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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적 판단’ 이라는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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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연 원광대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정무적 판단’이라는 말은 주로 선거 캠페인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선거과정에서 전략을 짜는 정치기획자 혹은 정치컨설턴트들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 이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이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정치와 선거에 여론조사 기법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그 결과를 해석하는 정치기획자들이 하나의 직업군으로 등장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정무적 판단의 핵심 근거는 여론조사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기획자들이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고유의 ‘감’과 그들만의 은밀한 정보가 결합된다. 

실제로 이 정무적 판단은 신박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무적 판단은 대개의 경우 유불리를 계산하는 것이 핵심인지라 옳고 그름을 따지지는 않는다. 다행히 유불리와 옳고 그름이 같은 맥락에 있다면 판단은 무척 쉬워지지만, 그 두 가지가 대립하게 되면 지도자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당연히 정무적 판단이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개혁을 늦추거나 강도를 대폭 낮춰야 한다는 민주당 일각의 주장은 검찰개혁보다 검찰수사에 여론의 지지가 더 높다는 조사결과가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최근 추미애 전 장관은 검찰개혁 과정에서 장관직을 물러나야만 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당의 정무적 판단이 대통령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당시 당은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추미애 전 장관의 경질을 건의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 당시의 정무적 판단은 옳았을까. 옳고 그름은 그만두고 정말 이익이 되기는 했던 것일까. 

대개의 경우 정무적 판단은 늘 ‘최종적인 판단’의 근거가 된다. 그 어떤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엄청난 파워를 갖는다. 단번에 다른 토론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며 결정을 주저하는 지도자를 강하게 압박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선거용어가 정치권은 물론 행정과 언론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지방정치에서도 빈번하게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정무적 판단이 마치 엄청난 정보를 바탕으로 내리는 고도의 결정인 것처럼 사용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정무적 판단’이라는 말이 언제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가 하는 점이다. 정무적 판단이라는 말은 대개의 경우 뭔가 합리적이지 않은 결정을 내릴 때 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많은 경우 누군가가 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나타난다. 

물론 정치영역에서 정무적 판단은 꼭 필요하다. 정치는 ‘늘 해온 그대로’가 아니라 뭔가 다른 시도를 할 때 가치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무적 판단은 최대한 억제되고 반드시 필요한 순간에 쓰여야 한다. 정무적 판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칙적 판단’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군부독재에 반대하며 길거리로 나섰을 때, 노무현이 3당 합당에 반대하며 손을 번쩍 들어 외쳤을 때 그들은 정무적 판단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건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과 시대정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다. 그리고 역사는 그들의 원칙적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정치현장과 지방정치의 곳곳에서까지 횡행하는 어설픈 정치기획자들의 ‘정무적 판단’은 극도로 제어되어야 한다. 정무적 판단이 전가의 보도처럼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 순간 정치는 참모정치, 측근정치로 흐르고 그것은 반드시 부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도연 원광대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원도연 교수는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북연구원장∙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지역사회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익산문화도시 센터장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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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연 #전북칼럼 #정무적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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