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정은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수백 km의 물길을 만들어 바다로 흘러드는 큰 하천도 산골 이름 없는 실개천에서부터 몸집을 불린다. 강 하구에서부터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서 어김없이 작은 샘을 만날 수 있다. 발원지다.
전북지역에서 발원하는 강은 대한민국 4대강에 속하는 금강을 비롯해 남해로 흐르는 섬진강, 그리고 서해로 향하는 만경강과 동진강 등 4개다. 가장 큰 물줄기는 역시 금강이다. 장수군 장수읍 뜬봉샘에서 시작된다. 충청권을 돌아 나와 전북 군산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이 강의 발원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환경부가 최근 ‘금강 첫물 뜬봉샘과 수분마을’을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신규 지정하면서다. 장수군은 오래전부터 탐방로 개설 등의 정비사업을 통해 이곳을 생태관광 명소로 가꿔왔다. 섬진강 발원지인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도 이름난 생태관광지다. 전북특별자치도가 주변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고, 휴양시설(데미샘자연휴양림)까지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와 달리 만경강과 동진강 발원지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금강·섬진강에 비해 강 길이와 유역면적 등 하천 규모가 보잘것없고,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전 구간이 전북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큰 재해로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 그러다보니 국가기관과 학계에서도 관심이 적었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각종 지리서에 발원지에 대한 기록이 각각 달랐을 정도다. 20세기 초 일제가 미곡 수탈을 위한 증산계획의 일환으로 상류에 유역변경식 댐 등 대규모 수리시설을 건립하면서 물길이 바뀐 것도 발원지를 규정하는데 혼란을 줬을 것이다.
만경강과 동진강은 한반도 농경문화의 발상지이자 중심인 호남평야를 만들어낸 생명의 강이다. 고대에서부터 근·현대 수리시설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농경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하천이다. 21세기 들어서는 새만금 유역 수질 문제와 맞물려 또 다른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러면서 물길 탐사가 이어졌고,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발원지도 하나로 정립됐다. 그렇게 정립된 만경강의 발원지는 완주군 동상면 밤티마을 ‘밤샘’, 동진강의 발원지는 정읍시 산외면 여우치마을 ‘빈시암’이다. ‘시암’은 샘·우물의 전라도 사투리다. 지역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발원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세웠고,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민선 8기 공약사업으로 ‘만경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완주군이 적극적이다. 완주군은 밤샘 주변 부지를 매입해 생태숲, 생태탐방로 조성 등의 정비사업을 펼치고 있다. 샘고을 정읍시도 동진강 발원지 빈시암을 관리대상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그뿐이다. 이렇다 할 사업이 없다. ‘정읍(井邑)’이라는 지명의 기원이 된 우물을 보존하고, 그 역사적 가치를 알리자는 취지조차 살리지 못하고 있다. 아쉽다. 이 유서 깊은 강의 역할과 의미, 그리고 수자원·수생태계 보전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려는 지자체의 노력은 발원지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