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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군의 독립유공 서훈

김은정 선임기자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은 지난 2004년. 농민군들이 ‘척양척왜, 보국안민’을 내세우고 떨쳐 있어났던 1894년 갑오년으로부터 110년이나 지난 후였다. 일제 침탈과 분단으로 이어진 한국 현대사속에서 갑오년 역사는 부끄러운 역사로 왜곡되었고, 진실은 묻혔다. 농민군들의 숭고한 죽음조차 반역의 누명을 쓰고 황톳길에 무참히 흩뿌려졌지만 역사는 끝내 다시 섰다.

그해, 긴 시간 설득 끝에 인터뷰로 만났던 유족이 있다. 남원 대접주로 이름을 날렸던 김홍기의 후손이다. 그의 증조부는 김홍기의 형 김낙기. 김낙기 역시 남원의 접주로 활동하면서 농민군으로 적극 가담했던 인물이다. 이들 형제 말고도 천도교를 신앙으로 삼았던 그의 집안에서는 열일곱 세대가 갑오년 혁명에 참여했지만 집안 내력은 철저히 묻혔다. 그도 1994년, 우연히 접한 <남원종리원사> 의 기록으로 집안 내력을 알게 됐다. 증조부 조부 뿐 아니라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까지 농민군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교육공무원이었던 그는 퇴임한 직후 ‘후손된 도리’로 농민군 유족들을 찾아 나섰다. 관련 사료나 연구자들의 논문에서 이름을 찾아 후손을 추적하는 일은 외롭고 고된 여정이었다. 그러나 더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어렵게 찾아간 후손들 중에는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하거나, 이름을 바꾸어 스스로를 숨기고 살아온 예가 허다했다. 역도와 비도로 몰렸던 농민군 후손들에게 갑오년 역사는 여전히 끊고 싶은 ‘족쇄’이고, 벗어나고 싶은 ‘굴레’였던 것이다. 다행히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들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그는 개인적인 고된 여정을 끝냈다.

2009년까지 지속된 위원회 활동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본격적으로 벌인 명예회복 활동으로 지금까지 얻은 성과는 적지 않다. 이름을 찾은 농민군 3868명과 후손으로 등록된 유족 12000여명이 그 결실이다. 2019년에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제정됐다. 그렇다면 이제 반봉건 항일구국투쟁에 나섰던 농민군들의 명예는 온전히 회복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들의 명예회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항일구국투쟁으로 목숨까지 바치고도 독립유공 서훈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그 증거다.

국회와 연구자들이 앞장서 농민군들의 독립유공 서훈을 추진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이 모처럼 마음을 모았으니 좋은 결실이 기대되지만 정작 서훈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보훈처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은 모양새다. 더 강한 의지와 추진력이 더해져야만 때를 놓치지 않을 것 같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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