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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마을 백서

김은정 선임기자

삽화 = 정윤성 기자
삽화 = 정윤성 기자

‘백서(白書, white paper)’는 정부의 행정 각 부처가 소관 사항에 대해서 제출하는 보고서를 이른다. ‘백서’의 시작은 영국 정부가 외교 상황을 일반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공식보고서다. ‘백서’라 이름 붙은 것은 보고서의 표지가 백색이어서 인데, 우리에게는 일반화되어 있지 않지만 ‘백서‘와 같은 성격의 ’청서‘도 있다. 표지가 푸른색으로 되어 있는 영국 의회의 공식보고서가 그것이다. 어찌됐든 ’백서‘와 ’청서‘는 주체가 다를 뿐 공식적인 보고서로서 성격은 같은데, 영국의 관행에 의해 만들어진 이들 공식보고서 중 각국에 널리 퍼져 같은 명칭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백서‘다.

‘백서’는 이제 정부의 공식보고서 뿐 아니라 분야를 막론하고 일의 내용과 전후 관계를 정리한 일종의 보고서 형식을 통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정부가 내놓는 노동백서, 환경백서, 경제 백서 등 정부의 보고서 뿐 아니라 기관과 단체들이 자신들의 사업을 소개하는 보고서에 ‘ 백서’란 이름을 붙이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을 정도다.

‘백서’의 성격이 확장되면서 쓰임도 당연히 달라졌다. 어느 일정한 시기, 특정한 사항에 대한 설명과 과정의 추적, 그 성과까지도 꼼꼼히 담아내는 형식이 일반화되면서 ‘백서’의 활용도가 높아진 것이다. 둘러보면 투자 열풍을 몰고 온 디지털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백서“까지 나왔을 정도이니 그 확장성이 놀랍다. 그만큼 ‘백서’의 의미와 쓰임이 일반화 되었다는 증거다.

중대한 사건과 사고의 현장에서도 ‘백서’는 어김없이 나온다.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경종의 의미를 담은 이런 성격의 ‘백서’는 십중팔구 우리의 치열한 자성을 불러낸다.

마을 인근에 들어선 비료공장에서 배출된 발암물질 때문에 암 집단 발병의 피해를 입은 익산 장점마을 사태를 기록한 ‘백서’가 나왔다. 장점마을 사태는 비특이성 질환에 대한 정부 역학조사 결과 인과관계가 인정된 국내 첫 사례로 알려져 있다. ‘백서’는 서공장에서 내뿜는 역한 냄새와 매연에 시달리면서 집단 암 발병으로 30여 명이 숨지거나 치료를 받고 있는 장점마을 주민들의 고통스러웠던 20년 투쟁기록이다. 장점마을 사태를 다룬 최종 보고서이기도 한 이 ‘백서’는 비료공장이 들어선 뒤 발생한 피해와 주민들의 대응 과정, 환경부와 관련기관의 조사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수년 동안 민원을 제기했지만 별다른 대책을 얻지 못하자 직접 조사에 나섰던 주민들의 눈물겨운 투쟁 기록이자 이런 환경문제에 무지했던 우리 사회를 향한 고발이기도 하다. 이 ‘백서’의 쓰임을 생각해보니 발간의 의미가 더 각별해진다. 큰 희생이 가져다 준 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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