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나뭇잎, 길가의 국화 향기, 선배님들의 묘소, 중풍병자의 삶을 사시는 어머님, 신문과 성서를 대하면서, 샤를 드 푸코 형제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는다.“우리는 사랑하는데 열중해야 합니다. 미칠 정도로 열중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어떻게 하면 거짓없이 사랑하는데 열중할 수 있을까, 미칠 정도로 열중해서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서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사람은 각자의 인생에서 나름대로의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사제인 나는 예수님 안에서 그 길을 찾고 본받는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모든 문화 안에서 소박하고 가난하며 평범하고 따뜻하며 사랑하는 분이 되시고자 하지 않는가.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나자렛에서, 골고타의 십자가에서, 부활에서 그리고 이 땅 한반도에서 철저하게 인간을 사랑하는 삶을 보여주시지 않는가. 하느님으로 보면 얼마나 대단한 낮추심이며 우리에게는 얼마나 커다란 은총이며 높임인가! 실직, 실업, 대결과 경쟁, 정복과 승리, 환경파괴, 무관심의 세상 속으로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시며 겸손과 비천함의 삶을 사신다는 육화의 신비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 철저한 삶의 투신이 아닌가.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모든 것이 성공에 비례하여 평가되고, 권력과 이익에 그 가치를 두고 살아갈 위험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유하고 잘못 계획하고 권력, 특권, 이익을 차지하거나 경쟁, 질투, 부정, 시기, 위선, 차별, 파괴와 같은 사회악을 만들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무시하고 파괴하려 한다. 요즈음의 대표적인 일들, 새만금 간척사업의 망국적 추진, 국가보안법의 졸속 유지, 미군범죄와 환경파괴, 정치판의 싸움 등이다. 우리는 가지지 못한 자와 주변의 나자렛에 서 있기보다는 권력을 가진 자와 중심의 에루살렘에 서 있기를 원하고, 소박한 시장보다는 탐욕의 백화점을 꿈꾸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보다는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추구하려 한다. 간디 성인의 충고를 잘 듣고 성찰하며 살자. “우리는 사회적 압력의 노예가 되어 우리가 위대하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시간과 재능, 보물의 절반을 낭비해 버린다. 우리는 남들이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에 신경을 쓰면서 사람들이 정하는 기준대로 움직인다. 이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순수하고 참되고 정직해질 것이며 우리의 참모습대로 될 수 있을 것이다.”/김봉술신부(천주교전주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