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2022년 3월 9일. 서울대병원에서 79세를 일기로 한사람이 별세했다. 개인에게는 삶을 마감하는 순간이었으나 어느 누구도 고인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의 묘비에는 “한으로,불꽃으로 살았다”는 문구가 새겨졌다. 으레 그렇듯 그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져갔다. 한세대는 가고 또 한세대는 오는게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세상과 하직한지 약 2년 뒤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은 김제 출신 언론인 오홍근을 다시 불러냈다. 황 수석은 지난 14일 기자들과 오찬 도중 "MBC는 잘 들어"라면서 정보사 테러사건을 언급했다. 1988년 8월 어느날 아침,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이었던 오홍근 기자가 자신의 집 앞에서 괴한들로부터 습격을 당한 일을 말한다. 회칼을 사용한 공격에 오 기자는 허벅지가 깊이 4㎝, 길이 30㎝ 이상 찢길 정도로 크게 다쳤다. 괴한들은 군 정보사령부 소속 현역 군인들로, 군을 비판하는 오 기자의 칼럼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에 불만을 품은 이들의 준동이었다. 황 수석의 발언이 보도되자 여론이 들끓었고, 집권여당내에서도 초대형 총선 악재라는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자진사퇴 형식으로 봉합했다.
오홍근씨는 1942년 김제시에서 태어나 전주고, 고려대를 졸업했다. 1968년 TBC 보도국 기자로 입사했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때 TBC가 강제 통폐합되자 중앙일보로 이적해 사회부장, 부국장, 판매본부장 등을 거쳤다. 발행 부수를 기준으로 '조동중'으로 불리던 상황에서 지금처럼 '조중동'으로 정착된 것이 오홍근의 중앙일보 판매 담당자 시절 업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1999년 5월 국민의 정부 초대 국정홍보처장으로 임명되며 공직에 입문한 그는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 겸 대변인,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등도 지냈다. 필자가 오홍근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무렵이었다. 직선적이면서도 솔직담백한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회식자리 등에서 자신의 언론인 시절 에피소드 등을 자주 언급하곤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전주 출마를 준비했으나, 우여곡절끝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김제시·완주군 지역구에 출마했다. 정치운이 없었는지 생각지도 않았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터졌고, 그는 열린우리당 최규성, 무소속 이건식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했다. 절치부심하다 2009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이무영 의원의 선거법 위반으로 공석이 된 전주시 완산구 갑에 무소속 출마했으나, 막판에 역시 무소속으로 나온 신건 후보를 지지하면서 사퇴했다. 묘하게도 필화사건을 겪었던 오홍근을 소환한 황상무는 설화사건으로 낙마했다. 중국 오대십국 시대 후당에서 재상을 지낸 풍도는 처세술을 묻자 설시(舌詩)에서 이렇게 답했다.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처해 있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 정말 어려운 게 바로 설(舌)인 모양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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