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준비하면 지킬 수 있다
“1만 년 전 농업의 발생과 더불어 인류가 많아지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 전염병이 시작됐고 최초의 전파자는 가축이었다.”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인류 역사를 뒤바꾼 세 가지 요인 중 하나로 바이러스를 꼽았다. 실제로 감염병의 75% 이상이 인수공통전염병이며, 특히 최근 문제가 되는 신종 감염병의 대부분이 동물로부터 유래된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3년째 긴 전쟁을 치르고 일상으로의 회복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또 다른 바이러스를 잡기 위한 힘겨운 사투가 계속되고 있다. 바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과 같은 재난형 가축전염병과의 방역 현장이다. 재난형 가축전염병은 한번 발생하면 축산농가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경우, 국내에서 처음 발생했던 2019년 살처분 보상금으로 2천억 원 이상 소요됐다. 최악의 구제역으로 기록된 2010년과 2011년에는 피해액만 2조 7천억 원에 달했다. 이러한 뼈아픈 경험을 거울삼아 정부는 ‘가축전염병 사후 처리에서 사전 예방중심’으로 전환하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축산농가 주변의 바이러스를 신속히 제거하기 위해 예찰, 검사, 소독을 강화하면서 가축전염병의 확산을 막는데 전력을 다했다. 산란계 농장을 대상으로 방역 수준이 높은 농가를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하는 ‘질병관리등급제’도 지난해 시범 도입했다. 또한 현장점검반을 구성해 축산농가와 취약시설을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고 있으며, 농장별 지자체 전담관을 지정해 방역수칙과 주요 방역상황 홍보 등 맞춤식 밀착관리를 하고 있다. 축산농가도 스스로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 전염병 전국 확산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었다. 그 결과, 가축전염병 발생 건수가 크게 줄어드는 값진 성과를 거뒀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야생멧돼지 차단 울타리 설치와 포획 노력을 집중적으로 벌이면서 양돈 농장의 방역시설을 강화한 뒤, 지난해 10월 이후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구제역도 2019년 1월 이후 추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지난 동절기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역시 현재까지 47건만 발생해 재작년 109건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전북의 경우에는 관계기관과 지자체 공무원들의 선제적인 방역 조치와 축산농가들의 책임있는 자율방역 노력이 맞물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2020년 겨울 16건에서 같은 기간 7건으로 감소했다. 아직까지 전북 내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적은 없지만, 감염된 야생멧돼지가 경기·강원에 이어 충북·경북에서도 발생하고 있어 이 지역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축전염병 바이러스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어디로 퍼질지 모른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매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봄철 출산을 앞둔 야생멧돼지의 먹이활동이 왕성해지면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가축전염병의 대응 역량을 끊임없이 높여갈 것이다. 전국의 축산농가들은 내부 울타리 등 농장 방역시설을 신속히 설치하여, 차단방역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드린다. 미리 준비하면 걱정할 일이 없다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지혜로 축산 현장과 국민, 정부가 함께 노력한다면 가축전염병으로부터 축산농가와 국민을, 가축의 생명과 안전을 충분히 지켜낼 수 있다고 믿는다. /김종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