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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남의 일구일언]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사회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9년 7월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에서의 일이다. 사탑을 이리저리 감상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제법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다가오더니 사진을 찍어달란다. 한두 컷 찍어주고 핸드폰을 돌려주려 하니 온갖 재미난 포즈를 바꿔가면서 계속 찍어달란다. 속으로 참 재미있는 친구라고만 생각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혹시나 하고 가슴 앞으로 맨 소형 가방을 살펴보았다. 아뿔싸. 지퍼가 절반 정도 열려있는 게 아닌가. 옆을 보니 다른 두 명의 신사들이 필자 옆에 바짝 달라붙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서야 사태를 파악하고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퍼부었다. 소매치기 일당은 순식간에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다행히 잃은 것은 없었지만 남은 여행일정 내내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었다.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사람에 대한 신뢰라고 답한다. 식당에서 핸드폰이나 소지품을 그대로 두고서 화장실을 다녀와도 별 일이 없단다. 밤늦게 돌아다녀도 마주치는 사람이 무섭지 않은 것이 너무도 인상적이란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라고 말한다. 낯선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사회. 반면에 낯선 사람에 대해 긴장과 경계를 해야만 하는 사회. 두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사회적 경쟁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처럼 불특정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한다. 사회 자본은 인적 자본, 물리적 자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 자본은 물리적 자본같이 물리적 형태를 띠는 것도 아니고, 인적 자본과 같이 개인의 자질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사회 자본은 혼자만의 노력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축적된다. 사회 자본은 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접착제라 할 수 있다. 사회 자본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믿음, 이웃과의 친밀성, 지역사회 참여이다. 지역주민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이웃과 친하게 지내고, 지역사회의 모임이나 행사에 열심히 참여할수록 사회 자본은 커지게 마련이다. 사회자본의 세 요소 중에서 지역주민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이웃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야만 이웃과 친밀해지고, 지역사회 참여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필자가 전북도민 500명을 대상으로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한 바에 의하면 예상과는 달리 나이가 많을수록 지역주민에 대한 믿음이 떨어지고, 젊을수록 믿음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두 번째 요소인 이웃과의 친밀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교육수준이었다.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이웃과 관계가 좋은 반면에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관계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종교유무가 이웃과 친밀하게 지내게 만드는 두 번째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종교가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게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나이가 많을수록, 여성보다는 남성들에게서 지역사회 참여도가 높았다. 사회자본의 세 요소들과 개인의 행복점수 간의 상관관계가 높게 나타났다. 개인의 사회자본 점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행복하다는 것이다.

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내가 먼저 지역 주민을 보다 신뢰하고 이웃과 더 가까이 지내고 지역의 각종 모임이나 행사에 더욱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 자본을 높이면 된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사회는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발전을 보장해준다 하겠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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