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유이우 시집 ‘내가 정말이라면’
버드나무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리 손을 뻗어도 그 흔들림을 다 만져볼 수가 없다. 만지는 것은 그에게 실례가 될 것이다(시인의 말 중).
유이우 시인의 <내가 정말이라면>을 읽고 나자, 오리기와 반대말이 실례를 무릅쓰고 내 물낯을 차고 날았다. 어릴 때 가위를 잡으면 오리고 싶었다. 오리들이 색종이를 걸어 나와 물속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매혹적인 글이나 기사를 클리어 파일에 넣어 두고, 두고두고 꺼내 먹곤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홀리즘(Holism)에 빠져 살아 잘린 머리칼이나 손톱, 발톱에 숨길을 주지 못했다.
내가 가짜라면? 내가 아바타라면? 내 삶은 이미 결정 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정말이라면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일 것이다. 나는 77억이 넘는 사람 중 독특성을 가진 유일한 존재다. 나는 느끼고, 생각하고, 걷고, 듣고,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며 진짜 세상을 본다.
이우성 시인은 유이우는 자유와 항해, 구름 혹은 오후, 구름과 항해, 오후와 항해, 오후의 빛을 타고 늘 항해한다고 했다. 구름과 오후에 홀리어 다다르고자 하는 곳 없이 떠가는 항해가 유이우의 시다. 시어는 헬륨풍선처럼 둥둥 떠오르고, 형상기억합금처럼 탄력 있게 의미와 무의미를 넘나든다. 사람들이 의미, 의미하니까 그렇지, 어차피 세상의 절반은 무의미다. 시인은 무의미에 대한 깨달음이 의미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 있는 여러 스펙트럼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인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색다른 비법으로 버무린 어휘와 문장을 무인 택배함에 넣어 놓고 저 멀리 가 있다. 시가 시에게 가도록 사람이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시인은 말하였는데, 오늘 나는 훼방꾼이 되기로 한다.
내 마음을 오려간 연과 행을 잘라 내 마음에 붙여 놓는다. 거울신경에 늘 비추어 본다. 당신도 그렇게 붙여넣기를 하다 보면 시집 한 권이 사라지는 매직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길 잃은 메아리가// 매미 속에서 우는 법을 알고/ 다시 돌아오는 일(맹인 중).
나무가 비키지 않으면 세상이 나무를 돌아간다(비행 중).
노래를 들을 때 우리는 한명인 것 같다(어린 우리가 중).
언제나 그 음에/ 머무르려고// 피아노가/ 음악 바깥으로/ 나온다(조율 중).
더 오래 서성이기 위해서/ 지구가 무겁구나(풍경 중).
힘을 겨루지 않아// 해는 쉽고/ 어렵지 않고// 해는 막차처럼 소중해지는데(위로 중).
답장처럼 둘이 더 친하게/ 발음으로 물감을 섞는다(놀이 중).
영원, 하고 부르면 계속되는/ 둥근 느낌들(운명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