 통합의 가장 중요한 고갱이다. 김관영 지사와 전주 국회의원, 시장, 시의원, 시민대표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늦어도 주민투표가 시행되기 전까지 전주의 대폭적인 양보와 약속이 공개적으로 천명되어야 한다. 이게 선행되지 않으면 더 이상 진전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도지사와 전주 완주의 정치인, 시민대표들이 완주군민들과 직접 대면하여 진정성 있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열도록 해야 한다. 기껏 전단이나 카톡을 통해 정보나 전달하는 무성의한 자세로는 완주군민들을 움직일 수 없다. 낙후된 전북의 발전을 위해 완주가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로 설득해서도 안 된다. 완주군민들에게는 자신의 이익이 첫째고, 전북의 발전은 다음의 일이다. 완주군민들에게 통합시의 미래 비전, 통합으로 얻게 되는 개인적 혜택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소위 3대 폭탄(세금, 재정, 혐오시설) 등의 여러 우려를 불식시키고 이것들을 실천시킬 방안들도 제시해줘야 한다. 셋째, 결국 통합은 완주군민들의 주민투표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투표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2013년 주민투표는 53.2% 투표율에 55% 반대였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통합 찬성률이 높았고 인구가 가장 많은 삼례읍, 봉동읍, 용진읍, 이서면의 투표율이 낮았던 게 패인이었다. 이들 4개 읍면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은 무려 72%에 달한다. 이 지역 주민들의 투표율이 최소 50%를 넘기면 성공할 수 있다. 사람이나 조직은 현실에만 안주하고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현실에만 안주하다 하늘을 나는 법을 잊어버려 멸종된 ‘도도새의 법칙’을 새겨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전주와 완주 모두 소멸하고 만다. 산천어가 송어로, 어항 속이 아닌 큰 강물의 코이가 되기 위해서는 더 크고 넓은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주민들의 축제 속에 전주·완주 통합을 위한 라스트 댄스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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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9 15:43

정동영의 길

정동영. 우리 정치사에서 그만큼 부침이 심한 인물은 없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전국 최다 득표를 기록하면서 정계에 화려하게 진출한다. 천정배, 신기남과 함께 새천년민주당의 정풍 운동을 주도한다. 권노갑 의원 등 동교동계의 퇴진과 민주당의 쇄신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일약 개혁의 기수가 된다. 2002년 대선 후 집권 여당으로 새로 창당한 열린우리당의 당 의장이 되어 17대 총선을 진두지휘하여 노인 폄하 발언 파동에도 원내 과반을 확보하는 승리를 이뤄낸다. 통일부 장관이던 2005년 6월 김정일 국무위원장을 만나 개성공단, 북핵 문제 등 남북관계를 크게 진전시키는 역할도 해낸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 입문 11년 만에 이해찬, 손학규 등 거물들을 물리치고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선출되면서 최고 정점을 찍게 된다. 이때가 정동영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딱 거기까지였다. 정동영에게 2007년 대선 후보 이력은 이후 정치 여정에 큰 굴레로 작용한다. 대선 참패의 책임을 오롯이 독박 쓴 채 말이다. 어쩌면 그때 대선 후보가 되지 않았다면 그의 정치 인생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정동영에게는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았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의 정몽준에게 패배한다. 이듬해에 뜻하지 않게 전주 덕진 김세웅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기회가 찾아온다. 그러나 민주당이 정동영의 출마를 반대하자 무소속으로 출마를 강행한다. 결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 민주당에 복당한 정동영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험지 출마 압력을 받아 서울 강남을에 출마하였지만 낙선하고 만다. 2015년 서울 관악을 재·보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3등으로 낙선하는 치욕을 겪기도 한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전주 병에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하여 그의 보좌관 출신인 민주당의 김성주 후보에게 989표 차이로 신승한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생당 후보로 출마, 민주당 김성주 후보에게 5만여 표 차이로 패배. 와신상담 끝에 지난 4월 22대 총선에서 김성주 의원과의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5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파란만장,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온 정동영의 마음을 사자성어로 표현하자면 일모도원(日暮途遠)일 것이다. 날은 저무는 데 갈 길은 멀다. 한때 진보 정치권의 최정상, 호남 인맥의 대부, 전북의 자랑이던 정동영의 정치 근력이 이울어가고 있다. 이제 정동영은 스스로 호랑이처럼 바람을 일으키거나 용처럼 구름을 불러 모으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다. 여든 야든 누구도 민주당의 큰 어른인 정동영을 가벼이 여기진 못할 것이다. 잼버리대회 파행으로 인한 새만금 예산의 대폭 삭감, 지역 정치인들의 형편없는 대응력과 존재감을 지켜본 전북도민들이 정동영을 다시 소환한 이유는 간단하다. 윤석열 정권과 제대로 싸워라. 무너진 도민들의 자존감과 무력감을 다시 세우라는 것이다. 덧붙여 후배 정치인들을 잘 이끌고, 도움을 주는 맏형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대체로 정치인의 뒤안길은 쓸쓸하다. 김종필은 말년에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하였다. TK의 영원한 킹메이커 허주(虛舟) 김윤환도 토사구팽당하고 빈 배로 세상을 떠났다. 도종환 시인은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라일락꽃). 세월이 가도 향기와 빛깔을 잃지 않는 정치인, 결코 뒷모습이 쓸쓸하지 않은 정치인 정동영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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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21 18:08

총선 여론조사 제대로 읽기

대한민국은 여론조사 공화국이다.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는 물론이고 대통령 후보마저 여론조사로 결정된다. 전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여론조사에서는 소변검사나 피검사처럼 모집단 전체를 꼭 닮은 대표표본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설사 대표표본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500명 조사는 ±4.3%포인트, 1,000명은 ±3.2%포인트의 표본오차가 반드시 발생한다. 따라서 500명 조사는 8.6%포인트, 1,000명 조사는 6.4%포인트 이내의 격차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단 1%포인트 차이만 나도 표본오차를 무시하고 정당의 후보자를 결정한다. 참으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선거 여론조사는 매번 예측에 실패했다. 실패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응답자 선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성, 연령, 지역별로 인구 비율에 맞추어 표본을 할당하지만, 실제 조사에 응한 응답자들의 특성이 모집단과 다르기 때문이다. 모집단은 둥글게 생겼는데 추출된 표본은 세모나 네모처럼 생겼다면 표본 수를 아무리 크게 해도 틀릴 수밖에 없다. 면접조사냐 ARS냐, 조사 시점에 따라서 응답자들의 성향이 달라진다. 낮과 주중에는 보수 응답자들이, 저녁과 주말에는 진보 응답자들이 많이 표집 된다. 조사기관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이른바 하우스 효과(house effect)도 있다. 대체로 갤럽조사는 보수 성향, 여론조사 꽃은 진보 성향의 응답자들이 과잉 표집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같은 시점에 실시한 조사들이 제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자칭 선거전문가들이 전체 정당 지지율만 가지고서 총선 의석수를 예측하는 것을 보았다. 이건 거의 사기나 다름없다. 단일선거구인 대선과는 달리 총선은 254개 선거구를 분석하지 않고서는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지역구 전국 득표율을 보면 민주당 49.9%, 미래통합당 41.4%였다. 양당 간 득표율은 8.5%p 차이에 불과했지만, 지역구 의석은 163석 대 84석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20대 총선에서도 민주당의 지역구 전국 득표율은 37.0%로 새누리당의 38.3%보다 적었지만, 지역구 의석수는 110대 105로 오히려 5석이 더 많았다. 전체 정당 지지율을 근거로 총선 결과를 예측하는 전문가나 언론이 있다면 그건 무시해도 된다. 연령, 지역별 등 소위 하위집단 분석 결과를 읽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1,000명 조사의 경우 서울에 할당되는 표본 수는 약 183명에 불과하다. 이때 서울만의 표본오차는 ±7.3%포인트로 오차가 크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전국 1,000명의 갤럽 3월 1주차 조사에서 서울 지역의 국민의힘 지지도는 45%, 민주당 24%로 양당 간 격차가 무려 21%p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주인 3월 2주차 조사에선 민주당 32%, 국민의힘 30%로 지지도가 대 역전되었다. 그러자 언론은 일제히 “서울에서 국민의 힘 지지도가 15%포인트 빠지는 등 민심이 급변했다”라는 엉터리 해석을 해댄다. 민심이 마치 누구 널뛴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표본 수가 작은 하위집단의 추이 분석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과연 이번 총선 결과는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의 여론조사들을 종합하면 야당의 승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거에서는 여론조사 보다는 투표율의 예측이 더 정확하다. 투표율이 높으면 진보가, 낮으면 보수 정당이 항시 승리했다. 투표율 기준은 대략 60%였다. 이번에도 여론조사보다는 투표율이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줄 것이다.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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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19 15:35

총선 출마자들에게

여기저기서 총선 출마 선언, 출판기념회, 사무실 개소식이 열리고 있다. 후보자 정보를 알리고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응답해달라는 문자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애면글면하는 후보자들과는 달리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하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이 저절로 붉어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태풍과 천둥, 벼락이 몇 개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후보자들이 출마를 결심하게까지 쏟아낸 고뇌와 시련이 어찌 대추 한 알만 못하겠는가. 나는 오랫동안 각종 선거 출마자들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수많은 얘기들을 직간접으로 들어왔다. 이와 관련된 연구도 해왔다. 아울러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총선을 70여 일 남겨놓은 이쯤에서 출마자들, 특히 정치신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들을 들려주고 싶다. 무엇보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이니 정치가 자신에게 정말로 가치 있고, 적성에 맞는 일인가를 냉정히 한 번 더 평가해보기를 바란다. 그동안 자기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잘해왔던 일을 포기하고 많은 시간과 돈, 열정을 쏟아부을 만큼 정치가 가치 있는 일인가를 마지막으로 판단해 보기 바란다. 또한 정치가 정말로 자기 적성에 맞는지도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자기 적성에 맞지도 않는데 뒤늦게 정치판에 잘 못 뛰어들어 실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현역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을 보면 한단지보(邯鄲之步)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연나라 청년이 한단 사람의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 원래의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리고 기어서 돌아왔다는 고사. 본분을 잊고 남의 흉내를 내다가는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다. 한 분야에서 하던 일을 계속했더라면 개인과 국가적으로도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다. 정치를 오래 한 은퇴 정치인은 “경험해보니 정치는 잘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얼굴 두꺼운 사람이 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추악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이 정치선거판이다. 티끌만 한 흠집이 눈덩이로 뻥튀기되고, 미담이 험담으로 바뀌고, 터무니없는 유언비어, 조롱, 비난이 난무하는 곳이 선거판이다. 선거운동을 하려면 얼굴에 철판 깔고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끄떡하지 않는 맷집과 정치 근육을 갖춰야 한다. 선거판에 통용되는 ‘3분의 1 법칙’을 잊어선 안 된다. 선거운동을 하다 보면 주변에 지지자들로 가득해서 당선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지지한다고 한 사람 중 1/3은 투표장에 가지 않고, 1/3은 다른 후보를 지지하며, 오직 1/3만이 찍는다고 한다. 선거란 승자보다 패자가 더 많은 법.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면 좋은 일이지만 불행히도 낙선하게 됐을 때 닥쳐오는 여러 후유증을 잘 이겨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선거에서 떨어진 낙선자들이 공통으로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인간에 대한 배신감, 불신감이란다. 선거판은 친구도 원수도 없다. 그래서 “밤 잔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라는 속담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 선거판이다. 이 밖에도 낙선자들에게는 경제적 타격, 가족 간의 불화 등이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남는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 것이다. 선거는 로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현실이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정치 욕망은 느닷없이 햇빛처럼 스며들었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유령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얼마 남지 않은 여행길에 행운을 빈다. /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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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30 16:20

영부인의 명품 백 논란과 언론의 침묵

한국의 언론자유가 질식해가고 있다. 과거엔 군부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언론자유를 말살시켰다면 지금은 검찰이 군부 권력을 이어받았다. 툭하면 언론사와 기자, 심지어 언론사 대표까지 압수수색을 벌인다. 다른 언론사 기사를 단순 인용 보도만 해도 징벌을 때려댄다. 기사 관련 사건이 확대되고, 여론이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죄목은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 조사에 의하면 언론인 63%가 윤 정권 아래에서 언론자유가 악화했다고 느끼고 있단다. 이러한데도 언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메이저 언론들은 조용하다. 동료들이 심하게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오불관언이다. 언젠가 그 칼날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 올 것임을 모를까. 외려 외신들이 우려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11월 10일 우리 언론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다뤘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자유’를 옹호했지만, 그의 18개월간 임기 특징은 야당과 끊임없는 충돌과 검열,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요커>도 지난 9월 30일 “윤 대통령이 눈에 띄게 언론의 자유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의 언론 장악에 대한 열의는 1980년대까지 지속된 한국의 군사 독재 시절을 연상시킨다”라고 하였다. 미국 국무부가 운영하는 <미국의 소리>(VOA)도 7일 “윤석열 하에서, 언론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 증가했다”는 제목 아래 자세히 보도하였다. 요약건대 언론사와 언론인들에게 기록적인 속도로 형사고발과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어 뉴스 보도에 위축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가 공개한 몰카 영상엔 김건희 여사가 300만 원 상당의 명품 파우치를 받는 장면이 담겨있다. 영부인과 관련한 여러 의혹과 소문들이 돌고 있는 가운데 터진 이 보도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외국에서는 공익성이 앞서면 위장취재 또는 함정 취재가 허용되고 있기에 취재 과정 논란은 차치하기로 하자. 그것과는 별개로 영부인이 고가의 명품 가방을 자연스럽게 받는 말과 행동이 담긴 영상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만한 큰 사건이다. 김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는 검찰이 즉각 수사를 벌여야만 하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다. 그런데도 메이저 신문 방송들은 거의 침묵하고 있다. 압수수색, 벌과금 공포 분위기 속에서 크게 위축된 언론의 자기검열 강화가 침묵을 강요한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언론의 정파적 편향성 때문이다. 언론이 마땅히 보도해야 할 뉴스 가치가 높은 이슈나 사건을 고의로 보도하지 않는 무보도 문제가 심각하다. 과연 주류 언론에 보도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던 일이 될 수 있을까? 마땅히 수사해야 할 사건에 대해서는 입꾹딱하는 검찰의 행태와 똑같다. 모든 게 선택적이란 점에서 검찰과 언론은 초록이 동색이다. “몇몇 족벌언론은 군사정권이 끝난 후에도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를 끊임없이 박해했다. 나도 부당한 공격을 받아왔다. 피해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고 그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런 언론환경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게 가능한 일일까 회의하곤 한다.” 평생을 언론과 대립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개탄한 일부 언론의 일탈행위는 20년이 지나도 한결같다. 목수의 먹줄이 곧아야 나무를 곧게 자를 수 있다. 먹줄은 나무가 굽었다고 굽히지 않는다. 언론도 권력자에게 굽혀서는 안 된다. 언론이 먹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올곧아진다.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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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12 15:37

전북도민들은 정말 진보적일까

전북연구원이 주목할만한 연구보고서들을 잇달아 출간했다. 하나는 전북도민들의 행복 지표와 행복의 조건들을 심층 분석한 ‘2023 전북형 행복지표 구축과 도민행복 실태연구’(김동영, 이중섭, 김현수)이다. 다른 하나는 전북인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북인의 기질과 자긍심 등 전반적인 의식구조를 세밀하게 해부한 ‘2022 전라북도민 의식구조조사’(이중섭, 최윤규, 성지효)다. 매우 의미 있는 연구임에도 언론과 도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전북연구원 홈페이지에 연구보고서가 공개되었으니 관심 있는 도민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들 연구보고서를 보다가 필자의 눈에 확 띄는 지점이 있었다. 우리 도민의 절반에 가까운 45.6%가 자신의 정치이념을 진보적이라고 평가한 반면, 보수적은 15.8%에 불과했고, 중도가 38.6%였다. 그러나 지난주에 발표된 갤럽의 전국 조사는 크게 달랐다. 갤럽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성인의 30.6%가 스스로가 보수, 25.5%가 진보, 33.2%가 중도라고 하여 오히려 보수가 좀 더 많았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 도민들의 정치이념이 진보적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정치 성향 또는 이념을 측정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응답자 스스로가 평가하는 주관적 방식과 진보-보수를 구분 짓는 질문들을 통해 평가하는 객관적 방식이다. 전 세계적으로 객관적 측정에 동원되는 질문은 사형 제도, 낙태, 동성애와 동성결혼, 혼전 동거 등이다. 이들 객관적 질문들에 대한 전북도민들의 의견과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의견을 비교해보자. 먼저 진보적 의견이라 할 수 있는 사형 제도에 대한 반대 의견을 보면 전체 국민은 19.1%(조원씨앤아이, 2021년 8월 조사)인데 비해 전북도민은 12.9%였다. 낙태에 대한 찬성의견은 전체 국민 68%(미국 퓨리서치, 2023년 조사), 전북도민 44.0%로 역시 도민들의 진보적 의견이 현저히 낮았다. 동성연애에 대한 찬성의견은 더욱 현격한 차이가 나는데, 전체 국민은 51%(갤럽, 2023년 5월 조사)인데 반해 전북도민은 14.1%에 불과했다. 혼전 동거에 대한 찬성의견은 전체 국민 84%(한국리서치, 2023년 5월 조사)인데 반해 전북도민은 40.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종합 평가하자면 전북도민들은 결코 진보적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다. 전북도민들의 주관적 평가와 객관적 평가 간에 간격이 왜 이렇게 큰 것일까? 원인은 민주당 때문이다. 민주당은 사실은 보수 정당에 가깝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 색깔을 표방하는 민주당을 도민들이 절대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에 스스로 진보적 이념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는 착시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편 고등통계분석을 통해 정치 관심도, 사형 제도와 혼전 동거에 대한 찬반 의견이 진보-보수 이념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임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진보인지 보수인지는 그 사람의 정치 관심도, 사형 제도와 혼전 동거에 대한 찬반 의견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엄격한 아버지 모델의 보수, 자상한 부모 모델의 진보(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우리에게 동시에 필요한 오른손과 왼손이다. 그런데도 여야는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나서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상대를 적대시, 증오하는 이념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 국민마저 이념정치에 휘말려 정치의 노예가 되고 스스로 구속하면 나라가 불행해진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타협하는 것만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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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24 15:14

전북 정치인들이여 상산의 솔연처럼 싸워라

이솝우화의 ‘사자의 몫’(Lion's Share) 이야기다. 여우 등과 함께 협력하여 사냥을 성공시켰음에도 분배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자가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전리품을 독차지하고 만다. 결정권을 가진 자들이 온갖 구실을 붙여 불평등하게 분배하는 상황을 설명할 때 ‘사자의 몫’ 우화가 자주 인용된다. 이번 새만금 예산 78% 삭감 폭거가 바로 ‘사자의 몫’에 딱 맞는 사례다. 지난 30여 년 동안 온갖 수모를 겪어가면서 애면글면 지켜온 새만금 개발이 중단될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새만금 개발 중단은 도민들의 유일한 꿈을 박살 내는 폭력이나 다름없다. 역대 정권들은 사탕을 줄 듯 말 듯 애태우면서 전북을 가지고 놀았다.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매년 1조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등 새만금 개발이 탄력을 받아 본격화되어가는 시점에 내려진 개발 중단 결정은 한 마디로 어이가 없다. 개발 중단 이유는 더 기가 막힌다. 잼버리대회 실패의 책임과 비난이 중앙정부로 쏟아지자 그 책임을 전북으로 돌렸음에도 전북이 희생양 되기를 거부하자 중앙정부와 여당이 감정적으로 보복한 것이다. 참으로 졸렬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화난다고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무총리가 위원장이고 장관들이 위원으로 있는 새만금 위원회가 올봄에 결정한 국책사업을 하루아침에 중단시킬 수 있는가. 이게 현 정부가 부르짖는 공정과 상식인가. 지난달 29일 660조 원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다음 날 각 지역신문에 실린 기사들을 통해 지역 반응을 살펴보았다. 오직 전북만이 초상집이었다. 대부분 지역은 축제거나 다행이라는 분위기였다. 특히 부산은 온통 축제 분위기다. “부산시가 가덕신공항 조기 개항 사업 관련 국비를 대거 확보했다. 지역 핵심 현안인 가덕신공항 조기 개항 사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관련 예산 5,363억 원이 반영됐다. 2029년 완공 및 개항을 조속히 추진할 수 있도록 관련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올해 130억 원 예산에 비해 40배가량 늘어났다.”(부산일보). “대구·경북(TK) 신공항 건설에 필요한 기본·실시설계 비용 100억 원이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 신규 반영됐다...정부는 2030년 12월 개항을 목표로 내년 내에 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기본·실시설계 단계까지 돌입해 사업 추진의 속도를 올리겠다는 계획이다.”(매일신문). 올 예산보다 13.5%가 늘었으며, 서산 공항 설계비 10억 원도 확보한 충남도 신바람은 마찬가지다. (대전일보). 이제 정치인들의 시간이다. 일이 터지자 우리 지역 정치인들은 모여서 규탄 성명이나 발표하고 으름장만 놓고 말았다. 충분히 예상했던 바다. 옛말에 도둑놈은 한 죄 도둑맞은 놈은 열 죄라고 하지 않았던가. 매번 당하기만 하고 제대로 대응 한 번 못 하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전북의 정치인들에게 요구한다. 이번에는 제발 합심해서 치열하게 싸워달라. 손자병법에 상산(常山)의 솔연(率然)이라는 뱀이 나온다. 이 뱀은 머리를 때리면 꼬리가 달려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벼들며, 허리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빈다. 머리와 꼬리가 따로 놀지 않고 언제나 하나처럼 움직여 자신을 보호하는 솔연처럼 합심해서 직을 걸고 싸워야 한다. 땅이 꺼지고 하늘을 찌르는 도민들의 허탈감과 분노가 보이지 않는가. 더 이상 당신들의 이름이 더럽히지 않기를 바란다. 어차피 총선도 다가오고 있다. 새만금 예산을 원안대로 돌려놓지 못하면 누구도 살아남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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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9.05 15:26

도청과 시∙군청에 외로움 부서를 설치하자

“늘 누군가와 함께 있지만 실상은 늘 혼자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호소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미국 성인 다섯 명 중 세 명이, 독일 인구의 3분의 2가 외로움이 심하다고 하였다. 영국인 여덟 명 중 한 명은 가까운 친구가 단 한 명도 없고, 4분의 3이 이웃의 이름을 모르며, 직장인의 60%가 직장에서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 급기야 영국 정부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 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외로움 부는 단독 조직은 아니며 ‘문화·언론·스포츠부’ 장관이 겸직하고 있다. 해당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외로움’이 무엇인지, 징후들, 원인, 대처법,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체들, 긴급 연락처 등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한 조사에 의하면 성인의 네 명 중 한 명꼴(26.5%)로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외로움을 겪고 있다. 외로움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외로움은 담배를 매일 15개비씩 피는 만큼이나 해롭단다. 미국 브리검 영 대학의 조사에 의하면 외로움은 사망 위험을 30%나 높이며, 치매 위험이 66%, 심근경색 위험은 43%가 많다고 한다. 세계인들이 갈수록 더 외로워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10여 년 동안 외로움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한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그녀의 저서(고립의 시대)에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전 세계인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제각기 다르지만 일어나자마자 하는 첫 번째 행동은 똑같다. 바로 휴대전화를 찾는 일이다. 종일 휴대전화를 몸에 붙이고 살면서도 수시로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하루에 몇 번이나 확인할까? 노리나 허츠에 의하면 무려 평균 221번이란다. 우리는 매일 약 3시간 15분, 일 년 1,200시간을 휴대전화 속에 빠져 산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주변 사람들을 향한 관심을 빼앗고, 효과적이고 공감적인 의사소통 기회를 갉아먹고 있다. 두 번째 원인은 지난 40여 년 동안 정치와 경제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이념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최우선시한다. 노리나 허츠에 의하면 신자유주의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는데, 미국의 CEO와 일반 직장인 간 평균 연봉 차이가 1989년 58배에서 2018년에는 무려 278배로 벌어졌다고 한다. 신자유주의는 잔인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 오직 승자만을 위한 사회, 심지어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심어주어 우리를 더욱더 외롭고 소외된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질병으로 보고 정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이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게 이웃, 공동체와의 관계망을 연결해 주는 것이다. 마을회관과 같은 공동체 시설, 각종 취미나 스포츠 동아리 등이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연결이 될 때 벽은 허물어지고, 이방인은 이웃이 되며, 돌봄과 온정, 협력이 살아나는 따뜻한 공동체가 형성된다. 인구의 고령화, 지역소멸 위기에 처한 우리 전북은 도청과 각 시군 청에 외로움 담당 부서를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모든 주민이 소외되지 않게 이웃, 공동체와의 망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 “늘 누군가와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는 행복 전북”을 만들어 보자.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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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8 15:49

지역차별에 대한 대처법

권혁남 전북연구원장 2017년 5월 9일 치러진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얻은 전국 득표율과 전국 최고의 지지율을 보인 전북에서 얻은 득표율이다. 내 손으로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강한 자부심을 갖게 된 도민들이 문대통령에 대한 바람은 딱 한 가지였다. 지난 6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당했던 지역홀대와 차별만은 더 이상 받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각계각층에서 전북 몫 찾기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8월에 필자가 전북도민 500명을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조사에서 도민의 74.6%가 타 지역에 비해 전북이 차별받고 있다고 하였다. 도민들은 문재인 정부에게 국가예산에서 차별을 받지 않고 정치와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주문하였다. 도민의 77.0%가 문대통령이 전북의 발전에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하였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지 4년이 지났고,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전북 몫 찾기가 과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고, 도민들은 만족하는지가 궁금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비로소 새만금 개발이 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새만금개발청 이전, 새만금개발공사 설립, 동서도로 개통, 공항건설 확정 등 그야말로 괄목상대 할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해마다 1조원 이상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2019년 1조 4000억, 2020년 1조 3000억 원).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지난 4년 동안의 변화는 역대 정권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새만금 개발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지역홀대가 여전하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특히 공항, 철도, 고속도로, 국도, 국지도 등 국가 SOC사업에서 계속 차별받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4월에 발표된 제 4차 국가철도망계획에서 전북이 건의했던 6개 사업 중 1개만 포함되고, 전주-김천 동서횡단 철도 등이 탈락하자 도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전북이 건의한 사업들이 탈락한 이유는 딱 하나다.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등 세 가지 평가기준에서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역의 균형발전과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점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경제성만을 강조한다면 전북은 낙후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가 없다. 또한 모든 지방은 소멸하고, 수도권은 과잉 밀집될 수밖에 없다. 4차 국가철도망계획이 발표되자 다른 지방에서는 삼보일배 항의, 국회 앞 기자회견, 수백 개 시민단체들의 일체 규탄성명발표 등으로 난리가 났다고 한다. 반면 우리 전북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전북도와 도의회, 상공회의소, 건설협회의 성명서 발표가 전부다. 이래선 안 된다. 2017년 도민의식조사에서 전북 몫을 찾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국회의원 등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가 54.9%로 압도적으로 많았다(복수 응답). 이어서 전북도민(14.6%), 도지사(13.8%) 순이었다. 결국 정치인-도민-전북도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북 몫은 가만히 기다려서는 오지 않는다. 성명서나 발표하고서 역할을 다했다고 해서도 안 된다. 민관정이 하나가 되어 강하게 No라고 표현을 해야 한다. 소리를 낼 땐 제대로 내야한다. 전북의 낙후는 결코 전북도민들이 못났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전적으로 과거 정부의 지역불균형 성장정책의 결과물인 것이다. 낙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 도민이 하나가 되어 지역균형발전과 전북의 몫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도 강하고 당당하게. 침묵은 또 다른 홀대와 차별을 불러올 뿐이다. /권혁남 전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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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03 17:46

전북형 행복지표 개발

권혁남 전북연구원장 한국인의 행복점수가 또 떨어졌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지난 3월 <2021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했다.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전체 149개 국가 중 62위다. 2019년 54위에서 2020년에 61위로 7계단 하락했다가 올해 또 다시 한 계단 떨어졌다. 핀란드가 4년 연속 1위를 기록했으며,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대만 19위, 일본 40위, 중국 52위이다. 2021년 한국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점에 불과하다. 행복지수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같은 기준치를 가지고서 정기적으로 측정한 조사의 추이변화가 중요하다 하겠다. <세계행복보고서>는 1인당 GDP, 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삶의 선택에서의 자유, 관용, 부정부패 인식, 미래 불안감 등 7개 요인을 기준으로 행복점수를 매긴다.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인데 개인의 행복도와 삶의 질은 매우 낮다는 점이 한국 행복지수의 특징이다. 왜 그럴까? 한 마디로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연구>에 의하면 OECD국가로 한정해 볼 때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어서면 한 국가의 경제력 수준이 개인의 행복점수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한다. 대신에 관용, 부정부패 인식, 삶의 선택에서의 자유정도 등이 행복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모든 정책은 경제성장율, 무역수지, 공장 건설, SOC확장 등 오직 경제와 물질성장 정책에 중독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결과로 1인당 GDP는 3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과 행복은 꾸준히 추락하였다. 경제성장이 결코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선진국들은 경제성장에서 행복성장으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국가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에 맞추어 국내 지자체들도 주민들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한 행복지표들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서울, 부산, 대전, 강원, 충남, 충북, 제주 등의 지자체에서 자기 지역에 맞는 행복지표들을 이미 개발하였다. 전라북도 역시 2017년에 행복지표를 개발한 데 이어, 2020년에 <전북형 행복지표>를 수정 개발하였다. 전북연구원의 김동영, 최윤규, 송용호 연구진이 개발한 <2020 전북형 행복지표>는 전라북도 도민들의 행복점수를 높여주는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2020 전북형 행복지표>는 10대 분야 83개 세부지표로 구성되었다(전북연구원 홈페이지 <연구보고서>에 보고서 전문을 공개하고 있어 누구나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10대 분야(경제, 가족, 건강, 사회적 관계, 문화여가, 복지, 안전, 주거, 환경, 정서) 83개 세부지표들을 연도별, 시도별로 비교하고 있다. 아울러 700명의 도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주관적 지표들의 결과도 제시하고 있다. <2020 전북형 행복지표>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전북연구원은 정기적으로 도민들의 행복점수가 어느 정도이고 각 계층별로 어떻게, 왜 차이가 나는지, 행복점수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요인들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나아가 행복지표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들을 정책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도 마련하고자 한다. 경제성장에서 뒤처진 우리 전북이 도민 행복에서는 타 시도를 얼마든지 앞지를 수 있다. 전라북도와 14개 시군의 정책들이 도민의 삶의 질과 행복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사람 중심의 행복 전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권혁남 전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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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06 17:47

도민과 함께하는 전북연구원

권혁남 전북연구원장 전북연구원이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공모와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쳐 필자가 전북연구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사람들이 던진 공통된 질문이다. 전북연구원이 대민업무를 하는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식자층을 제외한 일반인들이 전북연구원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2005년에 설립된 전북연구원은 전라북도와 14개 시군의 지역발전과 도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 개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당장 해결해야할 현안부터 중장기 미래 발전 전략에 이르기까지 전라북도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각종 정책과 해결책을 개발하는 곳이 전북연구원이다. 한마디로 전라북도의 씽크 탱크이자 브레인이다. 지난 16년 동안 전북연구원의 씽크 탱크 역할에 대해 다소 미흡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잘해왔다고 본다. 전북연구원이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들을 개발하는 명실 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정책연구기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내부역량을 더욱 강화해야함은 물론이다. 이와 동시에 도민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장의 생생한 주민들의 소리와 요구가 정책입안에 충실히 담겨져야 한다. 전북연구원이 개발하고 전라북도와 14개 시군이 실행하는 정책들은 궁극적으로 전북도민들을 위한 것이다. 그동안 정책의 수혜자인 도민들은 정책의 입안과정에서부터 소외되어왔다. 처음부터 주민들이 소외된 정책은 자칫 탁상공론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 앞으로는 정책의 입안, 실행, 평가 등 전반에 걸쳐 도민들의 소리를 청취하여 정책의 현실성과 타당성을 높이도록 하여야 한다. 현재 전북연구원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도민들의 정책 제안이나 아이디어를 수시로 공모하는 등 도민들과의 소통 장치들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주에 시상식을 마친 7번째 도민공모에서도 상당히 좋은 과제들이 제안되었다. 한진석씨의 남원성 북문 복원과 만인공원 조성 이후의 활성화를 위한 콘텐츠의 개발 방안에 대한 연구 제안이 우수상으로 뽑혔다. 심사위원들의 평가에 의하면 비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연구과제들이 제안되어 앞으로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홍보가 부족하여 도정현안에 대한 도민들의 연구주제와 아이디어 공모 참여가 조금은 저조하였다. 앞으로 홍보를 강화하고, 공모를 더욱 더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도민들이 정책입안에서 정책시행에 이르기 까지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전북연구원은 30명의 박사 연구위원들과 약 30명의 석사 전문연구원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들은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도민들에게 기부되고, 공유되었으면 싶다. 재능 기부 이외에도 전북연구원 구성원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봉사를 하도록 하여 도민들과 함께하는 전북연구원으로 만들고 싶다. 전북연구원이 생산하는 결과물은 일종의 공공재이다. 따라서 전북연구원의 연구결과물 중에서 도민들이 알 필요가 있는 내용들을 홈페이지와 언론을 통해 도민들과 공유하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전북연구원은 도민들과 큰 교류와 소통 없이, 그리고 도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해 왔다. 앞으로는 전북연구원이 도민들 속으로 파고들어 도민들과의 스킨십을 늘려 그들의 생생한 소리와 요구를 정책입안에 적극 반영시키겠다. 한마디로 도민과 함께하는 정책연구원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전북연구원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이냐는 소리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싶다. /권혁남 전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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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8 17:50

[권혁남의 일구일언]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사회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9년 7월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에서의 일이다. 사탑을 이리저리 감상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제법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다가오더니 사진을 찍어달란다. 한두 컷 찍어주고 핸드폰을 돌려주려 하니 온갖 재미난 포즈를 바꿔가면서 계속 찍어달란다. 속으로 참 재미있는 친구라고만 생각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혹시나 하고 가슴 앞으로 맨 소형 가방을 살펴보았다. 아뿔싸. 지퍼가 절반 정도 열려있는 게 아닌가. 옆을 보니 다른 두 명의 신사들이 필자 옆에 바짝 달라붙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서야 사태를 파악하고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퍼부었다. 소매치기 일당은 순식간에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다행히 잃은 것은 없었지만 남은 여행일정 내내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었다.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사람에 대한 신뢰라고 답한다. 식당에서 핸드폰이나 소지품을 그대로 두고서 화장실을 다녀와도 별 일이 없단다. 밤늦게 돌아다녀도 마주치는 사람이 무섭지 않은 것이 너무도 인상적이란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라고 말한다. 낯선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사회. 반면에 낯선 사람에 대해 긴장과 경계를 해야만 하는 사회. 두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사회적 경쟁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처럼 불특정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한다. 사회 자본은 인적 자본, 물리적 자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 자본은 물리적 자본같이 물리적 형태를 띠는 것도 아니고, 인적 자본과 같이 개인의 자질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사회 자본은 혼자만의 노력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축적된다. 사회 자본은 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접착제라 할 수 있다. 사회 자본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믿음, 이웃과의 친밀성, 지역사회 참여이다. 지역주민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이웃과 친하게 지내고, 지역사회의 모임이나 행사에 열심히 참여할수록 사회 자본은 커지게 마련이다. 사회자본의 세 요소 중에서 지역주민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이웃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야만 이웃과 친밀해지고, 지역사회 참여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필자가 전북도민 500명을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한 바에 의하면 예상과는 달리 나이가 많을수록 지역주민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고, 젊을수록 믿음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두 번째 요소인 이웃과의 친밀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교육수준이었다.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이웃과 관계가 좋은 반면에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관계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종교유무가 이웃과 친밀하게 지내게 만드는 두 번째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종교가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게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나이가 많을수록, 여성보다는 남성들에게서 지역사회 참여도가 높았다. 사회자본의 세 요소들과 개인의 행복점수 간의 상관관계가 높게 나타났다. 개인의 사회자본 점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행복하다는 것이다. 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내가 먼저 지역 주민을 보다 신뢰하고 이웃과 더 가까이 지내고 지역의 각종 모임이나 행사에 더욱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 자본을 높이면 된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사회는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발전을 보장해준다 하겠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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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4 16:58

[권혁남의 일구일언] 다시 꺼내본 전주-완주 통합 징비록

권혁남(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완주군 이서면은 섬 아닌 섬이다. 지도를 보면 전주시가 중간에 끼워들어 이서면과 완주군 본토를 완전히 분단시켜놓았다. 마치 미국 알라스카가 캐나다를 사이에 두고서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행정구역의 땅덩어리가 다른 시군에 의해 이처럼 동강난 기형적인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전북 혁신도시를 가봐라. 같은 아파트 단지인데도 이 동은 전주시, 저 동은 완주군이다. 길 하나를 두고 이쪽 가게는 전주시, 저쪽 가게는 완주군이다. 이 모두가 같은 생활권인데도 행정구역이 달라 일어나는 웃픈 일들이다. 지난 연말부터 전주-완주 통합 문제가 또 다시 큰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내년 6월에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늦어도 올 가을까지는 통합문제가 마무리되어야만 한다. 전주-완주 통합의 당위성과 필요성, 긍정적 파급효과 등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다. 지난 세 차례(1997년, 2009년, 2013년)에 걸친 통합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도 잘 알고 있다. 실패할 때 마다 도민들이 입었던 아픔과 후유증을 돌이켜본다면 통합문제를 다시 꺼내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그럼에도 도내 인구 180만 명이 붕괴 직전이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전북의 현실, 전주-완주 주민들이 겪고 있는 각종 불편 등을 생각한다면 결론은 또 다시 통합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여수와 청주의 통합은 모두 3전 4기 끝에 성공하였다. 우리도 4번째이자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통합을 다시 시도해야한다. 2009년 필자는 뜻있는 사람들과 전주-완주 통합추진위원회를 조직, 추진위원장을 맡아 민간인 중심의 통합운동을 벌인바 있다. 통합이 실패로 끝나고 필자가 메모해 두었던 전주-완주 통합운동 징비록(懲毖錄)을 다시 꺼내보았다. 징비록을 참고하여 몇 가지 도움말을 주고자 한다. 첫째, 정치인들이 외면하는 민간인 중심의 통합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2009년은 당시 완주지역의 국회의원, 군수, 지방의원 모두가 반대하였다. 2013년에는 당시 완주군수는 찬성하였으나,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이 반대하였다. 민간인 중심의 운동은 자금과 조직 면에서 정치인을 결코 상대할 수 없다. 따라서 도지사와 전주시장, 전주지역의 국회의원, 지방의원들이 앞장서 안호영 국회의원, 박성일 완주군수와 지방의원들을 설득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이들에게 통합시의 시장, 의장, 상임위원장 직을 공개적으로 약속해라. 또한 통합이 되면 전주시 국회의원 선거구는 3개에서 4개로 늘어난다. 늘어난 지역구에 안호영 의원을 추대할 것을 전주시민의 이름으로 공개 약속해라. 둘째, 완주군민들이 통합으로 얻게 되는 각종 혜택을 최대화시키고, 불이익을 최소화시키는 정책들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적어도 완주군민들이 우려하는 소위 3대 폭탄(세금 폭탄, 전주시 빚 폭탄, 혐오시설 폭탄)을 불식시켜주어야 한다. 셋째, 결국 최종 결정은 완주군민들의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되는데, 주민투표 참여율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난 2013년 주민투표는 53.2%의 투표율에 55% 통합반대, 45% 찬성이었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통합 찬성률이 높았고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인 삼례읍(26.1%), 봉동읍(34.9%), 용진면(31.0%)의 투표율이 매우 낮았던 것이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본다. 아무쪼록 올 가을에 통합이 결정되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통합시가 힘차게 출범하여 새만금과 함께 전북의 강력한 성장엔진으로 작동해주기를 새해 아침에 간절히 바란다. /권혁남(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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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7 17:24

정치적 양극화를 조장하는 소셜 미디어

▲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코로나 팬데믹.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침체.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폭발한 인종차별 갈등과 폭력사태. 모든 여론조사들의 바이든 승리 예측. 그럼에도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7300만 표 이상을 얻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무능과 거짓말, 속임수, 인종주의, 수많은 도덕적 결함에도 7000만이 넘는 유권자가 그를 찍었다고 놀라워했다. 그러기에 트럼프는 더욱 더 패배를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4년 전이나 올해의 트럼프 선거 전략은 단 하나다, 바로 철저히 편 가르기이다. 트럼프는 모든 사람의 대통령, 통합 대통령 등에는 전혀 관심 없다. 오직 내편의 사람들만을 챙기고 내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는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미국은 이미 정치적으로 양극화되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미국의 정치적 갈등과 반목은 전쟁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심각해졌다. 두 동강으로 분열된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는 앞으로도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조국장관 사태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검찰개혁, 추미애-윤석열 갈등으로 우리의 여론은 갈기갈기 찢겨져있다.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의 주범은 정치인이다. 정치인들이 가장 손쉽게 표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은 지역, 계층, 이념 등으로 편을 가르는 것이다. 정치인에 못지않은 또 다른 공동정범은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미디어들이다. 이들이 국민들을 통합시키기 보다는 양 갈래로 갈라놓고 있다. 지난 9월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크게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가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페이스 북 등 소셜 미디어 전직 임원들의 증언과 고백에 의하면 소셜 미디어들이 우리 인간들을 연결시켜주면서 동시에 조종한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 업자들은 수익 창출을 위해 각 이용자별로 정치적 성향 등을 분석하여 만들어낸 알고리즘을 통해 각자의 취향에 맞는 뉴스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소셜 미디어 중독을 만들고 정치적 양극화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념적으로 보수 또는 진보인 이용자는 온전히 자신의 성향과 맞는 콘텐츠만 제공받고, 다른 성향의 콘텐츠를 접촉하기가 어렵게 된다. 아울러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의 팔로우 친구 맺기를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섬에 갇히게 된다. 문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뉴스나 정보들이 확인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가 많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섬에 갇혀 사는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은 객관적 시각과 비판적 판단능력을 잃어버리고, 정치적으로 극단화되기 쉽다.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넘쳐나는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소셜 미디어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좀비로 전락하였다. 나와 상대방의 의견과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관용(tolerance)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지탱해주는 초석이다. 지금처럼 소셜 미디어가 정치적 양극화를 지속적으로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동된다면 민주주의가 위태롭게 된다. 소셜 미디어는 이용자들이 자신의 의견과 다른 관점과 콘텐츠를 접촉하여 상대방에 대한 관용을 키울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수정해야 한다. 소셜 미디어가 더 이상 사회를 분열시키기보다는 사회통합을 촉진시키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만약 소셜 미디어가 이를 자율적으로 이행하지 않으면 이제는 국가가 개입하여 강제로 이행시켜야하지 않을까 싶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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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03 18:24

추미애와 가차저널리즘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9월은 추미애 장관의 달이었다. 추장관 아들의 군 휴가 의혹이 본격적으로 다시 불거진 9월 1일 이후 추미애 아들 두 키워드가 신문과 방송, 인터넷 언론을 점령하다시피 하였다. 미디어 오늘의 분석에 의하면 9월 1일부터 20일까지 포털 네이버에서 이 두 키워드가 동시에 들어간 기사가 무려 1만 4824건이었다고 한다. 미디어 오늘의 보도에 의하면 지난 20일 동안 조선일보는 추장관 아들 의혹보도를 총 189건, 하루 평균 9건씩 보도하였다고 한다, 이어서 문화일보 136건, 중앙일보 116건, 동아일보 115건으로 보수신문들이 추장관 의혹을 적극적으로 보도하였다. 문제는 추장관 아들 의혹 이슈가 과연 국회를 마비시키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 만큼 중요한가이다. 코로나19 방역, 경제회복, 재난지원, 장마와 태풍 피해복구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다른 국가적 난제들보다 더 긴급하고 중요한 이슈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이 언론이 정치인이나 저명인사의 사소한 실수와 해프닝, 흠결 등을 사안의 맥락과 관계없이 과장해서 보도하는 것을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이라 한다. 가차(gotcha)는 영어의 I got you의 줄임말로 잘 걸렸어 딱 걸렸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꼬투리 잡기 저널리즘이라 할 수 있는 가차 저널리즘은 사건의 핵심과는 동떨어진 외모와 복장, 말실수, 무심한 행동을 꼬투리 잡아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보도 경향을 말한다. 가차 저널리즘의 국내 사례로는 2004년 17대 총선과정에서 정동영 열린 우리당 의장의 노인폄하발언이 대표적이다.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면 젊은이들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발언이었으나 앞뒤를 쏙 자르고 노인폄하발언으로 둔갑한 정의장의 문제 발언은 총선 판세에 엄청난 후과를 가져왔다. 여당인 열린 우리당의 180석 이상 압승이 예상되었던 판세 속에서 다 죽어가던 한나라당은 이를 반격의 빌미로 삼아 연일 공세를 펼쳤다. 여기에 조중동 보수신문들 마저 일제히 야당 편을 들고 나섰다. 역풍을 막기 위해 정동영 의장은 국회의원 후보직을 사퇴하고, 매일같이 노인정을 방문하여 큰 절과 눈물로 사죄하기에 바빴다. 선거결과는 열린 우리당이 가까스로 과반수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또한 2010년 11월, 북한군의 포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연평도 포격 현장에서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한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도 가차저널리즘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안 대표는 한동안 보온병 의원으로 놀림을 받았다. 2013년 3월, 당시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핸드폰으로 누드 사진을 검색하는 장면이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돼 야동 심재철이라는 낯 뜨거운 별명을 얻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심의원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야동 심재철이 뜨고 있다. 진보와 보수 언론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2011년 종합편성채널들이 개국하면서 가차저널리즘이 크게 늘어났다. 가차저널리즘은 국민들로 하여금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게 만든다. 언론이 중대한 사건이나 이슈를 전달함에 있어서 각 부분을 고립시키고, 파편화시키며, 사소한 것을 중요하게 인식시키게 만든다. 국민들로 하여금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고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만든다. 가차저널리즘이 심해지면 정치인들을 부정적으로 인식시키고, 희화화하여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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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4 16:12

코로나 시대 여름나기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코로나19 재확산, 54일간의 최장기 장마, 무더위와 열대야, 경자년(庚子年) 여름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예년의 여름나기는 대체로 더위와만 싸워 이기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여름이 오기 전에 에어컨, 선풍기 등 냉방기를 미리 준비하고, 7월 말에서 8월 초의 혹서기에 시원한 곳으로 국내외 여행 겸 피서를 다녀오면 큰 고비가 넘어가곤 하였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가 모든 걸 바꿔 놨다.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 여행도 조심스러워 대부분이 홈캉스를 하고 있다. 진정되어가나 싶던 코로나가 광복절 광화문집회가 기폭제가 되어 전국으로 재 확산되고 있다. 아빠는 재택근무, 아이들은 집에서의 온라인 수업이 일상화되어가고 있다. 가족 간의 대화가 늘어난 기쁨은 잠시다. 아침에 각자 일터로 나갔다 밤늦게 잠시 얼굴을 대할 때는 좀 더 많은 대화와 스킨십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막상 비좁은 공간에서 가족들이 하루 종일 부딪치다 보면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다. 그래서 부부싸움이 더 잦아지고,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도 더 깊어진다. 밖에 나가자니 코로나 감염 걱정, 집안에 있자니 가족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 여기에 무더위까지 더해지면 짜증이 폭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선조들은 짜증스런 한여름 무더위를 어떻게 이겨냈을 지가 궁금해졌다. 부채 말고 마땅한 냉방장치가 없어서 더 힘들지 않았을까. 아니면 지금 같은 지구온난화도 없고, 인구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더 낫지 않았을까. 선조들의 여름나기 방법에 대해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잘 정리해주셨다. 다산이 말한 무더위를 이기는 여덟 가지 방법(消暑八事, 소서팔사)을 보자. 솔밭에서 활쏘기(松壇弧矢, 송단호시),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槐陰?韆, 괴음추천), 넓은 정자에서 투호하기(虛閣投壺, 허각투호),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淸?奕?, 청점혁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西池賞荷, 서지상하),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東林聽蟬, 동림청선), 비오는 날 시 짓기(雨日射韻, 우일사운), 달밤에 발 씻기(月夜濯足, 월야탁족).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한량들의 신선놀음이다. 국내외 이동이 막히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야만 하는 올 여름 코로나 무더위를 이기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SNS와 블로그를 통해 올 여름에 딱 맞는 피서법들을 찾아보았다.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피서법은 에어컨, 선풍기를 아낌없이 틀어놓고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통해 그동안 미뤄뒀던 드라마와 영화를 실컷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도 이 피서법을 따라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꼭 보고 싶었으나 10부작이라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작품이 하나 있었다. 금년 4-5월에 미국 ESPN이 방송하여 대박을 터뜨린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10부작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다. 넷플릭스 부터 가입하였다. 미리 준비한 시원한 맥주와 함께 편당 50분짜리 10편을 한 방에 폭풍 감상하였다. 워낙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재미있는 작품인지라 더위는 물론이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역시 코로나 시대에 최고의 피서법이었다. 이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올 여름에 맞는 피서법으로는 사람 뜸한 곳에서 풀벌레 소리 들으며 야간 산책하기, 창밖 빗소리듣기, 사람 없는 계곡 물에 발 담그기, 맛있는 음식 만들기 도전하기, 시원한 곳에서 책 읽기 등이었다. 대가족이나 모임에서 단체로 시원한 바다나 계곡을 찾아 물놀이하고 맛있는 음식 해먹는 피서법은 이제 안녕이다. 무이동, 비대면을 특징으로 하는 코로나 시대에 맞는 피서법을 찾아 익숙해지도록 노력해보자.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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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7 16:20

매미의 5덕과 공직자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오늘도 매미가 그대로 있다. 아파트 10층 창문 방충망에 매미가 사흘째 꼼짝도 하지 않고 붙어있다. 가랑비를 맞으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미동도 없다. 매미가 배고프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수시로 관찰하게 된다. 매미는 이슬만 먹고 산다더니 사실이었다. 매미의 일생은 참으로 경이롭고 동시에 애잔하다. 짝짓기 후 매미 암컷은 나무의 줄기에 알을 낳는다, 겨울을 난 알은 유충으로 깨어난다. 깨어난 유충은 나무를 타고 내려와 땅 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에서 수액을 빨아 먹으며 오랜 기간 동안 성충이 되기를 기다린다. 성충이 되기까지 보통 7년이 걸리지만 종류에 따라 5년, 13년, 17년이 걸리기도 한단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땅속에서 살던 유충은 성충이 된 여름밤 드디어 땅 위로 나와 매미로 우화한다. 이후 매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열흘 남짓에 불과하다. 이 짧은 기간에 짝을 찾아 짝짓기를 한 후에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래서 수컷 매미들의 짝을 찾기 위한 울음소리가 그리도 처절한 모양이다. 우리 선조들은 매미는 인간에게 일체의 해를 끼치지 않는 덕충(德蟲)으로 여겼다. 매미의 5덕인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머리 모양이 선비가 쓰는 관(冠)을 닮은 문덕(文德), 이슬만 먹고 사는 청덕(淸德), 곡식과 채소를 해치지 않는 염덕(廉德), 집을 짓지 않는 검덕(儉德), 때 되면 왔다가 때 되면 미련 없이 떠날 줄을 아는 신덕(信德)을 갖추고 있다고 여겼다. 매미가 인간에게 끼치는 유일한 해악은 소음일 것이다. 최고 100데시벨(dB)에 달하는 시끄러운 울음소리는 엄청난 소음공해다. 집회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확성기 소음 기준치가 주간 65데시벨, 야간 60데시벨인 점을 고려한다면 매미의 울음소리는 공해임에 틀림없다. 지난 1990년 미국 시카고에서는 매미 떼가 하도 울어대 중요한 음악행사가 취소되기까지 하였단다. 때 마침 경남 양산시가 공직사회 청렴문화 확산을 위한 방안으로 매미의 청렴정신을 내세웠다고 한다. 양산시는 내부 행정시스템 메인화면 상단에 매미의 오덕인 청렴(淸), 검소(儉), 염치(廉), 신의(信), 학식(文)을 실천하는 청렴한 하루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양산시장은 조선시대 임금은 매미의 교훈을 항상 염두에 두고 정무를 맑고 투명하게 수행하라는 뜻으로 매미 날개 모양을 형상화한 익선관(翼蟬冠)을 썼다. 공직자들이 청렴한 공직생활을 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매미의 오덕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다산 정약용도 같은 생각이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지인인 군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을을 다스리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다산은 관리가 갖춰야 될 최고의 덕목으로 첫째도 염(廉), 둘째도 염, 셋째도 염이라고 하였다. 청렴함이 으뜸이라는 것이다. 염(廉)은 밝음을 낳으니 사물이 정(情)을 숨기지 못할 것이요, 염은 위엄을 낳으니 백성들이 모두 명령을 따를 것이요, 염은 곧 강직함이니 상관이 감히 가벼이 보지 못할 것이다(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이 살았던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미 같은 공직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안타깝다. 앞으로 모든 장차관급 인사와 국회의원, 지방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취임식에서 익선관을 쓰고서 선서를 하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우리 인간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매미에 대한 보답으로 설사 매미가 잠을 설치게 울어대더라도 측은지심과 관용의 덕을 베풀어 주어야겠다. 우리 선조들은 더위를 이기는 8가지 일(消暑八事, 소서팔사) 중의 하나로 매미소리 듣는 것을 꼽기도 하였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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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30 17:35

삼성의 충견으로 전락한 언론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단돈 60억 원을 20년 만에 9조 원으로 불린 세계적 부호, 20년 누적 수익률이 자그마치 15만%에 이르는 환상적 재테크의 주인공 이재용. 하지만 그의 승승장구는 대부분 얌체 짓이었습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이용한 땅 짚고 헤엄치는 식의 유치한 술수에 대해서 재판부마다 대체로 편법이나 불법은 아니다. 하면서 눈 감고 아웅 해 주었지만, 이는 자본주의 경제 질서를 밑바탕부터 흔들어놓는 해악이었습니다. 이런 범죄야말로 반체제적, 반국가적 사범인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지난 달 26일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를 결정하였다. 이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재용 씨는 욕심을 비우고 양심을 찾으시오란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제단이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사실과 그 내용을 소개한 언론은 한겨레를 비롯한 극소수에 불과했다. 수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 절대 다수의 언론이 이를 보도할 리 없다. 일이 터질 때마다 노골적으로 삼성의 홍위병 역할을 해대는 언론을 향해서도 사제단은 꾸짖었다. 수사심의위원회가 단 아홉 시간 동안의 심사 끝에 검찰의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는데 이것이야 말로 요절복통할 일입니다.,,더 웃기는 일은 언론들의 부화뇌동입니다. 이로써 그간 삼성의 불법행위는 없었음이 밝혀졌고, 이제야 긴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다(동아일보)며 코로나 사태와 미중무역 갈등 등으로 그러잖아도 여러 가지로 위축된 삼성을 그만 놔주자고 합니다. 지난 달 8일 이재용부회장에 대한 구속적부심을 앞두고 우리나라 굴지의 신문과 통신사들이 일제히 아니 되옵니다라고 충성경쟁을 벌였다. <삼성 위기입니다... 사실상 사법부국민 향한 마지막 읍소> <절벽 끝에 선 삼성 경제 위기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 <국민 60% 이재용 부회장 선처 의견> <어느 한 기업에 대한 4년간의 수사와 재판> <삼성 검찰 역습에 참담...내부에서는 해도 너무 한다 반응도> <외신들 삼성 불확실성 커져>. 당시 언론에 실린 주요 제목들이다. 이쯤이면 언론 스스로가 삼성의 충견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정권에 대해선 파수견을 넘어 투견과 같은 공격견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언론이 왜 이렇게 삼성에 대해서는 안내견 또는 애완견이 되어 맥을 못 추는 걸까. 한 마디로 돈 때문이다. 경제, 정치, 법조계를 장악한 삼성이 언론을 주무르는 것은 일도 아니다. 특히 신문은 삼성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종이 신문들의 수입구조를 보자. 대략 광고 60%, 협찬 20%, 구독료 10%, 기타 10%이다. 기업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광고와 협찬 수입이 전체 수입의 80%를 차지한다. 기업 중에서도 삼성이 뿌리는 광고와 협찬은 절대적이다. 삼성이 신문, 특히 경제신문들의 숨통을 쥐고 있다. 그러니 신문들이 삼성의 애완견, 반려견을 자처하면서 스스로 꼬리를 쳐대는 것이다. 성명서에서 사제단은 주가조작에다 회계사기도 모자라서 오로지 일신의 탐욕을 위해 국가 권력자와 뇌물로 거래하고, 모두의 노후를 대비하는 국민연금에까지 손을 뻗치고, 그러면서도 코로나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운운하며 못 본 체 해달라는 저 파렴치한 행위는 반드시 응징되어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사제단의 외침이 삼성의 충견으로 전락한 언론을 깨우칠 리 없다. 이런 언론에게 사회정의를 위한 목탁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언론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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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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