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 사(四)에 대한 편견
4월(四月) 끝자락이다. 사월은 ‘넉사(四)’와 ‘달월(月)’이 합성된 한자어로, 음력으로 일 년 중 네 번째 달이라는 뜻이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다. 이는 ‘T. S. 엘리엇(1888~1965)’의 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이하생략-『황무지』(1922) 서두에 기인한다. 이로 인해 4월의 이미지는 새싹 또는 초록이나 따뜻함이라는 봄의 속성보다 '잔인한'이라는 형용사가 먼저 떠오른다. 계절의 순환으로 봄이 되어 식물들이 다시 움트고 생명체들이 살아나야 하는 4월은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계절이라서 더욱 가슴 시린 달이다. 언제부턴가 소생의 아름다움과 삶의 시작인 긴장감을 잔인하다는 표현으로써의 ‘사(四)’가 ‘사(死)’라는 의미로 변형되어 삶에 깊숙이 각인되었다. 넉사(四)자인 ‘사(四)’는 에울위(ㅁ)+나눌 팔(八)로 네 손가락 모양인 ‘넷’의 뜻이다. 넷이라는 숫자는 문화 속에서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시간과 공간의 구성단위를 지시하는 서수이다. 숫자 ‘사(四)’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다. 우주는 4방위(동·서·남·북)로 분리되고, 삶은 생로병사(生老病死) 네 단계로 진행되며, 1년은 4계절(봄·여름·가을·겨울)로 순환한다. 사해(四海)는 온 세상을 지칭하며 사민(四民)은 사농공상(士·農·工·商)에 종사하는 백성을 뜻한다. 천지자연의 네 가지 덕인 사덕(四德)은 원(元)·형(亨)·이(利)·정(貞)이다. 관리가 지켜야 할 네 가지 ‘사자(四字)’는 근(謹)·근(勤)·화(和)·완(緩)이다. 공자가 꼽은 위정자가 버려야 할 사악(四惡)은 학살·난폭·적(賊·)유사(有司)다. 조선왕조실록 4질(質)을 4곳(태백산·오대산·정족산·적상산)에 보관했다. 600년 전 수도를 정할 때 북악산·남산·인왕산·낙산을 서울을 지키는 4대 명산으로 보았으며, 4대문(1396년/태조5년 도성을 축조할 때 남쪽에 숭례문(崇禮門, 지금의 남대문)을 북쪽에 숙청문(肅淸門), 동쪽에 흥인지문(興仁之門), 지금의 동대문), 서쪽에 돈의문(敦義門)을 두었다. ‘사(四)’자로 시작하는 단어에는 사각형(四角形), 사계(四季), 사고무친(四顧無親), 사면체(四面體),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四方), 사방신(四方神), 사사오입(四捨五入), 사서삼경(四書三經), 사인사색(四人四色), 사주팔자(四柱八字), 사천왕(四天王), 사촌(四寸), 사흉(四凶) 등이 있다. 이처럼 숫자 ‘사(四)’는 자연의 섭리이고 인간 생활 자체이며, 공생하는 소중한 관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四)’의 잘못된 관념은 건물의 층수가 올라가다가 4층을 F로 바꿔놓았다. 아파트는 4층과 4호가 없다. 버스나 기차 또는 비행기의 4번째 좌석은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등 생활 속에 큰 불편을 불러왔다. 이것은 사람들이 숫자 ‘4四’를 싫어하는 사회적 관습이 만든 현상이다. 사람들은 숫자 ‘사(四)’를 보면 ‘죽을 사(死)’를 연상한다. 이러한 정서가 세월이 흐르면서 ‘4(四)’를 싫어하고, 건물에 있는 ‘사(四)’자에 대하여 불안한 마음을 갖게 하였다. 그런 연유로 ‘4(四)’가 들어가는 4층과 4호 방을 피한다. 엘리베이터에서도 4층 표시를 하지 않는다. 병원에는 아예 4층을 두지 않거나 4자가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 이런 것들은 사회적으로 한 두 사람에게 있는 일이 아니며, 사회 전반적 현상이다. 시간적으로 일시적 해프닝이 아니라 해묵은 것이 되었다. 이것은 잘못된 사회적 정서가 낳은 ‘사(四)자 미신’에 불과한 것이다. 동음의 한문 ‘사(社,事,思,査,史,使,四,士,師,死,絲,射,私,司,寫,飼,寺,謝,舍 등)’자가 수많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사(死)’와 연결 짓는 것은 실소를 금치 못 할 일이다. 한자문화권인 중국인들 또한 우리처럼 ‘사(四)’를 불길한 숫자로 여겨 노골적으로 기피하고 터부시한다. ‘사(四)’는 ‘죽음’을 의미하는 ‘사(死)’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싫어한다고 한다. 중국의 광주와 심천에서 새로 출고되는 자동차 번호판에서 끝자리 수가 ‘4’인 차를 찾아볼 수 없다. 번호판 끝자리 수에서 ‘4’자를 아예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광동성, 복건성 등의 지역에서는 병원에 4호 병실을 두지 않고, 버스에도 4번이 없으며, 빌딩에도 4층이 없다. 그리고 14층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이유는 ‘14(十四)’는 ‘실제로 죽다’는 의미를 지닌 ‘실사(实死)'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국가 보훈처에서 발표한 ‘생활 속 일제 잔재 몰아내기’에 발표된 글에 의하면 ‘사(四)’가 ‘사(死)’로 연결하여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 이후 일제시대부터라고 한다. 이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교활하고 간악한 음모와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四)’가 ‘사(死)’로 잘못 인식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한 일본인들이 자신들에게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없애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우리 민족이 지닌 문화 중에서 자신들 것보다 월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모조리 말살시켰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세상만사는 생각에 따라, 보기에 따라 달라진다. 검정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은 온통 새까맣다. ‘사(四)’자 들어간 것 중에는 우리의 자랑거리들이 많다. 사군자(四君子, 매화梅花·난초蘭草·국화菊花·대나무竹), 사물(四物) (범종梵鐘·법고法鼓·목어木魚·운판雲板 4가지 사찰 의식용 도구), 사물(四物)놀이(꽹과리·장구·북·징으로 풍물놀이의 대표적 4가지 악기), 사물탕(四物湯), 당귀·백작약·숙지황·천궁 등 4가지로 구성된 약물), 문방사우(文房四候, 붓筆·종이紙·벼루硯·먹墨) 등이 있다. 토끼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아이가 ‘행운’을 잡았다며 기뻐하듯이 ‘사(四)’가 ‘사(死)’가 아니라 감사한 마음을 담은 ‘사(謝)’로 사랑받기를 기대한다. 정성수 시인. 향촌문학회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