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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 '정직한 캐럴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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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시인

심야에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승용차가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신변잡담으로 왁자지껄하던 차안이 일시 조용해졌는데 운전 중이던 캐럴이 정적을 깨며 뒷좌석의 내게 묻는다. “형(미국에서의 필자의 애칭), 여친 있니?”, ”없어.“, ”아니, 너 같은 미남을 한국여자들이 왜 가만둘까?“. 듣고 나니 화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어릴 적부터 지독한 외모 컴플렉스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퉁명스럽게 ”캐럴 너 그렇게 남의 외모를 가지고 놀리면 안 돼!“ 너무 진지한 내 대꾸에 당황한 캐럴이 동승자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마이크, 에릭, 어떻게 생각해?“ 둘은 이구동성으로 ”캐럴 말이 맞아!“. 

이상은 대학원 실험실 동료들과 함께 학회 가던 길에 벌어진 일이다. 미모의 랩짱(실험실 고참)인 캐럴은 이따금 쿠키를 구워와 우리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곤 했는데, 계속 얻어먹고 싶은 얄팍한 소망에 우리실험실을 ‘정직한 캐럴 빵집’(필자의 시집 제목이기도 함)이라 이름하고 출입문 위에 크게 써붙였다. 이 해프닝으로 필자는 외모 컴플렉스를 완전히 극복하게 된다.

퇴계 이황 선생은 제자들에게 늘 예인조복(譽人造福, 칭찬으로 복을 짓는다는 뜻)을 강조하셨다. ‘복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함으로써 만들어진다.’는 말씀이다. 이 가르침이 잘 구현된 것은 시공을 뛰어넘어 약 330년 후 취리히에서다.

1895년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연방공대(ETHZ)의 입시에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이 합격기준을 미달하여 낙방했다. 당시 학장이던 헬츠 교수는 이 낙오자를 불러 “수학성적이 놀랍도록 빼어나네. 부디 재도전해서 그 실력을 빛내주시게.”라고 격려했다. 이 말에 힘입어 재수 끝에 학문의 길에 들어선 그는 결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가 되어 인류에게 홍복을 주었다. 

필자는 최근 재직 중인 연구원 노조로부터 두 번째의 ‘원장경영평가’를 받았다. 취임 1년 후이던 ‘20년 평가에서 평균 57%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25개의 평가항목 중 두 부문에서 ‘보통’, 나머지는 모조리 미흡에 가까웠다. 만일 헬츠 학장처럼 덕담을 덧붙이며 낫게 평가받은 항목만 일러줬더라면 더 행복한 기억으로 연구원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젊은 날 필자는 동료들보다 우월하다는 자만심을 충족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단점을 캐는 데 골몰했었다. 하지만 살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으면 그들을 본받아 덩달아 발전하게 되고 행복감도 더 커진다는 걸 알게 된 후, 이제는 오히려 그들의 장점을 찾으려 애쓰는 필자를 발견하며 스스로 대견스러워 한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다보면 학문의 특성상 사고방식 자체가 편협해지고 흑백논리에 빠지기 쉽다. 이와 관련하여 과학기술분야에 종사하는 동업자들에게 업계선배로서 귀띔해주고 싶은 게 있다. 세상의 하많은 사람 중 지금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우주의 배려로 만난 인연’들임을 깨닫고 업무를 수행할 때 귀한 서로의 의견을 청해듣고 상부상조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애쓰는 것이야말로 그 우려를 극복하고 성과도 극대화하는 비결임을! 비교대상이 있고 당락이 결정되는 상대평가의 경우에는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평가해야겠지만, 여타 평가에서는 좋은 점만 칭찬하는 것이 본인이 속한 조직과 사회를 건강하고 살맛나게 만드는 첩경임을 터득하길 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는가.

/신형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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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식 #전북칼럼 #캐럴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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