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새로운 기록세대의 탄생
기록은 우리 인류가 지금 문명을 이루어온 긴 여정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핵심 고리이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신문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의 결과물로 태어난 매체야말로 시대를 견인하고 인류를 인류답게 자리매김하도록 쉴새없이 영감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기록의 주체는 누구였을까? 기록의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왔다. 왕조시대는 사관이 임금의 곁에서 그 기록의 일을 수행했다. 조선왕조실록이야말로 그 기록의 정수이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그 실록을 우리 지역 선조들이 지키고 오늘에 이어지도록 애를 쓰기도 했다. 기록은 사람을 넘어 시대를 담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그 기록자의 역할을 얻지 못했다. 투철함으로 무장한 일단의 사람들에게 부여된 책무였다. 무시무시한 책임이 뒤따르는 일이었다. 신문, 방송, 출판 같은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매체를 살펴보면, 여전히 기록자로서 책무는 흔들림 없다. 매체의 위상이 변화하고 있다, 하는 시대상에 대한 고찰은 조금 뒤로 하더라도 우리 곁에 새로운 기록세대가 출현하고 있는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 새로운 기록세대는 바로, 우리 다음세대인 어린이 청소년들이다. △흔들리며 스스로 흔들리지 않으려는 세대의 기록 새로운 기록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몇 가지 사례를 살피려고 한다. 먼저 고창지역 여덟 명의 청소년들이 쓴 책, 『흔들리며 흔들리지 않고』이다. 2016년 9월 12일 일어난 경주지진(규모 5.8)으로 온 나라가 지진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 사건으로 온 국민은 대한민국이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지진을 비롯한 재난에 대비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흔들리며 흔들리지 않고』는 미래를 만들어갈 청소년들이 지진과 재난에 대처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창 흔들리는 열일곱, 열여덟 살의 청소년들이 흔들리며 흔들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자기보고서인 셈이다. 이 책은 2017년 200종을 가려 뽑는 세종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청소년들이 직접 쓴 책이 세종도서에 선정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어서 화제가 되었다.
『아직은, 혹은 이미』는 전라북도 청소년들이 직접 쓴 청소년생활백과이다. 이 책은 우리들 청소년의 삶이라는 주제 아래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고 있다. 청소년들의 고민과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청소년고민상담소 잘 지내고 있나요?, 아직은 혼란스러운 와중인지, 아니면 스스로 안에서 뭔가 갈피를 잡아가고 있는지 살피는 청소년문화론 아직은 혹은 이미, 마지막 대한민국 청소년 생활의 꿀팁으로 가득한 대한민국 청소년 잡학사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 세대를 읽고 기록하는 자서전 써드리기부터 어린이 시집까지 지난 고창한국지역도서전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어린이, 청소년 출판전시회와 어린이, 청소년 작가와의 만남이다. 고창지역 어린이, 청소년들이 출판한 책 『요리 통, 조리 통, 통통셰프와』, 『톰 소여의 아지트』, 『이미지로 엮는 사람책』 등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출판과정을 이야기하며 독자와 만났다. 군산 푸른솔초 친구들은 쓴 시를 모은 어린이시집 『호박꽃오리』 꼬마시인들은 독자들 앞에서 직접 쓴 시를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상기된 얼굴로 자작시를 읽어 내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군산 회현중 친구들은 지난 3년간 회현지역 어르신들의 자서전 써드리기를 진행하며 출간한 『찬란하고 쓸쓸한』(1,2,3)으로 독자들을 만났다.
자신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지역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서전을 대신 써드리는 작업은 아이들에게 지난 세대를 이해하게 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어르신들이 살아온 날들이 현재와 미래의 바탕이 되고, 영웅과 위인들뿐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가 오늘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저자소개글을 통해 한 친구는 어르신의 일생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인생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도 늙어서 내 인생을 되돌아보는 나만의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경기도 평택시립장당도서관에서도 지난 4년간 꾸준히 마을인물백과사전을 만들어 왔다. 『오성을 기억하다, 오성을 기록하다』(1,2,3,4) 역시 청소년들이 대신 써드린 어르신 자서전이다. △다양한 스펙트럼 어린이청소년 저자의 탄생 버들눈도서관이 있는, 책마을해리는 매년 어린이, 청소년들과 출판작업을 꾸준히 진행중이다. 『파도는 내 발이 좋은가 봐』, 『강아지풀은 다 커도 강아지풀』 등 다섯 권의 어린이시집과 『넌 너, 난 나』,『아무 것도 안 할래』등의 만화책, 『열두 살 고민해결서』, 『고양이별』 등 4권의 그림책, 『손그림생태도감』, 청소년서평집 『내가 믿는 사람은, 나』 등 다양한 책을 출간하고 있다. 이외에도 어린이, 청소년 친구들은 <마을신문> 기자로도 참여하며 글과 이미지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또한 출판캠프를 통해 어린이, 청소년들이 저자가 되어보는 체험과 실험을 계속 진행 중이다.
올해 초 바닷가 작은 학교 동호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은 졸업을 앞두고 초등학교 6년의 이야기를 글로 써 졸업앨범을 직접 만들었다. 전교생이 20여 명에 졸업생 네 명, 시골 작은 학교에서는 졸업앨범을 만들기 쉽지 않다. 턱없이 높은 제작비 때문이다. 책마을해리에서 기획하고 친구들과 선생님, 후배들이 합심하여 만든 동호초등학교 74회 졸업앨범 『자, 이제 날아올라』는 뜻 깊은 선물이 되었다. △새로운 감성으로 함께 읽기 함께 쓰기하는 우리의 다음 세대에 거는 희망
어린이, 청소년들은 출판을 통해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심을 혼자서 이룩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의 어린이 청소년 출판은, 혼자 한권의 책을 완성하는 방식이 아니다. 함께 쓰기 통해 또래 여러 친구들이 생각을 모아, 품을 모아 한권의 책을 완성하는 것이다, 여럿이 함께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길 위에서 친구들은 나도 중심, 너도 중심, 우리 모두가 함께 사회를 이뤄가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주인공이라는 자존감 형성과 더불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 기대어 함께 사는 존대, 하나의 공동체임을 자각하게 된다.
출판이 어렵고, 출판시장이 점점 위축되고 있지만, 다양한 작가군의 등장이 출판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새로운 감성으로 무장한, 함께읽기, 함께쓰기를 통해 공동체의식까지 버무릴 줄 아는 우리의 다음세대, 어린이 청소년 작가, 새로운 기록세대의 출현이 반가운 까닭이다. /이영남 버들눈도서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