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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 교수의 전라도 이야기] ① 미국 최초 외교무관 포크 씨와의 만남

전북일보는 조법종 우석대 교수(교양대학장)가 전라감영 복원 과정에서 1884년 최초로 촬영된 전라도 관찰사의 사진을 추적한 이야기를 연속으로 보도합니다. 조법종 교수는 촬영자인 미국 외교무관 포크가 남긴 전라도 조사기록을 현장 확인과 함께 소개할 예정입니다. 서양인에 의해 기록된 140여년전 전라도의 생생한 모습을 통해 우리 근대 전라도의 실상을 파악하고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1883년 미국에 최초로 파견된 조선의 보빙사, 포크와 만나다

2023년은 조선과 미국이 1882년 수교하고 최초로 서구에 공식외교사절단인 ‘보빙사’를 파견한지 14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당시 조선은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으로 쇄국을 벗어난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고 서구세계와의 만남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883년 미국에 ‘보빙사’를 파견했다. 당시 보빙사는 모두 20대로 민비의 친조카인 23살의 민영익과 영의정 아들 홍영식, 서광범, 유길준 등으로 구성됐다. 이때 보빙사와 40여일간 동행한 미국측 통역장교 역시 27살의 ‘조지 포크(Georgr Clayton Foulk; 한자 이름 복구(福久)’였다. 이들 20대의 조선과 미국의 청년들은 의기 투합해 결국 민영익은  포크를 조선주재 외교관으로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여 결국 함께 귀국해 조선의 개화를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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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최초로 파견된 조선 보빙사 일행과 함께 찍은 포크의 사진. 사진 왼쪽부터 미국 수행원 메이슨(T.W.B. Mason)대위, 민영익(정사),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조선측 외교고문), 서광범(종사관),홍영식(부사), 미국 수행원 포크(G. C. Foulk). "From the American Geographical Society Library, University of Wisconsin￾Milwaukee Libraries.

 

△보빙사, 에디슨 전기조명을 단 화륜선타고 세계일주를 하다.

 미국 21대 대통령 아서는 조선에 대한 호의 표시로 보빙사에게 에디슨 전기조명장치를 최초로 설치한 미해군 증기기관선 트랜튼호(USS Trenton)를 제공해 세계일주를 하고 조선으로 귀환토록 배려했다. 이에 부사 홍영식 일행은 태평양을 건너 바로 귀국해 고종에게 보고하고 정사 민영익과 종사관 서광범, 수행원 변수는 조선인 최초로 12월1일 뉴욕을 출발해 유럽 각국과 수에즈 운하를 거쳐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를 지나는 6개월여의 세계 여행을 한 후 귀국했다. 당시 귀환 여정은 뉴욕-대서양-스페인 지브랄터 해협-마르세이유- 파리-런던-로마-수에즈운하-이집트-인도양-인도 봄베이-스리랑카-싱가포르-홍콩-나가사키-제물포 순이었다.  1884. 5. 31. 보빙사일행과 함께 포크는 제물포에 도착하여 6월 미국 공사관 해군무관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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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가 조사여행 일기에 직접 그린 보빙사 세계일주 지도. 부란수(프랑스). 독국(독일),아브리가(아프리카),아라ᄉᆞ(러시아),중국,인도 등 지명과 바다(왼쪽 대서양, 오른쪽 인도양) 명칭과 중앙의 이탈리아 반도, 수에즈운하를 지나 인도, 스리랑카,홍콩을 거쳐 제물포로 진행한 여정이 표시돼 있다.

 

△가마타고 조선을 조사한 포크, 전라도 최초 사진을 찍다

포크는 부임직후 조선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1884년 1차 9월과 2차 11월-12월 사이 조선의 중부 및 남부지역에 대한 조사 여행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2차조사시 충청, 전라, 경상도 지역의 주요 지역을 여행하며 30분 단위의 기록과 대부분 최초로 촬영된 유리건판 사진들을 남겼다. 그런데 여행기간 중 갑신정변(12.3-12.6)이 발생해 조선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속에 ‘왜놈’으로 오해되며 신변 위협을 경험했고 갑신정변 직후 미국공사 푸트의 사임으로 조선주재 미국 임시대리공사를 맡았다. 이후 고종의 외교자문역을 수행하며 조선과 청의 갈등에 개입해 조선을 도왔으나 청과의 정치적 갈등이 촉발되어 1887년 미국 정부에 의해 미국외교관직을 사임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편을 잡다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이 때 포크의 역할이 소재가 되어 2018년 방영된 ‘미스터 선샤인’ 주인공의 모델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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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를 방문한 포크가 1884년 11월 11일 11시경 전라감영 선화당 내부에서 전라도관찰사 김성근과 6방권속,나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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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 교수가 번역한 포크의 조사 일기.

필자는 2021년 완공된 전라감영 복원을 위한 ‘전라감영 복원재창조위원회’에 참여해 부위장직을 맡아 감영관련 자료 고증 등을 함께했다. 그 과정에서 전라감영의 중심 건물인 선화당 자료들을 수집했는 데 출처를 알 수 없는 전라감영 선화당 내부의 사진 2점을 확보하게 됐다. 이 사진은 전라관찰사와 6방 권속 등이 함께 찍은 사진과 4명의 기생이 춤을 추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그런데 확인을 통해 이 사진들이 바로 1884년 11월 10일에서 12일까지 전주를 방문한 조선주재 미국 공사관 무관인  미국 해군소위 포크가 찍은 사진이란 점이 처음으로 확인되게 됐다.

또한 포크가 매일 쓴 조사일기를 남겨 놓았고 이 일기가 2007년 사무엘 홀리교수에 의해 정리도어 책자로 간행됐다. 기록을 검토하면서 포크의 기록은 19세기-20세기초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남긴 초기 서양인들의 기록과는 그 수준과 내용, 형식 및 정보량에서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즉, 포크의 기록은 조선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  미 국무부에 제출하기 위한 조사자료였고 또한 개인적으로 향후 조선에 대한 별도의 책을 저술하기 위한 원본 자료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1897년 포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이 기록은 100여년 이상 전문이 공개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필자는 2021년 포크의 2차 조사여행 기록을 부인과 함께 번역하고 관련 현장들을 방문해 설명을 달아 책자를 간행했다. 그리고 2023년 올해 서구세계인 미국으로 떠났던 조선보빙사 140주년을 기념하고 조선에 부임해 우리의 근대시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남긴 포크의 기록을 소개해 근대로 진입하던 전라도의 모습을 본고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근대시기 우리의 과거모습과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 가에 대한 시대적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자 한다.

/조법종 우석대 교양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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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 우석대 교양대 학장

△조법종 우석대 교양대 학장은 중국 고구려사왜곡 대책위원,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 중등역사교과서 검정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전라도 천년사 편찬위원, 전라감영 복원재창조 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고 현재 전북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KBS역사스페셜, JTBC차이나는 클라스 등에 출연해 대중 활동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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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법종 #전라도 이야기 #미국 최초 외교무관 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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