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무대에 섰다. 짙은 무대화장을 하고 멋진 초립을 쓴 남자 춤꾼. 눈빛은 빛났으나 살짝 들어 올린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올해 여든아홉 살, 최선 선생이다.
지난달 전주한옥마을의 전주대사습청에서 열린 전주시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발표 무대에 선생이 섰다. 허리를 다쳐 짧게 무대에 섰던 지난해와 달리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호남살풀이 동초수건춤을 시작부터 끝까지 마무리한 선생의 춤은 감동적이었다.
그의 춤사위는 이제 절정에 이르러서도 격정적이거나 동적이지 않다. 몸에 스며들어 그 자체로 춤이 된 몸짓 손짓 발짓이 마음 가는 대로 이어질 뿐이다. 객석에선 누군가가 ‘서 있기만 해도 춤’이라며 무대와 객석을 압도하는 그의 몸짓에 환호했다.
선생은 1935년생이다. 그의 어머니는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던 그를 최승희의 제자였던 김미화 무용연구소에 데려갔다. 여덟 살 무렵이었다. 그러나 스승은 6.25가 발발하자 전주를 떠났다. 배울 곳이 없어지자 전주국악원에서 우리 춤을 가르치던 기생을 찾아가 수건춤, 산조춤 법고춤, 승무를 배웠다. 남자가 춤을 춘다고 손가락질했던 시절이었지만 춤을 자신의 길로 삼았다. 어느 사이 춤꾼 최선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다시 정인방 선생을 스승으로 모셔 학춤 무당춤 등 정통 춤사위를 물려받았다.
그 뒤 선생은 지역에서 이어져 온 춤의 뿌리를 찾는 일에 매달렸다. 오늘에 이어진 <호남살풀이춤>이 그 결실이다. 살풀이장단에 정중동의 아름다움을 실어내는 호남살풀이춤은 맺고 풀고 어르는 묘미와 고도의 절제미, 섬세한 발 디딤이 조화를 이룬다. 선생은 이 춤을 바탕으로 전라도 지역 권번과 기방에서 동기(어린 기녀)나 초립동(초립을 쓴 어린 남자)이 추었던 수건춤을 다시 정리한 <동초수건춤>을 내놓았다. 동초수건춤은 장구와 징, 구음으로 이루어진 장단에 맞춰 손에 작은 부채나 하얀 손수건을 들고 춤을 춘다.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추는 춤사위가 섬세하고 고운 이 춤은 지난 1996년 도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가장 튼실하게(?)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춤이기도 하다. 딸 지원씨가 뒤를 잇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 춤을 더 널리 알리려는 선생의 열정으로 대중들과 만나는 기회를 넓혀온 결과다. 선생은 어느 무대건 자신이 서는 무대에 심혈을 쏟는다. 해마다 열리는 이 합동무대에도 예외는 없다. 꼼꼼한 리허설로 오히려 스텝들을 긴장시키고, 사전에 무대 점검을 위해 공연장을 찾는 이도 선생이 유일하다.
문득 90세에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춤꾼이 또 있었든가 궁금해진다. 선생이 한평생 지켜온 치열함이 그 힘 일터다. 들여다보니 ‘무대에 대한 예의’가 거기 있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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