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소탐대실하지 말자
문재인 정부의 첫 국정감사가 마무리됐다. 감사 내내 이어진 명분 없는 국감보이콧은 켜켜이 쌓여 있는 적폐를 청산하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채, 국회에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적폐가 있다는 사실만 드러내고 말았다.명분 없는 다툼으로 국회를 공전(空轉)시키는 적폐는 여야를 넘어 국회 전체가 경각심을 가질 문제이며 특히 국정감사처럼 본회의를 통해 합의된 일정을 파행시키는 것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관행이나 정치적 실리를 이유로 이를 반복한다면 입법부는 적폐를 논할 자격이 없다.지난 겨울, 깨어있는 시민의 촛불 행렬은 직접민주주의의 진수를 보여줬다. 1952년 발췌개헌안 사태를 본 영국의 한 기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며 냉소 섞인 말을 쏟아냈지만, 그로부터 65년이 흐른 2016년 겨울, 1700만 촛불시민들의 장엄한 행렬을 목격한 같은 나라인 영국의 기자는 민주주의의 모범이며 전 세계가 배워야 할 직접민주주의의 표본이라고 말했다.국정농단 정권을 몰아낸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고, 새 정부는 시민의 명령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개혁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공론화 과정이 대표적 사례이다.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시민이 만든 정부이기에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시민의 의견을 묻고 조언을 들어 그에 따라 입장을 수정했다.정부와 시민이 한데 어우러진 공론화 과정은 지금껏 보지 못한 민주적 절차였으며, 갈등과 분열을 토론과 협의로 통합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 위대한 첫 걸음이었다. 촛불이 직접민주주의의 진수였다면, 공론화 과정에서 보여준 숙의민주주의는 간접민주주의의 교과서였다.잊지 말아야 할 점은 정부의 힘만으로 미래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입법을 통해 국회가 뒷받침하고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할 때 비로소 구현된다.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파행은 물론 국정감사를 폄훼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는 걱정스럽다. 이는 국정감사를 가볍게 여기며 단순히 정치행위의 장으로만 인식하는 시각에 기인한다. 하지만 국회의 본질은 400조원이 넘는 예산과 수천, 수만 개에 이르는 국가사업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일이며, 국정감사는 그 핵심이다. 1년에 한 차례, 이토록 중요한 국정감사를 무의미한 시간으로 치부하는 자세는 옳지 않다.춘추시대 진나라 혜왕은 촉나라의 왕에게 두 나라 사이에 오고 갈 길을 뚫는다면 황금 똥을 누는 소를 주겠다고 꾀었고, 촉왕은 이에 눈이 멀어 큰 길을 만들었다. 그러나 길이 뚫리자 혜왕은 촉나라를 공격해 정복했고, 결국 촉왕은 작은 이익에 욕심을 부리다 나라를 잃고 말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유래이다.우리도 같은 실수를 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당(公黨)이 국정감사를 방해하면서 추구하는 당리당략, 언론이 국정감사의 본질을 왜곡하여 선점하고자 하는 정치적 이슈 는 모두 작은 이익에 불과하다. 이를 좇을수록 국회의 본질과 역할은 사라진다.2500여 년 전 촉왕은 나라를 잃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를 바로잡고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야 할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큰 희생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 달여의 국정감사기간동안 스스로도 많은 반성을 하며 끊임없이 되새긴 말이다. 부디,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