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난 미술관 명화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토마토 수프를 뒤집어쓰고 모네의 <건초더미>가 으깬 감자로 뒤범벅되기도 한다.
기후활동가들이 화석 연료로 인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미술관을 점거하고 벌이는 퍼포먼스 현장이다. 유튜브 동영상이나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이 퍼포먼스는 미술관이 기획한 예술 행위나 합법적인 행위가 아니다. 미술관을 점거하고 미술작품에 테러를 가하는 행위는 기후활동가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관심과 시선을 끌어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형식의 시위다. 불법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니 액자와 방탄유리 덕분에 원작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해도 당연히 충돌과 법적 제재를 받게 되지만 이들의 도전이 좀체 중단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미술관의 명화 테러 시위는 지난 여름부터 본격화됐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영국과 독일의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과 ’마지막 세대(Ultima Genrazione)’다. 처음에는 작은 갤러리에서 시작됐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자 이름난 미술관의 명화들로 대상을 바꾸었다. 영국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윌리엄 터너와 존 컨스터블의 작품이 대상이 되자 관심이 달라졌다.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도 대상이 됐다. 이름난 미술관의 이름난 작품일수록 매체들이 큰 관심을 보이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후활동가들의 전략이 적중한 셈이다.
사실 일정한 공간을 점거하고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행위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시위 방식이다. '스쾃(squat)' 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스쾃'은 일종의 ‘빈집점거’다. 자신의 소유가 아닌 건물을 무단 침입해 점거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빈곤층의 주거 문제에 대한 사회와 정부의 무관심을 환기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이 운동은 도시빈민 주거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근대적 의미의 무단점거는 1968년 영국에서 본격화되었는데, 그 덕분인지 유럽권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무단점거 운동은 한때 낯설지 않은 문화가 되기도 했다. 특히 문화영역에서 벌어진 예술가들의 '스쾃 운동'은 공동화되어가는 구도심에 생기를 불어넣는 통로로 주목받으면서 새로운 문화 도전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기후활동가들의 미술관 점거와 명화 테러는 진행 중이다. 유럽의 이름난 미술관들이 언제 기후활동가들의 타깃이 될지 몰라 긴장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이들의 과격한 시위 현장은 확실히 충격적이다. 공감과 비난이 엇갈리지만 흥미롭게도 ‘기후 위기의 절박성’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위험을 각오하고 나선 기후활동가들에게는 의미 있는 성과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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