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이 관광 명소가 된 것은 꽤 오래다.
그 한옥마을에는 그 마을의 심장 격인 향교가 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향교길 68번지 주소에 ‘향교길 68갤러리’가 있다.
그곳에는 누구보다도 갤러리 경영에 진지하면서도, 어느 누구의 작은 이야기에도 경청할 줄 알며, 항상 미소를 잊지 않는 68갤러리 관장 조미진(한국자수 명장)이 있다.
그곳에서 오는 24일까지 유기준의 ‘묘금도 부귀도’라는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번 전시는 직장인들을 위하여 오후 8시에 전시장을 닫는다고 한다.
아주 먼 옛날 쫓겨나서 유배지로 갔던 부귀중학교에 부임한 내 일성이 부(富)자가 얼마나 귀(貴)하면 이름이 부귀냐고 억 소리를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부귀의 뜻이 그렇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다. 부귀란 재산이 많으면서도 지위가 높아진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기복의 첫 번째 명제이다.
사람들은 부귀를 원하며 덕담처럼 그림을 선물하는데 그 그림에 많이 등장하는 것이 부귀의 목단과 영화의 해바라기 그림이다.
첫 번째 전시장에 들어서니 목단꽃들이 각각 저마다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중에는 어린 날에 장터에서 보았던 혁필화에 집어넣은 목단꽃도 보였다. 보이는 것이 혁필화라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민화 형태인 혁필화의 양식은 맞는데 뭔가 생소하다.
기억 속의 혁필화는 달필의 한 문자에 갖가지 그림을 첨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탕을 이루는 글자가 한글이었고, 그 획 안에 목단을 어떻게든 몰아넣었다.
이 작은 변화가 나로 하여금 낯설게 했고, 이런 조그만 발견이 창작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바탕이 되는 한글 꼴도 전혀 달필이 아니라 어느 시인의 원고지에서나 봄 직하게 서툴지만 진지한 글씨였다.
그러고도 아이가 색칠 공부를 할 때 선(line) 밖으로 색칠이 삐져나가지 않게 하려는 조심성을 보인다거나, 문자도에서도 글 꼴 안에 있는 꽃은 많이 설명하고 꼴을 벗어난 배경에는 설명이 없는 형태만 표시하는 것으로 군주 제적 종속 원리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보아 가급적 사회와 순응하려는 작가의 심성이 보인다.
2관 격인 다음 공간에서는 다소 옛날 작업을 선보이고 있어 "벌써 회고전여?"라는 말로 주위를 환기시키며 좌중을 웃겼다.
작가들이 작품들을 전시할 때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 중의 하나이다.
같은 양식의 작품을 선보이느냐 아니면 섞어서 보일까다. 듣자니 조 관장이 옛날 그림이 너무 좋아 일부러 끄집어 왔다는데, 이런 것으로 고민하는 작가들이 너무 많다.
작가들이 나에게 의견을 물을 때면 나는 언제나 모두 보여줘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이 작가의 어제와 오늘도 구분하지 못한다면, 또는 작가의 다양성을 외면한다면 감상할 자격을 운운해봐야 할 것이다.
그쪽 방에는 오늘의 자유스러움을 위해 기초체력을 단련하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인물화의 표정들이 압권이어서 그가 다닌 대학의 교수 중 하나가 인물화를 중히 여기고 인물화에 일가견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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