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귀양 보내 울타리를 친 집에 가두는 형벌이 위리안치(圍籬安置)다. 죄인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둘러쳤다. 예산을 세워 주고도 움쭉달쭉 못하게 집행 보류의 형벌을 내린 새만금사업이 꼭 위리안치된 꼴이다.
지난해 8월 세계잼버리대회 부실운영 이후 무더기 삭감(삭감비율 78%)된 새만금 예산은 500만 전북인의 저항과 정치권의 노력 끝에 기사회생했다. 3017억원이 복원된 새만금 SOC예산은 총 4513억원이다. 당초 부처 예산(6626억원) 대비 68% 비율이다. 생니를 빼놓고 틀니로 갈아 끼운 격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이 일부 조정된 예산마저도 집행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새만금사업의 ‘적정성 및 기본계획 재검토’라는 형벌 때문이다. 관련 용역이 마무리되는 올해 상반기까지는 이 예산이 집행되지 못한다. 예산은 복원했으되 형벌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위리안치된 새만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8월29일 새만금 기본계획 재검토 방침을 밝히고 ‘새만금 빅픽처’를 짜달라고 국토교통부에 요구했다. 공항 항만 철도 등 기존에 계획된 SOC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은 무더기로 칼질 당한 새만금 예산이 발표된 날이다. 전북 경제에 활력소가 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기업유치와 기업활동을 용이하게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쥐어 박고 달래는 격이다.
하지만 이런 취지는 자기부정이자 자기모순이다. 새만금 SOC는 정부가 틀을 짰고 기본설계와 실시설계 등 절차를 밟아 추진된 사업들이다. 그런데도 적정성을 재검토하겠다는 건 납득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상반기 수석비서관회의 때 새만금 기업투자가 정부 출범 이후 6조6000억원에 이른다고 자랑했다. 이 자료는 한덕수 총리가 전달해 윤 대통령이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새만금 기업투자 규모는 10조원에 이른다.
기업유치와 기업활동을 용이하게 할려면 SOC를 가장 먼저 구축해야 하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거꾸로 SOC투자를 멈추게 하고 있으니 자기모순이 아니고 뭔가.
잼버리 부실운영과 새만금을 연결 짓는 것도 잘못이지만 이미 세워놓은 예산을 수시배정이라는 형벌을 씌워 집행 보류하고 있는 것 역시 동의할 수 없다. SOC 투자를 멈추게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속도를 내야 한다. 새만금에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한 것도 윤 대통령이다.
정부는 또 새로운 기본계획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새만금산단 입주기업 및 민간투자 유치에 필요한 사업 만큼은 차질 없이 지원하겠다고 밝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위리안치된 새만금 예산은 방면(放免)해야 맞다. 적정성 및 기본계획 재검토는 진행하되 여야합의로 복원된 예산은 집행하는 게 순리다. 이 예산은 계약절차를 감안하면 늦어도 3월까지는‘풀어줘야’올해 안에 소화할 수 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만금 계획이 변경되는 건 치명적 걸림돌이다. 정쟁화되고 상처투성이인 새만금은 신뢰회복과 경쟁력 확보가 과제다. 정부의 투자계획은 글로벌 기업들도 지켜보고 있다. 신뢰는 기업투자의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10조원 투자협약 역시 정부의 신뢰가 담보될 때 가능하다 할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새만금이 국가사업이라는 사실이다. 전북자치도의 사업이 아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의 관심과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경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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