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올해로 13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반란과 역적으로 낙인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계기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1994) 무렵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의 민주화 흐름에 힘입어, 학계와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하는 전국적인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은 언론의 적극적인 특집 보도와 관련 콘텐츠 방영을 통해 대중적 관심을 끌게 되었고, 그 결실은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특별법에 의해 정부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를 설치하였고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그 유족 신청을 받아 3천여명의 참여자와 그 유족을 등록하였다. 이후 기념재단이 유족등록 업무를 위탁받아 2023년까지 등록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3815명이며 유족은 1만3176명에 이른다. 그러나 당시 참여자들 가운데에는 후손도 없이 순국하였거나, 설령 살아남았다고 해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참여 사실을 자기 자손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숫자는 알 수가 없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던 이들은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면서 이름조차도 묻혀버린 무명 농민군들이다. 이들의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어떤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다.
특별법에 의한 기념재단의 출범(2010)과 국가기념일이 제정(2019)되고 농민군의 전승지인 황토현에 기념공원을 개원함(2022)으로써 한국사회에서 동학농민혁명은 이제 그 명예를 되찾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에서는 지역감정이나 진영논리에 편승하여 동학농민혁명을 전라도 사건으로 폄훼하고 그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하는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작년에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85건이 유네스코 셰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된 일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준은 세계사적 중요성을 담보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중요성이나 정신적 운동이어야 한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동학농민혁명의 세계사적 의의를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으로 세계사적 명예 회복이라 할 만한 일이다. 갑오년 농민들이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 정부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집강소를 통한 민주주의적 지향, 국가공동체의 수호를 위해 일본의 침략에 맞섰던 농민군의 기치는 인류가 모두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로 평가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는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면, 갑오년 농민들이 목숨을 걸고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사람이 하늘처럼 존중받는 사회, 증오와 불신을 부추기는 정치가 아니라 상생과 공존이 우선하는 사회, 경제적으로는 빈부의 격차를 완화하고 대립과 갈등보다는 상생과 조화를 이루어 내는 공동체를 이루어 내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이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를 바꾸어 놓았듯이, 한반도에 대립과 증오의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바뀌어져서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명분으로 자행되고 있는 인명 살상으로부터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과 전 지구적 과제가 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행동이 한반도로부터 동북아는 물론 전 지구적으로 확산시키는 일이 130주년을 맞는 갑오년 농민군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신순철 이사장은 원광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30여년 재직했으며 대통령소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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