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문화의 발견] ③잡부가 된 문화인력
며칠 전 '전주시 인후문화의집 관장 채용공고'가 났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9. 기타사항 / 나. 보수 : 인후문화의집 직원보수규정에 의함(연봉1200만원, 조정가능)'. 부연하지 않더라도, 전주문화의 현실을 다시금 온몸으로 느끼게 한 씁쓸한 채용공고문이었다. 지금까지 지역내 문화계에서 이루어진 문화시설과 문화인력에 대한 논의는 시장경제적인 관점에 치우쳐 왔다. 예를 들면, 2002년 이후 전주시가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문화시설의 민간위탁과 관련된 수탁자선정, 시설평가, 종사자 처우 등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사례들을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토론회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은 매우 유사하다. 전주시가 전통문화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문화예산을 확보하고, 장기적인 문화정책을 세우고, 문화인력에 대해 합당한 급여와 고용안정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한 해법은 이미 다 나와 있다. 본보(1월 10일자 16면)에 따르면 "우린 잡부예요, 저임금에 맨날 야근이죠”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이 기사는 지난해 12월,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BK21사업단에서 조사·발표한 '전주시 문화예술시설 문화인력 노동실태조사' 보고서의 내용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문화시설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 하지만 문화시설에서 근무하는 문화인력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절실할 때다. 비정규직, 높은 노동시간, 잦은 야근과 휴일근무, 불안한 신분, 저임금, 높은 이직률. 문화인력들은 항상 이 같은 수식어를 달고 산다. 전주의 한 민간위탁 문화시설을 통해 본 갈등의 특성갈등은 일반적으로 행동주체간 대립적, 적대적 상호작용을 의미하며, 이것은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모든 사회조직에서 발생한다. 또한 조직갈등은 그 조직이 어떠한 조직이냐에 따라 원인과 형태에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조직의 관리자나 대부분의 구성원은 조직 내 갈등에 대해 '제거되어야 할 악(惡)' 혹은 '불필요한 것' 등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업무상 의견대립과 마찰로 빚어지는 갈등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외부로 공개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조직갈등이 외부로 공개되는 것을 꺼려하기는 문화예술영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문화예술영역의 조직갈등이 내재화되는 형태는 기업, 병원, 군대조직 등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문화예술이 '공공의 삶의 질'을 높여주거나 '공공의 선(善)'을 우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는 지난 '문화시설을 둘러싼 갈등의 형성과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2003년 8월부터 2005년 1월까지 1년 6개월에 걸쳐 전주의 한 민간위탁 문화시설에 대한 참여관찰을 통한 질적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 조사에서 얻어진 갈등은 '문화시설을 둘러싼 갈등'과 '문화시설 내부의 갈등'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외부의 갈등(내부와 외부의 갈등, 외부에서 형성된 갈등)이고, 후자는 내부의 갈등(내부적으로 형성된 갈등, 외부의 영향으로 형성된 갈등)이다. 이 가운데 내부의 갈등은 크게 5가지로 나타났다. 지역문화인력의 고용승계에 따른 갈등, 문화시설 조직운영에 따른 갈등, '전통문화'의 내용에 대한 시각차이에 따른 갈등(이는 다시 '전주의 전통문화'를 둘러싼 차이, 전통문화에 대한 상업적 포장의 차이, 구성원의 전통문화 구현의 차이로 세분화 된다), 문화시설 구성원간의 사적 갈등, 헐뜯기와 떠나기로 나타나는 문화시설 내부 갈등의 강화가 그 내용이다. 특히 문화시설의 갈등은 그 특성으로 인해 시설의 운영방향 및 정체성을 둘러싼 의미부여가 일반적인 갈등보다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는 내·외부 구성원이 문화와 전통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하는가에 따라 갈등이 발생되며, 이는 일상생활이나 운영전반에 있어 의견충돌·마찰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또한 민간위탁 문화시설에서는 문화시설이라는 구조적 특성에 따른 갈등, 민간위탁제도와 관련된 제도적 측면에서 비롯된 갈등, 문화시설 구성원들의 다양성에 기인한 행동주체에 따른 갈등양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지역정체성에 대한 반영여부나 역할, 지향점의 차이도 문화시설 내 갈등 형성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수박 겉핥기식 접근은 안 된다겉보기에는 멀정해 보이는 문화시설과 문화시설에서 근무하는 문화인력은 이미 여러 가지 갈등으로 얼룩져 있다. 그동안 이들은 바라보는 시각은 편향되어 있었던 것. 왜냐하면 이들을 둘러싼 관계집단은 항상 현상에 대해서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과 관련된 갈등이나 권력문제에 대해서 '서로 이해해 주어야 하는 것', 혹은 '존재하기는 하지만 쉽게 표현하기 곤란한 것' 등으로 인식되어 왔다. 결국 문화조직에서 발생되는 안팎의 갈등에 대해서 본질을 왜곡하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들여다봄으로써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문화예술을 매개로 운영되는 문화시설과 그곳에서 근무하는 문화인력에 대한 지나친 긍정성을 벗어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문화인력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각을 가지고 문화시설 내·외부의 갈등이 왜 생성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는 문화시설의 갈등을 들여다보는 일이야말로 우리지역 문화의 성숙을 앞당기는 견인차가 될 것이다. 더 이상 수박 겉핥기식의 접근방식은 안 된다.소득 임금노동자 평균의 60% 수준에 머물러 있는 급여, 1년 단위의 고용계약, 재교육시스템의 부재는 문화인력이 왜 사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현재 전주시 문화시설 중 동일 시설에 5년 이상 근무한 인력은 손에 꼽힐 정도다. 이정도면 문화도시니 전문성이니 하는 말들이 구호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반증해 주는 것 아닐까. 흔히 문화시설이 '문화시설답게' 운영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문화적 마인드를 꼽는다. 다시 말하면 문화시설이 충실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다양한 인적, 물적 조건건과 더불어 문화를 바라보는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전주시와 문화계의 오피니언 리더는 문화인력이 빠져있는 갈등을 파악하고, 근본적인 처방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전주시가 창조성을 가진 문화도시로서의 근본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문화인력'에 대한 삶의 질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문화의 뿌리가 그 토양에 깊게 박혀 있어야 건강하고, 아름다운 문화의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법. 그래야 '문화적 도시'가 아닌 '문화도시'가 된다./정훈 문화전문객원기자(학예연구사, 전주역사박물관 교육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