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주발 부음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전주가 낳은 세계적인 프로기사 이창호 9단의 아버지이자 매니저인 이재룡씨(75)가 지병으로 별세했다. 현대바둑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오청원과 더불어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독보적인 천재 프로기사 2인 중 한 명이 바로 이창호인데 맨 먼저 그의 기재를 알아본 이가 바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였다. 마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헌신으로 아일랜드 이민자 후손으로서 대통령이 된 케네디와 흡사하다. 훗날 전문기사에게 아들을 맡긴 이후에도 이재룡씨는 매니저 역할을 묵묵히 하게 된다. 마치 최동원, 선동열의 아버지 같은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전주시 중앙동 웨딩거리에 가면 전주시 미래문화유산 12호인 이시계점이 있다. 이창호가 태어난 곳인데 43건의 전주미래유산 중 하나다. 4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이화춘)에게서 바둑을 처음 배운 이창호를 오늘날 전세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키워낸 이는 매니저였던 아버지였다. 이정옥, 전영선을 사사하며 무섭게 성장한 이창호는 10살때 조훈현의 내제자로 들어간다. 이후 이창호는 세계 최다연승(41연승)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근현대 물리학계에서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들 수 있듯이 현대바둑에서 오청원과 이창호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른 천재다.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한 오청원이 신포석을 개발해서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한다면, 이창호는 두터움 이란 세글자로 대표된다. 조남철, 김인, 조훈현 등으로 이어지는 국내 프로기사의 영역을 뛰어넘어 일본, 중국을 비롯한 세계무대를 석권한 이가 바로 이창호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제대로 키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만, 이화춘씨나 이재룡씨야 말로 특정 분야에서 전세계 1위로 만든 장본인이다. 단순히 아들을 어여삐 여기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보는 냉철한 눈이 있었다는 얘기다. 진시황제 사후 혼란에 빠진 중원의 패권을 놓고 한나라 고조 유방과 초나라 항우가 명운을 건 마지막 승부를 벌일 때 결정적인 공을 세운 사람은 유방의 대원수 한신이었다. 통일 이후 멸문지화를 당하면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으나 한신의 활약이야말로 단연 압권이었다. 고사성어 다다익선의 주인공 한신은 그런데 무명 시절 초나라 항우 진영에서 요즘으로 치면 위관급 장교정도 되는 집극랑 이란 직책에 머물러야 했다. 하늘이 낸 재주를 지닌 한신을 제대로 알아본 이는 천하를 손에 쥐었고, 그를 위관급 장교 정도로 여겼던 항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사람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 딱 하나의 차이였다. 오늘날 침체일로에 빠진 전북에 진정한 원로가 없고 원로의 역할은 더더욱 없다고 한다. 선수로서 자신의 역할이 끝났으면 감독으로 빛을 발해야 하는데 관객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않고 무대를 기웃거리는 이들이 적지않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 영역에서 이제 더 이상 근천떨지말고 역량있는 후배들을 키워내는 진정한 원로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게바로 이창호가 지향하는 두터운 바둑이다. 지역도 살고 자신도 사는 길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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