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1-28 23:04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타향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교육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한국의 고립·은둔 청년 규모를 총인구의 0.5% 수준인 24만명으로 추산한 바 있다. 은둔형 외톨이는 집에 틀어박혀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일본은 150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서울연구원은 2050 서울의 미래를 전망하면서 탈(脫) 관계화된 축소사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1인가구와 비혼가구가 급증하고 개인가치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는 데서 그 근거를 찾고 있다. 이러한 초(超) 개인주의화는 사회적 고립과 소외로 이어져 탈사회화를 진전시키고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약화시킨다. 과거보다 더 풍요롭고 편리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왜 스스로를 세상과 분리해 은둔하는 삶을 사는 걸까? 필자는 결과를 중시하고 실패에 관대하지 못한 사회문화 못지 않게 우리의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과 학과가 서열화된 사회에서 대학은 삶, 기회, 지위를 결정한다. 대학입시가 초·중·고 교육을 압도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낙담하고 불안해한다. 심리적 압박이 커 비판에 민감하고 지나치게 자기 비판적이며 실패를 두려워한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진단이다.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고밀도, 고경쟁, 고학력 사회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 승자 독식 문화가 싹트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해로운 크랩 멘탈리티(crab mentality)가 자리를 잡는다. 개인간 경쟁의 심화는 공동체를 위한 협력의 기회와 사회 전체의 상호이익 감소로 이어진다. 성공한 사람을 질투의 대상으로 보는 것도, 자신의 삶이 불행한 이유를 외부 환경에서 찾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이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은둔형 외톨이를 양산하는 탈관계화된 축소사회와 초개인주의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더불어 사는 지혜 즉, 사람을 이해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있는 민주시민으로 키워내는 교양 중심의 교육이 필요하다. 교양이 없는 사회보다 위험한 사회가 없다는 말이 있다. 교양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도,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리더와 전문가에게도 중요한 덕목이다. 평범한 시민에게도 교양이 요구된다. 교양의 힘은 자기성찰과 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갖게 하는 데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교양이야말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견인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편리함과 효용성을 중시하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어 자칫 교양이 거추장스럽고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이미 정해진 삶의 늪’에서 미래세대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초·중·고는 물론 대학 교육까지도 교양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 교양 기반의 교육을 통해 세계와 사람을 이해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지혜를 가진 시민으로 키워내는 일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은 오직 시험과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 전부인 작금의 교육 현실에 대한 커다란 도전이다. 그러나 입시학원의 도움으로 좋은 성적을 얻는 학생을 대량 생산하는 것은, 어느 정치학자의 표현처럼, 경쟁 국가의 병정을 훈련시켜 유능한 노동력을 키울 뿐 교양을 갖춘 교양있는 민주시민을 기르는 일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다가올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고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서순탁(서울시립대학교 교수, 前 총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6.26 16:15

Thinker in Residence 전북을 꿈꾸며

지난해 한 달간 춘천에 머문 적이 있다. 6개월간 연구 연수를 맞아 지역살이를 기획했는데, 춘천문화도시센터가 받아들여 나를 춘천으로 초대했다. 프로그램은 Thinker in Residence. 오스트리아에서 시행한 이 사업은 말 그대로 연구자들에게 지역에 머물며 연구하고 거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술가 레지던스의 연구자 판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내가 지방의 모 연구원에 제안했던 것이다. 특정 분야에 집중된 정부연구원과 달리 여러 분야를 연구해야 하는 지방연구원 여건상 연구인력이 부족하기 마련인데, 나처럼 연구 연수를 하거나 잠시 쉬며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자를 불러들여 지역을 연구하도록 하면 어떻겠냐는 게 내 제안이었다. 당시 그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춘천문화도시센터가 흔쾌히 받아들여 첫 Thinker in Residence를 진행했다. 처음 살아본 춘천은 참 매력적이 도시였다. 아침마다 뿌연 안개를 피워내는 의암호는 춘천을 신비롭게 만들었고, 봉긋이 솟아올라 춘천을 조망하는 봉의산은 어머니처럼 늘 푸근했다. 마주 선 석사천은 시민들의 놀이터로 다양한 활동의 공간이었고, 그 안에 형성된 도시는 다양한 먹거리로 꽉 채워져 있었다. 오죽했으면 SNS에 ‘닭갈비만 포기하면 춘천의 맛이 보인다’라고 했을까? 난 매일 자리에서 일어나 자전거로 의암호를 달렸고, 하루 3만 보 이상 걸으며 춘천이 가진 가능성과 가치를 찾으려 했다. 한 달 후 난 결과를 보고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말하려는 건 아니다.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춘천이 남긴 흔적들에 대한 것이다. 내 보고서가 춘천에 어떻게 쓰였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춘천은 나에게 매우 진한 흔적을 남겼다. 지친 삶을 위로받았고, 도시를 연구하는 처음 시절로 돌아가 기본자세를 새롭게 했으며, 여러 사람과 사귀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나를 구했다고 할까? 무엇보다 춘천에 대한 관심을 얻어 얼마 남지 않은 정년 이후 춘천에서 거주할까 생각 중이다. 이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서울을 떠나 춘천이라는 도시에서 새롭게 지역을 연구하고 강의하며 지역을 기획하는, 자그마한 기여라도 하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관계인구, 생활인구. 지역소멸에 대응해 여러 제안이 나온다. 나는 그런 지역에 다양한 형태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을 권하고 싶다. 나처럼 연구자도 좋고, 기획자나 혁신가, 디자이너, 전통적인 예술가도 좋다. 지역을 연구하고 새롭게 하고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정 기간 머무르며 지역을 학습하고 연구하며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보자. 그럼 뭔가 나오지 않겠는가? 또 설령 나오지 않더라도 나처럼 지역에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게 관계인구, 생활인구를 늘려 가는 것이라면 그것도 성공 아니겠는가? 미래에 지역은 혁신에 달려 있다. 누가 시대에 맞는 코드에 맞춰 자신을 혁신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그렇기에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주 4일제의 시대이고, 워케이션(workation)의 시대이며, 한달살이를 포함해 다양한 지역살이를 꿈꾸는 취향의 시대다.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난 6개월 ‘타향에서’를 쓰며 떠나온 고향을 생각해 봤다. 생각보다 진하게 흔적을 남긴 것 같다. 그간 감사함을 전하며 앞으로 전북의 파이팅을 기대해 본다. /라도삼(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화정책)

  • 오피니언
  • 기고
  • 2024.06.19 15:53

'만인의총'의 창극화를 바란다

지난번 '타향에서'의 글 "남원의 역사유적 만인의총"(4월 11일)을 잇기로 한다. 1986년에 국방부 육군본부의 정훈감실 기회에 의해서 나의 극작품(戱曲) <만인의총>이 제작되었다. 그해 하반기와 이듬해 87년까지 걸쳐서, 후방(대구)과 전방(원주)의 연대단위 예하부대 및 해당지역의 주민 위문을 겸한 순회공연을 가짐으로써 크게 성공을 거두고 좋은 평가를 받았음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다. 남원 땅 고향의 역사 유적지가 나의 창작품 소재라니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행운이며, 또한 큰 기쁨이고 자랑이랴! 그러고 나서 6년이 흘러 2012년에 나는 뜻밖의 희한한(?) 소식 하나를 접하게 된다. 풍천임씨(豐川任氏) 문중의 임영훈(任永勳) 장군(예비역)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그는 과거에 사명당기념사업회의 일로 더불어 일행이 되어서, 사명당의 일본 유적지를 찾아 교토(京都)를 탐방하고 심포지엄을 갖는 등 함께 여행한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나의 역사극 <두 영웅>의 주인공 유정(惟政) 큰스님 사명대사의 속성(俗姓)이 풍천임씨여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 <두 영웅>의 내용은 임진정유재란의 참혹한 7년 국난(國難)이 끝나고 나서 사건이다. 전란 때의 영웅 의승병장(義僧兵將) 사명당께서 일엽편주 현해탄을 건너서 전후처리를 위해 원수의 땅 일본에 입국한다. 그리하여 권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서 담판을 짓고, 향후 260여 년 동안의 한일간 양국평화와 선린우호의 주춧돌을 쌓는다는 기둥 줄거리. 여기서 기적 같은 사실이 하나 밝혀졌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원읍성은 일본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6만 왜병의 공격을 받아서 성이 함락되고 민관군 1만인이 옥쇄 순국하였으며, 산하가 모조리 불타고 파괴되고 폐허가 되었다. 그 당시에 남원부사(南原府使) 임현(任鉉)사또의 어린 손자(5, 6세)가 왜군에 납치되어 일본 쿠슈(九州)의 남단 다네가 섬(種子島)으로 끌려가게 된 것. 그 어린 손자가 일본 땅에 살아남아서 400년이 흘러간 오늘까지 핏줄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의 성씨는 사성(賜姓)으로 ‘이노모토’(井元). 이노모토 집안은 그곳 명문으로, 큰어른 이노모토 마사루(井元正流)옹은 동경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출신이며, 그곳의 3선 민선시장까지 지낸 유명인사라고 한다. 임씨문중에서도 그런 한스럽고 피 맺힌 이야기를 수년 전에사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 통교(通交)하게 되고 양쪽 집안이 상호방문하는 등 우의와 친교를 다졌다. 그리고 이노모토 가족 일행이 한국을 방문하여, 남원의 만인의총과 충렬사(忠烈祠)에 참배하고 순의제향(殉義祭享)을 올렸다는 것. 한 가문의 흘러오는 뜨거운 핏줄, 그 뿌리의 혈흔(血痕)이 아니랴! 그리하여 2012년 봄 임씨문중의 기획으로 나의 책임편집하에, <충간공 애탄임현(愛灘任鉉) 남원부사 순절기>를 상재하고, 작품 <만인의총>도 새롭게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를 재창작하게 되었다. 우리 남원 고장은 <춘향전>과 <흥보가> <변강쇠타령> 등 세 마당을 낳은 판소리의 탯자리이자 본향(本鄕)이다. <만인의총> 역시 판소리 창극으로 멋지게 탄생하는 그날을 희망해 본다. / 노경식 (극작가, 대학로연극인광장 회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6.12 15:08

사색의 창에서 잘 사는 길을 만나다

찬란한 노년이 되려면 과거를 숙고하고, 무엇인가 찾아내어 열심히 일하고 생각하며, 열정 있는 삶을 꾸려가라고 했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서 노트에 정리해 보니 나에게 주어진 길이 있었고, 주어진 몫과 짐을 지고 걸어왔다. 인생길은 계속 걸어가야 하고, 어떠한 길이 나타나고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 살아보니,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고 따뜻한 마음과 열정만 있으면 된다고 본다. 부족한 사람이 굽이굽이마다 누군가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으면서 그런대로 평범하지만 큰 탈 없이 살아온 것이 무척 다행이고 최고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생각하면서 매사 조심조심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도 인생길은 참 어렵고, 특히 불의의 사고에 대비할 수가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두렵고 무서운 일이지만 죽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고, 준비와 연습만 잘 하면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고명한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의 가르침도 인생길을 걸어가는데 참고는 되겠지만 결국은 자신이 받아 들여야 하고 모든 것은 실천하는데 달려 있다. 혼자서 고요하게 단전호흡만 하면서 무념무상의 세계에 빠져 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 근심 걱정도 내려놓을 수도 있고, 사색을 통하여 지금의 자신도 알게되고, 마음의 여유도 찾게 되면서 사색을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 산책을 하거나 산행을 할 때도 혼자가 좋아 진다. 자신과 대화하면서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보다 의미 있고 값지게 잘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에 대한 해답도 풀리기 시작한다. 혼자서 사색하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아주 자연스럽게 사색의 창이 열리게 된다. 앞으로 남은 여정에 꼭 해야 할 일도 정리가 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고 참다운 어르신으로 살아갈 것을 매일 다짐하게 된다. 이미 ‘죽는 연습’ 즉 잘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죽는 연습’을 매일 하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는 기도문도 저절로 만들어진다. 계절따라 피는 꽃 이름, 새 이름, 산과 강 이름, 별자리도 외우게 되면서 내마음도 자연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맑은 공기와 개울물소리, 달님과 은하수 속으로 빠져든다. 그 어려운 시절에도 서로 정 나누고 도우면서 살아온 이웃과 어르신들이 그리워진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더 진정성 있게 대하고 배려하면서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색의 창에서 만난 ‘잘 살아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은 것이다. 좋은 약과 운동법도 서로 공유하고, 부족한 것은 서로 채워주고, 어려운 이웃에게 용기를 주면서 살아가는 길이다. 나를 길러주고 이끌어 준 고향을 위해서 할 일을 계속 찾아가면서 작은 일부터 실천해 나갈 것이다. 몸과 마음을 꽃중년으로 묶어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꽃동산도 만들고, 함께 명상하고, 일하고 도우고 나누면서 지내고 싶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했다. 그냥 죽는 연습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친구들과 이웃에게 계속 전파하면서, 따뜻한 마음과 열정, 함께 어우러진 예쁜 색깔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꿈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류영하 시인∙전 국토해양부고위공무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4.05.29 18:10

복잡한 도시에서 단순하게 살아보기

최근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특이한 두 개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길거리에서 본 장면인데,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걷는 모습이다. 젊은이들은 이어폰을 끼고 여유 있게 걷고 있는 반면,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들은 어딘가를 향해 분주하게 가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에서 목격한 두 세대의 모습이다. 젊은 세대들은 핸드폰에 있는 앱을 통해 표를 구입하고 시간에 맞춰 대합실에 도착하는 반면, 나이 든 분들은 과거에 하던 방식대로 일찍 와서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승차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 두 장면은 평균적인 시선으로 표현된 것이지만, 다분히 역설적이다. 두 세대의 다른 모습에 주목한 것은 젊은 세대들은 바쁘게 살아야 하고 시간적 여유가 많은 시니어들은 상대적으로 더 여유 있게 살 것이라는 필자의 고정관념 탓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면접촉을 중시하고 사회적 관계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관계의 불편함과 다름을 피할 방어적 개인주의에 익숙한 MZ세대들의 일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사는 방식과 태도인 아비투스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느냐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기성세대들은 분업과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사회에서 성장한 반면, MZ세대들은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된 디지털 사회에서 성장했다. 이것은 두 세대가 다른 사회적 맥락과 문화 속에서 살아왔음을 의미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두 세대의 일상이 다른 소이이다. 어쨌든 우리는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고, 살기 위해 과거보다 더 숨 가쁜 일상을 보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의 보편화로 사회적 고립과 스트레스가 증가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미래 사회는 유사성을 지닌 것과는 과잉으로 접속하고 차이가 나거나 다른 것에는 관계를 차단하는 단속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세대 간의 차이와 차별, 공동체 의식의 약화가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비관적인 미래 전망에 지혜롭게 대응하는 방안은 없을까? 다양한 해법이 있겠으나, 필자는 단순하게 살아보기, 이른바 심플라이프를 권하고 싶다. IT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빠르면서도 느리게 살아야 하는 이중적 삶을 요구한다. 빠름은 생활의 편리와 효율을 주지만, 우리를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 나은 삶을 위한 보상적 느림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산다>의 저자 샤를 바그네르는 단순함을 인간다운 삶의 특징으로 규정하고, 유전되는 생물학적 능력이 아니라 끈질긴 노력의 결과로 보고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위해서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동시에 의무와 욕구를 단순화하고 단순함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묻어둔 묵은 감정과 과거의 미련을 떨쳐내는 것도 심플라이프의 핵심이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과 이별하는 방법으로 농촌에서 살아보기와 여행을 권하고 싶다. 시골은 감성을 깨우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체험하는 느림의 공간이자 쉼터이며, 여행은 우리를 지치게 하는 일상의 피로를 덜고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자 위로다. 조금 있으면 여름 휴가철이다. 우리의 삶을 더욱 분주하게 만들고 사회적 고립과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지금, 우리의 멋진 시골로 여행을 떠나보자. /서순탁(서울시립대학교 교수, 前 총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5.22 16:32

사람이 크는 지역을 만들자

문화정책을 하며 누군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난 단연코 사람이라고 말한다. 다른 정책과 달리 문화정책은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단적인 예로 골목에 빈 벽이 있다고 하면 거기에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실제 그림을 그리는 건 예술가고, 그가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때문에 문화정책에 있어 핵심은 사람이다. 현장에서 일을 기획하고, 사람을 끌어모으며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 이들이야말로 문화정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원이라 할 수 있다. 한때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예술 지원사업을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한 결과 지역을 변화시키거나 문화적으로 재구성하는 인력은 제한되어 있었고, 문화매개자라는 이름으로 산발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 2006년부터 시작된 ‘Art in City’(2006~2007)에서부터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활성화 시범사업’(문전성시, 2008~2012), ‘마을미술프로젝트’(2009~현재) 등 여러 지역 사업이 추진되며 역량을 쌓기 시작했고, 2014년부터 시작된 문화도시 사업을 타고 활동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들은 스스로 돈을 모아 올해의 우수한 기획자를 시상하는 ‘내일의 기획자’라는 상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지역 또한 마찬가지다. 2000년대 창조도시 열풍이 불던 시절에는 ‘창조적인 사람’, 즉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예술가나 금융가, 법률인, 건축가 등 이른바 상류층이 살만한 지역 만들기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지역을 혁신하고 재생할 전문가가 필요하다. 로컬 크리에이터라 부르는 창조적 행위자, 지역 혁신가가 필요한 것이다. 창조적인 계급이 아닌, 창조적인 역량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창조적 역량을 가진 지역기획자, 문화기획자를 키우려면 지역은 실험하고 도전할 기회를 줘야 한다. 교육을 통한 학습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효과가 있는 것은 직접 해보는 것이다. 지역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사업을 해 봐야만 감(感)이 오는 일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문화사업과 지역혁신 사업은 그들이 성장하는 판이 된다. 앞서 얘기한 사업들도 실제 나타난 성과를 보면 사업성과보다 사람 성장이 더 컸던 사업이다. 당시 일했던 사람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을 돌며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고, 각 지역에서 후배를 육성하고 있다. 지역이 문화기획자를 키우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이 해볼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하고 도전토록 하는 것이다. 경험보다 중요한 자산은 없다. 다른 한편 기획자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조성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인증감을 부여하고 자존감을 불어넣어야 하며, 기획자로 생활하며 활동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사람은 함부로 크지 않는다. 적절한 환경과 지원이 있어야만 클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큰 사람이 도시를 먹여 살린다. 2000년대 창조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영국의 게이츠헤드(Gatehead)가 연극전공자인 피터 스타크(Peter Stark)의 작품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더불어 지금도 여러 부상하는 지역에도 다양한 기획자가 활동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전북에도 그런 기획자가 많을 것이다. 이들을 위해 전북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성장하는 판을 깔고 있을까? 소멸의 위기에 빠진 전북의 미래를 위해 여러 생각을 해본다. /라도삼(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화정책)

  • 오피니언
  • 기고
  • 2024.05.15 15:01

'춘향제' 놀러가세!!

내일 5월 10일은 제94회 남원 춘향제의 전통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이 행사는 오는 16일까지 1주일 동안, 그 옛날에 이팔청춘 춘향이가 향단이와 함께 그네 타는 놀이를 하는 중에 이몽룡 님을 만나서 백년해로의 가약을 맺게 되었다는 전설의 누각 광한루원(廣寒樓苑 보물 제281호)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화려하고 흥겹게 펼쳐진다. 올해로 94년 회차라니 가히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할 만하다. 1931년 일제 강점기에 남원권번(券番)의 기생들 몇몇이 뜻을 모아서, 만고열녀 춘향의 굳은 정절과 아름다운 사랑을 기리고자 제향을 모신 것이 그 출발점이고 효시였단다. 잘은 몰라도 경남 진주(晉州)의 개천축제와 더불어서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의 민속행사가 아닌가 싶다. 지난 4월에는 남원 고향 땅에 내려갈 일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양주분이 계시는 노암동의 산소(山所)에 성묘(省墓)하고, 10여 명 남짓 살아있는 다정한 옛친구들 죽마고우(竹馬故友)를 만나서, 서로들 얼굴을 보고 술도 한잔씩 돌리고 웃음꽃을 피며 담소도 나누고 회포를 풀고자함이었다. 그런데 승용차의 귀향길이 낯설기만 하다. 전에는 전주에서 임실 오수를 거쳐서 남원 교룡산성의 동쪽 향교동 도로였는데, 현재는 남원시 사매면의 터널 세 개를 더 지나서야 교룡산성의 서쪽 동네 만복사지(萬福寺址)가 있는 왕정동(북남원)으로 해서 시가지에 도착하게 된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더니, 시내 지도는 더욱 어리어리하다. 옛적에 시내의 중심지가 되는 「제일은행 사거리」는 모두 새 건물로 둔갑해 있다. 제일은행 자리는 ‘MG새마을금고’, 그 옆의 유명한 남원극장 터는 ‘SK증권과 김진영치과’ 등등. 나에게 있어 춘향제는, 1950년대 초 중고교의 10대 소년시절을 추억하기로 한다. 그때는 6.25 한국전쟁의 참혹한 뒤끝이라 궁핍과 간난시련 속에서 참으로 살아가기가 힘들고 어려운 세월이었다. 그래도 해마다 음력 ‘4월 초파일’ 춘향제 날이 돌아오면 남녀노소 너나 할 것 없이 남원 사람들은 신나게 기분 좋고 저마다 달뜨기 마련이다. 광한루에서부터 남원극장이 있는 제일은행 사거리의 동서남북 큰길가 푸른 가로수 끝에는 청사초롱이 봄바람에 나부끼고, 풍물 걸궁패들은 귀창이 떨어지게 날나리 소리를 앞세우고 북과 꽹과리 징 장구를 울리면서 길거리가 미어터지게 흘러간다. 덩실덩실 춤추며 뒤따르는 것은 술주정꾼과 건달뿐만 아니라 코흘리개 애송이들도 줄레둘레 한 몫을 놀고 ---- 그뿐인가. 활쏘기 궁도대회, 장사씨름대회, 곡마단의 써커스, 신파악극단의 <비 내리는 고모령>, 용성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밤마다 틀어부는 ‘리버티 뉴스’(대한뉴스)와 활동사진 등등. 그러나 역시 하일하이트는 남원극장에서 펼쳐지는 우리나라 명창들의 판소리 발표회. “그런께로 명창 임방울 선생이 내레오고, 남원 출신 박초월이도 오고, 또 김소희도 서울서 왔다는구만. 워매, 신나고 좋은 거!” 그날 밤 남원극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초만원을 이룬다. 임방울 선생의 <쑥대머리>에 객석에서는 추임새와 함께 한숨과 눈물이 절로 나오고, 김소희의 <춘향가> 한 대목은 찬탄과 오금을 저리게 하는구나. “때 좋다, 벗님네야. 남원 춘향제 귀경 가시제라우, 잉! ~~“ /노경식 (극작가, 대학로연극인광장 회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5.08 15:45

다행과 은혜

유난히 슬퍼 보이는 경로석의 어르신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응급실에서 신음하고 있는 환자 옆에서 엄마가 펑펑 울고있다. 지금까지 함께 지내온 고향절친이 갑자기 급성 암 진단을 받고 짧게 투병하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살다보면 기쁜 일보다 가슴아픈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들 주변에는 겉으로는 편안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크고 작을 따름이지 걱정거리 없는 사람도 없다. 모든 어려움과 고통, 힘든 일들을 참고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다. 어릴적 부모님 밑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낼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뒤돌아 보니 참으로 위험하고 아찔했던 일들도 많았다. 누군가의 도움과 은혜를 받았음이 분명하다. 지금 이 만큼이 무척 다행이고 은혜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은혜는 ‘사랑으로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 인류에 대한 신의 사랑’이고, 은혜하다는 ‘마음에 두어 애틋하게 생각하다’, 은혜롭다는 ‘매우 고마운 데가 있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은혜를 받았으면 갚아야 하고, 매우 고맙고 애틋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은혜이고, 은혜하면서 은혜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여 해석해 본다. 생각할수록 다행과 은혜는 늘 함께하면서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해 주었다. 부모님과 형제자매, 친구와 직장동료, 그동안 좋은인연들로 부터도 많은 은혜를 입고 살아 온 것이 틀림없다. 가족과 떨어져서 지낼 때 홀로에 익숙해 지기 위해서 사색과 명상을 자주하게 되었고, 다행과 은혜의 연속선상에서 갑작스런 죽음에 대비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3일 밖에 살 수 없다고 가정하고, 유언장과 묘비명, 꼭 해야할 일과 하고싶은 일, 은혜를 갚아 나가면서 의미있게 잘 살아가는 목표들을 정리해 보았다. 매일 단전호흡을 하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더 잘 살아가는 연습, 즉 '죽는연습'을 시작했다. 먼저 지금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자체가 다행이고 은혜임을 알게 되었다. 저절로 부족한 나를 찾게 되었고 조금 더 삶의 여유와 모든 사람을 존중하면서 살아가야 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삶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사랑과 시간’이라고 했다. 시간을 아껴쓰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미안함을 줄여 나가는 것이 사랑의 실천중에서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정리해 놓은 대로 은혜를 다 갚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지금 가까이에서 만나고 있는 사람한테 잘 하면 된다고 본다. 기회가 되면 미루지 말고 실천하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유토피아를 추구하면서 시작하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유호이 (無有乎爾)”라고 맹자는 고백했다. 인생은 물거품이고,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탄식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남는 것은 나눔과 봉사라고 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주는 것도 내 것이고 따뜻한 마음은 영원한 것이다. 평생 젓갈을 팔아서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쾌척하신 수산시장 할머니, 전주시 노송동의 이름없는 기부천사, 이태석 신부님, 지금도 땀 흘리고 있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은 훌륭한 삶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우리들 모두가 받은 은혜다. 텅텅빈 은혜만 있다. 이 만큼에 다행임을 깨닫고 만족하고 감사하고, 은혜하면서 은혜롭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채워 나갔으면 한다. /류영하 (시인, 전 국토해양부 고위공무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4.05.01 15:52

모두를 위한 도시

미국의 뉴욕 맨하탄에는 426m 높이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다. 바로 432 파크 애비뉴다. 글로벌 슈퍼 리치를 겨냥한 이 아파트는 가진 자 중에 더 가진 자를 위한 세컨드 하우스다. 맨 꼭대기 층에 있는 펜트하우스 가격은 1000억이 넘는다. 상위 0.01%를 위한 하늘 위에 지은 집인 이 건물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뉴욕의 마천루를 꼬맹이로 만들어버렸다고 비꼬았다. 지금도 맨하탄 주변에는 초호화 주거용 타워가 8개나 더 건설 중이다. 이를 두고 리차드 플로리다 교수는 1% 상위계층이 도시를 점령하고 중산층은 점차 살 수 없게 된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의 심화와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한 계층과 공간의 분리를 새로운 도시의 위기로 보았다. 소수의 특권층이 사는 작은 지역과 다수의 서민들이 사는 넓은 지역이 도시와 교외지역에 나타나고, 교외지역의 빈곤층이 도시보다 훨씬 빨리 증가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럼 서울은 어떤가?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보면, 서울 강남에 있는 더펜트하우스 청담이 전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인 것으로 밝혀졌다. 공시가격이 164억이니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70%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그 아파트의 실제 매매가는 200억이 넘는 셈이다. 공시가격 기준으로 전국 10위에 드는 고가 아파트는 서울의 강남과 서초, 용산의 한남동과 성동의 성수동에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시내와 한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독보적인 전망뿐만 아니라 널찍한 공원과 수변공간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서울도 뉴욕처럼, 슈퍼 리치를 겨냥한 초고층의 값비싼 아파트가 한강 변을 중심으로 더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공간 불평등의 문제는 통계상으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평균적으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그 외 서울지역의 집값은 두배 이상 차이가 난다. 범위를 좁히면 그 격차는 훨씬 커질 것이다. 이는 글로벌 대도시인 서울의 교육과 사회·문화적인 매력에 더해 첨단기술 기반의 고부가가치산업이 서울에 집중함에 따라 산업별 임금 격차가 커지는 데 기인한다. 이러한 도시 불평등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고대의 도시화는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부와 역할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는 계층사회를 촉발했고 불평등과 노예제도를 낳았다. 근대 이후의 도시화 과정에서도 도시와 경제를 성장시키는 힘이 역설적으로 계층을 만들고 불평등을 심화시킨 일들은 여전하다.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도시 불평등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정책 기술적인 접근보다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해 보인다. 모두를 위한 도시, 보다 사회통합적인 접근이 바로 그것이다. 지구촌의 많은 도시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가장 주목받은 것은 토지이용과 세제 그리고 교통이었다. 유익한 일자리가 한 곳에 모이도록 복합적 토지이용을 허용하고 부동산 세제를 개편하여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일이다. 공공재 성격의 도시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적정한 가격의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직·주·락(職·住·樂)을 연결하는 대중교통을 확충하여야 한다. 여기에 생활비가 반영된 최저임금을 올려 새로운 중산층을 형성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플로리다 교수의 외침은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서순탁(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전 총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4.24 15:14

제22대 국회에 거는 기대

선거가 끝났다.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는 개운함과 서운함이 교차하는 선거였다. 그간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오만과 국정 성과에 냉엄한 심판을 내렸다는 점에선 분명 개운한 선거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가진 문제를 토론하고 제시된 공약을 살펴보며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선거라는 본질로 보면 아쉬움이 많은 선거였다. 이번 선거에는 특별한 이슈가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하며 여기저기 발전 공약을 내세웠지만,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나마 이슈가 된 것이 ‘메가시티’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꽃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낭만적 발언에 사라져 버렸다. 진정성이 느끼지 않은 태도에 국민이 등을 돌린 것이다. 이번 선거가 개운한 만큼 아쉬움이 큰 건 우리 사회가 놓인 현실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절대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 놓여 있다. 전북을 포함한 지방의 현실만 보더라도 그렇다. 급격히 줄어드는 인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인접 도시와 합쳐 인구수를 늘릴 것인가? 아니면 점점 비는 공간을 활용에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스마트한 축소전략을 쓸 것인가? 관계 인구를 높일 것인가? 관광인구를 높일 것인가? 이를 위해 전북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게 모호한 게 현실이다. 제대로 된 선거라면 이런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선거였어야 하나 이번 선거는 그럴 여지가 없었다. 민주당이든 국민의 힘이든 과거에 대한 심판만 얘기했을 뿐, 우리의 삶과 지역에 대한 문제는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더 중차대한 건 시대적 문제다. 코로나 이후 세계는 급격한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데 이를 풀어갈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2000년대에는 누구도 거부하지 못할 창조경제나 창조도시가 있었고, 2010년대에는 공동체나 거버넌스, 각 개인의 행복이 있었으나 2020년대에는 그런 단어가 없다. 갈등이나 대립 같은 부정어가 있을 뿐 긍정어가 없다. 누구도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누군가 비전을 제시하면 비난하기 바쁘다. 앞으로 나가기보다 서로 발목을 잡고 있는 형상. 여기서 정치는 길을 잃고, 정책은 여러 담론이 경쟁하는 전쟁터가 된다. 사실 선거라는 건 이 비전을 놓고 하는 게임이다. 내가 이 나라, 이 사회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를 보여주고 그 동의를 받는 게 선거다. 이 과정이 삭제되다 보니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를, 비전을 선택하지 못했다. 지방소멸이 급격히 이루어지고, 기후 위기가 체감되며, 디지털로 인한 혼란이 그 어느 때보다 가중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을 중심으로 해야 할지, 국가적인 경제발전을 중심으로 해야 할지, 거점을 육성하는 발전전략을 추구해야 할지, 각 지역이 발전하는 방향을 취해야 할지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이제 그 선택의 몫은 국회로 넘어간다. 새롭게 선출된 자들이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풀어가야 할 의제로 남은 것이다. 앞으로 지방선거까지 2년. 22대 국회에 남은 날은 딱 2년이다. 2년 내에 비전을 제시하고 성과를 내면 다음 선거는 미래를 토론하는 선거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또 누군가를 징벌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또 누군가를 징벌하는 선거가 되지 않도록 22대 국회가 잘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라도삼(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화정책)

  • 오피니언
  • 기고
  • 2024.04.17 15:27

남원의 역사 유적  '만인의총'

전주에서 남행하여 지방국도를 따라서 임실 오수를 지나고 남원 시내의 북쪽 입구에 들어서자면, 차창의 바른편에 가슴이 탁 트인 듯 시원하고 광활하고 멋진 언덕배기의 역사 유적지가 첫눈에 들어온다. 유서 깊은 교룡산성(蛟龍山城) 아래의 발치에 자리잡고 있는 그 널따랗게 둥글고 아름다운 큰 무덤이 곧 '萬人義塚'(만인의총)이다. 남도의 요충지 남원성(城)은 지난 날 16세기의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일본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거느린 6만 왜병(倭兵)의 침공을 받고 나라와 향토를 위해 끝까지 성을 지키다가 옥쇄(玉碎) 순절한 비극의 고을이다. 민관군(民官軍) 1만여 명의 인명이 무참히 도륙당하고, 닭새끼 한 마리 개 돼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조리 불타고 파괴된 시산혈해(屍山血海)의 땅 남원읍성(邑城)!! 그리하여 민관군의 죽음, 만인(萬人)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서 합장(合葬)한 무덤이 곧바로 ‘만인의총‘이다. 오늘날의 유적지 만인의총은 현재의 자리가 아니다. 나의 10대 어린 시절 기억에 의하면 그때의 만인의총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여수(麗水)까지 내려가는 전라선의 남원역(舊驛舍) 구내의 시꺼멓게 쌓인 석탄더미 너머, 철길 아래에 펼쳐져 있는 들녘의 논 가운데 있었다. 사시사철 찬물이 괴어 있는 무논(水畓)의 노배미 한쪽 구석지에 마치 쓰레기처럼 버려진 채 잡초 무성한 작은 조그만 무덤이 ’만인의총‘의 본래 모습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8.15광복과 6.25 한국전쟁이 지나고,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정부는 만인의총을 이장(移葬)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향교동에 ’역사기념관‘을 새로 건축하고 반듯하게 단장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며, 대한민국의 사적 제272호 남원 만인의총(1만 사람의 의로운 무덤)으로 지명되었다. 나와 ’만인의총‘과의 첫 인연은 1986년의 일. 때에 나는 국방부의 육군본부 정훈감실에서 남원 만인의총의 연극화 작업을 위해서 극작품(戱曲)의 창작을 위촉을 받았다. 뜻밖에도 생각지 않은 일에다가 더구나 내 고향 땅 남원의 역사유적지가 작품 소재라니! 나는 관련 사료(史料)를 찾는 등 열과 성을 다해서 집필에 매진하였다. 나의 탯자리 남원의 역사유적 이야기라니까, 이 얼마나 큰 행운이며 자랑이고 기쁨이랴. 연극 <만인의총>(노경식희곡집 제3권-6)은 그해 2군사령부(대구) 휘하 육군무열예술단의 창단작품으로 선정되어 공연을 갖게 되었다. 첫공연의 팡파레는 작가의 뜻에 따라서 작품의 역사적 소재지인 지금의 남원시립도서관(당시 남원소방서)에서 올랐다. 남원시장을 비롯한 남원유지들 및 남원문화원장 등 여러 시민과 문화인들이 관극하고 뜨거운 박수를 보내줬다. 그러고나서는 교룡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아무개 특수부대를 출발점으로 하여, 그해 6월에서 10월 사이에 연대 단위의 예하부대 및 해당지역의 주민위문을 겸하여 총 120여 회의 순회공연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듬해는 또다시 북쪽 휴전선 일대의 일선부대를 1년간 위문공연하는 등 훌륭한 성과를 기록하였다. 여기서 사족(蛇足)삼아 한 가지를 첨언하면, 그 당시 남원시장은 육군본부 정훈감(표명렬 장군)과 작가 본인에게 감사패까지 증여해서 그 기쁨과 영예를 누린 것이 시방도 추억이 새롭다. 그 다음 이야기는 뒤로 미룬다. /노경식 (극작가, 대학로연극인광장 회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4.10 20:14

도시의 매력과 품격

‘신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말이 자주 인용된다. 카인의 후예인 인간이 만든 도시보다는 신이 만든 자연을 노래했던 종교적인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도시전문가들은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라는 후렴구를 찾아내 도시를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도시의 효능과 진화를 설명하는 훌륭한 은유이자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도시가 사람처럼 재능이 있고 매력과 품격을 가지고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만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고 독특한 매력과 품격을 갖춘 도시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 도시에 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가 서두를 이렇게 꺼내는 것은 도시나 지역의 매력과 품격을 높이는 일이 인구나 경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도시의 재능을 얘기하고 있다. 도시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한 영국의 역사학자 벤 윌슨, 인류 역사는 도시 승리의 역사라고 단언하는 미국의 경제학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 규모가 커질수록 개인의 성장 기회와 창조적 혁신이 빠르게 일어나는 도시야말로 인류가 진화시킨 독창적인 메카니즘이라고 정의한 물리학자인 제프리 웨스트가 그 예다. 도시의 재능이 도시발전과 인류문명을 이끌어 왔음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도시의 재능은 그 도시에 특유한 매력이 더해질 때 꽃 피울수 있다. 공간의 매력은 그 지역을 독특하게 만드는 요소이며, 여기에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역사적인 건축물, 독특한 문화 행사, 맛있는 음식 등 다양한 것들이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매력은 사람들이 그 지역을 방문하게 하고, 더 나아가 그곳에 정착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도시의 다양성이 확대되는데 일조한다는 의미이다.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장소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도시의 독특한 특성과 문화를 살려야 한다. 또한 도시의 재능과 매력은 품격을 갖추어야 빛이 난다. 공간의 품격은 그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떠나 논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품격은 우리 국민들이, 정치인의 품격은 정치인이 만들어 가야 하듯이, 품격 있는 도시 또한 그 안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다양한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며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디지털 기술이 현대인의 일상을 압도하는 요즘에 품격 있는 도시가 되려면, 정치적 수사와는 다르게, 도시에 축적된 고유한 역사와 문화의 기반 위에 지역 주민들의 품격 있는 삶을 위한 비전과 전략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최근 갈수록 늘어나는 ‘삶의 질’에 대한 주민 욕구를 충족시키고, ‘공간의 질’이 지역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새로운 정책 대안으로 ‘매력 있고 품격 있는 도시 만들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도시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인구나 경제의 규모도 아니고 건물의 크기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시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현재와 잇고 새로운 문화 예술을 더하여 매력과 품격을 높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창의적인 표현을 장려하며, 문화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의 디자인과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도시와 지역 차원의 노력, 그리고 택지가 부족한 도심에 큰 정원을 만드는 일도 품격을 높이는 모습일 것이다. 여기에 편리한 대중교통과 지역의 곳곳을 연결하는 교통연계시스템, 수준 높은 교육환경과 양질의 주거환경, 생활밀착형 기반시설은 소확행을 추구하는 주민들에게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갈 것이다. /서순탁(서울시립대학교 교수∙전 총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3.27 16:16

로컬 시대 지역 전략, 지역의 문화가 필요하다.

얼마 전 서울시립대학교 정석 교수가 지난해 여러 지역에서 보낸 한 달살이 경험을 얘기로 쓴 <로컬@행복>을 출간한 바 있다. 책은 ‘지역에서 더 행복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기록한 여행기’라며 ‘오늘날 대한민국 수도권에서 살아가며 진정으로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처방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서울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뼈아픈 한마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저기서 지방소멸이 얘기되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부상하는 것은 지역이다. 내가 아는 서진영 작가도 <로컬씨, 어디에 사세요>를 출간해 주목을 받은 바 있고, <골목길 자본론>의 모종린 교수도 지역 브랜딩에 성공한 지역을 살피는 <로컬 브랜드 리뷰>를 2022년부터 발간해 오고 있다.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중기청은 ‘로컬 크리에이터’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문체부는 ‘로컬 100’이란 이름으로 지역의 명소, 명인, 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편에서 보면 지역소멸에 대한 대응이라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지역에 대한 새로운 희망,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로컬이 부상한데는 우리 사회의 구조와 문화의 변화가 있다. 급속한 고령화는 더 이상 거대 도시에서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이야 패기로 맞섰지만 이젠 아니다. 이미 많은 베이비 부머는 지역으로 떠났다. 행복을 중시한 세계관 또한 지역으로 발길을 이끈다. 우리보다 일찍 지역소멸을 마주했던 일본은 청년 이주를 통해 지역소멸을 해결하고자 했는데 이를 관찰한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매우 잘못된 정책이라 말한다. 청년들이 지역으로 이주한 이유는 대도시에서 느낀 고립감과 획일화된 노동, 기회의 불평등 등 전반적 불신 때문인데 유사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도시의 민낯을 경험한 청년들이 지역으로 ‘망명’한 만큼, 새로운 형태의 노동과 기회를 제공해야만 ‘로컬로의 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대도시의 삶에 지쳐 많은 사람이 지역을 찾는다.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도 있고, 한 달살이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지역을 경험하기도 한다. 필자 또한 지난해 춘천과 제주에서 한 달살이를 하며 새로운 삶을 경험했고, 지금도 그 지역과 관계하며 살아간다. 관계인구라고 하나?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 김난도 교수가 말한 것처럼 앞으로 지역은 정주인구보다 관계인구로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리퀴드폴리탄’(Liquidpolitan, 유동하는 도시)이 될지 모른다. 로컬의 시대를 살려면 지역은 도시와는 다른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도시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경쟁이다. 생존을 두고 경쟁하며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도시의 문화다. 지역의 문화는 이와 달라야 한다. 경쟁이 아닌, 서로 챙겨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고,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누리며, 누구나 들어와 생활할 수 있는 개방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여러 혁신가가 들어와 도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지지하고 안아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는 일종의 환경과 같은 것이다. 정체감이자 분위기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결정한다. 우리 지역이 다양한 사람과 이벤트로 유동할지는 문화가 결정한다. 우리 지역이 과연 어떤 문화를 갖고 있는지, 다가올 ‘로컬의 시대’를 살아가며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문화정책)

  • 오피니언
  • 기고
  • 2024.03.20 15:09

남원 · 전라도 배경의 극작품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막물 <철새>가 당선되고 희곡작가로서 등단, 새 얼굴을 내민 지 60여 년을 헤아린다. 그동안 나름대로 나는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우직하게 극작품을 생산해 왔다. 희곡작품 40여 편. 낼모레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나이에, 내 고향 전라도/ 남원 땅을 배경으로 한 소재의 극작품들을 손꼽아보니 모두 9편에 이른다. 춘향골 남원의 4편과 전북 2, 광주 전남 3. 그래도 적지 않은 숫자라고 생각하니까, 조금은 덜 미안하고 고향에 대한 고마움과 은혜, 스스로 위안을 받고 있다는다는 생각이다. 남원의 소재는 <달집>(1971)과 <소작지>(1979) <만인의총>(1986)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2011), 전북은 <정읍사>(1982)와 <징게맹개 너른들>(1994), 광주 전남은 <江건너 너부실로>(1986) <서울 가는 길>(1995) <찬란한 슬픔>(2002) 등. ‘서울 가는 길’과 ‘찬란한 슬픔’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의 역사적 참상과 비극을 묘사한 작품이다. 여기서 주목하고픈 작품은 ‘달집’이다. 일제 강점기와 8.15와 6.25 한국전쟁의 지리산 빨치산까지, 산골마을에서 할머니와 며느리, 손자며느리 등 사회적 역사적 수난(受難)의 여인 3대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국립극단 제61회/ 임영웅 연출/ 백성희 주연)은 그해에 ‘백상예술대상’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연출상 희곡상 등 4관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오늘날 ‘달집’ 작품은 유치진 <소>(1930년대), 차범석<산불>(1960년대)과 함께 한국 리얼리즘연극의 3대 대표작(傑作)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후에도 ‘정읍사’와 ‘江건너 너부실로’ 역시 나는 그해의 백상예술대상 ‘희곡상’을 세 번째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작품 ‘징게맹개 너른들’(뮤지컬)은 한국 근대화의 분수령이 된 전봉준 장군의 「동학농민혁명」이 그 소재이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서울의 예술의전당 오페라대극장(극단 서울예술단/ 김효경 연출)에서 팡파레의 첫막이 올랐다. 그해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으로 여러 곳에서 기념공연들이 올랐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가장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제주 등 여러 지방에서 초청공연이 있었는데, 전북은 군산과 전주에서 였다. 전주공연은 때마침 『전북일보』의 창간44주년 기념으로 당해 언론사가 직접 초대를 요청하였으며, 대공연이 성사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새삼스레 오늘의 신문 [타향에서] 즐거운 추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때에 본사 문화부의 담당기자 김은정씨의 노력이 가상(嘉尙)하였으리라. 춘향골 남원 땅의 역사 유적지를 소재로 한 <만인의총>(萬人義塚) 작품은 국방부의 육군본부 정훈감실의 청탁을 받아 집필한 것이다. 16세기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조선침략은 미증유의 7년국난(國難). 전쟁의 막바지 정유재란(丁酉再亂 1597년) 때는 호남의 요충지 남원성(城)이 함락 초토화되고, 민관군 1만여 명이 옥쇄(玉碎)하는 참극을 맞이한다. (이하 다음 기회로 생략한다) /노경식 극작가∙대학로연극인광장 회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3.13 17:36

해양의 가치를 알고 바다여행을 즐기자

“자유인이여! 그대는 바다를 사랑하라!” 하고 시인은 외쳤다. 지구 표면적의 약 71%인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고 인류에게 필요한 산소의 75%를 공급해 주며, 인구의 약 30%가 살고 있는 생활공간이자 수산물과 해저광물, 석유와 가스를 제공해 주는 생산의 공간이다. 우리나라는 육지면적의 4배에 이르는 해양영토가 있으며, 독도와 이어도등 총 3,358개의 섬이 있다. 농경지보다 100배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세계5대 갯벌 2,520km2를 보유하고 있으며, 부산 광양항등 60개소의 크고 작은 항구도시와 1,874개소의 어촌계에서 인구의 약 23%인 1400만명이 연안 72개 시군구에 거주하고 있다. 해양생물 종수도 다양해서 영해면적 기준으로 세계1위이며, 단백질 공급의 40%를 해산물이 담당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나라 무역선과 원양어선들은 세계5위의 해운강국을 목표로 태극기를 휘날리며 5대양 6대주를 누비고 있다. 해양은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무궁무진하다. 우선 놀거리 자원으로는 해수욕, 바다낚시, 요트와 보트, 해파랑길, 유람선과 쭈꾸미축제등 지방축제가 있고, 볼거리로는 해안절경과 등대, 일출과 일몰, 바다갈라짐, 해양박물관, 포항 호미곶의 국립등대박물관, 여수엑스포장, 수상비행기, 크루즈, 해상국립공원등이 있다. 체험형으로는 갯벌, 바다목장, 고래관찰, 섬 생활이 있으며, 즐길거리로는 스킨스쿠버, 수상스키, 윈드서핑, 레저잠수, 해저잠수함이 있고, 바닷가에는 생선회등 해산물 먹거리자원이 풍족하다. 특히, 전국에 360개의 해수욕장이 있어서 연인원 약 9000만명 이상이 해수욕과 해변관광을 즐기고 있다. 바다낚시 인구도 계속 늘어 나면서 매년 600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다. 내고향 전북지역에도 유서 깊은 어청도 등대와 변산반도,고창의 갯벌, 격포항, 특히 선유도등 고군산 군도와 새만금의 해양관광자원은 전국 최고의 수준이다. 바다여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먹거리와 놀거리, 볼거리를 결정한 다음에 숙소를 예약하면 되는데 조금 불편하더라도 어촌계에서 민박을 권하고 싶다. 여객선을 타고 섬에 가서 1박하는 기쁨은 아주 크다. 섬주민들과 오순도순 등대와 바위에 얽힌 전설과 애환도 들어보고, 특히 밤하늘의 별들과 놀다가 가슴에 담고 오면 그 감흥이 꽤 오래 간다. 완도에 가서는 해상왕 장보고의 유적지와 개척정신을, 진도와 통영에 가서는 성웅 이순신장군의 애국심을, 우리나라 최초의 인천 팔미도 등대에서는 맥아더 장군에게 감사함을 다시 새겨 보는 테마여행도 좋다. 바다여행을 통해서 한가지 더 얻을 수 있는 선물은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처럼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포용해야 한다는 뜻) 정신이다. 이처럼 소중한 해양의 가치와 중요성을 잘 알고, 우리가 잘 보전하고 잘 이용하고, 풍요로운 바다를 만들어서 미래세대들에게 잘 물려 주어야만 한다. 경관이 빼어난 속초해변과 등대, 태종대와 영도등대, 남해 해상공원과 소매물도 등대, 여수의 밤바다와 오동도등대에는 해양문화공간도 잘 만들어져 있다. 바다여행과 함께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등대 박물관과 전국의 명소 등대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위로와 희망을 노래하는 날을 고대해 본다. /류영하 전 국토해양부 고위공무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4.03.06 15:21

늘봄학교에 바둑이 정착되었으면

기존의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 돌봄의 의미를 더한 늘봄학교 정책이 올해 시범운영을 거쳐 내년에는 전국으로 전면 확대된다. 늘봄학교에서는 방과 후 오후 8시까지 초등학교 학생들의 성장 발달단계를 고려하여 만든 놀이와 체험 중심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며, 학교 안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밖의 늘봄센터, 도서관, 공공기관 등에서도 운영될 예정이다. 필자는 이 기회에 바둑 프로그램이 기초소양 프로그램으로 정착되었으면 한다. 최근 바둑은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외면받고 있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소일거리로 치부되고 있는 마당에 왠 바둑 타령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둑은 어린아이들에게 주는 교육적 효과가 크고 게임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 온라인 게임에 집착하는 어린 학생들을 위한 놀이프로그램으로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아동심리전문가와 프로기사가 협력하여 바둑이야기와 프로그램을 만들고 바둑지도사 주도하에 수업을 진행하면, 우리 아이들은 바둑의 개념과 원리는 물론 바둑을 대하는 마음가짐까지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무릇 학문의 본질은 원리나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에 있다. 바둑을 배우는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창의적인 사고력이 더욱 중시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바둑만큼 좋은 것이 없다.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바둑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한 사례가 있다. 도쿄대학은 2005년 일본기원의 이사장이었던 가토 마사오의 제안을 받아들여 바둑을 정규 교양과목으로 채택했다. 이 과목은 물리학, 뇌과학, 심리학 교수들이 협력하여 ‘바둑으로 키우는 사고력 세미나’를 교양강좌로 개설하였으며, 교수와 프로기사가 참여하는 체험형 세미나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그후 바둑 강좌는 전 학년을 대상으로 매 학기 개설되고 있으며, 도쿄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이 되었다. 도쿄대는 왜 바둑을 정규과목으로 채택했을까? 바둑을 통해 학생들의 능력을 계발하고 교양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전통 놀이문화인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서였다. 이 강좌를 담당하고 있는 도쿄대 효도 도시오 교수는 바둑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추상적인 최고의 지적 게임으로 규정한다. 바둑은 깊이 생각하면서 두는 게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뇌가 단련된다. 이러한 이유로 바둑은 예로부터 두뇌 훈련법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는 대표적인 두뇌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다. 학생들은 바둑을 두는 과정을 통해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연마하면서 독창적으로 연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운다. 이것은 학문을 할 때도 매우 중요한 프로세스다. 도쿄대는 바둑이야말로 학업과 인간관계,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통찰력과 분석력을 길러주는 최적의 학습법이라는 데 주목했고, 실제로 바둑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물리학 등 기초학문 분야의 사고능력을 측정한 결과 현저하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어디 그뿐인가? 인생은 바둑과 같다는 말처럼, 바둑은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네 인생 전반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바둑의 룰은 간단하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경우의 수가 많아 전략전술과 수단이 자유롭고 선택지가 많다. 고도의 인내력과 집중력이 게임의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전체 판세를 보아가면서 넒은 시야로 공격과 수비를 결정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눈 앞의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둑이 끝난 후 두 대국자가 복기를 통해 성패의 원인을 찾고 자신의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재검토한다. 바둑을 통해 축적되는 성찰적 경험은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쪼록 많은 우리 아이들이 늘봄교실의 현장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바둑 두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서순탁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전 총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2.28 17:25

소멸 위기 전북, 스마트한 축소전략이 필요하다.

2024년 2월 13일 전북도민의 삶의 질을 알 수 있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격년으로 발표하는 <전북 사회조사> 결과, 2023년 삶의 질은 6.55로 2021년 대비 0.05 높아졌다. 지역 생활이나 행복 또한 비슷하다. 멀리서나마 보는 기분 좋은 뉴스였다. 그러나 전북의 상황은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다. 같은 조사에서 ‘10년 후에도 전북에서 살겠다’는 답이 77.9%로 지난 조사보다 2.3% 늘었으나, 전북 인구는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다. 2023년 12월 기준 175만명. 전북은 이미 소멸위험 지역이다. 전주만 주의 단계에 있을 뿐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펴낸 인구변화를 보면, 50년 뒤인 2073년 전북 인구는 45만 명으로 줄 것이고 최악의 경우 100년 뒤엔 4만 명에 불과할 것이라 말한다. 충격적인 예측이다. 사실 인구문제는 전북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0.6으로 떨어진 합계출산율로 우리나라는 심각한 소멸위기를 겪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2023년 12월 2일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했고, <마이니치신문>은 ‘한국 국가소멸위기감’을 다룬 바 있다. 캘리포니아대학 조앤 윌리엄 교수가 ‘한국 망했네’라고 통탄할 정도다. 이런 인구감소를 멈출 방법이 있을까? 여야를 막론하고 출산 정책에 나섰다.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인천은 아이를 낳으면 1억 원을 준다 했고, 서울은 1.8조원을 투입하여 아이 탄생을 응원한다 했다. 전북도 인구정책종합계획(23~27)을 세워 대응하며 여러 비용을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떤 주장에 따르면 지금껏 우리나라가 출산율에 쓴 예산이 무려 280조라 한다. 그러나 인구는 여전히 줄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은 자기가 사는 공간에 먹이가 없을 것이라 예상되면 모든 동물은 개체 수를 감소시킨다라고 말한다. 출산 여건도 그렇지만, 엄청난 경쟁률과 높은 노동시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여건과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지구환경 변화는 아이 낳길 주저하게 만든다. 여기에 나 혼자라도 행복하게 살겠다는 ‘나혼산’ 문화는 출산의 가능성을 확연히 떨어뜨린다. 지금에 출산을 늘리는 건 한계가 있다. 인구변화는 복지, 노동, 문화, 환경 등 모든 정책의 결과일 뿐, 출산율 정책 하나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출산율 자체를 자극하기보다 출산하고 싶은 욕망을 만드는 환경 창출이 중요하다. 인구감소에 맞는 적절한 지역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MIT대 브랜드 라이언 교수는 디트로이트 등 미국의 쇠퇴한 공업도시를 연구하며 쇠퇴기의 도시전략으로 ‘완화적 도시계획’을 주장한 바 있다. 쇠퇴하는 도시 여건에 맞춰 축소를 완화하고 축소에도 지역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도시는 유지되고 재발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도시는 성장기에 건립된 도시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건물을 높게 세우고, 도로를 넓게 만들었다. 이런 도시론 인구가 감소하는 축소사회에 대응하기 어렵다. 스마트한 축소전략이 필요하다. 인구감소로 여유가 생긴 만큼 좀 더 인간적인 도시, 문화적이고 친환경적 도시로 만들고, 여기에 다양한 교류와 기회가 펼쳐지는 도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요컨대 출산의 욕망을 자극하는, 미래가 있는 도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심각한 위기에 서 있는 전라북도, 스마트한 축소전략을 기대한다.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문화정책)

  • 오피니언
  • 기고
  • 2024.02.21 16:41

역사극 '두 영웅' 이야기

지난해 여름 7월 달에 나의 졸작 <두 영웅>의 전주 공연이 있었다. 공연의 경위는 도지사 김관영님의 호의와 초청에 의해서 ‘한국소리문화의전당’(대표 서현석) 연지홀(666석)에서 멋지게 성사된 것. 객석은 전주 시민과 연극인 및 중학생들로 꽉 채워서 감동적인 연극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역사극 <두 영웅>은 지난 2016년 봄에 ‘노경식 극작가 등단50년 기념공연’이라는 명분을 걸고 서울 대학로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초연의 막이 올랐다. 작품의 소재와 배경은 조선왕조의 ‘임진정유왜란’. 16세기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에 의한 미증유의 참혹한 7년 국난(國難)이 끝나고, 전후처리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의승병장 사명대사 큰스님(오영수/배상돈)이 일엽편주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서 일본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에도막부의 권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김종구)를 만나고 평화담판을 행하여, 향후 260여 년 동안 한일간 양국평화와 선린우호의 주춧돌을 쌓는다는 줄거리. <두 영웅>은 극단동양레퍼토리(김성노 연출)의 초연 이후 지난해까지 8년 동안 10여 차례의 순회 초청공연을 가진 바 있었다. 2016년 가을에 내 고향 남원의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첫시작으로 하여, 해마다 경기 용인, 제주 ‘설문대여성회관’, 충남 공주와 태안 ‘문화회관‘, 다시 ’제주문화회관‘과 부산 ’금정문화회관’, 수원 ‘경기아트센터’, 전주의 ‘한국소리문회의전당’(7월 8일)과 경남 밀양의 ‘성벽극장’(7월 28일) 등등. 극중에서 사명당은 전란 중에 납치돼서 끌려간 옹기 굽는 도공(陶工), 남원 고을의 심당길(沈當吉)을 만난다. “큰스님, 쇤네는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고 온 고을이 쑥대밭이 됐지라우. 그런 와중에 저를 포함한 80여 명의 옹기쟁이들이 한꺼번에 붙잡헤갖고 여그 가고시마(鹿兒島)까지 끌려오게 되었습니다요. --” 큰스님 사명대사는 깜짝 반가움에, “전라도의 남원 땅에서? 남원 고을이라면 나하고도 인연이 없지를 않아요. 갑오년에 남원의 교룡산성(蛟龍山城, 전라북도 기념물 제9호)을 수축할 적에, 성안에 있는 선국사(善國寺) 절에서 수개월 동안을 보냈었다. 해남 대흥사의 뇌묵당 처영(處英) 스님이 도원수 권율 장군의 명을 받들어서 의승군 수백명을 데리고 교룡산성을 새롭게 고치고 세울 때말씀이야. 그러고 운봉(雲峰)의 지리산 바래봉 철쭉꽃밭이 유명하고, 전주 완산칠봉(完山七峰)의 꽃밭도 아름다운 경승지이고 ⋯” 하면서 조선 백성의 뿌리와 핏줄임을 한시도 잊지 말고, 자식새끼도 풀풀 많이 낳아서 부디부디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그 도공 심당길의 가문은 <심수관>(沈壽官)의 이름으로 15대째 400년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었다. 심수관의 ‘사쓰마야키‘(薩摩燒, 窯)는 오늘날 일본 도자기의 세계적 명문 대명사로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1998년에는 남원에서 <심수관 400년 귀향제>가 열려서 ’도자기 불씨‘를 일본에 가져가고, 서울에서도 심수관 도자기 작품 전시회가 개최된 바 있었다. 역사학자이고 항일독립운동가로 일제(日帝)의 괴뢰정부 만주국의 뤼순(旅順) 감옥소에서 순국하신, 단재(丹齊)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씀을 곱씹어본다. /노경식 극작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4.02.14 15:59

고향사랑 버스에 타자

고향이 장수라고 하면 어디쯤에 있냐고 되묻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전라북도에는 무주 진안 장수군이 있는데 합쳐서 무진장이라고 하고요, 무진장 눈도 많이 와서 토끼하고 발 맞추면서 누에와 돼지도 기르고, 담배농사 지으면서 살아왔던 두메산골입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3개나 연결되고 사과와 한우, 오미자의 빨강색, 즉 3Red로 유명해 졌습니다.“ 그러면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늘 가고싶고 그리운 내고향 장수읍에는 약 20여개의 크고 작은 동네들이 있다. 우리 베이비부머세대들은 학생이 점점 늘어나서 초등학교 4곳에서 공부했다. 누나와 형이 동창이면 동생들도 모두 친구이고, 부모님들도 형제자매나 다름없이 서로 돕고 위로하면서 살아왔다. 요즘은 인구가 계속 줄어서 전국 226개 지자체중에서 223위로 지역소멸 위기에 있다. 엄청난 산악고원지대로서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학생들도 도시로 떠나가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뾰족한 해결책도 없다. 충주시의 깊은산속옹달샘(명상치유센터)이나 인제군의 기적의 도서관과 같은 성공사례를 볼 때, 77%가 산으로 둘러쌓인 내고향 장수는 산과 숲, 강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시작점에 장안산과 팔공산이 있고 전북과 충남의 젖줄인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 섬진강의 최상류인 덕산용소와 수분리, 빼어난 절경과 깊은 숲이 있는 방화ㆍ와룡 자연휴양림, 의암 주논개열사의 생가와 유적, 승마학교와 동가야 유적지만 연결해도 '장수만세 으뜸관광지'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있다. 동선도 길지 않고 기존 도로와 국유산림을 잘 활용하면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순환버스노선과 산악궤도 열차로 연결할 수 있다. 기존의 리조트와 호텔을 잘 활용해서 잘 놀고 잘 먹고 푹 쉬었다 가는 힐링명소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장수군에서 선도적으로 성사시킨 다음에 진안 마이산과 탑사, 무주 덕유산과 구천동으로으로 확산시키면 '무진장 즐거운 최고의 힐링허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결국 남는 것은 마음 닦는 일과 나누면서 복 짓는 일"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 세대들은 고향발전을 위해서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시대적 소명이다. 일제강점기와 육이오전쟁을 겪으시면서 가장 극한의 가난과 역경을 이겨내면서 우리를 올 곧게 키워주신 우리의 부모님들은 영웅이시다. 지금도 고향하늘위에서 우리들을 지켜주고 계신다. 다 하지 못 한 효도를 고향사랑으로 보답해 나가면 된다. 성공한 고향기업가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이행해야 한다. 이제는 고향발전을 위해서 모두가 힘을 모을 때가 되었다. 타지에 사는 고향사람들로부터 애향심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읍면사무소에서는 동문회를 통하여 고향소식도 전하고, 고향발전을 위한 지원협력을 요청해 나갔으면 한다. 군청에서 동문들의 뜻을 모아 '논개고향사랑재단'을 설립하여 추진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고향발전 사업계획도 수립하고, 군의회에 제안하고, 기금도 조성해 가면서 고향사람들이 고향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한다. 애향심이 곧 효도이고 애국심이다. 고향살리기에 서로서로 힘을 모으고 보태자. 고향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고향사랑 버스에 함께 타서 고향사랑 길을 힘차게 달려 보자. /류영하 전 국토해양부 고위공무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4.02.07 15:18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위기 극복을 위한 제언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위기 상황에서 자주 사용되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서서히 다가오지만 치명적인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조짐은 우리의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예고된 위기에 맞서고 있는 지역과 도시의 운명은,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표현처럼, 큰 도로에 접해 있는 작은 골목길의 신세와 같다. 우리를 위협하는 위기(危機)에는, 그 단어가 암시하는 것처럼, 위험만 있고 기회는 없는 것일까? 이 질문이 이 글의 시작이자 끝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장소의 매력과 재능을 가진 지역이나 도시에 살고 싶어한다. 이러한 인간의 욕구는 도시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자, 도시 성장의 비밀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도시에서는 혁신과 부를 창조하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력이 왕성하게 이루어진다. 도시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인 제프리 웨스트는 도시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진화시킨 독창적인 메카니즘이라고 주장한다. 도시의 역사를 보아도 도시의 재능을 키워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인구 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특정한 지역이나 도시에 모이게 하는 일이 도시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일깨우는 대목이다. 인구 감소의 위기에 처한 지역이나 도시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사람을 끌어들이는 특별한 전략과 구상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전 세계로 매력을 뿜어내는 대중문화가 있다. 덕분에 해외 젊은이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방문 욕구는 최고조다. 이 기회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문화와 산업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을 교육과정으로 하는 온라인 글로벌 대학의 설립을 제안한다. 대학 입학의 문턱을 낮추어 제한없이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온라인 강좌와 현장에서의 일과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매우 혁신적인 신개념의 대학이다. 학생이 모자라 대학이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지역에 대학을 신설하는 것은 역발상에 가깝다. 그러나 고등교육 현장에서는 시대변화를 반영한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미국의 애리조나 주립대학(ASU)은 과감한 혁신을 통해 성공한 사례로 유명하다. 온라인과 온·오프라인 혼합형 강의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학습효과를 향상시키는 한편, 개인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학생의 성장을 돕고 있다. 최근에는 오픈AI와 협력하여 교육 현장에 챗GPT를 도입하는 등 미국 대학 최초로 AI를 공식 교육프로그램으로 채택하여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한국형 미네르바 스쿨이라 할 수 있는 태재대학이 작년 8월에 개교하여 신입생을 뽑고 있다. 이 대학은 온라인 수업과 현장 중심 경험학습으로 21세기형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신개념의 글로벌 대학은 한국학을 교과과정으로 만들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대안대학이다. 한국어와 K-culture가 교과과정의 핵심이지만,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산업에 대한 이해와 경험도 포함된다. 전문화된 지식을 전수하는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을 추구하기보다는 일(실무)과 체험을 통해 학생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교육 목표이다. 또한 비용이 적게 들고 학습효과가 크다는 점도 장점이다. 온라인 학습플랫폼과 현장 중심의 수업이 이루어지고 은퇴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학이기에 가능하다. 경험이 풍부하고 교육에 신념을 가진 은퇴한 전문가들이 수업을 이끌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들고 교육효과도 크다. 게다가 AI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있어 온라인 기반의 대학 설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온라인 기반의 글로벌 대학이 전북특별자치도에 세워지길 기대해 본다. /서순탁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전 총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1.31 17:36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