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중심, 전북을 꿈꾸며
전북의 중소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곳을 떠난 지 36년이 지났다. 한 두 달에 한번 씩 고향을 방문하면 마음이 포근해지고 아련한 추억에 눈시울도 뜨거워진다. 하지만 어렸을 때 본 산천은 변함이 없는데 내가 알던 그 친구들은 그곳에 없다. 고향을 떠나 타향을 헤매지 않고 고향에 터를 잡을 수 는 없을지,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내가 고향을 떠나 지금까지 한일은 과학기술을 육성하는 일이다. 난 과학기술에서 우리 고향의 미래를 보고자 한다. 세상은 보이는 것과 실제 움직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돈이고 권력인 것처럼 보이나 실질적인 움직임은 작은 연구실험실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지금의 사는 방식과 지금의 생각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인류 전체에 펴지고 있다. 좋던 싫던 간에 사고와 생활방식에 피할 수 없는 변화가 오고 있으며, 불안과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답을 주진 못하지만 변화, 불안, 기대, 이 모든 것이 어느 한 곳을 지적하고 그것이 변화의 핵심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이 힘을 얻기 시작한 시기는 근대 이후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사고의 혼돈과 갈등이 가장 컸던 시대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이다. 이때 사람들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과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하는 세계관의 혼동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종교개혁, 인문학 발달, 과학적 발견 등 기존의 사고체계를 송두리 체 흔드는 일들이 많이 발생했다. 수많은 혼동과 갈등에서 그나마 종지부를 찍고, 마지막 결론에 이르게 한 한마디는 데카르트의 I think, therefor I am이라고 생각한다. 신의 섭리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인간의 이성의 시대를 여는 핵심 선언이다.
중세 종교적 삶의 근거로 신의 말씀이 있었다면 근대이후 인간의 이성적 판단 근거는 무엇일까? 철학, 역사, 자본, 인간심리, 사회정의 등 많은 근거들이 탄생하고 지지를 받았으나 현재 최후의 승자는 과학이 아닐까. 과학적 근거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것과 동일시되고 이러한 믿음이 점점 더 큰 힘을 갖게 되고 있다. 과학은 사회에서 가치 판단의 근거 또는 증거로서의 지위를 획득했고 과학적 사고가 합리성과 동일시되면서 건전한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으로 간주되었다. 자본, 노동, 정치적 권력, 철학적 가치, 법 등도 큰 힘을 가졌다고 보지만 그 힘도 과학적 합리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그 권위를 잃을 수 있다. 특히 위기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변화의 중심에 과학이 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양면성도 있다.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여 적절하게 활용하면 엄청난 긍정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으나, 잘못 활용되면 인류에 큰 해를 줄 수도 있다.
이제 우리 전북도 과학기술의 긍정적인 측면을 최대한 활용하여 안전과 풍요를 동시에 얻어야 한다. 번듯한 연구소 하나가 지역의 지속가능발전을 가능하게 하고, 과학자 한명이 지역을 먹여 살리며, 과학적 농업이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고, 과학에 근거한 전통문화가 전북의 품격을 높여준다. 과학에 근거한 행정과 정치는 효율성을 높이고, 과학에 근거한 사회 문제해결로 주민의 불만을 줄여줄 수 있다. 이제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이석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성과평가정책국장 △이석래 국장은 제40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남원 성원고서울대를 졸업하고 현재 한양대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정책학을 전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