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전주대사습놀이 중장기적 계획으로 국가무형문화제 등록 추진
과거 영조대 전주에 4군자정 신축, 전주에서 첫 개최된 이후 연례행사 시행
하지만 1910년 일제강점기 시기 여러 대내외적 사정으로 인해 행사 자체가 단절
전주시 역사 보존위한 대사습청 명칭 변경 및 출발이 신호탄
전주시가 전국적인 판소리 등용문인 전주대사습놀이를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대사습청 설치를 시작으로 국가무형문화재 등록에 나선다는 것이 시의 주요 계획이다.
시는 전주대사습놀이를 국가무형문화재 등록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주요 내용으로 시는 전주대사습놀이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지난 9월 ‘전주대사습청 설치 및 운영 조례 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조례안에 따라 전주소리문화관을 전주대사습청으로 명칭을 변경할 예정이다. 이후 각종 자료를 수집한 뒤 많은 학술대회를 개최해 최종적으로 국가무형문화재 등록을 추진할 방침이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조선 후기 성행했다가 중단된 후, 1975년도에 복원돼 현재까지 전주에서 매년 개최되고 있는 판소리 중심의 전국 규모 국악 경연대회다.
‘사습(私習)’이란 활쏘기에서 정식으로 쏘기 전에 연습으로 쏘는 일을 일컫는 말로, 전주의 전라감영과 전주부의 통인청(通引廳)이 주관했던 사습놀이가 전주대사습놀이의 전신이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조선 숙종(1661~172) 당시 마상 궁술대회와 영조(1694~1776)대의 물놀이와 판소리, 백일장 등 민속무예놀이를 종합해 대사습이라 불렀다. 영조8년에는 지방재인청과 가무 대사습청의 설치에 따라 전주에 4군자정을 신축하고, 최초로 전주에서 대사습놀이가 펼쳐진 뒤 매년 연례행사가 실시됐다.
그 후 대사습에서 선발된 권삼득, 신재효 등 많은 이들에게 의관, 통정, 감찰, 오위장 등의 벼슬을 직접 제수하고 명창 칭호를 하사했다.
조선 후기에 전주대사습놀이는 해마다 동짓달에 전주의 다가정(多佳亭)과 같은 정자에서 주로 열렸다.
당시 경연은 지금의 도청에 해당하는 영문(營門)의 전속 판소리 창자들과, 지금의 시청에 해당하는 본부(本府)의 전속 판소리 창자들의 두 패로 갈려 진행됐다. 당시 본부 전속으로 장자백(?-1907), 정창업(1847-1889), 김세종, 송만갑(1865-1939), 염덕준 등이 참여했으며. 영문 전속으로 이날치(1820-1892), 박만순, 주덕기, 장수철 등이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어 그 명성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1910년 전후로 중단됐고, 1974년 전통예쑬에 뜻을 가진 전주지역 인사들이 모여 이듬해인 1975년부터 판소리와 농악, 무용, 시조, 궁도 등 5개 부문으로 전주대사습놀이를 개최하면서 부활했다.
시 관계자는 “전주대사습놀이는 역사가 깊은 대회 중 하나”라면서 “국가무형문화재로 반드시 등록을 시켜야한다. 대사습청 설치를 시작으로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이 더 멀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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