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치에서 지역주의는 가장 고질적이면서 동시에 구조적인 문제다. 그 어느 때보다 지역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지만 이는 정치권에서 그다지 전면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문제의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너무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지역주의는 영호남간의 지역갈등, 수도권과의 불균형 등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지역 내에서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
이른바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지역구’ 문제가 늘 최우선이다. 이들은 지역이 아니라 지역구를 위해 헌신하고 그 성과는 길거리에 붙은 ‘국가예산 확보’ 플래카드로 상징된다. 지역주의 문제는 이제 영호남의 정치적 편파성 문제를 넘어 잘게잘게 쪼개져 소지역주의로 퇴행하고 있다. 심지어 지역구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웬만한 타협도 마다하지 않는데 그런 식의 돌파는 오히려 칭찬거리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정치가 지금의 선거제도에서는 그 누구라도 어쩔 수 없는 조건이라는 데 있다. 지역주의 정치가 비판받는 것은 유권자들의 투표가 정당과 후보의 공약과 정책이 아니라 소속 정당에 따라 맹목적이고 관성적으로 투표가 이루어진다는 점 때문이다. 후보들은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높이기보다 공천을 돌파하기 위해 조직과 성과를 관리하는 지역구 정치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인식하다시피 지역은 지금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지역 전체가 활력을 잃어가는데, 해법은 여전히 중앙정부의 ‘강력하고도 특별한 지원’ 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은 지난 이십여년간의 결과가 증명하고 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현재의 선거제도가 ‘인구비례’와 ‘다수대표제’에 기반한다는 데 있다. 인구비례를 유지하는 한 지역의 대표성은 점점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전북의 국회의원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아마도 차차기 총선에서는 이 숫자도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역에는 인구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가 갖고 있는 국토와 자원은 인구가 작다고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구과소 지역의 국토와 자원을 잘 관리하는 것도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또 다수대표제는 오로지 다득표자 한 명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이는 현장에서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의미있는 득표가 나와도 그 표는 모두 사표가 되는 불균형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20여년간 매 선거마다 득표율을 보면 지역주의는 영호남 모두에서 매우 의미있게 완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 의미있는 득표가 대표성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제도가 제안되었지만 그 중에 가장 의미있는 것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다. 지역을 인구수가 아니라 국토와 자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권역별로 지역을 대표하는 비례의원을 배당하는 방식이다. 각 권역별 정당득표율에 따라 권역비례의석을 배분하므로 지역구도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제도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현행의 비례대표 숫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지역대표성을 강화한 상원을 두어 지역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개헌도 고민할 시점이다. 비례대표제를 두고 병립형이나 연동형이냐로 여야 모두 계산이 치열하다. 그러나 지금은 고차원의 정치적 방정식이 아니라 지금 한국사회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단순하고 명확한 산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원도연 (원광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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