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다. 아무리 푸짐한 요리를 먹더라도 밥 한 공기가 빠지면 허전함을 느끼는 게 우리 민족이다. 그런데 이제 옛말이 됐다. 짧은 기간 식습관이 참 많이 변했다. 지난해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56.4kg)은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62년 이래 가장 적었다. 30년 전인 1993년(110.2kg)에 비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쌀의 위기는 농업‧농민의 위기, 그리고 지역과 국가의 위기로 이어진다. 농협이 최근 ‘전국민 아침밥 먹기’ 릴레이 캠페인에 나섰다.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쌀값 폭락으로 농가의 시름이 깊어진 가운데 그동안 별 성과도 없이 되풀이 한 ‘쌀 소비 촉진 운동’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와 전북농협도 지난달 31일 ‘아침밥 먹기 운동’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캠페인에 동참했다.
사실 아침밥 먹기 캠페인은 학교에서 시작됐다. 그 목적도 쌀 소비 촉진이 아니라 아동‧청소년의 식습관 개선이었다. 2000년대 초 등교 후 1교시 정규수업 전의 시간을 말하는 ‘0교시’가 확산했고, 이로 인해 아침식사를 거르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아침밥 먹기 캠페인’이 벌어졌다. 당시 인기 TV 예능프로그램의 소재가 될 정도로 사회적 반향은 컸다. 그리고 약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똑같은 캠페인이다. 이번에는 쌀 소비 촉진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간 쌀의 위기가 더 심각해져서다. 전남교육청과 전남농협이 최근 ‘쌀 소비 촉진을 위한 아침밥 먹기 캠페인’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전북을 비롯한 각 지역 교육청에서도 캠페인에 속속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 닥친 심각한 위기다. 풍년 농사를 위해 구슬땀을 흘려야 하는 영농철, 속절없이 떨어지는 쌀값에 농촌 민심이 예사롭지 않다. 다시 대규모 농민집회가 예고됐다. 쌀은 우리 민족에게 식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쌀농사가 흔들리면 농업인의 삶은 물론 대한민국 식량주권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농업·농촌의 위기가 임계점에 달했다. 이대로라면 인구절벽 시대, 지방소멸의 비극은 농촌에서 시작될 게 뻔하다.
쌀 소비량이 뚝 떨어졌지만 우리 민족의 주식은 여전히 쌀이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선수촌 밖에서 매일 쌀밥과 김치가 포함된 맞춤형 한식 도시락을 선수단에 제공했다. 쌀과 김치 등의 식재료를 국내에서 공수하면서까지 선수들이 ‘밥심’을 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올림픽 선수촌 부실 식단 논란 속에 애초 ‘밥 걱정’이 없었던 우리나라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밥심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오는 18일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정한 ‘쌀의 날’이다. 올해로 꼭 열번 째를 맞는 이 기념일을 앞두고 40도에 육박하는 극한의 폭염이 계속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우리 몸도 농촌도 활력을 되찾아야 하는 때다. 밥을 먹어야 생기는 힘, 밥심이 필요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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