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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단체장 물갈이 시작되나

유인촌(柳仁村)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2일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언급한 것이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문화부 소속 기관·단체장들의 '물갈이' 신호탄으로 작용할 지 주목된다.유 장관은 이날 광화문 문화포럼(회장 남시욱)이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개최한 제80회 아침공론에 초청돼 강연하면서 "나름의 철학과 이념을 가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이념적 성향이 다른)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라며 사실상 공개적으로 사퇴를 촉구했다.특히 유 장관은 "일반 기업도 대표가 바뀌는 시점에는 인사를 안 한다"며 "대통령 선거 한 달 전에는 상식적으로 인사를 안 하는 데도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많은 인사가 이뤄진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지적했다.유 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참여정부 말기에 기관장이 새로 임명된 문화부 소속 기관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원장 고석만), 한국언론재단(이사장 박래부),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원장 권영후), 한국관광공사(사장 오지철), 국립발레단(단장 최태지), 국립오페라단(단장 정은숙) 등이다. 새로 임명된 기관장들의 임기는 모두 3년으로 2010년 말까지로 돼있다.이 시기에 임명된 기관장들이 모두 지난 정권의 '코드 인사'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임명과정에서 논란이 벌어져 유 장관의 발언이 이 기관장들의 거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문화예술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더구나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전날 "정부조직, 권력기관, 방송사,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등에 남아 있는 지난 정권의 추종세력들이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강경하게 발언한 터여서 유 장관의 발언은 관계자들에게 적지않은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이에 앞서 지난 5일 안정숙 영화진흥위원장이 자진 사퇴한 데 이어 지난 7일에는 차관급의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경질된 바 있다.이들 외에 지난해 9월 선임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과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등도 임명 당시부터 '코드 인사' 논란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들이어서 퇴진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문화부에는 국립중앙극장(극장장 신선희)을 비롯한 11개 소속기관과 한국방송광고공사(사장 정순균), 대한체육회(회장 김정길) 등 34개 산하 공공기관이 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03.13 23:02

'혼불'에 갇힌 최명희 문학세계 다시 햇빛 보다

그동안 최명희 삶과 문학에 대한 연구는 그의 대표작 장편소설 「혼불」에 집중돼 있었다.「혼불」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전개됐고 연구방향도 다양하지만, 단편소설이나 수필, 콩트 등 다른 작품들에 대한 연구는 미흡한 실정. 「혼불」에 가려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던 작품들이 최명희문학관 기획실장 최기우씨(36)에 의해 새롭게 발굴, 재조명됐다.최근 전북대 석사학위 논문 '최명희 문학의 원전 비평적 연구'를 발표한 최씨는 "작가에 대한 이해는 한 작품에 대한 집중적 연구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다양한 작품 연구를 통해 작가로서의 삶과 작품세계를 더 넓은 시각으로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며 "최명희의 작가로서의 삶과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혼불」 한 작품만이 아니라, 최명희가 집필한 모든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료 정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그가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대상 작품은 소설 27편과 수필 146편, 콩트 20편, 시 1편 등 총 194편(중복발표작 포함). 6종으로 발표된 「혼불」은 제외한 숫자다. 이 중 잊혀졌다가 최씨에 의해 다시 발굴된 작품은 163편이다. 전국의 헌책방을 뒤지고 인터넷 검색을 위해 100여개에 달하는 최명희 관련 키워드를 직접 만든 최씨는 "책 100권, 200권을 뒤져 작품 한 편을 발견할 때면 손 끝이 짜릿하고 작가에 대한 존경이 더해졌다"고 말했다.최명희의 첫 작품 발표시기를 앞당기는 성과도 있었다. 기존 연구논문에서는 1964년(기전여고 2년) 쓴 단편소설 '잊혀지지 않는 일'과 1965년(기전여고 3년) 쓴 수필 '우체부'를 각각 첫 작품으로 하고 있지만, 최씨는 콩트 '완산동물원'(1961년)과 단편소설 '공작새가 되어야 하는 이유'(1964년 1월), 수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고-스칼렛 오하라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글' (1964년 10월)을 각각 최명희의 장르별 첫 작품으로 규정했다.논문 발표 후 2편을 또 찾아냈다는 최실장은 "절대 완결이 없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최명희 단편소설과 수필, 콩트, 시 등 다른 작품들과 「혼불」과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작업이 작가의식을 넘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되지 못한 채 표면적 접근에 그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실패한 경우가 더 많았지만, 그 때문에 전북 출신 문인들의 70년대 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최씨. 그는 "전북에는 김창술 유진오 정렬 이정환 등 주목해야 할 작가들이 많다"며 "이 작업이 많은 문인들의 흔적을 찾는 일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2000년부터 혼불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아 기념사업을 추진해 온 최씨는 2006년 최명희문학관 개관과 함께 자리를 옮기면서 연구작업을 해왔다. 극작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 온 그는 당분간 창작 보다는 다양한 부분에서 연구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고 밝혔다. 현재 '5·18 구속부상자회 전북지회'와 1980년 5월의 흔적을 찾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전주지역 음식 장인들을 인터뷰해 구술생애사를 작성하고 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3.13 23:02

전주한지박물관 "매달 1회 시민곁으로"

종이 생산 전문업체인 한국노스케스코그㈜ 전주공장의 '전주한지박물관'이 11일 2008년 전시계획을 발표했다.한지박물관은 1997년 국내 최초 종이 전문 박물관 '종이박물관'으로 개관, '아시아 종이인형전' '북유럽 종이 작품전' '명인명장전' '조선시대 전주전' '교과서전' '한지의상전' '닥종이인형전' 등 총 22회 종이와 관련된 다양한 기획전시를 개최해 왔다. '한지에 그림그리기' 대회, '찾아가는 전시회' 개최, 인형극 공연과 주말 영화상영 등 시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행사들로, 개관 이래 약 9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지난해 7월 '전주한지박물관'으로 명칭을 바꾸고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한 박물관 측은 "올해는 월 1회 전시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한지를 이용해 작업하는 작가 및 단체들과 연계해 전시를 열고, 주말과 방학 중에는 전시와 관련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한지조형작가협회(회장 이효선) 지우회(회장 김혜미자) 예원한지조형회(회장 송미령) 한국한지그림협회(회장 안영주) 박금숙 닥종이인형(회장 박금숙) 전주패션협회(회장 조진애)의 전시가 차례로 진행된다. 연말에는 박물관 소장유물 전시와 '가족의 정'을 테마로 한 닥종이 인형전시를 열 예정.현재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지제품을 소개하는 전시실 '한지 제품실'도 운영하고 있다. 관람객들에게 한지제품의 다양성과 우수성을 소개, 한지제품 수요 창출을 위한 것. 현재 3개 업체 제품만이 전시되고 있지만 향후 전시 업체들을 늘려갈 계획이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3.12 23:02

[아무나 모르는 문화이야기] 전북예술회관·도립미술관 건립 뒷이야기

전북도립미술관은 2004년 10월 개관과 동시에 굵직한 기획전을 선보이며 대중성과 전문성을 갖춘 공공미술관으로서 지역에 뿌리내렸다.도립미술관 개관 전까지만 해도 전북을 대표하는 미술공간은 1982년 2월 문을 연 전북예술회관이었다. 전주시 경원동에 위치한 예술회관은 현재도 미술가들이 개인전을 위해 가장 선호하는 전시공간으로 그 역할을 인정받고 있다.그러나 전북 미술을 상징하는 두 공간의 건립 배경은 조금 다르다. 최근 「전북미술약사」를 통해 '전북예술회관 건립 비화'와 '전북도립미술관 건립 비화'를 발표한 향토사학자이자 서예가인 이용엽씨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단위 회관을 예술인들 힘으로 마련한 긍지와 자부심이 예술회관이라면, 도립미술관은 중앙에서 정치인의 노력으로 예산부터 먼저 확보한 뒤 계획을 세우는 기현상으로 건립됐다"고 밝혔다.예술회관 건립에 대한 요구는 전북미술대전이 바탕이 됐다. 미술대전 횟수가 거듭될수록 출품작은 늘어났지만 전시 장소가 협소해 입상작을 여기저기 나눠 전시하는 처지였다. 이에 국무총리를 지낸 황인성 전 전북도지사에게 '장소의 협소함'을 호소, 1975년 6월 '예술회관 건립추진회의'를 발족하게 된다.예술회관 건립 추진위원들과 황 전 지사는 전국의 원로·중진작가들의 작품을 기증받아 서울 국립공보관 전시실에서 '예술회관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한국 원로·중진작가 미술전'(1975년 12월 13일∼12월 18일)을 개최했다. "좀처럼 단합이 안되는 것으로 인식돼온 예술인들이 일치단결해 자신의 숙원사업을 자신들의 힘으로 이룩하려 한 것은 새마을 정신의 산 표본이며 예술계 전체의 경사"라는 당시 문공부(현재 문광부) 장관의 축사가 말해주듯, 예술회관 건립은 지역 예술인들의 숙원이었다. 이 전시를 비롯해 '도내 작가 미술전'을 열고 도민들에게서 성금을 모으는 등 전북 예술인들은 스스로 2000만원의 기금을 모았다.반면, 도립미술관 건립에 얽힌 이야기는 김태식 전 국회의원의 회고록 「정치아리랑」에 잘 나와있다.따지고 보면 2000년 9월 전북일보와 우석대학교가 공동주최한 한 전시에서 원로화가 박남재씨가 한 축사가 도립미술관 건립의 주춧돌이 됐다."우리 전북은 말끝마다 예향의 도라고 자랑하지만 무슨 우리 전북이 예향의 도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느냐. 공립미술관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도가 우리 전라북도다."이날 전시에서 "박남재 화백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돌아가겠다"며 축사를 간단히 끝낸 김 전 의원은 "회화나 서도예술을 우리 도의 특화상품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문광부에 바로 연락을 취해 박남재 화백이 던진 숙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고 회고하고 있다.도립미술관이 완주에 들어서게 된 것도 사연이 있다.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에 부지를 요청했지만 시가 방도를 내놓지 못하면서 전주 권역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 공원 내 부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씨는 "도립미술관 건립과 관련, 예술회관에 비하면 전북의 미술인들이 얼마나 무관심했고 소극적이었는지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3.12 23:02

아시아 명인명장 네트워크 세미나

전북공예품의 해외진출과 교류를 위해 중·단기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속적으로 운영 필요전북공예품의 해외진출과 교류 활성화를 위해서는 '아시아문화동반자사업'과 같은 중·단기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10일 오후 4시 30분 전주정보영상진흥원에서 열린 '2007 아시아 명인·명장 네트워크 구축사업' 최종 세미나 '전북공예의 현황과 교류 활성화 방안'. 이날 발제자로 나선 백옥선 전북도 문화예술과 예술진흥담당은 아시아 지역 명인·명장들을 초대해 양국의 문화를 교류하는 '아시아 명인·명장 네트워크 사업'의 가능성을 인정, "지역 작가와 공방을 연계한 전략적인 개발은 물론, 세계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지역 작가들의 창작활동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이번 세미나는 지난 10개월 동안 '아시아 명인·명장 네트워크 구축사업'을 진행해 온 전주문화재단과 전주시가 공동으로 마련한 것으로, 지역 공예의 상품화 가능성과 인적교류 및 정보 교류를 통한 네트워크 형성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토론에 참석한 이병로 전북향토문화컨텐츠산업진흥회 이사장은 "국내외 공예 관련 협회 관계자, 작가들의 상호방문을 통해 현지 공예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고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3.11 23:02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모자의 정 그린 '똥꽃'

"이게 머꼬? 나보고 또 책 읽으라꼬?"산으로 둘러싸인 낡은 집 마당에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울려퍼졌다.귀도 멀고 똥오줌도 잘 못가리는 어머니는 자기 이름으로 나온 책을 보고서도 이렇게 말한다. 늙으신 어머니를 바라보며, "내가 오빠같지요"하는 아들은 웃고있지만 허허로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 연분홍 진달래 피었더니 / 방안에는 /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 어머니 옮겨 다니신 걸음마다 / 검노란 똥자국들. // 어머니 신산했던 세월이 / 방바닥 여기저기 / 이불 두 채에 / 고스란히 담겼네.''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이란 부제가 붙은 「똥꽃」(그물코). 이 책의 공동저자 전희식(50) 김정임씨(86)는 모자(母子)기간이다. 한 때는 열혈 노동운동가였지만, 생태학과 자연농법을 실천하기 위해 1994년 완주로 귀농했고, 2006년 봄 치매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지보마을로 들어왔다."3년 전 어느날 어머니가 제 손을 잡고 하소연을 하셨어요. 당신도 모르게 나오는 오줌이야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기저귀에 눈다고 하지만 뻔히 오줌 마려운 것을 느끼고서야 어찌 옷을 다 입은 상태에서 아랫목에 앉은 채로 오줌을 누겠냐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오줌 누는 데가 따갑다고 하셨죠."당시만 해도 몇 달 만에 겨우 한 번 서울 큰형님 집에 사는 어머니를 찾아갈 때였다. 하룻밤 자면서도 왠지 께름칙해서 틀니 한 번 빼서 제대로 닦아드린 적 없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방도 잠시 머물다 되돌아 나오기 일쑤였다. 전씨는 "어머니의 아랫도리를 보고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며 "열두명이나 되는 자식을 낳은 어머니 음부의 새하얀 체모는 온갖 풍상을 헤치며 살아오신 어머니의 모진 세월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옛날의 강렬한 기억들 속으로 자주 빠지시는 우리 어머니는 제가 지금도 굶고, 쫓겨 다니고, 어디 갇혀 있는 줄로 알 때가 많습니다. 자나 깨나 제 걱정이죠. 그래서 제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사람들과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보실 수 있게 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사시사철 두평 남짓한 방에서만 지내게 하는 것이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편할지 몰라도 노쇠한 어머니의 인생을 가두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전씨는 그렇게 모든 것을 어머니 몸 상태에 기준을 두고 직접 집을 짓기 시작했다.맨날 속 끓이게 했던 아들이 곁에 있어서 일까. 어머니도 달라지기 시작했다."어머니의 존엄성과 존재감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죠.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 못지않게 어머니도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었죠."집을 드나들 때마다 큰절을 올리고, 어떤 경우에도 말을 놓지 않고 존칭을 썼다. 일일이 알려드리고 허락을 받고, 청국장 만들기나 가죽자반 담기 등 생산적인 일감을 맡겼다. 어머니와 살면서 마음에 안들면 당당하게 큰소리 치고 떵떵거리는 모습이 가장 반가웠다는 그는 8일 자신의 집을 찾아간 기자에게도 큰절을 올리게끔 했다."몸도 마음도 흐트러지셨지만 어머니는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하십니다. 글이야 제가 썼지만 다 어머니 이야기니까 공동저자로 했어요.""어머니가 이 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란 질문에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혹시 글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은 대목이 있다면, 그런 생각에 잠시 멈칫 했을 때였다고 했다.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3.11 23:02

장수 출신 유공희 선생 유고문집 '물 있는 풍경'

생전 문집 간행을 고사했던 유공희 선생(1922∼2003).그의 제자들이 선생의 산문과 운문, 제자들의 추모글을 모아 유고문집 「물 있는 풍경」(시학)을 펴냈다.장수에서 태어난 유공희 선생은 일본 메이지대학 문예과 본과를 수학하고 군산여자상업학교와 김제여자중학교, 남원농업학교, 이리남성중학교 등 평생을 '그냥 선생'으로 남아 국어를 가르쳤다. 문집 간행을 진행한 박상용씨(재경 광주고 제7회 동창회장)는 "선생님은 평교사인 자신을 '그냥 선생'으로 이르셨는데, 이제 생각해 보면 이 호칭 속에는 기지와 풍자가 깃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형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선생님의 철학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최승범 시인(전북대 명예교수)도 유공희 선생의 남원농업학교 제자. 추모글 '기품 있는 젠틀맨'을 쓴 그는 "선생은 언제나 굵은 검정테 안경에 정장을 하셨고, 학생들 간에는 '기품 있는 젠틀맨'의 우러름을 받으셨다"고 회고했다. 문단 안팎으로 존경받고 있는 시인이 유공희 선생으로부터 '이걸 시라고 할 수 있느냐. 감정적일 뿐, 알갱이가 없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았다는 고백도 새겨져 있다. 광주고 제자였던 역사학자 이이화씨도 추모글을 올렸다.유공희 선생은 20∼30대 청년기에 운문을 쓰기도 했지만, 평생 산문을 써왔다. 유고문집에는 선생이 손수 스크랩해 놓았던 산문 41편과 운문 77편을 실었다. 일어로 기록된 작품도 소개됐다. 일문시 중 일부는 한글시와 동일한 작품도 있지만 어느 것이 원본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작품 평설을 맡은 조창환 시인(아주대 교수)은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여행을 즐기며 자연을 관조하는 지성적 교양인의 정신적 궤적이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고 평했다. 도휘정기자 hjcastle@

  • 문화일반
  • 도휘정
  • 2008.03.11 23:02

노무현 정권 언론탄압 백서 발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회장 변용식 조선일보 편집인)는 지난 정권의 언론 정책과 기자실 폐쇄 등에 따른 기자들의 투쟁 과정 등을 다룬 '노무현 정권 언론탄압 백서'를 발간했다.이 책은 지난해 5월 노무현 정권이 본격 시도한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따른 부처 기자실의 통폐합과 기자들의 정부부처 출입 제한 등 일련의 조치에 대한 일선 기자와 언론 단체의 반발과 투쟁 과정 등을 중점적으로 세밀히 다뤘다.백서는 또 '언론 탄압' 조치에 관련한 주요 신문의 사설과 언론 및 시민단체의 성명서, 정당의 논평 등 참고자료를 수집해 원문을 수록했고 부록에는 언론탄압 일지, 신문법과 언론중재법 전문, 헌법재판소의 신문법 헌법소원 결정문을 담았다.변용식 편협 회장은 "언론 탄압에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하고 언론에 대해 박으려 한 '대못'들이 실제로, 그리고 제대로 뽑히는지 감시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면서 "그간 누가, 왜, 어떻게 언론을 짓밟으려 했고 기자들은 이에 맞서 어떻게 싸웠는가를 상세히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이 백서를 낸다"고 말했다.한국언론재단의 일부 지원을 받아 출간된 이 책은 비매품으로 언론사와 언론관련 단체, 대학, 도서관 등에 배부될 예정이다.

  • 문화일반
  • 연합
  • 2008.03.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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