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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 유감

이강만 한화그룹 부사장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기억할 수 있을까? 만 명, 천 명, 백 명?케빈 브록마이어의 소설 로라시티를 떠올리며 든 궁금증이다. 사람마다 뇌의 용량이나 기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언적으로 얼마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 모 언론사 간부와 얘기던 중 그분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가 3천개가 넘는다고 해서 적잖이 놀랐다. 작년까지 2천개 남짓 연락처를 가지고도 늘 벅차하던 필자인지라 그 많은 분들을 어찌 다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기억까지는 모르겠지만 언론계 간부들은 대개 그 정도의 연락처는 가지고 있단다. 휴대폰 연락처에 저장된 분의 숫자가 천명이 될 때까지는 전화 발신자 이름이 뜰 경우 그가 누군지 거의 기억해냈는데, 그 이상을 넘긴 이후부터는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서도 누군지 헷갈려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연락처를 새로 등록할 때 신체적 특징이나 간단한 약력 등을 추가로 입력하는 방법도 취해보았지만 역시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자신이 직접 저장한 이름이 뜨는데도 얼굴도 생각 안 나고 심지어는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도 누군지, 어디서 만난 분인지도 모르면 정말 당황스럽다. 그래서 말을 올리지도, 그렇다고 하대하지도 못하고 아~, 네~라는 추임새를 연신 발하며 상대가 누군지 단서를 찾으려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황하게 이 이슈를 꺼내는 이유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려대는 기억 저쪽의 발신자 이름과 아예 전화번호로만 뜨는 수신전화로 인한 곤혹스러움이 오롯이 필자 혼자만의 몫은 아닐 듯싶어서다. 연초에 휴대폰을 교체하면서 상당기간 피차 연락 안한 번호들은 아예 제외하고 가끔씩이라도 소통하는 600여명만 연락처에 입력해놓았다. 그런데 이제 입력 안된 분들로 인해 각종 해프닝이 생기고 있다. 백업리스트에도 없는 전화번호로, 회의나 부재중 걸려온 전화가 있다. 그냥 무시하면 대개는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는다. 광고성 전화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이지만 콜백이 없는 경우 독촉 문자를 보내는 분이 있다. 그것도 본인 성함도 밝히지 않고 다정하게, 또는 하대조로 답신을 재촉하면서 말이다. 그냥 무시하려다가도 어떤 때는 조급증이 발동해 전화를 걸고 만다. 그러면 상대는 춘향이 이도령이라도 만난 듯 반가이 자신을 소개한다. 스쳐가며 명함을 교환하거나 학연 지연으로 얽혀 있는, 알 듯도 모른 듯도 한 분들이다. 간단히 인사가 오가면 대뜸 용건을 얘기한다. 십중팔구 해결해주기 힘든 부탁이다. 세상이 분명 바뀌었지만 그분들은 아직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세상 일은 모두 공명정대하게 처리되어야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지금 얘기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예외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믿는 부류다. 그분들이 오죽하면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가끔씩은 부아가 치민다. 좀더 지혜롭게, 그리고 상냥하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말이다. 불과 몇 달 사이에 휴대폰 연락처가 또 300개 늘었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기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어렵거니와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억 못하는 분으로부터 연락을 받는 일은 앞으로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를 어찌할까 고민했는데, 역시 과거에 한동안 사용했던 방법이 좋을 것 같다. 기억이 떠올려진 분이나 적어도 백업리스트에 포함된 번호이면 답신을 하는 것으로 말이다. 세상과는 끊임없이 소통하되, 번잡함에 끌려 다니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그래도 이런 방법이 옳은 것인지는 여전히 확신이 없다. 하지만 어찌하랴. 아직 할 일이 태산인데 선한 코스프레 하느라 에너지를 고갈시킬 순 없지 않은가? 다만 여전히 꺼림칙한 게 있다. 로라의 기억 덕분에 시티에서 평화롭고 안온하게 존재하는 사람들이 떠올라서다. 필자는 과연 전화발신자에게 어떤 존재일까? 기억되는 자, 아니면 기억 잘하는 자, 그도 저도 아닌 그냥 기억력 나쁜 자. /이강만 한화그룹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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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05 16:34

전라선과 아버지

김희관 법무연수원장前 광주고검장 고향 쪽에 이런 저런 일들이 생겨 가끔씩 전라선을 타게 된다. 열차에 오르면 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전라선 열차에 올라 타 아버지의 고향이었던 구례를 자주 찾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동이리역에서 출발해 대장촌-삼례-동산촌-전주-신리-관촌-임실-오류-오수-서도-남원-주생-금지-곡성-압록-구례구역으로 이어지는 그 길디 긴 완행 철길. 얼마나 느렸던지 다섯 시간이나 걸린 적도 있었다. 할머니 보러 구례에 가자는 아버지를 향해 가끔은 안가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팥연양갱과 사이다를 사주겠다는 아버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냉큼 따라 나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아버지가 올해 87세가 되셨다. 전라선은 내게는 그저 즐거운 추억거리지만, 아버지에게는 인생의 중대한 분수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버지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소년 가장이 되었다. 여섯 형제중 둘째로 태어난 아버지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었고, 그나마 의지하던 큰 형님마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노모, 어린 네 동생들, 심지어 큰 형이 남기고 간 조카 2명의 생계까지 떠맡아야 했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교정을 걸어가는 소년의 귀에 선생님들의 대화가 비수처럼 꽂혔다. 00이는 철이 없어. 집안 형편이 그렇게 어려운데도 고등학교를 가려고 하다니 말이야. 이 말을 들은 15세의 어린 소년은 그 순간부터 어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얼마 후 전라선 열차에 몸을 싣고 익산으로 향하였다. 고등학교 진학의 꿈을 접고 먼 친척이 운영하는 양은 솥단지 공장의 점원으로 취직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동생 2명은 교사가 되었고, 큰 형님의 아들은 의사가 되었다. 그 다음 대에서는 의사가 4명이나 나왔다. 아버지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 집안은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한때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송혜교가 중동의 한 나라에서 의료봉사 활동중 파티마라는 전쟁고아 소녀를 돕는데, 송중기가 걱정스럽게 송혜교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렇게 해도 그런 아이가 한 둘이 아닌데, 세상이 달라지겠습니까라고 말이다. 그러자, 송혜교는 이렇게 대답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겠지만, 파티마의 삶은 바뀔 것이고, 그것은 파티마에게 세상이 바뀌는 일이겠지요라고. 그렇다. 애당초 아버지에게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야망이나 포부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에게 던져진 고난의 삶을 견뎌내야 할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저 자신에게 맡겨진 식솔들만큼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살았을 뿐이다. 그의 삶을 소시민적이었다고 불러도 좋다. 하지만, 그의 희생과 헌신은 세상을 바꾸었다고 확신한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몇 사람이라도 아버지가 돌보고 보살폈던 그 사람들의 세상은 그로 인해 바뀌었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인 5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라는 어느 시인의 통찰이 가슴에 와 닿는다. 평생 동안 가족을 위해 땀과 눈물로 고달픈 삶을 묵묵히 살아 온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 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들의 세상을 바꾸어 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김희관 법무연수원장前 광주고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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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9 16:34

종자전쟁과 인류 생존게임

손해일 국제 PEN한국본부 이사장 농부는 죽어도 종자를 베고 잔다(農夫餓死 枕厥種子)는 옛말이 있다. 종자는 생명과 다름없기에 아무리 굶주려도 최후까지 고수해야 할 필수품이다. 우리나라도 옛날엔 춘궁기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워 초근목피 등 각종 구황식물로 연명하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단군 이래 최고로 잘 산다는 오늘날의 한국은 얼마나 복이 넘치는가. 핵전쟁이 사망 유희라면 종자 전쟁은 생존 게임이다. 지구상에 종자 저장소가 딱 한 군데 있다. 2008년 2월 UN 산하 세계작물다양성재단(GCDT)이 북극에서 1000km 떨어진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에 약 2억 달러를 들여 축구장 절반 크기로 온도가 항상 영하 15도를 유지하는 시설을 마련했다. 핵전쟁이나 천재지변, 대홍수 등 인류 대재앙이 닥쳤을 때를 대비한 현대판 노아의 방주이다. 지구촌은 지금 씨앗전쟁중이다, 선진국들은 대규모 투자로 식물 유전자원을 확보하여 수집 보존하고, 신품종개발로 씨앗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 세계 라일락 시장의 약 30%를 석권하는 미스킴 라일락이 그 좋은 사례다. 한국이 미군정시절인 1947년 미국의 식물학자 앨윈 미더가 우리의 토종 수수꽃다리속 털개회나무 종자 12알을 북한산 백운대에서 채집해 간 뒤, 뉴햄프셔대학에서 이를 품종개량해 1954년 한국의 담당 타이피스트 이름을 따미스킴 라일락이라 명명했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한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에만 자생하는데 미국이 이를 신품종으로 개량해 전세계로 역수출하고 있다. 데이릴리(daylily)는 한국의 제주도 원추리를 품종개량한 것이다. 한국은 2002년부터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했다. 2012년부터 해조류를 포함한 모든 종자에 대해 최소 20년간 지적 재산권을 보장하고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한국은 IMF 위기 때 국내종자회사 5개 중 4개가 외국에 넘어감에 따라 매년 90%의 종자에 대한 막대한 로열티를 물고 있다. 2012년 세계 종자시장규모는 780억 달러(약 83조 원)라는데, 토마토 씨앗 1g에 13만원, 파프리카 씨앗 1g에 9만원, 검은방울토마토 씨앗 1g에 7만 5000원이라니 금값보다 비싸지 않는가. 우리가 즐겨 먹는 한국의 청양고추에도 비싼 로열티를 물고 있다니 기가 막힌다. 1998년 청양고추를 개발한 한국의 중앙종묘가 멕시코 종자화사로 넘어갔는데, 이를 미국 기업인 몬산토가 인수함으로써 매년 몬산토에 로열티를 주게 된 것이다. 불행히도 한국은 식량수입국이다. 자급률이 104%인 쌀을 제외하면 잔체 곡물자급률은 5%에 불과하다, 자급률은 감자고구마 98.7%, 보리 24.3%, 콩 10.1%, 옥수수 0.9%,, 밀 0.9% 등이다. 전세계는 지금 식량위기를 맞고 있다 그 원인은 크게 기후변화로 인한 곡물생산량 감소, 신흥경제국의 곡물수요증가. 바이오연료 사용증가에 따른 곡물부족 등이다. 특히 종교와 인종갈등으로 내전중인 곳은 굶주림의 지옥이다. 곡물가격 상승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 하는데 옥수수, 밀, 대두는 미국의 카길사에서 60%를 수입하고 있다. 우리 주곡의 경우 통일벼 개발을 비롯해 농학기술의 발달로 수확량이 넘치고 매년 쌀이 남아돌아 주체를 못할 정도다. 그러나 북한은 90년대 초 고난의 행군때 약 300만 명이 굶어 죽으면서도 수십년간 핵무기 개발에 매진하여 오늘날의 복잡한 핵국면을 초래했다. 북한은 70여년간 이팝에 고깃국을 공언했지만 아직도 굶주림을 못 면하고 있다. 하노이 비핵화 북미협상이 결렬된 후에도 북한이 미사일을 두 번이나 쏘아 올려 협정을 위반했는데도 이를 응징하기는커녕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을 두고 찬반 양론이 매스컴을 달구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손해일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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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2 17:17

반쪽의 진실은 허위보다 무섭다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그해 5월은 매우 습하고 무더웠다. 당시 시국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정치권에도 언론에도 잠깐 봄이 찾아 왔지만 그 끝은 짧았다.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광주에서 수천 여명의 시민들이 계엄군들의 총칼에 찔려 숨졌다는 얘기가 전주지역에도 전해졌다. 확인할 길은 없었다. 신문과 방송은 침묵할 뿐이었다. 유언비어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했다. 아무리 통제해도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진실의 메아리는 막을 길이 없었다. 분노한 전주의 학생들도 저항에 동참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각 고등학교 대표자들이 모여 그 주 토요일에 어느 중학교 운동장에 모이기로 했다는 말이 나왔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걱정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집에 가면서 본 그 중학교 운동장에는 어느새 계엄군 탱크가 들어와 있었다. 결국 전주에서의 저항(?)은 실패로 끝났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그 때 5월의 모습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 삶에 있어 광주는 마음의 빚이었다. 끝까지 저항하다가 산화한 5.18 희생자들에 대한 시대적 부채 의식이 마음 한편에 늘 자리했다.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도 있지만, 꼭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동시대 전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닌 우리 또래들을 만나면 지금도 꼭 물어보는 말이 있다. 너 매스게임 때 어느 줄 몇 번에 서 있었니? 그렇다. 나는 그 해 10월에 있었던 제61회 전국 종합체육대회에 동원된 5000여 명의 고등학생 중 한 명이었다. 이름 대신 9-1번으로 불렸다. 봄부터 전주 시내 남녀 고등학교 학생들은 매스게임과 카드섹션, 기수단을 위해 총동원됐다. 10월 8일 개막식 날 4분 30초짜리 식전행사를 위해 6개월간 수업은 형식이고 거의 연습에 매달렸다. 땡별 아래 쓰러지거나 탈진하는 아이들이 속출했지만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 참관 하시니까라는 명분으로 피로와 역겨움을 참아내야 했다. 맨 앞줄에 서 있던 나는 전주종합경기장 VIP석에 앉아있던 전두환 이순자 부부의 모습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저 그때는 실수하지 않고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가 전국규모의 야외 지방 행사에 참석한 것은 전주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체전 표어도 새 시대새 의지새 천 년이었다. 그는 개막식 후 시도지사와 체전 관계자 50명이 참석한 오찬 자리에서 학생이든 단체든 소요나 불안을 조성해서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괴에 유리하게 하는 행위로 공산당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적행위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창비)』로 신인 소설상을 받았던 작고한 전주출신 소설가 김지우는 언젠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여고 2학년으로 참가했던 내게 체전이 끝나고 전두환 대통령 하사품이라고 쓰인 만년필이 학생들에게 배당되었을 때 나는 만년필을 내팽개쳤다. 게다가 학생 대표로 대통령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라는 학생주임의 요청을 전두환 씨에게 감사할 일이 없다고 거절했다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다가온다. 그러나 진상규명 목소리를 외면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극우세력이 준동하고 있다. 또 이를 바로 잡아야할 일부 정치인들이 묵인, 방조로도 모자라 오히려 부추기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특히 광주에 내려간 사실조차 부인하는 전두환 씨의 행적과 발언이 허위임이 용기 있는 증언자들의 입을 통해 40여년 만에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반쪽의 진실은 허위보다도 무섭다는 말이 있다. 이번에야 말로 거짓을 몰아내고 제대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마지막 기회다. 국회 특별법 통과로 마련된 5.18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속한 가동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 그것이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명령이자 빚진 마음을 덜어낼 최소한의 책무다.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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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5 20:14

희망 고문

이강만 한화그룹 부사장 작년에 코스모스 졸업을 한 큰 아들이 아직도 정규직 취업을 못하고 계약직, 인턴을 전전하고 있어서 영 마음이 짠하다. 그 아들이 그렇다고 목표 없이 허송세월 하거나 현실에 안주해 소일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 본인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보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고, 또한 그 일을 맡기에 적합한 업무능력을 갖추기 위해 코피를 쏟으면서 공부하고 있어서 딱히 그를 탓할 수도 없다. 그래서 올 연말까지는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그 동안 취업이 어렵다는 얘기는 귀가 닳도록 들어 왔지만 요즘처럼 어려웠던 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에도 먹고 살기 힘들고 할만한 일자리가 없다는 말은 다들 입에 달고 살았었다. 오죽하면 단군이래 요즘처럼 살기 힘든 적은 일찍이 없었다는 말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나온다고 하지 않은가? 그런데 올해 들어 우리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급기야 올해 1분기 GDP 성장률이 비록 낮은 수치이긴 하지만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심리적으로 더 몰리는 상황이 되고 있다. 작년 이맘때 대학생인 둘째 아들과 이런 얘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취업이 어려운 것은 나라의 경제 상황이나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 청년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조금만 눈높이를 낮추거나,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조금 더 최선을 다하면 취직할 수 있잖아. 별로 그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환경 탓만 하는 것 같단 말이야. 그건 현실을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우리 친구들 정말 열심히 살고 있어요. 노력을 안 하거나 눈 높이를 안 낮춰서 그런 게 아니라구요. 아빠 때처럼 경제 확장기에 쉽게 취직하던 시기와는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구요 아들의 이러한 반응이 필자는 꽤 불편했던데다 마치 자기 방어기제가 작동한 듯한 느낌도 있어서 한마디 쏘아붙였다. 요즘도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뉴스에도 자주 나오잖아. 아무튼 잘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항상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 청년들이 명심했으면 한다 이 정도의 훈계면 받아 들일만도 한데 둘째는 지지 않고 한마디 보탰었다. 아빠, 저는 아빠 말씀 잘 새겨 들을 테니까요, 다른 친구들에게는 제발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걸 희망고문이라고 한다구요. 희망고문? 잊고 있었던 이 단어를 생각게 하는 글을 최근 어느 지인이 보내줬다. 80년대 몹시 추운 겨울 날, 한 이등병이 언 손을 불어가면서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지나가다 이를 지켜보던 마음 착한 소대장이 박 이병,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좀 얻어다 해!라며 한마디 건넨다. 취사장에 갔지만 고참에게 신병이 빠져도 한참 빠졌다는 핀잔을 듣고 다시 돌아 와 하던 일을 계속하는 이등병을 이번에는 중대장이 보고는 어이, 그러다 동상 걸리겠다. 취사장에서 뜨거운 물 갖다 해라고 친절하게 얘기 해준다. 그래서 또 다시 취사장에 갔는데 고참에게 더 호된 꾸지람을 듣고 되돌아 와 서러움에 울먹이고 있던 차에, 마침 지나가던 호랑이 보급계 중사가 야, 내가 세수 좀 하려고 하니 지금 취사장 가서 그 대야에 뜨거운 물 좀 가득 담아 와라고 심부름까지 시킨다. 울컥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어찌 하랴? 군대인데 이번엔 고참들이 선선히 뜨거운 물을 내줘서 대야 가득 담아 왔다. 그제서야 그 중사는 박 이병, 그 물로 언 손 녹여가며 하거라. 양이 충분하진 않지만 동상은 피할 수 있을 거야 그래, 아들이 맞다. 희망을 주되 고문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어설픈 훈계나 미사여구 대신 그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줄 진심 어린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강만 한화그룹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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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08 20:14

사이먼 앤 가펑클과 확증편향

김희관 법무연수원장前 광주고검장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던 전주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바로 심야 라디오 음악 방송이다. 프로그램 이름이 별이 빛나는 밤에 인지 밤을 잊은 그대인지 인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그 시절 밤마다 청춘들의 심금을 울리는 팝송과 함께 엽서 사연을 맛깔스럽게 들려 주던 남자 디제이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지금으로부터 40년전 고등학생 때 전주에서 홀로 하숙생활을 할 당시 나의 가장 친한 벗은 팝송이었다. 그렇다고 팝송에 푹 빠져 학업을 소홀히 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팝송을 들으면 신기하게도 집중력이 더 좋아지고 공부가 더 잘됐다. 돌이켜 보면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는 사춘기 소년의 외로움과 어수선한 상념들을 달래고 없애 주는 역할을 음악이 해 준 것 아닌가 싶다. 고등학교 1학년 영어수업 첫 시간에는 선생님께서 갑자기 나를 지목하면서 팝송을 하나 부르라 해서 죠니 호튼(Johny Horton)의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All for the love of a girl)을 멋들어지게(?) 불렀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 심야 음악방송에는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 이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권투선수(The boxer)와 같은 미국의 음유시인 사이먼 앤 가펑클의 주옥같은 노래들도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그 중 권투선수라는 곡에는 이러한 가사가 나온다. 여전히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나머지는 외면해 버리네(Still a man hears what he wants to hear and disregards the rest) 그 때만 해도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웅얼거리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가사야말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는 요즘에 우리 모두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경구(警句)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이 가사를 통해 꼬집은 현상이 바로 확증편향(確證偏向)이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이 믿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한 연구팀에서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을 사형에 찬성하는 집단과 반대하는 집단으로 나누었다. 실험참여자들에게 같은 정보를 주고 반응을 관찰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읽었을 때는 자신의 의견을 강화한 반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정보를 읽었을 때는 그 정보를 무시했다. 확증편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일상속에서 흔히 있을 법한 사례 하나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자. 뒷담화가 경쟁자에 관한 것이라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고 반응하지만 절친에 관한 뒷담화라면 그냥 소문이겠지라고 일축하지 않는가. 최근 패스트 트랙문제를 둘러싸고 대화와 타협의 공간이 되어야할 국회의사당에서 여야간 극한 대치상황이 벌어지는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이제라도 양쪽 모두 사이먼 앤 가펑클의 권투선수를 들으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은 어떤지 엉뚱한 제안이라도 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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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01 19:15

클릭! 골뱅이복음

손해일 국제 PEN한국본부 이사장 우리는 지금 지구촌 한지붕 한가족 시대에 살고 있다. 각종 매스컴과 첨단과학 기술의 발달로 정보전달력과 소통능력이 시간과 장소를 넘어 실시간 속도전을 다투기 때문이다. 한동안 4차산업시대 논쟁이 뜨겁더니 최근엔 5G 첨단기술 개발의 선점을 두고 IT선진국들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도 IT강국으로서 삼성, 현대, LG, SK 등이 이를 선도하고 있어 자랑스럽다. 특히 컴퓨터나 휴대폰 자판 속도가 한국이 압권인 것인 세계 최고의 표음문자인 한글덕이 크다. 특히 이메일은 지극히 편리한 소통방식으로 각광을 받은 지 오래인데, 한국에서 골뱅이라 부르는 @약호는 표기는 하나지만 나라마다 호칭이 제각각이다. 아무튼 이 골뱅이 부호가 빠지거나 틀리면 일단 이메일이 안들어가니 천국열쇠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의 오픈 세사미!(열려라 참깨)에 다름 아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은 곧 알파요 오메가니, A는 a를 낳고 a가 @를 낳으니 이가 곧 골뱅이라. 천국으로 가는 문은 좁고 인터넷 세상은 넓으니 골뱅이로 말미암지 않고는 마음껏 소통할 자가 없느니라.(골뱅이복음 4장 8절) 셔블 발기다래 밤드리 노니다가 / 을지로-충무로통 골뱅이골목 번개팅./ 을지문덕-이순신 장군, 살수-한산대첩 축하연. /생맥주에 골뱅이 안주로 우리가 남이가!도 외치고/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e-mail을 날린다./ 클릭! 골뱅이복음@KOREA.COM. --손해일 졸시 <클릭! 골뱅이복음> 일부-- 인터넷 부호@는 독일의 구텐베르그가 특허 낸 활자체를 1972년 미국 BBN사 레이텀 린슨이 이메일 발신자 표시 약호로 처음 썼다는데, 앹사인(at sign) 앹심볼(at symbol) 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나라마다 이를 부르는 별칭이 각각 달라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여 몇나라를 따라가 본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달팽이 요리가 성해서인지 이를 달팽이라 부르고 독일에서는 사람의 동그란 귀바퀴 모양을 상징해 오어라 한다. 네델란드에서는 원숭이 꼬리를 의미하는 아포 스라지(ape slaggi)라 하고,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는 이를 원숭이라 부른다 스웨덴에서는 두루루 말린 코끼리코라 하고, 핀랜드에서는 캣츠 야옹이 꼬리, 헝가리에서는 구데기를 의미하는 쿠칵(kukac),세르비아에서는 미친A(mad, cragy A)터키에서는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장미라 부른다. 러시아에서는 강아지꼬리를 연상시키는 월츠 소바카 로, 중국에서는 생쥐 라오수 늙은 쥐 라오수하오로, 대만에서는 자그마한 늙은 쥐 살리오슈우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쓰나미 소용돌이를 의미하는 나루토라고 한단다. 국민성이 달라서 각각이지만 호칭마다 일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필자소견으로는 팔이 안으로 굽어서인지 생김새도 감칠맛도 똑떨어지는 한국의 골뱅이 호칭이 단연 압권이다. 서울 을지로 골뱅이 골목을 비롯해 전국의 술안주로 제격인 골뱅이 모양을 연상하면 이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팽이-달팽이-고둥-다슬기는 충청도 올갱이요, 전라도에서는 대사리라고도 한다. 앞으로는 골뱅이@ 축하연을 번개팅 말고 정모로 하고, 호프 몇잔에 골뱅이 안주와 올갱이 해장국으로 답답한 속 좀 풀어봅시다. 잘 안풀리는 우리의 경제상황이나 북미간 비핵화 협상도 굿럭 투유! 골뱅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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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24 20:20

미세먼지, 중국의 언어로 설득하라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지난주 베이징을 다녀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비행요금 비교앱으로 김포와 베이징 구간을 검색하다가 제주도 다녀오는 비행요금보다 싼값이 나와 덜컥 예약하고 시작한 여행이었다. 개인적으로 대학시절 중국어를 전공한 것까지 합하면 중국과 연을 맺은 지도 40년이 다 되어간다. 베이징에서 상주특파원도 했었다. 대학에서 중국 관련 과목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래서 중국에 대한 감을 잊지 않기 위해 개인적으로 일 년에 서너 번은 꼭 중국의 여러 도시를 다녀온다. 지난 설날에도 상하이를 다녀왔다. 또 개인적으로 중국 관련 책을 준비 중에 있어 중국은 앞으로도 계속 다녀와야 할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면 중국을 다녀오면 올수록 개인적 무지와 편견을 자책하며 자괴감을 느낀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들에 비해 분명 중국을 어느 정도 안다고 비춰질 것 같지만 자꾸 코끼리 발목만 만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얕은 경험으로 중국을 얘기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다. 90년대 중반 베이징에 살 때 아파트 창틀을 손으로 닦으면 시커먼 석탄가루가 묻어 나왔다.겨울이면 더 심했다. 잠깐 서울을 다녀갈 때면 광화문 네거리에서 맘껏 호흡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실없이 웃기도 했다. 그랬던 베이징이 어느 때 부턴가 공기 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베이징 올림픽 유치결정이후 서쪽에 있던 석유화학단지등 공해 배출 기업들을 폐쇄하거나 이전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2008년 여름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공항을 내리는 순간 하늘에 떠있는 너무나 선명한 휘황찬란한 달을 보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선명한 달을 본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해외 손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중국 당국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은 그 후에 알았다. 미세먼지 원인을 놓고 한중간에 제2의 사드문제라고 불릴 만큼 양국 관계가 심상치 않다. 얼마 전 이낙연 총리가 중국 방문 시 직접 미세먼지 문제를 제기했는데 여야 환노위 소속 의원 8명이 중국 생태환경부와 전인대 상무위원회를 방문하겠다고 제안했다가 중국당국으로부터 거부 통지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 여론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중국의 태도에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환경문제는 감정적인 접근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중국 발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무 성과도 없는 책임공방이 아니라 실질적 문제 해결을 위한 상호협력이라며 우리 먼저 저감 노력을 해서 중국을 설득하자는 말에 난 주목한다. 일부 네티즌들은 반 전 유엔사무총장의 발언에 반감을 나타내고 있으나 냉엄한 국제적 현실을 직시하고 추후 중국과의 협의를 염두에 둔 노련한 외교적 수사라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인재 선택은 매우 잘했다고 본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미세먼지와 싸우는 야전사령관이 되겠다며 강도 높은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세우겠다고 선언한 것 역시 매우 시의적절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慾,勿施於人)이라고 말했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에게는 중국인들의 언어로 반박하면 된다. 일본과의 후쿠시마 수산물 WTO 분쟁에서 우리가 역전승한 것은 큰 목소리가 아니라 냉철한 분석과 논리적 대응이었다. 미세먼지 대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이번 여행의 결과를 덧붙이고 싶다. 미세먼지 걱정에 마스크를 서너 개 준비하고 갔다. 결과적으로 그대로 다시 가져왔다.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청명한 날씨가 나흘간 계속됐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물론 운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잘 눈에 띄지 않던 모습을 하늘에서 발견했다. 거의 모든 빈 땅마다 덮여있는 녹색그물망의 정체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확인해보니 먼지 발생을 줄이기 위해 천으로 흙들을 덮고 있었다. 속내는 잘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중국도 분명 우리의 여론과 국제적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 2022년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고 또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있는 그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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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17 20:16

견제되지 않는 권력의 위기

이강만 한화그룹 부사장 필자의 지난 달 칼럼 화이트, 화이트, 화이트를 흥미롭게 읽었다면서, 독자 한 분이 이야기를 살짝 좀 비틀어서 학동이나 장로님이 아니라 훈장님이나 목사님이 동일한 문제를 일으켰다면 어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땠을까? 학동들은 참으로 난감하였다. 저 훈장님을 어찌 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도 학동들은 한 글자라도 더 배우려고 천자문을 반복해 읊조리고 있는데 훈장은 보료 위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장단 맞추듯 고개를 상하로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눈을 뜨고는 왜 큰소리로 천자문을 외지 않느냐?며 호통을 치시더니 이제는 아예 장침에 비스듬히 기대시는 게 아닌가? 얼마나 분하고 답답했던지 어느 겁 없는 학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훈장님, 저희가 하늘천에서 거칠황까지를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합니까? 며칠째 그리 눈감고 계시는데 주무시려면 댁에 가서 주무시지요!라며 냅다 고함을 질렀다. 고함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훈장은 일순 당황한 기색이 만연했지만 곧 평정을 찾고 태연하게 대답하신다. 성리학의 대가이신 이황 선생님을 잠시 뵙고 왔다 학동들이 수군대며 한번 다녀오시면 될 것이지 왜 그리 며칠씩이나 오가시느냐?고 합창하듯 항변하자 대답이 또한 기가 차다. 퇴계 선생께서 아이들 공부는 스스로 하게 하고 수시로 서로 만나 거대담론을 나누자 하시니 낸들 어찌 하랴 제자로서, 스승이 아무리 도를 넘는 일탈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지적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직접 접근하여 사실관계를 확인하기가 애당초 불가능한 대학자 끌어들이면서 사실을 호도할 경우, 학동으로서는 달리 대응할 방도가 없다. 제가 잠시 꿈에서 퇴계 선생을 만나 확인했는데 훈장님은 아예 오신 적도 없다고 하던데요라며 학동이 위트로 되받아 친다 한들 재치 있다는 말은 듣겠지만 학동의 말에 권위가 생기지는 않는다. 설령 끌어들이는 대상이 쉽게 접근 가능한 분이라 하더라도 그분이 훈장님과 특수관계일 경우 역시 진실은 드러나기 어렵다. 비단 배움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지역공동체에서도, 종교계에서도, 경제활동의 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정치집단이나 권력기관 내에서 하위자가 상급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스스로 불이익을 감수하려고 마음 먹지 않는 한 그냥 혼자 감내할 일이지 선뜻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 일단 말을 꺼내는 순간, 아무리 합리적 의심을 한다 하더라도 그 입증책임은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주장만 난무하고 실체적 진실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 게 다반사인 그쪽 세계에서는 더 그렇다. 혹여 상대가 일말의 양심은 남은 상급자여서 행위는 밉지만 너를 용서하겠노라며 감싸 안아준다 한들 종국에 서로에게 남는 앙금마저 해결해줄 수는 없다. 공익제보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그러니 모든 것에 눈을 감아 버리자. 아니면 그 골치 아픈 일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하게 내버려두자며 문제에 비켜서거나 아예 외면해 버리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말이다. 조직의 위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으니 소통은 사라지고, 쌍방향 소통이 없어진 자리에 일방적 지시와 무조건적인 복명복창이 남을 뿐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견제되지 않은 일탈이 힘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사회에 부조리가 만연케 되고, 결국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상호간의 불신이 조직을 무너뜨리고 만다. 오늘 조용히 생각해 본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필자는 혹시 어떤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뿔난 학동? 당황한 훈장? 어리둥절 퇴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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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10 19:59

인공지능과 소확행

김희관 법무연수원장前 광주고검장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을 통해 우리는 인공지능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모레 5일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5세대 통신 5G서비스가 상용화된다. 5G는 4G(LTE)보다 최대 20배 빠르다고 한다. 인공지능으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빠른 통신인프라를 갖추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날개를 단 셈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법조계에서도 최근 인공지능을 활용한 리걸테크(legal tech)가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리걸테크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기술을 활용하여 더욱 쉽게 법률 업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이다. 국내는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외국에서는 법률상담, 범죄수사, 재판에까지 활용된다고 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 언젠가는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기술이 향후 메가트렌드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삶을 어떠한 방향으로 바꾸어 나갈지 솔직히 필자로서는 알 수 없다. 그에 대한 논의는 미래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다만, 여기에서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인공지능기술이 결코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공지능기술은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얼마 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5천여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연구결과가 최근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유율은 어머니가 100%, 아버지 99%, 아동청소년 76%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어머니가 147분으로 가장 많았고, 아버지 144분, 아동청소년 106분 등의 순이었다. 가히 IT강국다운 통계수치다. 내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고가의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는 친구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친구를 만나면 필자는 편리함은 물론 소확행(小確幸)까지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폰의 똑똑한 기능들에 대해 침을 튀기며 알려 주느라 열을 올리곤 한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해 본다. 나이가 들면 눈이 침침해지면서 문자를 입력하는 것이 어지간히 어렵다. 그럴 때 음성인식기술은 진가를 발휘한다. 문자창을 열고 또박또박 메시지를 말해 주면 스마트폰은 기특하게도 그대로 받아 적는다. 스마트폰의 이 기능을 활용해 일흔이 넘는 어르신들이 책을 출간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고령화시대를 맞이해 스마트폰이 참으로 착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요즘처럼 봄꽃이 만발하는 계절에 스마트폰은 더할 나위 없는 봄소풍의 길동무가 된다. 스마트폰 앱중에는 꽃을 찍으면 그 꽃이 무슨 꽃인지 알려주는 똘똘한 앱이 있다. 인공지능 기반의 영상인식기술 덕분이다. 얼마 전 필자는 동네를 산책하다가 스마트폰을 꺼내 산수유 꽃이려니 하고 사진을 찍었더니 생강나무 꽃이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스마트폰의 과다사용으로 사람간의 소통이 줄어드는 것은 문제지만, 그 중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인공지능 기능을 잘 활용하면 소확행도 누리고 쏠쏠한 재미도 맛볼 수 있다. 4월을 맞이해 이번 주말 스마트폰을 들고 산으로 들로 나가 이제 막 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봄꽃들의 이름을 찾아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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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03 20:47

산수유, 노랑도 동색(同色)인가

손해일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장 3월 꽃샘추위에도 양재천과 우리 마을 근린공원엔 꽃 잔치가 한창이다. 대부분의 수목이 막 겨울잠 깨어 겨우 잎새나 추스를 때지만, 산수유는 잎보다 꽃이 먼저 나와 봄을 재촉한다. 먼저 핀 매화에 뒤이어 노란 산수유가 만개했고, 앞서가니 뒤서거니 홍매와 목련도 이웃해 피었다. 모두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온 별종들이다. 그중 산수유는 지난해의 빨간 열매들을 훈장처럼 매단 채로 올해 노랑꽃들이 활짝 벙글었다. 산수유는 영원불변영원불멸이라는 꽃말과 함께 노오란 꽃잎과 열정의 빨간 열매가 초봄의 전령사로는 으뜸이다. 산수유 꽃말은 영원불멸/눈 깜짝 수유 간에 남가일몽/ 잔망스러운 가지의 노란 유등들// 천국을 본다/ 가을이면 빨간 불꽃 열매 등신불로 남을/ 삼천대천세계 극락을 본다. 이것은 졸시 < 산수유 수유간에> 의 일부이다 산수유 주산지는 구례 산동, 이천 백사면, 경북 의성군이라지만 지리산자락 구례 산동이 더 유명하다. 2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구례군 산동면 상위, 하위, 반곡, 계척, 현천, 대평 산수유 마을과 당곡계곡엔 초봄이 기지개켜는 별천지를 이룬다. 하늘도 훨훨 날고 봄조차 노릇노릇 익는다. 지리산 골짝골짝 살얼음 밑으로 풀리는 돌개울 물소리는 천연 생음악이다. 청보리들이 영원을 손짓하고, 산수유 마을은 별똥별 살별 우수수 쏟아진다. 호오이~ 호오이~ 부르는 소리에 박새 딱새 직박구리 노란턱 멧새도 살갑게 날아든다. 산수유 꽃 한 봉오리엔 작은 화판이 20여 개가 둥글게 달렸는데, 이것은 마치 어린 딸아이 노란 화관 족두리의 떨잠처럼 실바람에 파르르 떨린다. 그 산수유 화판 속에 숨죽인 털실 암술 수술은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산수유와 생강나무, 개나리, 유채꽃, 노랑턱멧새, 노랑나비 등이 나붓나붓 어우러진 노랑 천지에 지그시 눈감으면, 어느새 유녕의 고향이 눈앞에 있다. 꽃샘바람에 사레들린 시간의 미늘처럼 산수유 수유간에 이승이 진다. 고향 춘향골 남원을 떠난 지도 50년이 넘었다. 이젠 서울에서의 뿌리 뽑힌 타향살이가 더 익숙해 졌지만 그래도 늘 꿈결엔 고향산천이 어른거린다. 서울 강남 이곳저곳을 거쳐 20년째 터를 잡은 양재동 우리 동네 인근 청계산, 구룡산, 양재천, 시민의숲엔 지금 노란 산수유 꽃판이 천지빽가리다. 옛말에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 편이라고 했지만, 산수유 노랑도 다 동색일까. 산수유, 개나리,유채, 생강나무 등 노랑 족속들이 이웃해 피었지만 유독 산수유는 노란 꽃판 사이사이 지난해의 빨간 열매를 숨기고 있다. 남과 북,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6자가 모두 노란빛 평화의 기치를 내걸지만, 속내는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산수유가 노랑꽃 사이사이 새빨간 열매를 감추고 있듯이 북한은 노란 위장 평화 꽃사이로 붉은 이념 공산주의를 감추고 있다. 3대 세습 별종 왕국의 위장 평화공세 뒤엔 몇십년 어깃장 내며 몰래 개발한 핵무기가 전 세계의 무법자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잘 될 것처럼 보이던 미국과의 북한 비핵화 협상 줄다리기가 북한의 꼼수 들통으로 결렬되자 각국 이해관계와 셈법도 아주 복잡해졌다. 더욱 궁지애 몰린 건 북한이다. 유엔과 주변국의 대북제재는 더욱 강경해지고 북한주민의 질곡은 심해질 뿐이다. 북한의 강경 오판 도발과 미국의 북폭이라는 촤악의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북한은 배고프고 실속 없는 핵무기 몽니를 부릴 게 아니라 과감한 비핵화 결단으로 행복과 번영의 길로 나가야 한다. 우리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위장평화나 우리 민족끼리라는 허울에 속아 북한의 핵 노예가 되거나 자유 대한민국을 망쳐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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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7 20:42

당신은 최고의 감독이십니까?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세계적인 축구팀들은 모두 최고 수준의 경기장을 가지고 있다. 경기장도 경기장이지만 그 중 축구팬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아마 드레싱룸일 것이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이 서려 있는 그 곳은 팬들에게는 매우 신성시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명문구단들은 이런 팬들의 심리를 이용,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의 로커를 유료로 볼 수 있는 관광상품까지 만들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전북현대도 비슷한 상품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최근에는 대구FC의 새 전용구장이 전 석 매진을 기록하며 지역관광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는 소식은 부럽기도 하다. 그렇다면 선수들에게 드레싱룸은 어떤 곳으로 느껴질까? 최근, 유명한 축구선수 메수트 외질은 자서전에서 나는 드레싱룸이 마치 동굴 같아서 그곳에서 가능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다. 후반 시작 전 15분이 마치 시계가 멈춘 것처럼 너무 늦게 흘렀다라고 표현했다. 왜 그랬을까? 바로 그곳은 감독과 선수들에게는 휴식의 장소가 아니었다. 이기고 있다면 나머지 후반전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클 것이고 지고 있다면 전세를 뒤집기 위한 치열한 전략과 고성, 감정이 표출되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죽어야만 끝나는 대결을 앞둔 콜로세움의 검투사들에게 대기실은 곧 이 세상에서 마지막 거쳐 가는 지옥의 관문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시절 외질은 조제 무리뉴 감독이 상대팀에 두 골을 앞서고 있는데도 하프타임에서 자신을 강하게 질타하자 감독님이 정말 그렇게 대단하면 직접 나가서 뛰지 그래요?라고 반발했다고 한다. 무리뉴는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뭐냐? 따뜻한 물에 샤워라도 하고 싶어? 가서 샤워나 해라. 우린 네가 필요없다. 넌 지네딘 지단이 아니야! 알아? 비슷한 수준조차 되지 못해! 후반전을 앞두고 축구화를 벗어 던지고 샤워실로 향했던 그는 나중에야 감독이 자신이 유일하게 가장 존경했던 지단을 빗대 강한 자극을 줬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음을 책에서 고백했다. 어릴 적 터키계 독일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빈민가에서 끼니 걱정을 할 정도로 힘들게 자랐던 외질이 축구로 큰돈을 번 후 오히려 가족 간의 갈등, 소속 구단과의 마찰로 어려움을 겪을 때 무리뉴는 이렇게 충고 했다고 한다. 축구는 내게 모든 걸 줬다. 그러나 축구는 내게서 모든 걸 가져가기도 했다. 라고......, 멘유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경은 헤어드라이어라는 별명을 가졌다. 경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드레싱룸에서 선수들을 향해 격하게 쏟아내는 고성 때문에 선수 머리카락까지 휘날리게 한다고 해서 지어준 것이다. 퍼거슨은 한 강연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내 선수들을 올드 트래포드에 내보내면 나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매 경기마다 이긴 건 절대 아니다.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늘 이기고 싶었고 이기려 노력을 했다. 그러나 절대 하지 않은 것이 있다. 포기를 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투지는 절대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마지막 15분간 넣은 골은 2백번이 넘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그것도 실력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드레싱룸과 같은 공간을 만난다. 문제는 감독의 조언과 질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여부다. 애정이 담긴 말이 사람을 움직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인생의 감독님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나는 과연 지금 누군가에게 존경받는 감독이 되고 있나 반문해 본다. 인간성 심리학자 에릭 번은 과거와 타인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되는 미래와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다.라고 말했다. 책임 떠넘기기와 지적이 난무하는 요즘 시대에 잘못한 사람을 가리느라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기보다 그 에너지를 나 먼저 변화하고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 시간으로 사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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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0 20:42

화이트, 화이트, 화이트

이강만 한화그룹 부사장 세상에 난무하는 새빨간 거짓말이 아닌, 세 하얀 이야기를 오늘은 해보려 한다. 먼저 하얀 날, 화이트 데이 얘기다. 요사이 편의점, 슈퍼, 제과점을 지나칠라치면 인도 쪽으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진열대 위 선물들이 유난히 눈에 띄곤 한다. 겉으론 무심한 척 하면서도 모두들 화이트 데이가 임박했음을 안다.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어깃장을 놓을 생각이 있는 것은 분명 아니면서 이번에도 필자에게 꼰대 정신이 발동한다. 이 또한 일본인들의 상술이니 눈 부릅뜨자고 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쏟아질 젊은이들의 냉소가 두렵다는 게 또 꺼림칙하다. 사랑하는 이들이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을 하고, 그래서 아들 딸을 낳으면 참 좋은 일이다. 인구절벽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는 더욱 더 그렇다. 다만 하필 여기다 화이트라는 단어를 갖다 붙였는지 그게 개운치 않을 뿐이다. 차라리 속삭임 날이나 고백의 날 정도로 명명했으면 좋았을 것을... 어렸을 때부터 백의민족에 인박여 살아 온 기성세대로서는 순백의, 결백한, 정직한이라는 느낌을 주는 화이트라는 단어가 이런 상술에 맥없이 소비되는 게 영 마뜩잖아서다. 두 번째는 옛날 이야기다. 긴 겨울 밤, 온 종일 얼음 지친 노곤함으로 눈꺼풀이 연신 내려 앉으면서도 이야기꾼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듣던 얘기 중 하나다. 훈장님은 참으로 난감하였다. 저 고약한 녀석을 어떻게 혼내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도 다른 학동들은 큰 목소리로 천자문을 따라 읊고, 열심히 붓을 휘둘러대는데 유독 그 녀석만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아닌가? 혼낼 요량으로 불러내어 뭣 때문에 한나절을 꼬박 졸고 있냐고 다그쳤더니 대답이 걸작이다. 훈장님이 그토록 존경하시는 공자님을 뵙고 왔다는 것이다. 뵀으면 바로 올 것이지 왜이리 늦었냐고 채근하자 점입가경이다. 훈장님처럼 그분도 훈화말씀을 하도 길게 하셔서로 응수한다. 학동의 대답을 좋게 보면 선의의 거짓말, 즉 화이트 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훈장님으로서는 그냥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따끔히 혼내줄 방도를 찾아내야만 한다. 오늘의 세 번째는 머리가 하얘지는 이야기다. 어느 목사님이 털어 놓은 고민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장로님 한 분이 꼭 딴지를 거는데, 그것도 신성한 하나님을 들먹이면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경우다. 소외된 이웃 지원사업으로 관내 복지원 지원을 결정하고 그 지원방법을 논의하는 과정에, 불현듯 교회 내에서도 어려운 사람이 많으니 이미 확정된 복지원 대신 그 장로님과 친분인 있는 특정인을 지원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는 식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본인에게 그리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듣고 있는 다른 분들은 머리가 하얘진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데 목사님이든 다른 장로님들이든 그분의 주장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반박하기가 참 난처했으리라. 그렇다고 건건이 그분의 주장을 따르자니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참 난감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 장로님을 말릴 방법은 없는 것일까? 천만에. 목사님은 조만간 훈장님의 이야기에서 묘안을 찾아낼 것이다. 훈장님은 그 이튿날도 동일한 레퍼토리로 거짓을 고하는 그 어린 학동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먼저 꿀밤을 제대로 한방 먹이시고는, 근엄하게 일갈하셨단다. 떼끼, 이 녀석아! 어찌 그런 거짓말을 하느냐? 좀 전에 공자님을 뵙고 왔는데, 최근에 널 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하시더라. 다음부터 공자님을 뵈러 갈 때는 꼭 미리 얘기하고 가거라. 아니면 나랑 같이 가든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어찌 되었든 오늘은 화이트 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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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3 20:55

3·1운동과 애국심

김희관 법무연수원장前 광주고검장 100년 전 3월 1일, 한민족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우리가 자주독립국가임을 세계만방에 천명하였다.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사상가 천두슈는매주평론에 기고한 글에서조선의 독립운동은 위대하고, 간절하며, 비장했다. 민의에 따르되 무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세계 혁명사에 신기원을 열었다. 조선운동의 영광스러움을 보며 우리 중국인들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수치를 느끼게 된다며 31운동을 극찬하였다. 정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유관순 열사에 대한 공적을 재심사하여 최고 등급 건국훈장인대한민국장을 추가 서훈하였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기록원은 인터넷을 통해 약 1만 9000건의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판결문을 읽으면서 그녀가 얼마나위대하고, 간절하며, 비장하게 만세운동을 이끌었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겨우 17세인 어린 소녀의 애국심과 50세를 훌쩍 넘긴 필자의 애국심의 무게를 저울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 앞에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31절 연휴 동안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친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려고 나름 노력했다. TV에서는 가급적 31절 특집 다큐멘터리에 채널을 고정시켰고, 책장에서 잠자던 독립운동가들의 책들도 꺼내 읽었다. 내친 김에 집에서 멀지 않은 안창호 선생을 기념한 도산공원에도 가보았다.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했다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 앞에 선 나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춘원 이광수는 도산의 전기에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이광수가 도산 사후에 선생께서 머물던 평양 부근 산장을 찾았는데, 산장가는 길 양쪽에 있는 돌들이 하나같이 누워 있지 않고 서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후손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도산 선생께서 돌들이 서 있는 것을 보면서 나라도 독립해야 한다는 뜻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일부러 그렇게 세우셨다는 것이었다. 애국심은 학창시절 바른생활,도덕,국민윤리수업시간에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단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애국심이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애국심을 들먹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취급받게 되었다. 비록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독재정권 시절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악용된 측면은 없지 않으나 그렇지만 애국심이야말로 국가의 존립과 발전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애국심이라는 용어가 좀 그렇다면 공동체의식이라 불러도 좋다. 미국인으로 한국에 귀화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는 그의 책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에서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공동체의식의 부재를 꼽았다. 그의 뼈아픈 지적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오늘날 한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북한도, 경기 침체도, 특정 정치인의 행태도 아니다. 가장 큰 위협은 문화적 데카당스(decadence)의 확산이다. 이처럼 퇴락하는 문화 속에서 개개인은 공동체의 미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생각 없이 음식, 술, 성적 쾌락, 휴가와 스포츠에 탐닉한다. 단기적인 만족을 인생 목표로 삼으며 희생의 가치는 평가 절하한다. 이런 게 전형적인 퇴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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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06 20:23

노벨문학상 추천하는 국제PEN한국본부

손해일 국제 PEN한국본부 이사장 매년 가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때가 되면 한국인들은 마음이 착잡해진다. 이번엔 혹시우리가 받으려나 하는 기대감에 들뜨다가 막상 발표되면 역시나 하는 실망과 열패감 때문이다. 그나마 지난 몇 년간 수상자 단골 후보라고 매스컴을 장식하던 우리의 원로작가 한 분은 미투 추문으로 낙마해서 안타깝다. 상은 그냥 상일 뿐인데도 노벨문학상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의 심리는 남다르다. 우리나라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데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몇 가지 있다. 100년 남짓 일천한 우리 현대문학사를 논외로 치더라도 우리 현대문학의 수준이 결코 낮아서는 아니라고 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국력도 그렇지만 문학부문에 대한 정부의 종합적인 지원서비스 부족과 번역시스템 미비가 최대 관건이다. 또한 세계인의 공감을 살만한 훌륭한 작가와 작품의 집중 선정과 번역 문제, 자비출판 등으로 어렵게 번역한 후에도 세계 출판 독서시장으로의 홍보와 유통부족도 문제이다. 게다가 매년 문화예술분야 전체 예산중에서도 극히 미미한 문학부문 예산을 보면 노벨문학상을 운운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국민들의 무지와 막연한 기대감도 고려 대상이다. 한국내에서 유명작가라거나 한국어로 글만 잘 쓴다고 노벨상을 받는 게 아니다. 우선 세계인이 공감하는 주제로 스웨덴어를 포함한 5개 언어 이상으로 작품이 번역된 역량 있고 주목받는 작가라야 한다. 일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오에 켄자브로 2명, 중국은 모옌 1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작년 2018년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었다. 주최측인 스웨덴 한림원의 특수사정 때문이다. 소식통에 의하면 종신직인 노벨문학상 선정위원이 18명인데 카타리나 프로텐손이라는 여성 선정위원의 남편이 성폭력 미투사건으로 여러 여성들에게 고발 당하고 이에 연루된 선정 위원 몇 명이 추가 사퇴함으로써 심사 자체가 불발됐다는 것이다. 1901년에 노벨상이 제정된 이래 전쟁 등 외부 상황이 아니라 주최측 내부사정으로 수상이 불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작년 것을 포함해 올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2명 낸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한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국제PEN한국본부에 한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각국 PEN은 매년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노벨문학상 추천의뢰를 받고 있는데, 한국PEN도 공식 추천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에게 PEN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부 문인들 중에도 PEN을 아이돌 가수들의 팬클럽이라거나, 펜팔클럽, 펜문학회 등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 유일한 세계 문인단체요, 인권단체인 국제PEN은 P(시인 Poet, 극작가 Playwright), E(수필가 Essayist, 편집자 Editor), N(소설가 Novelist)의 약자이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PEN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존 골즈워디를 초대 회장으로 1921년에 창립되어 현재는 전세계에 154개 센터가 있다. 1954년에 창립된 국제PEN한국본부도 그중 하나이다. 필자가 2년 전 제35대 한국PEN이사장에 당선되어 주력하는 분야가 한국문학의 세계화이다. 매년 각국 PEN센터와의 교류와 4회째의 세계한글작가대회 개최, 2년째 펜회원 영문 대표작 선집을 발간한 바 있다. 특히 올 1월 28일에는 을 창립하여 영불독스페인스웨덴아랍어 중국어 등 9개 번역위원회를 구비하고 펜회원들의 대표작들을 집중 번역하려 한다. 목마른 자가 우물파는 격으로 아직 미미한 시작에 블과하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관련기관과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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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27 20:08

야동이라는 이름 뒤에 숨지말라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거리를 지날 때마다 마치 누군가 저를 알고 쳐다보는 것 같아 수치심과 공포감이 밀려옵니다. 진짜 할 수만 있으면 죽고 싶습니다. 제발 좀 빨리 삭제 부탁드립니다. (A씨 50대 남성, 2014년 9월부터 최근까지 7,570건 신고) 남자친구와 생일 파티 때 장난삼아 찍었던 동영상이 이렇게 사이트에 돌아다닐 줄은 몰랐어요. 지금은 이름도 바꿨지만 끔찍한 기억만큼은 지우지 못해요.(B씨 20대 여대생, 2014년 1월부터 4,034건 신고) 지우고 지워도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삭제해달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속차단을 신청하는 피해자들의 사례다. 이는 매일 민원창구에 쏟아지는 여러 요청 중 일부에 불과하다. 피해 대상자가 여성들만 있을 것 같지만 착각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보안을 위해 가정집에 설치한 웹캠이나 공공시설의 CCTV는 실제로 해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초기 비밀번호 설정이 허술한 점을 악용, 일반인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동영상이 작년 10월 해외 사이트에 버젓이 올라가는 일도 발생했다. 하지만 접속차단에도 불구하고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이런 불법 동영상들은 HTTPS://(보안프로토콜)방식으로 여전히 인터넷 공간을 떠돌고 있다. 이는 얼마든지 전 국민이 몰카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기존 URL 차단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방통위가 SNI(Server Name Indicaton)필드 방식을 추가적으로 도입하게 된 것이다. 작년 한해 방통심의위에 들어온 시정요구 건은 23만 8천여 건이다. 하루 평균 653건이 들어온다. 2014년도 보다 요청 건수가 3배나 늘었다. 이 중 디지털성범죄는 1만7천 건으로 하루 평균 48건의 심의 요청이 들어온다. 같은 기간으로 보면 10.4배나 증가했다. 야동(야한동영상)이라는 편한 이름으로 유포되는 불법 음란물을 누군가는 재미로, 호기심으로 보는지 모르지만 당사자가 되면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절박함으로 다가온다. 언론은 물론 아이들, 어른 할 것 없이 이제는 야동**라는 근엄한 원로탤런트 이름까지 붙여 부를 정도로 야동이라는 표현이 일반화되어 쉽게 사용 된다. 하지만 정확하게 얘기하면 19세 성인인증만 하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성인물 등은 불법정보가 아닌 청소년 유해정보에 해당하며 시정요구 대상도 아니어서 누구나 즐길 자유가 있다. 문제는 남녀의 성기 음모 또는 항문 등 특정 부위 또는 성적 행위를 노골적으로 표현 또는 묘사하는 내용의 사이트나 동영상은 현행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상 명백한 불법음란물에 해당한다. 더 나아가 디지털성범죄 불법촬영물은 타인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범죄물이지만 정보통신 기술발전에 따라 차단이 미흡한 문제점이 발생되어 작년에 국회와 시민단체, 언론까지 나서 차단 방식 개선을 요구해왔고 방통위가 SNI 필드 접속 차단방식을 추가한 것이다. 물론 SNI차단 기술은 불법 사이트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으며 이미 우회기술을 이용한 회피법이 포털사이트 등에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도 일부는 검열,표현의 자유 등을 주장하는 항의 전화를 하거나 글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내용심의를 담당하는 우리 직원들로서는 이번 조치 이후 걸려온 한 여성 피해자의 전화내용을 공유하며 조금은 위안을 삼는다. 이번 정부 발표이후 처음으로 편한 밤을 보냈습니다. 제가 사는 동안 제 동영상물이 완벽하게 차단되지는 않겠지만 이 사회 누군가 제 편이 있다는 위안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표현의 자유나 통신의 검열 여부 등은 얼마든지 국민적 공론의 장에서 숙고할 문제지만 최소한 야동이라는 이름아래 지금도 쉽게 공유되며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불법 촬영물은 끝까지 추적해 막아야 하지 않을까?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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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20 21:25

아, 2월 14일

이강만 한화그룹 부사장 어느 여름 날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식민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을 때, 세르비아의 이름 없는 한 청년이 슬라브의 이름으로 게르만 지배자를 총으로 저격했다 정치인에서 소설가로 변신한 신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에서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익히 알다시피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필자는 여기서 불현듯 기시감을 느꼈다. 바로 이거다. 어느 가을 날 일본의 추밀원 의장 이토가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를 만나러 만주 하얼빈을 방문했을 때, 대한의군 참모중장인 안중근이 대한의 이름으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저격했다 그냥 데자뷰가 아니라 실재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교통도 통신도 발달하지 않은 그 시기에 아시아 동쪽 끄트머리에서 보여준 한 열혈청년의 기개가 바람에 실려가기라도 하듯 발칸반도를 추동한 것이리라. 게르만 지배자의 저격사건이 있기 5년전인 1909년, 사라예보로부터 7,815킬로미터나 떨어진 아시아에서 똑 같은 일이 이미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올해는 2.8독립선언, 3.1운동,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나라 전체가 각종 기념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온 국민이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매스컴에서도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뿐 아니다. 올해 개교 100주년을 앞둔 도내 장계초, 조촌초, 풍남초, 고창중고, 전주고 등에서도 전통을 이어가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달포 전 서울 프라자호텔에 필자의 모교동문 500여명이 모여서 창의인재육성센터 건립을 위한 모금활동을 서로 독려한 것도 그 한 예다. 온 백성이 한마음으로 독립만세 운동을 벌이고, 이국 땅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독립된 조국을 이끌어 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교를 세우는 일들이 1919년 전후에 주로 이루어졌는데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이 일련의 일들이 어찌 보면 애국지사 안중근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 안중근 하면 흔히 연상되는 단어가 하얼빈이나 이토 히로부미이지만 필자에게는 언제부턴가 조마리아 여사다. 두 모자를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고 당시 아사히 신문에서 언급했을 정도로 그녀는 당차고 의기로운 여장부였다. 1910년 2월 사형 선고를 받은 장남 안중근을 면회 가는 두 아들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전한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하여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전해 듣는 아들의 심정도 어머니 못지 않게 비통했겠지만 안중근은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의연히 죽기로 결심하고 항소를 포기했고, 사형 선고된 지 40여일만에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다. 아, 2월 14일! 오늘이 바로 일제가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날이다. 그런데 정작 요즘 대다수가 기억하는 2월 14일은,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한 그 일제의 어느 제과업체가 상술의 일환으로 만든 국적불명의 발렌타인데이가 아닌가? 오늘 초콜렛을 먹든, 사랑을 고백하든 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조마리아 여사가 끝내 전하지 못했을 말이 지금 이순간 필자의 귓전에 맴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사형선고 소식이 내겐 피를 토하는 고통이다. 허나 대한의 만백성이 세세토록 이 날을 기억하리니 너나 나나 너무 원통해 말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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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3 19:55

세상에서 가장 거창한 꿈

김희관 前 광주고검장법무연수원장 구정을 앞두고 선배님 한 분이 카톡방에 퀴즈를 올렸다. 최근 국내외 연구진들에 의해 신체노화와 각종 성인병의 치명적인 원인이 되는 것으로 밝혀진 이 위험한 음식은 무엇일까. 정답은 떡국이다. 이유는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먹게 되기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날 아침 필자는 무모하게도(?) 떡국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웃자는 이야기지만 이 아재개그를 들으면서 불현듯 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김종길의 시 설날 아침에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그러면서, 스스로 묻는다. 나는 과연 50이 넘는 나이를 먹어 오면서 좀 더 착하고 슬기로워 졌는가라고.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축복하고 서로 덕담을 나눈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는 가장 많이 주고 받는 신년 덕담중 하나이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안타깝지만 진실은 불편한 법, 어김 없이 우리는 새해에도 어려운 일들과 힘겨운 상황들에 맞닥뜨릴 것이다. 인생은 해석(解釋)이다. 이것은 필자가 나이를 먹으면서 체득한 지혜이다. 젊었을 때는 온도계같은 삶을 살았다. 외부의 환경과 여건이 추우면 내 마음의 수은주는 내려갔고, 따뜻하면 올라갔다. 그런데, 나이를 더해 가면서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그것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며,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은 결코 상황의 노예가 되어 인생의 수레바퀴에 질질 끌려 다니지 않는다. 현실은 시커먼 먹구름이지만 그 너머에 여전히 태양이 빛나고 있고, 얼음장 밑에서도 물고기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늘 되새기려 노력했다. 삶속에서 만나는 숱한 어려움과 문제들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다듬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변장한 축복임을 깨닫게도 되었다. 필자가 좋아하는 영국 영화배우 콜린 퍼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킹스맨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다. 이전의 나보다 나아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고귀한 것이다.(There is nothing noble in being superior to your fellow man, true nobility is being superior to your former self.) 소설가 헤밍웨이의 말이다. 진정한 비교는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어제의 나와의 비교이다. 인간이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개선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새해 벽두에 필자는 소박한 꿈을 꾼다. 2018년의 나보다 2019년의 나가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그런 꿈이다.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필자의 아내가 가장 불만스럽게 느끼는 나의 모습중 하나를 좀 더 낫게 고쳐 나가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나를 바꾸어 보겠다는 필자의 꿈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도 더 실현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가장 원대하고도 거창한 꿈이리라. 여러분도 새해를 맞이하여 이같은 꿈을 꾸어 보지 않으시겠는가. 늘 인상을 쓰고 웃음에 인색하다면 의도적으로 미소짓는 연습을 하고, 말투가 사납다면 상냥하게 말하는 훈련을 하고, 가족에게 화를 자주 내는 편이라면 하루 한번 화 대신 억지로라도 칭찬하는 연습을 하자. 그리하면,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나로 바뀌는, 인생의 진정한 성공을 맛볼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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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06 18:46

밴댕이, 꼴뚜기, 말짱 도루묵

손해일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세상에 억울한 일들이 어디 한 두가지랴만 아무 잘못도 없는데 누명을 뒤집어쓰는 것만큼 분통 터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신문고를 두드리다 못해 종국엔 죽음으로 결백을 주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간사가 이럴진대 동물 세계에서는 더 말해 무엇하랴. 약육강식의 냉엄한 정글법칙아래 재수 없어 잡아먹히면 그만이고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다. 동물중에는 주로 개, 돼지, 쥐 등이 그렇고, 물고기 중에는 밴댕이, 꼴뚜기, 도루묵이 그런 경우일 것이다. 오뉴월이 제철인 밴댕이는 내장이 작아서 그물에 잡히면 부르르 떨다 제풀에 즉사하니 싱싱한 활어맛은 보기 어렵다. 그래그런지 옛날부터 잘 삐지는 속좁은 사람을 밴댕이 소갈머리라 고 흉보고 경멸해왔다. 밴댕이의 태생이 그러할 뿐 인간의 인격과는 아무 상관도 없을진대 밴댕이로서는 진짜 억울한 누명이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도 삼가해야 할 것이다 너무 맛있게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게 가을전어라면 봄철엔 밴댕이가 그몫이다. 조선조땐 밴댕이를 소어(素魚)라 불렀고, 소어젓은 수라상 단골메뉴라 명나라 황제 진상품에도 뽑히고, 경기도 안산에는 밴댕이를 관리하는 소어소도 있었다고 한다. 낚시광 정조대왕은 밴댕이를 최고의 하사품으로 삼았고, 이순신의 <난중일기>엔 밴댕이젓을 모친께 보냈다는 기록도 있고보면 밴댕이는 여간 귀물이 아니다. 밴댕이는 철분이 많아 한 마리에 횟감 딱 한 점씩을 깻잎에 싸먹거나 밴댕이무침, 밴댕이 완자탕, 밴댕이구이로 먹으면 피부미용과 정력, 골다공증에 특효라니 밴댕이 소갈딱지가 뭐 어때서?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킨다는 꼴뚜기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작고 뭉툭한 몸길이 6~7cm에 숏다리라 좀 볼품이 없긴 해도 많은 생선중에서 하필 자기가 지목된 게 화가 난다. 사촌격인 한치, 오징어, 문어는 오히려 각광을 받고 있지 않은가. 연체동물인 꼴뚜기는 화살꼴뚜기과의 두족류(頭足類)로서 먹골꼴뚜기와 참꼴뚜기로 분류된다. 경상도 방언으론 호래기라 불리고, 옛문헌 <재물고> <물명고>에는 골독어(骨獨魚), <사류박해>에는 망조어(望潮魚)로 불리니 그리 나쁜 이름도 아니다. 꼴뚜기는 3월이 산란기인데 4~5월에 집어등으로 유인해 그물망으로 잡고 주로 젓갈로 담아먹는다. 도루묵은 또 어떤가. 대체 도루묵이 뭘 잘못했기에 말짱 도루묵이라고 뒤집어 씌우는가. 동해안 근해 속초 동명항, 양양 물치항, 수산항 등이 집산지인 도루묵은 겨울철 냉수성 어종으로 목어(木魚)라 불린다. 입안에 톡톡 터지는 알맛, 연하고 담백한 살맛이 겨울 별미지만 팔자가 좀 기구하다. 수십년전 필자가 강원도에서 군복무땐 군대 짭밥 반친으로 흔하게 나온터러 그리 대접받는 생선도 아니었다. 조선조 선조때왕께서 임진왜란 허기진 피난길에 도루묵을 진상 받고선 그 맛에 반하여 앞으론 이 생선을 은어(銀魚)라 부르라고 특명을 내리셨다고 한다. 그러다 난리가 끝나고 도루묵을 대령하라 일렀는데 그맛에 실망해서 도로 묵이라 하라고 내치셨다. 예로부터 잘나고 귀한 건 은어요 못나고 흔한건 묵인데 도루묵은 특급 승진했다가 도로 강등된 것이니 좋다 말았다. 그러나 물고기 팔자도 시간문제다. 근래엔 도루묵이 일본 원폭피해와 백혈병에 특효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다시 금도루묵 귀하신 몸이 되었다. 일설엔 말짱 도루묵이란 오명은 사자성어 도로무익(徒勞無益) 즉 열심히 노력했으나 소득없이 헛일만 했다는 말과 발음이 유사한데서 오는 착각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필자는 억을한 누명을 쓰고서도 속수무책인 밴댕이, 꼴뚜기, 도루묵을 변론하기 위해 물고기나라 신문고를 두드린다. 속좁고 몰지각한 인간들이여! 경고하건대 앞으론 절대 물고기 핑계로 누명 씌우지 말고 제발 너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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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30 19:30

상상력의 장인들과 타임머신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벌써 1월이 다가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하루하루는 긴데 한 달, 일 년은 금방 간다. 인간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는 과학적 이유는 기억력과 연관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 많아서 장면 하나 하나를 기억한다. 뇌 속에 프레임으로 저장되는 장면이 많아서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반면 나이가 들면 생활의 변화가 줄어들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개별 프레임이 아니라 덩어리로 기억된다. 기억이 단순화되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한다. 1985년 전 세계 극장가에 큰 화제를 모은 영화중에 빽투더퓨처라는 작품이 있다. SF영화의 대가 스티븐 스필버그 사단이 제작을 맡은 이 영화는 시간여행 영화의 전설이자 80년대를 상징하는 고전 어드벤처 작품이다. 1989년과 그 이듬해 각각 2,3탄이 발표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지난 연말 집에서 30여 년 만에 시리즈 3편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영화를 감상하는 방식의 차이라면 예전에 극장에서는 스토리에 집중했지만 이번에는 영화 배경에 나오는 소품과 영화가 그린 미래의 모습들이었다. 특히 내가 놀란 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펼쳐지는 2편이 설정한 배경이 2015년이었다는 사실이다. 먼 미래처럼 느껴졌던 상상 속의 시대배경을 우리는 30년이 지난 지금 현실 속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하늘을 나는 자동차, 쓰레기, 폐기물을 이용한 융해에너지, 성형과 장기교체, 홀로그램, 무인상점, 드론, 호버보드, 벽걸이형 스마트 TV,스마트 안경, 지문인식도어, 화상전화 등은 이미 우리 곁에 와있다. 영화인들의 상상력에 고개가 절로 숙여질 뿐이다. 영화탄생 30년을 기념, 지난 2015년 10월 21일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전 세계에서 재개봉된 것도 리스펙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본다. 국내 최대 통신사 임원과 얼마 전 만나 이 영화를 주제로 얘기하면서 한 가지 조언을 했다. 젊은 직원들을 포함해 전 임직원들이 이 영화를 다시 보고 AI 등 또 다른 미래를 그린 최근의 영화를 감상 한 후 얘기를 나눈다면 비즈니스측면에서 다양한 사업거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고 했더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화답했다.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온 사회 각 분야가 고민 중이다. 그 답은 미래가 아닌 과거에서 찾아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읽은 책 중에 모스에서 잡스까지는 상상력의 장인들이 펼쳐온 정보통신 혁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 신동흔은 정보통신 산업의 태동기와 지금을 비교하면 기술에서의 격차는 매우 크지만, 상상력에 있어서는 옛 사람들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유명한 발명가들이 모두 과학자나 공학자였던 것도 아니다. 전신을 발명한 모스는 초상화가였고, 전화를 발명한 벨은 장애인 학교의 교사였으며, 잡스는 인도의 종교와 디자인에 빠져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적었다. 특히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도, 제약 없는 소통의 미래를 꿈꾼 과거의 아이디어 덕분에 맞이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백년을 살아보니 라는 수필집을 쓴 철학자 김형석 교수나 80대 중반에도 여전히 디지털 기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이어령 교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항상 호기심을 잃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시간은 주어진다. 성실한 노력과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사실을 석학들은 상기해주고 있다. 새해의 각오를 다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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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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