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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자와 야전삽, 그리고 첨단 무기

첨단무기라는 단어에 독자 분들께서는 F-35, 토마호크, 극초음속 미사일 등을 떠올리실 것이다. 첨단무기는 첨단기술의 집합체로서 전쟁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등 강대국은 무기개발 시 자국의 첨단 기술역량을 총체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첨단무기는 지나치게 고가인 경우가 일반적이고, 대부분의 나라들은 첨단기술을 보유하지 못하여 개발 자체를 꿈꾸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첨단무기를 첨단기술의 집합체로만 한정할 필요가 있는가? 기존의 무기에 신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첨단무기와 같은 역할을 한 사례를 소개한다. 먼저, 1950년대의 수류탄이 드론을 만나 러시아 탱크의 천적으로 변신한 사례이다. 작년 우크라이나 전장 상황의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례로, 우크라이나 드론부대는 회전날개 8기를 장착한 옥토콥터에 50년대 개발된 곤봉탄을 결합하여 300m 고공에서 투하, 러시아 군의 전차, 장갑차의 취약한 상단을 정확하게 타격하였다는 것이다. 옥토콥터는 약 1천만원, 곤봉탄은 13만 원에 불과하다. 러시아 전차는 최소 10억 원을 호가하니, 구형 곤봉탄이 드론이라는 신기술과 결합하여 최고의 가성비를 갖춘 첨단무기로 변신한 것이다. ‘등자’와 ‘야전삽’ 역시 그렇다. 등자는 말 안장에 연결해서 기수의 양발을 받쳐주는 도구이다. 등자의 발명 전에도 기병은 활용되었지만 양손을 활용하여 전투에 임할 수 있는 기병을 양성하는 데에는 수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등자가 도입된 후부터 양 손으로 방어무기와 공격무기를 동시에 활용하거나 몸을 돌려 뒤 쫓아오는 적을 향해서도 활을 쏠 수 있는 안정적인 자세 유지가 용이해졌고 기병의 양성도 단기간에 가능하였다. 이후 보병 중심의 군 체계는 기병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했다. 일찍이 등자를 도입한 게르만 민족은 기병을 중심으로 군을 재편하여 보병 중심의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기에 이른다. 야전삽! 중세의 영주들은 성을 쌓아 자신의 영지를 지키려 했고, 전쟁은 주로 이 성을 공격하는 공성전의 형태로 벌어졌다. 거대한 성벽이 제공하는 방호력은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공격을 방어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거대한 성을 쌓아 방어하는 방식은 포병의 출현으로 사라진다. 우뚝 솟은 성은 포병의 쉬운 먹잇감이 된 것이다. 이러한 포병에 개인 병사가 대응하는 장구가 야전삽이다. 야전삽은 병사에게 수 십분만에 거대한 성과 유사한 수준의 방호력을 제공한다. 게다가 땅 속으로 파고들어 포격 대상으로 삼기에도 쉽지 않았다. 야전삽이 병사들의 개인 장구로 지급된 것은 1910년대로, 1차 세계대전은 지리한 참호전으로 전개되었다. 위 사례에서 기존 무기체계가 신기술과 창조적으로 결합되면 첨단무기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북도의 방산 허브화! 경량성, 고강도의 탄소소재 등 신기술을 기존 무기체계에 덧입혀 가성비 높은 첨단무기로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불시일번한철골 쟁득매화박비향(不是一翻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당나라 황벽선사의 오도송이다. 한차례 뼈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어보지 않고서는 매화가 콧속을 파고드는 향기를 얻을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전북도는 부가가치로 되돌아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소재 산업에 우직스럽게 투자해 왔다. 많은 아품의 시간을 견뎌왔다. 이제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때이다. 창조적인 방식으로!!! /강은호 국방과학연구소 정책자문위원∙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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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30 18:19

우리 꿈과 희망을 함께 이루어 가자.

어제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어제 수고의 열매가 오늘이 되고, 오늘의 준비가 내일을 있게 하리라 믿는데, 오늘 이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일을 꿈꾸는 헛된 망상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헤매고 방황하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정원에 한 포기의 꽃을 심고 가꾸는 수고가 있어야 아름다운 꽃을 오랫동안 볼 수 있다. 물론 혼자만 보기 위하여 심지는 않고 누구나 와서 아름다운 꽃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정원을 열어 놓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는 행복한 하루를 서로 이야기꽃으로 아름답게 피워가는 멋진 정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꾸어 보자. 마음의 문을 닫고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상처를 내고 상처를 주며 불행의 수렁으로 빠져들어 결국은 자신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죄인이 되어 불행을 자초하며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자. 매미의 삶을 생각해 보면, 매미의 한살이는 보통 자연에서 성충 매미의 수명은 1주일에서 2~3주일 정도, 길면 한 달 반 정도인데, 7년에서 17년까지도 되는 유충 시절에 비하면 엄청나게 짧은 생을 살다 간다. 살아있는 동안 수컷은 열심히 노래하고 암컷은 후손을 위한 알을 낳기 위하여 노래도 못하고 산란만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수컷과 암컷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우리는 어떠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잠시 생각해 보자. 백세 시대를 산다고 하는데 흉악한 범죄가 난무하고, 가정이 파괴되며 태어나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이슬처럼 사라지는 영혼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민화 작가로서 문자도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라고 하는 문자도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지켜야 할 여덟 가지 덕목이다. 우리의 심성에 스며있는 유교적 사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국가에 충성하며, 친구와의 믿음과 의리, 윗사람에 대한 예절,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청렴결백,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며, 생활 속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실천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 될 것이다. 어느 할머니께서 손녀를 데리고 갤러리에 찾아오셔서 문자도에 대하여 설명을 부탁한다. 아마 두 자매를 무척 사랑하는 분이라 손녀들에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효제충신예의염치'라는 교육을 원하셨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라고 연신 대답하며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 부탁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아무도 산에 푸른 나무를 심지 않고 바라만 보면서 그늘을 원한다면, 그 시원한 그늘은 누가 만들어 줄까요? 혼자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 사랑의 나무를 심고 열심히 가꾸어 보자. 상처투성이가 되어 세상을 원망하는 그들에게 손가락질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고, 소외된 자들이 편히 쉼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한 안식처가 되어주면서, 행복한 정원을 만들어 간다면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 우리의 자자손손 안전하고 멋진 꿈을 꾸며 세상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듯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멋진 세상을 향하여 우리의 꿈과 희망을 함께 이루어 가자. /김종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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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3 15:12

칠월 칠석, 오작교와 견우직녀

음력 칠월이면 가을에 접어든다는 입추와 더불어 천고마비의 계절로 접어든다. 특히 8월 22일은 우리 세시풍속인 칠월칠석으로 1년에 한번 ‘오작교’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나 애틋한 사랑을 속삭이는 날이라고 한다. 사실 요즘 독자들은 ‘오작교’하면 견우직녀의 오작교보다는 필자의 고향이 있는 광한루 오작교 부근에서 열리는 춘향제전행사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지난 5월 25일부터 5월 29일까지 개최된 제93회 ‘춘향제전행사’에 많은 관심과 남다른 애정을 갖고 참여한 바 있으며, 성대하고 화려한 춘향제전 행사를 즐기며 뜻도 새겨보았다. 잠시 춘향제전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우선 춘향제의 꽃인 ‘춘향선발대회’를 빼놓을 수 없다. 초창기에는 출전자격을 남원시 관내출신으로 제한하였으나, 몇 년 전부터는 전국적으로 확대 선발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미인대회가 되었다. 또 민속씨름대회, 춘향국악대전 등의 볼거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먹거리도 있는데 광한루 안에 있는 월매집 막걸리 맛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인기가 절정이라 독자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경험해 보시기를 바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광한루의 대표 상징인 오작교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오작교는 이름 그대로 까마귀 오(烏)자와 까치 작(鵲)으로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다리를 말한다. 은하계에서는 오작교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나 서로 사랑을 속삭이고, 지상에서는 광한루 오작교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만나서 사랑을 속삭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럼 오작교의 주인공인 ‘견우직녀’에게는 어떤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지는지 조금 더 생각해보자. 견우(牽牛)는 한문으로 끌견, 소우로 소를 끌며 농사짓는 목동이고, 직녀(織女)는 배짤직, 여자녀로 배를 짜는 여자라는 뜻으로 견우성, 직녀성으로도 불리고 있다, 별의 이름으로 ‘견우’와 ‘직녀’ 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별의 고귀함을 생각해 볼 때 견우직녀의 격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견우직녀는 지금말로 표현하면 선남선녀로 인정받아 결혼도 하고 함께 같이 살게 되었으나, 결혼 후 사랑의 즐거움에 빠져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게을러져 이를 본 옥황상제가 견우직녀를 은하수 동쪽에는 견우, 은하수 서쪽에는 직녀가 살도록 하였다. 이 안타까운 견우직녀의 소식을 들은 까마귀와 까치가 남을 돕는다는 사랑과 봉사정신을 발휘하여, 매년 칠월칠석에 위험을 무릅쓰고 하늘로 올라가서 몸을 맞대어 오작교라는 다리를 놓아 줌으로 견우직녀가 사랑을 속삭이도록 하였으나, 그리움을 안고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서러운 심정으로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 칠월칠석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고도 한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묻지마 식의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는 요즘, 견우직녀의 숭고한 사랑을 도와주기 위한 까마귀와 까치의 봉사정신은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우리의 인정어린 덕행(德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또 견우와 직녀는 당초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혼 후 그들만의 사랑에 빠져 자기 본연의 책무를 다 하지 않은 점을 보면서, 우리 인간도 비록 좋은 의도를 가진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본연의 책무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부여된 책무를 다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정도(正道)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조현건 전 전북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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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16 17:37

서울에서 만난 전북 -한양도성

코흘리개를 겨우 면하고 중학교에 입학했을 시절의 일입니다. 제가 다녔던 남원중학교는 시내에서 꽤 떨어진 야트막한 산밑에 자리잡고 있었지요. 입학식을 마치고 보니 학교 옆으로 뭔가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만인의총(萬人義塚)’이라는 시설을 만드는 공사였습니다. 1만명의 의로운 사람들의 무덤이라는 뜻이지요. 정유재란 당시 왜군과 싸우다 돌아가신 조명연합군과 백성들의 무덤을 이장해 그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시설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 자주 있었던 것처럼 저희도 그 공사에 투입되었습니다. 흙을 나르고 돌을 고르고 잡초를 뽑는 일이었지요. 남원성 전투 당시 왜군의 지휘관 중에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도 있었습니다. 왜군의 선봉장으로 부산포에 처음 상륙했던 인물이지요. 그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와 경쟁 끝에 흥인지문(동대문)을 통해 한양도성에 처음 입성하기도 했습니다. 무능한 왕 선조는 이미 한양을 버리고 몽진을 떠난 후였지요. 태조는 조선을 건국한 후 천도를 계획하면서 한양도성을 쌓았습니다. 길이만 해도 약 18.627Km에 이릅니다. 백악산(북악산)을 주산으로 낙산 ~ 목멱산(남산) ~ 인왕산까지 내사산(內四山)을 잇는 매우 긴 성이지요. 한양도성은 백악산을 기점으로 97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팔도의 백성들을 동원해 만들었습니다. 당시 동원된 인부 약 12만명 중 18,255명이 전라도 출신이었지요. 전라도 백성들은 천자문 59번째 글자인 이(李)부터 74번째 글자인 용(龍)까지의 구간을 담당했습니다. 목멱산 서쪽에서 시작해 백범광장과 숭례문(남대문)을 거쳐 이화여고 부근까지의 구간입니다. 농한기를 이용해 상경한 그들은 아침 저녁으로 고향을 향해 절을 하면서 마음으로 가족들의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다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변변한 기계와 기구가 없던 시절, 맨손으로 성을 쌓다 보니 많은 사고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태조 대에 신축되고 세종, 숙종, 순조 대에 개축된 한양도성은 이후 일제에 의해 많은 부분이 헐렸습니다. 그로 인해 전라도 백성들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구간은 현재 목멱산 서쪽부터 숭례문에 이르는 구간만 남아 있습니다. 전라도 백성들의 노고는 세종 때 개축되면서 그 흔적을 뚜렷하게 남겼습니다. 흥인지문에서 낙산에 이르는 구간인데요. 그곳 성벽에는 지금도 井邑(정읍), 金堤(김제), 沃溝(옥구), 咸悅(함열)과 같은 지역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성벽이 무너지면 그곳을 담당한 지역 백성들에게 보수를 시키기 위해 일종의 공사실명제를 실시한 까닭이지요. 남원 출신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최철호 소장은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내사산 중 낙산이 125m로 제일 낮다 보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성곽을 견고하게 쌓아본 경험이 있는 전라도 백성들이 낙산구간에 동원된 것으로 추측한다.” 한양도성은 일제가 조선을 침탈한 후 도시를 새로 정비한다는 미명 아래 헐릴 운명에 처합니다. 전차길을 낸다는 명목하에 결국 서대문, 혜화문 등이 헐리게 되지요. 그런데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살아남았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가또와 고니시가 두 문을 통해 한양으로 입성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한양도성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라고. 남원성을 파괴했던 고니시로 인해 흥인지문이 살아남았으니까요.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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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9 16:12

전북인의 DNA, 4차 산업혁명시대의 방위산업에 특화되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선천적 ‘기질(氣質)’, 세칭 DNA를 가지고 태어난다. Y세대나 MZ세대, 해변 지역과 내륙 지역 사람들의 성향이 다른 것은 이러한 기질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집단적으로 고유한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DNA가 성공적인 삶의 결정적인 요소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농경시대의 성공적인 DNA는 무엇일까? 근면, 성실, 그리고 협동심일 것이다. 농업은 지역 공동체가 함께 일구어 나가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의 DNA는? 산업화 시대는 특정 분야의 깊이 있는 기술적 지식과 경험이 조합된 전문성을 요구한다. 전문성을 위한 기질은 집중성이다. 정보화 시대에는 아마도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 때에 정확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민첩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기질은? 정보통신 기술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이 시대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등 모든 것이 연결되는 융합의 시대이다. 융합능력이 핵심이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방위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DNA는 융합성과 국가 공동체에 대한 사랑 즉 애국심이라고 확신한다. 우리 전북인의 DNA는 무엇일까? 전북을 대표하는 표현들, 즉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농지’, ‘수양버들 같다’는 평판, 그리고 대표음식 ‘비빔밥’, 이 세가지에서 전북인의 DNA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북인은 수천년간 이어져내려온 농경인의 DNA, 근면 성실 협동심을 가지고 태어난다. 여기에 수양버들 같은 유연함과 느긋함이 덧붙여져 있다. 마지막으로 비빔밥! 다양한 식재료를 불로 굽거나 끓여서 제3의 맛을 내는 화학적 결합형 음식들과는 달리 비빔밥은 각 재료의 고유 특성은 유지하되 섞고 비벼서 새롭게 증강된 맛을 내는 융합형 음식의 대명사이다. 따라서, 전북인의 DNA는 근면 성실 협동심 유연함과 느긋함 그리고 융합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DNA로 농경시대는 주도하였으나 특정 기술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산업화 시대와 민첩성이 핵심인 정보화 시대에는 조금은 잘 어울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시대, 특히 이 시대의 방위산업의 주역은 전북인이 될 것이다. 근면 성실은 꼭 해야 할 일이라면 하기 싫거나 힘들더라도 지금 미리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기질이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성공적인 삶을 위한 기본 요소이다. 여기에 전북인은 유연함과 융합능력이 탁월하다. 공동체가 함께 일하는 협동심은 국가를 향해서는 애국심으로 표출된다. 전북인은 이러한 DNA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기다려 온 듯하다. 특히, 이 시대의 방위산업을 이끌기 위해 특화된 듯하다. 다만, 근면 성실이 완고한 고집으로, 유연함이 우유부단함으로, 협동심이 소아적 파벌의식 또는 집단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끊임 없이 경계해야 한다. 봉산개도(逢山開道) 우수가교(遇水架橋)!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어 나가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건넌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특히 이 시대 방위산업의 주역이 되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산과 물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 때마다 전북인의 DNA로 길과 다리를 만들어 나가리라 믿는다. /강은호 국방과학연구소 정책자문위원∙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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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2 14:59

문화예술이 살아야 하는데

우렁찬 노래를 부르며 세상 밖으로 홀로 나왔다.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사랑받고 세상이 무엇인지 모르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 어느 날 수많은 경쟁을 하면서 넓은 세상으로 나왔다. 상처와 오해와 비난 속에서 우리의 삶이 무척 힘들고 지쳐 때론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포기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덮어주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안 될까? 오랜 해외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타인 인격을 존중하는 것을 배웠다. 남이 잘하면 아낌없는 박수와 함께 칭찬해 준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 주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좋은 습관은 어릴 때부터 칭찬 속에서 자라서일까? 자존심도 강하고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강하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는 미술에 대하여 필요한 것을 배우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는 한마디씩 던지는 전공 하였느냐는 질문에 상처받을 때가 있었다. 필자는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뒤 쳐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노력하여 책을 읽고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찾아 활용한다. 필자는 상처를 극복하기 위하여 '예술인은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끝없이 노력해 왔다. 또한 많은 작가를 만나며 기자로서 SNS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작품의 색깔과 살아온 삶의 냄새가 느껴진다. 어려운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순간을 잘 극복한 작가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작품 세계는 겸손과 행복이 성공한 작가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필자는 학연, 지연, 혈연 때문에 예술 분야가 많이 부패하여 있어 서글프다, 가끔은 재벌 작가도 있지만 가난한 작가들도 많고, 요즘은 특히 전공한 30~40대에 대가가 되어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들도 많다. 또한 대부분 삶의 현장에서 물러난 백발이 된 늦깎이 작가들의 노련한 삶이 묻어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며 어렵고 힘들게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을 보며 마음이 아프고 슬픈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꿈을 갖고 열심히 준비하여 공모전에 출품을 하였는데 인맥이 없어 떨어졌다는 출품자의 말을 들을 때마다, 새싹이 자라기도 전에 짓밟혀버리면 저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상처를 받아 꿈을 접어버리는 안타까운 작가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가슴이 답답하다. 필자는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인 여건으로 좋은 대학에서 공부는 하지 못하지만 필요한 자료나 정보는 온라인으로 혼자 터득하며 열심히 노력한다. 우리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학연, 지연, 혈연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훈련을 그렇게 받아서인지 자존심이 강하고 남이 부족하면 서로 인정하고 채워주는 아름다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맨하튼 미술박물관을 방문하다 보면 유치원생이 끄적거린 것 같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며 칭찬해 주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종종 있었다. 저들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작가들의 실력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평가받는 세상, 다시 말하면, 작가의 표현하고자 하는 있는 그대로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예술인들 역시 작가들의 작품을 볼 때에 작가의 내면세계를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인정해 주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김종숙 작가 △김종숙 작가는 재경 남원문학협회 이사이며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아트코리아방송 뉴욕뉴저지 지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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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6 16:46

타향(他鄕)과 애수(哀愁)

먼저 타향을 말하기 전에, 고향이란 어떤 곳인가 하는 것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고향(故鄕)이란 부모로부터 태어나서, 어릴 적부터 살아오고, 죽마고우와 같이 뛰놀고, 공부하던 어릴적 정서가 응집된 곳이며, 조상대대로 살아 온 곳 이라할 수 있다. 그럼 타향(他鄕)이란 어떤 곳인가? 옛날 조상들은 타향의 달과 구름을 보면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과 그리움에 빠져드는 것을 망운지정 (望雲之情) 또는 망향(望鄕) 이라고 부르곤 했다 망운지정이나, 망향이나 모두 고향 부모를 생각하고, 그리워한다는 뜻임에는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고향을 떠나 낯설고 물설은 곳이 타향이고, 타향이란 말만 들어도 외롭고 쓸쓸한 곳으로 떠올리며 한숨과 눈물로 지새는 곳이 타향이라 부르곤 했다. 이러한 타향에서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기 위하여 고복수 선생의 타향살이를 목청껏 부르며, 타향의 외로움과 서러움을 달래려 한 것 같다. 그래서 고복수 선생의 '타향살이' 노래 가사를 음미하면 타향살이의 서러운 마음을 알 것 같아 적어본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혜어보니, 고향 떠난 10여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 같은 내신세가 혼자도 기가 막혀서, 창문열고 바라보니 하늘만 저쪽,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버들피리 꺾어 불던 그 때는 옛날⋯“ 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해보면, 무슨 사연으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향을 훌쩍 떠나 어렵고 서러운 세월 속에, 타향에서 지 낸지, 10여년이 흘렀건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청춘만 늙어감을 한탄하는 노래가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어, 타향에서 사는 사람들의 애창곡이 되었나 싶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서러움과 그리움으로 빠져있는 상태를, 애수(哀愁)에 빠져있다고들 말하며. 이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 우리가 많이 쓰고 있는 사자성어중에 '수구초심(首丘初心)' 이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구릉으로 향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호랑이도 자기 새끼를 둔 굴을 소중히 여기며, 죽을 때에는 자기가 살았던 골짜기를 향하여 죽는다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짐승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는 말할 나위가 없다 하겠다. 필자의 고향은 춘향고을 남원으로 고등학교까지 고향에서 다녔고,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다니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 전주∙서울 등지에서 생활 하다 보니까 고향에 대한 애향심이 남다르게 간직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필자가 1980년대 초반에 서울에 올라와 느꼈 던 사실로, 당시 서울시내를 질주하던 차량들 중 지역(전북) 표시와 함께 차량번호가 쓰여 있는 차량을 발견하면, 내 고향 남원사람이 타고 있을 까? 혹시 아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마음에서 고개를 쭉 내밀며 뒤쫓아 가면서 애향심에 찬 마음으로 고향 생각에 빠졌던 때가 많았었다. 타향에서 생활하는 모든 분의 마음이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인간의 본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따라서 우리는 타향에 있더라도 항상 고향을 그리며, 고향 발전을 위하여 밀알이 되어야지 하는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조현건 전 전북지방병무청장 △조현건 전 청장은 남원 출신으로 원광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동국대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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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9 16:22

서울에서 만난 전북- 녹두장군 전봉준

38년 전의 일입니다. 남원역에서 통일호 기차를 타고 대학교 원서를 내러 처음 서울이라는 곳을 갔지요. 그야말로 별천지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중학교 1학년 시절 처음 기차를 타고 남원에서 전주를 갔을 때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여의도를 지날 때 보았던 63빌딩의 위용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였지요. 그때부터 제 생활의 주무대는 남원과 전주를 떠나 서울이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안암동과 종각역, 이대앞이었지요. 지금은 강남역, 가로수길, 압구정처럼 핫플이 많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최고의 핫플은 종각역이었습니다. 저도 주로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미팅을 하곤 했지요. 오랜만에 대학 시절을 추억하며, 추억의 핫플을 가보았습니다. ‘서울에서 만난 전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지요. 지하철 1호선 종각역, 5번 혹은 6번 출구로 나와 뒤를 돌아보면 그가 있습니다. 오랜 감옥 생활과 모진 고문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형형한,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눈빛을 가졌습니다. 바로 녹두장군 전봉준입니다. 그는 1855년 1월 15일 태인현, 지금의 정읍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농민들의 사정은 비슷했지만 세 마지기의 논밭으로 온 가족이 먹고살기에 세상은 너무나 배가 고팠지요. 그마저도 탐관오리들의 수탈로 온전히 식구들의 입으로 들어가긴 어려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농민들이 일어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나라가 나라다우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백성의 안전과 배고픔이지요. 조선은 건국 이래 그런 기본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그랬고, 병자호란 때 그랬습니다. 당시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요. 그가 이끄는 농민군은 한때 전주성을 점령했지만, 우금치에서 패한 후 일본군에 쫓기게 되었지요. 결국 옛 부하의 밀고로 체포된 후 서울로 압송돼 전옥서(典獄署)에 수감되었습니다. 전옥서는 형조와 의금부에서 취조하는 중죄인들을 가두어두는 지금의 구치소 같은 곳이었지요. 바로 그 전옥서가 있던 자리에 장군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포털 사이트에 ‘전봉준’을 검색하면 가마 위에 타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영사관에서 취조를 받은 후 전옥서로 압송되던 당시의 사진입니다. 혹독한 고문으로 제대로 걷기 어려워 가마에 탈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요. 그럼에도 그의 눈빛은 여전합니다. 1895년 4월 19일 대한제국에서 재판소구성법을 공포했습니다. 나흘 후인 4월 23일 그는 처음으로 설치된 재판소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다음 날 새벽 2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망나니의 칼을 받던 참수형에서 교수형으로 바뀐 후 처음 사형이 집행된 것이지요. 문명개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재판절차를 보면 너무도 형식적이고 야만적이었습니다. 아마도 농민군을 하루빨리 잠재우려는 무능한 정부와 일본의 합작품이었겠지요. 아이러니한 것은 그를 재판한 재판관이었습니다. 바로 법무아문 대신이자 대표적인 개화파였던 서광범이었지요.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뜻은 같았지만, 길은 서로 달랐습니다. 장군이 돌아가신 2년 후 서광범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조선인은 결국 나라를 잃었습니다. 둘은 저승에서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마음이 어지러울 때 서울 한복판에서 녹두장군을 만나보세요. 그는 아직 살아있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할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양중진 변호사는 전라고∙고려대를 졸업한 뒤 중앙지검 공안1부장∙국정원장 법률보좌관 등을 역임했으며, <검사의 스포츠> <검사의 삼국지> <검사의 대화법>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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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2 16:20

전라북도, 방위산업 허브화 추진! 지금이 적기이다

독자 중에는 전라북도에 웬 방위산업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방산기반이 타 지자체에 비해 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전라북도는 방위산업 불모지로 여겨졌고, 첨단기술의 집합체인 방위산업을 육성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전북도청을 처음 방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작년 7월 말, 전북도청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김관영 지사를 면담하였다. 면담 내용은 뜻밖이었다. 전북도의 미래 산업으로 방위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며, 행정적으로 확고히 지원할 예정이니 함께 해달라는 제안이었다. 전북도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해온 탄소섬유 산업의 활용성이 이 매우 크다고 판단되어, 그 자리에서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더불어, 전북도가 방산영역을 새롭게 확대하는 확장성에 중점을 두고 기존 방산중심 지자체와 협업하며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방식으로 추진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방위산업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제언하였고, 김지사는 이에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렇다면 후발주자인 전북도가 방산의 허브가 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일까? 확장성과 협업이 핵심 키워드이다. 최근 폴란드와 초대형 수출계약 등 K-방산의 전성기를 알리는 소식이 연이어 들리고 있다. CNN은 “한국 방위산업은 이미 메이저리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50여 년간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방산 현장을 지켜온 연구자들, 방산업체, 그리고 정부의 일관된 방산육성 정책이 맞물려 이룩한 성과이다. 이러한 성과를 지속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신무기 위력이 증명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우주감시체계 유무인복합체계 등 최첨단 신기술을 끊임 없이 개발하여 기존 무기체계와 접목해야 한다. 그리고 최고의 방산기술 인재를 양성하여 투입해야 한다. 여기서 전북도의 역할을 찾을 수 있다. 방위산업은 초기 막대한 투자가 수반되는 산업이다. 기존 방산 중심의 지자체는 수십년간 막대한 투자를 해왔고 현재 그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후발주자인 전북도가 타 지자체와 경쟁하는 방식으로 방산육성에 나선다면 성공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전북도가 방위산업의 미래를 보장하는 신기술 신소재 개발 및 생산, 인재 양성의 메카가 되어 기존 방산 지자체에 제공하는 중심적 허브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가? 전북도가 지난 10여 년간 우직스럽게 투자해온 탄소섬유 산업은 미래전의 핵심인 우주 및 유무인 복합무기체계의 기반산업으로서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 그리고 방산인재 양성에 집중할 수 있는 지역거점 대학과 신기술 개발에 필수적인 실험 및 생산에 활용할 수 있는 광대한 공간 새만금이 있다. 여기에 미래를 내다보는 훌륭한 리더십과 이를 뒷받침하는 대학, 지자체 공무원, 핵심기술을 축적해온 방산 유관기업 등이 있다. 최근 국방과학연구소와 새만금청은 신기술·신소재 개발을 위한 인프라 조성 등을 주 내용으로 ‘첨단기술 개발 및 산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필요한 조치를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전북대는 올해 내 국내 최초로 학부과정 방위산업학과를 신설하여 방산에 특화된 인재를 양성할 예정이다. 방산인재 양성과 신기술 개발에 주요 방산기업이 동참하고 있다. ‘춘매추국 각유시(春梅秋菊 各有時)’, 매화와 국화 저마다 다 때가 있다는 뜻이다. ‘전북도 방위산업 허브화 추진’ 지금이 그 “때”다. /강은호 국방과학연구소 정책자문위원∙전북대 특임교수 △강은호 정책자문위원은 미국 싱크탱크 CSIS 방문연구원, 방위사업청 차장과 청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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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05 17:46

내 이름이 어때서

들꽃 이름을 불러보면 오래 소식 끊긴 친구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비비추 더워지기 으아리 진득찰 바위손 소리쟁이 매듭풀 절굿대 노랑하늘타리 딱지꽃 모시대 애기똥풀 개불알꽃 며느리배꼽 꿩의다리 노루오줌 도꼬마리 엉겅퀴 민들레 질경이 둥굴레 속새 잔대 고들빼기 꽃다지 바늘고사리 애기원추리 곰취 개미취… 덕팔이 다남이 점순이 간난이 끝순이 귀돌이 쇠돌이 개똥이 쌍점이 복실이… -<권달웅시인의 ‘들꽃이름’ 에서> 그렇습니다. 시부저기 들꽃 이름들을 웅얼거리다가, 슬며시 소웃음을 짓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나 멋들어진 이름을 지었을까요.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신다(유안진시인)’는데, 정말 하느님이 풀꽃 이름들을 지으셨나 봅니다. 그저 듣기만 해도, 가슴이 훈훈해지고, 정겹던 코흘리개 꾀복쟁이 동무들이 생각납니다. 그 동무들은 지금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송기숙선생의 소설 <녹두장군>엔 구한말 ‘으뜸 이름 뽑기대회’가 재미나게 그려집니다. 1892년 음력 11월 삼례대집회 때, 동학 군중들이 펼친 놀이마당 무대를 익살스럽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마다 제 이름을 뽐낼 때마다 군중들은 배꼽을 부여잡고 한바탕 웃음을 쏟아냅니다. 그렇다면 우선 130여 년 전 ‘조선 이름 콩쿠르’부터 구경하고 볼 일입니다. 무대에 오른 이름들의 사연은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앞으로도 아들만 계속 낳으라고 김쪼르르, 아들 또 낳으라고 또쇠, 재취로 올 때 데리고 왔대서 얻은복이, 양자로 왔대서 모종쇠, 조용히 살래서 솔부엉이, 똘똘하라고 똘남이, 한 천년 살래서 한천돌이, 가뭄에 소나기처럼 아들 쌍둥이 낳자 땅소나기(형)-또소나기(아우), 울퉁불퉁 숫돌머리라서 싯뚜리, 얼씨구 아들이구나 해서 어아나리, 만년 춘삼월 되라 김만세춘, 작두 고두쇠처럼 꼭 필요한 사람 되라고 장고두쇠 그밖에 덩실이, 동삼이, 물렁이, 상쇠, 전쥐불, 신등치, 오꼼춘이, 남똥구리, 최차돌, 이무던이… 백정출신 의적 임꺽정(?~1562)의 원래 이름은 ‘놈’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놈아! 저놈아!”로 불린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의 외할머니가 손자의 앞날이 걱정되어 “걱정아! 걱정아!” 불렀던 게 ‘꺽정’으로 굳어졌습니다. 임꺽정의 아버지 임돌이, 누나 섭섭이, 형 가도치(加都致), 아내 황은총의 이름도 순박하고 살갑습니다. 임꺽정의 여섯 두령 중 길막봉이, 황천동이, 배돌석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 백정은 이름 없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있어봤자 제대로 불러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냥 ‘~개’로 불리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작은개(作斤介) 일개(一介) 언개(彦介) 헌개(獻介) 떡개(德介) 똥개(同介) 젖은개…. 동록개(?~1895)는 구한말 김제 금산사 앞자락 원평에 살던 백정이었습니다. 동록개란 ‘동네 (얼룩덜룩 비루먹은)개’를 뜻합니다. 그는 원평 동학대접주 김덕명에게 “신분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며 자신의 집을 헌납했습니다. 온갖 수모와 멸시를 받으며 모았을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그 후 동록개의 행적은 알려진 게 없습니다. 공주 우금치전투 이후, 수많은 백성이 동학의 ‘동’자만 붙어도 잡혀 죽었습니다. 아마 당시 동록개도 그 그물망을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원평엔 동록개가 기증한 ‘초가 집강소건물’이 남아있습니다.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주문(名字是世上最短呪文)입니다. 목숨을 바쳐 지키고 싶은 게 바로 자신의 이름 석 자입니다. 세상에 삐까뻔쩍한 이름은 차고 넘칩니다. 이름도 모자라 호(號)니 자(字)니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으스댑니다. 그렇습니다. 차라리 ‘동네 개’가 천배 만배 나은 세상입니다. 그 속엔 동록개의 ‘평등 세상에 대한 꿈’이 간절하게 담겨 있습니다. /김화성 전 동아일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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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21 17:19

호모 푸투루스를 위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지식인에게 부여된 가장 큰 소명은 시대정신(zeitgeist)을 찾아내는 일이라 믿는다. 시대정신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유이자,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길(路)이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 세 문장이라고 본다. 폴 고갱의 그림 제목이기도 하다. 올해 ‘타향에서’ 필진이 되어 6번의 칼럼을 쓰면서 전북발전을 위해 필요한 시대정신이 무엇일지 나름대로 치열한 고민을 했다. 그 결과, 다섯 개의 새로운 인간상(像)을 제시했다. 유동하는 인간, 새로운 경제인, 공정한 인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인간, 협동하는 인간 등이다. 오늘은 결론으로 미래의 인간, 즉 호모 푸투루스(Homo Futurus)를 제안한다. 먼저 다섯 번의 논의를 상기해보면, 첫째는 인구문제였다. 총인구가 줄어들고, 상주인구의 고령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젊은 층의 유출이 거듭되는 2중의 어려움 속에서 대안은 유동하는 인구(호모 모벤스)이다. 지역을 찾아오는 인구가 많아지도록 관광 등 다양한 시책이 필요하다. 둘째는 변화한 경제 여건을 고민했다. 물가가 높고 금리가 천정부지이다. 더구나 좋은 일자리는 늘지 않고, 경제 규모도 더 이상 커지지 않는 시대이다. 이런 여건에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존과는 다른 생존전략(新 호모 이코노미쿠스)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는 공정과 정의에 관한 문제였다. 세대간, 계층간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시대에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공정(호모 주리디쿠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과정, 결과 모두 공정해야만 지속가능한 사회가 된다. 넷째는 기후변화였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가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이상 기후가 반복되는 어려운 강을 건너야 한다. 솔선수범, 공동 노력, 국제 공조가 절실히 요청(호모 클리마투스)된다. 다섯째는 공동체의 내의 협동이다. 지역발전을 위해 모두 친화력과 다정함에 바탕을 둔 소통으로 공동선을 창출(호모 코포런스)해내야 한다. 상호 도와야만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이런 시대적 여건에 맞는 미래를 위한 준비는 무엇일까? 다른 질문을 하면, 지역발전을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과 대비를 해야 하는가? 인구 감소, 고령화, 청년인구 유출 등은 ’먼저 온 미래(future arrived)’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 현재 도에서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기업 유치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이차전지, 새만금, 농업 등을 활용하여 먹거리의 판을 키워야 한다. 다음은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인 전북의 강점을 살려야 한다. 호지 여사가 ‘오래된 미래로 칭송한 라다크’처럼. 전북은 맛, 멋, 문화, 자연환경 등의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를 잘 활용하면 미래의 큰 자산이 될 거라 본다. L. 스티븐슨은 목표를 달성해버린 것보다 희망이 있어서 계속 여행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전북발전이라는 긴 여행에 반드시 희망이 있을 것이다. 시인 조동화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마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전북발전을 위한 다양한 생각과 계획, 열정이 모이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게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호모 푸투루스의 길일 것이다. 생각과 글로 고향 분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김광휘 행안부 지역경제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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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14 15:03

인구가 늘어야 나라가 산다

한국이 무너지고 있다라는 보도기사가 각종 매스컴에서 연일 떠들썩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인구 감소가 갈수록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매년 2월 기준 출생아 수는 1981년 93,556명 이던 것이 2001년 49,939명, 올해는 2만명 아래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인구는 2019년 11월부터 3년 4개월째 자연 감소중이라고 하며 전북도 역시 자연 감소가 두드러진 지역의 하나다. 전세계 인구가 80억명, 2080년 104억명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인구 80억명 돌파는 “인류 발전의 이정표”를 의미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구성장의 시대가 저무는 현실도 포함돼 있다라고 지적하며 젊은층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구 성장률 둔화세에서 주목되는 것은 ‘나라가 잘 살수록 아이를 안 낳는다는 고성장, 저출산 현상이다. 그동안 중국이 최대 인구 대국의 자리를 지켜오다가 얼마전 인도(14억 2천8백만명)에게 뒤쳐지는것으로 발표됐다. 1970년대 ’한자녀 정책‘을 시작한 중국은 개혁개방과 고속성장 속에서 저출산으로 2012년 이후 인구감소가 시작되자 2016년 ’2자녀‘를 허용한데 이어 지난해 3자녀 정책까지 도입했다. 현재도 결혼 개혁 실험지구 지정, 공무원들이 중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데이트 휴가제공, 사교육 전면금지 등으로 인구 증가 정책을 펼치고 있다. 나라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저출산, 고령화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교육비, 일자리, 비싼 집값 등이 결혼과 출산을 막는 근복적 요인으로 보고, 이런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해마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 (지난 15년간 280조 투입) 있지만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0.78명이다. 정부에서는 인구 늘리기 위한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결혼과 출산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사회 경제적 요인을 보면 양육과 교육비가 늘어나고 주거비용이 높아지며 또한 육아로 인해서 경력 단절의 문제 등이 대표적 원인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사회구조적인 해법이절실하다. 인구수 증가의 가장 핵심 계층은 2030 청년층이다. 청년이 희망과 꿈을 가지고 인구 증가에 앞장서 나가도록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한다. 배우자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많이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구조와 시스템 도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각 자치단체마다 인구 증가 시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출산 지원금 경우 지원금액도 다르고 다른 지역에서 하고 있으니 우리도 해야한다라는 구색 맞추기에 급급하고 있으며, 영아·육아 수당지급, 학비지원, 일자리(취업,창업) 청년부부 결혼지원, 주거 지원 등 백화점식 지원 방안을 나열하고 있으나 청년들이 이러한 지원제도를 보고 결혼하여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르겠다라는 생각을 얼마나 갖게될지 의구심이 든다. 세계에서 양육비가 가장 비싼 우리나라이지만 출생아의 생육과 성장에 필요한 생활비, 학비, 취업, 결혼까지 일련의 연속적이고 파격적인 지원 시스템을 우리 고장만이라도 도입해줄 것을 제안해본다. 이러한 사회구조적인 지원시스템이 갖춰지면 청년 누구라도 결혼과 출산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청년들이 사회 생활 유지에 자신감을 갖도록 지원 규모나 방법을 청년 정책 연구와 각 계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면 되리라 본다. /유성민 에코에너지원(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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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07 15:57

전라감사 김학진

1894년 5월 22일, 고종은 신임 전라감사에 김학진(1838~?)을 임명했다. 그런데 김학진은 임금 앞에 엎드리더니 도무지 일어나지 않았다. 고종이 물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 김학진이 말했다. “재량권(便宜從事·편의종사)을 주신다면 바로 부임하겠습니다”. 고종은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할 수 없다는 듯 “그대에게 맡기겠다”라며 허락했다. 당시 전라감사 자리는 ‘독(毒)이 든 성배’였다. 5월 31일, 전주성이 농민군 손안에 떨어졌다. 6월 7일, 청나라군대가 아산만에 상륙했다. 6월 9일엔 일본군 선발대가 제물포에 올랐다. 안팎 상황이 긴박했다. 김학진은 전주 근교인 삼례에 머물며, 전봉준과 수차례 ‘물밑 밀사 교섭’을 가졌다. 그렇게 6월 10일 전주화약(和約)이 맺어졌다. 7월 23일 새벽,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다. 7월 24일, 고종은 느닷없이 김학진을 병조판서에 임명했다. 이에 김학진은 “제가 만약 (전라감영에) 하루라도 없으면, 동학무리를 어루만져 귀화시키는 국면은 파탄이 날 것”이라며 거부했다. 신하들은 ‘도적을 끼고 임금을 협박한다’며 김학진을 당장 잡아들이라고 아우성쳤다. 7월 25일 일본 해군이 아산만 풍도 앞바다에서 청나라함대를 기습 격침하며 청일전쟁이 터졌다. 7월 27일 조선조정에선 김홍집 친일내각이 들어섰다. 전주는 아전들의 악명이 높았다. 아전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감사의 눈과 귀를 가렸다.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기 바빴다. 일찍이 대원군은 “조선엔 3가지 큰 폐단이 있는 데, 충청도의 사대부, 평양의 기생, 전주의 아전이 바로 그렇다”라며 탄식했을 정도였다. 김학진은 우선 ‘아전들의 입김’부터 차단해야 했다. 그는 고심 끝에 서울에서 유능한 참모를 데리고 갔다. 김성규(1863~1936)가 바로 그 인물이었다. 김성규는 개화파 지식인으로 실용적이고 영민했다. 그의 아들이 바로 ‘사의 찬미’ 윤심덕과 현해탄에 몸을 던진 연극인 김우진(1897~1926)이다. 언어학자 김방한(1925~2001) 전 서울대교수가 김우진의 아들이기도 하다. 8월 6일 김학진과 전봉준은 전라감영 선화당에서 ‘관민상화(官民相和)’를 맺고 집강소 체제를 출범시켰다. 집강소란 ‘기강을 세우는 곳’이란 뜻. 관리와 함께 농민군이 직접 지방행정에 참여해 양반-상놈, 상전-종놈과 같은 차별적 구질서를 깨부숴 버렸다.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과부 개가를 허용하는 등의 <12개 폐정개혁안>을 실시했다. 그 밑그림의 실무자가 바로 김성규였다. 조선 양반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매천 황현은 “아침에는 김학진의 머리를 매달고, 저녁에는 전봉준의 시체를 찢었으면 좋겠다”라며 펄펄 뛰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군 내부보고서엔 “김학진은 동학당의 전주 입성을 전후해서 목숨을 걸고 구민 사업을 주선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라고 적혀있다. 김학진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의 공식 전라감사 재임(5.22.~11.6.) 기간은 6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보이지 않는 역할’은 컸다. 그는 소신이 뚜렷하면서도 세심했다. 무조건 백성에게 호통치지 않았다. 명색이 전라감사인데도 늘 전봉준을 앞세웠다. 농민군의 2차 봉기 때도 후방에서 전봉준에게 식량과 무기를 운반해 줬을 정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행정은 ‘작은 생선을 굽듯이(若烹小鮮·약팽소선)’ 펼쳐야 한다. 낮은 자세로 백성의 눈높이에 맞춰,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가을밤, 전어 굽다가 홀라당 태운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관리들이 내놓는 정책은 대부분 겉보기에 꽤 그럴싸하다. 문제는 그것이 현장에 적용될 때이다. 으레 삐걱대고 불만이 터진다. 그러다 끝내 민심이 폭발하기도 한다. 그렇다. 악마는 언제나 '디테일'에 있다. /김화성 전 동아일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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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4 15:47

호모 코포런스를 위하여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갈등이 많다. 지향하는 바가 다를 경우 다른 편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 MZ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인식의 차이는 먼 나라가 되었다. 2~30대 젠더 갈등은 혐오와 배척이 나타나기도 한다. 노사간, 계층간 갈등도 여전하다. 갈등은 사회 발전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평화로우면 한 국가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지만(G. 짐멜), 어느 정도의 활발한 갈등이 상시로 벌어지는 사회는 그 갈등을 해소해가면서 앞으로 전진(L. 코저)해왔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와서 갈등은 순역(順歷)의 과정, 즉 헤겔식 정반합을 거치지 못하고 양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그런 게 아니다. 민주주의의 선봉인 미국도 좌우의 대립이 극심하다. 이처럼 갈등이 극단화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정보가 넘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축적된 지식은 SNS를 통해 전 세계에 즉각적으로 퍼진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사용자의 성향에 맞춤형으로 반응해준다. 이러면 확증편향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위처럼 원래 싸우기를 좋아하고 서로 반목하는 존재였던가? 인간본성에 관한 성선설과 성악설간의 논쟁의 역사는 길고 뚜렷하다. 맹자와 루소가 전자라면 순자와 홉스는 그 반대편이다. 어느 쪽을 취하든 갈등이 심한 집단간의 대립을 화해로 이끌기 위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류가 서로 화합하고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헤어와 우즈는 진화론적으로 볼 때 인류는 강한 자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가장 친절한 자가 생존해왔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유전학자 류드밀라 등은 시베리아에서 야생 여우의 50세대에 걸친 가축화 실험을 통해 잘 짓고 꼬리를 잘 흔드는 여우들이 탄생했다고 보고했다. 이 사례는 다정한 개체가 우선 유전된다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이제 자연계의 진화 법칙은 ‘적자생존’에서 ‘친절자 생존(Survival of the Friendliest)’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 인류도 강한 자 보다는 그간 협동을 잘 하고, 무리 구성원과 화합하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진화 생존해왔다고 한다. 이를 네덜란드의 인류학자 브레흐만은 <휴먼카인드>에서 호모 코포런스(Homo Cooperans), 즉 협동하는 인간이라 인용했다. 호모 코포런스를 위한 길은 무엇일까? 누스바움 여사는 혐오의 시대를 종식시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감정은 ‘사랑’이라고 역설한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에서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이 이타심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의 ‘공정한 관찰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본래 인간이 惡했는데 선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게 교육과 독서라고 말한 사람은 벽돌보다 두꺼운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쓴 스티븐 핑커이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공감과 연대에 바탕을 둔 협동하는 인간에 그 답이 있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친화력을 높여 다정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는 다정한 인류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전북발전을 위해서 이미 한 배를 타고 있다. 모두 함께 전북의 미래라는 목적지로 항해하는 동반자이다. 나짐 히크메트는 ‘가장 위대한 시는 아직 안 써졌고/진정한 여행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진정한 여행은 시작된다.’라고 하였다. 전북발전을 위한 이 긴 여행이 다정하고 협동하는 전북인 像에 바탕을 둔 진정한 호모 코포런스의 길이 되길 바란다. /김광휘(행안부 지역경제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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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7 15:58

새만금 이차전지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아야

최근 새만금산단에 이차전지 소재기업들이 집적화되면서 글로벌 이차전지산업의 중심지로 급부상 하고 있다. 전북도는 새만금개발청과 함께 지난달 28일 이차전지 소재 기업인 ㈜에코앤드림, ㈜리카본 솔루션즈 기업과 새만금 국가산업단지 입주를 결정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기업은 새만금 산단에 1,135억원을 투자해 올 하반기 공장을 착공하고 내년 하반기부터 가동한 계획이며 90여명의 신규 인력을 채용해 지역 고용 활성화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또 지난달 중순에 ㈜LG화학, 절강화유고발트와 1조 2000억원대 투자 협약을 체결하여 이차전지산업과 관련해 유례없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 세계 강대국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첨단 산업 분야인 이차전지 산업 등 현 정부 출범 1년만에 4조 2천여억원의 투자 유치 성과를 거두어 국내 최대 이차전지 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새만금인입철도, 새만금신항만, 새만금국제공항 등 핵심 기반시설이 착실히 건설 되고 있는 시점에서 새만금 국가산단의 우수한 투자환경과 기업 편의를 최우선으로 도로, 전기, 용수, 폐수 처리시설 구축을 위한 전북도와 새만금 개발청이 함께 이뤄낸 결과로 이런 성과와 노고에 대해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이미 입주해 있는 이차전지기업들과 더불어 ㈜LG화학 등 새만금 산업단지에 입주 계약한 이차 전지 관련 소재 기업들이 집적화 됨에 따라 새만금 산단이 이차 전지 산업의 투자 최적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만금산단을 이차전지산업 클러스터로 육성하기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법인세 감면 등 기업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새만금 투자 진흥지구’ 지정도 서둘러야 할 것이며 국가 첨단 전략 산업 특화 단지 지정과 연구 개발, 인프라 구축, 배터리 셀제조·재활용 산업으로 이어지는 이차전지 부가가치를 연계하는 산업 시스템 체계도 구축해야겠다. 정부의 이차전지특화단지 공모에 있어서도 경북, 울산, 충북 등 자치 단체간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전북도가 새만금 개발청과 함께 더욱 긴밀한 협조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전북대학교도 이차전지 관련학과를 개설중에 있고 새만금 산단의 장점을 최대로 살려 새만금 이차전지특화단지 지정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이차전지 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아 나가야 한다.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새만금 산단이 글로벌 이차전지소재 공급기지로 손색이 없도록 안정적인 생산 및 공급체계 구축과 이차전지 기술 개발을 위한 R&D 지원, 인재양성, 기업지원 체계도 뒤따라야 할 것 이다. 한편 전북도는 지난 3일 전북특별자치도의 성공적인 안착과 이차전지특화단지 유치를 위한 ‘전북특별자치도 국민지원위원회 및 이차전지특별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특히 이차전지특별 위원회는 이차전지산업을 전북의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추진하여 새만금을 이차 전지 산업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지난 3월에 SK온 등의 합작 회사 GEM코리아와의 1조 2천억 규모의 투자 협약에 이어 ㈜LG화학 등과 1조 2천억 규모의 투자 협약을 연이어 체결하는 등 새만금 산단이 이차 전지 산업의 투자러시가 이어지고 있어 이차전지 전문특화단지 인프라 조성에 용이하고 한국 노총과 노사정 상생 협약을 체결하여 전북형 이차전지 인력양성에도 힘을 쏟는다 하니 자못 이차 전지 특화단지에 대한 도민들의 기대가 크다. ‘전북이차전지특별위원회’는 새만금개발청 등 관계 기관과 범도민의 역량을 결집해서 반드시 이차전지특화단지가 전북에 유치되도록 거듭 노력 해줄 것을 당부해본다. /유성민 에코에너지원(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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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0 15:15

전봉준의 교수형

1894년 9월 12일(음력 8.13.), 녹두장군 전봉준은 수행원 10여 명만 데리고 나주성을 찾아, 목사(牧使) 민종렬과 담판을 벌였다. 당시 민종렬의 나주성은 동학농민군에 맞서 문을 꽁꽁 닫고 있었다. 농민군의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전봉준은 민종렬에게 ‘민보군(양반 유생 향리 등으로 조직한 군대) 해산’과 ‘집강소 설치’를 요구했다. 민종렬은 “성을 지켜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목민관의 일”이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전봉준 일행을 죽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민종렬은 전봉준 일행을 사신으로 대우, 객사 금성관에서 하룻밤 묵도록 했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달랐다. 호시탐탐 ‘전봉준 암살’을 노렸다. 다음날, 그 범 아가리 속에서 전봉준은 용케도 빠져나왔다. 1894년 12월 28일, 전봉준은 순창 피노리에서 옛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잡혔다. 그리고 담양을 거쳐 나주로 압송됐다. 석 달 반 만에 전봉준과 민종렬은 다시 만났다. 나주 농민군토벌사령부(현재 나주초등학교) 마당엔 농민군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동학접주 김개남과 의병장 임병찬은 이웃 마을 친구 사이였다. 그들은 시국 이야기로 밤을 패곤 했다. 김개남이 청주성 공격에 실패하고 그의 매부 집에 숨어들었을 때, 임병찬은 사람을 보내 “회문산 자락인 우리 집(정읍시 산외면 종송리)이 높고 험하니 더 안전한 이곳으로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전주감영에 ‘김개남을 잡아가라’고 알렸다. 김개남은 1894년 12월 27일 임병찬의 집에서 잡혔다. 그리고 이틀 뒤 오후 3시 전주풍남문 밖 서교장(군대 훈련장)에서 목이 베였다. 많은 전주 백성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이를 지켜봤다. 1905년 의병장 임병찬은 일본군에 체포돼 그의 스승 최익현과 대마도에 유배됐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항일투쟁을 벌이다 거문도에 유배됐고, 1916년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들은 대부분 고관대작의 금수저 도련님이었다. 김옥균 33세, 홍영식 29세, 서재필 20세 등 이들의 눈에 하층 농민들은 그저 무지렁이에 불과했다. 그들과 손잡고 조선을 개혁해 보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종두법으로 유명한 개화파지식인 지석영이 경상우도 토포사로서 진주, 하동의 수많은 농민군을 체포 처형했던 게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눈에도 농민군은 ‘동학비도(東學匪徒)’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동학당 사태는 폭동(동양평화론)’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안태훈과 함께 농민군토벌에 앞장섰다. 다행히 안태훈은 당시 황해도 동학 ‘아기 접주’로 이름이 자자했던 김창수(백범 김구)를 치지 않고 암암리에 감쌌다. 1895년 4월 24일 새벽 2시, 농민군지휘부 전봉준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이 서울종로 서린동의 전옥서에서 ‘단단한 끈으로 목이 졸려’ 숨을 거뒀다. 조선조정은 4월 23일 밤 교수형 언도(재판장 갑신정변 주역 서광범) 직후 이들을 은밀하고도 전격적으로 처형해버렸다. 전봉준은 “내 목을 컴컴한 소굴이 아니라 종로 네거리에서 칼로 베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후에 매천 황현은 “나라를 어지럽힌 도적들에게 극형이 아닌 교수형이 웬 말이냐!”며 목청을 높였다. ‘애국지사’라 불리던 그도 양반 유생의 기득권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다. 과연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희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시대, 어떻게 살았어야 했는가. 128년 전 4월, ‘가마니 들것’ 위에서도 당당하고 눈이 형형했던 조선 사내, 키 152센티미터의 조선낫처럼 옹골찼던 녹두장군, 오늘날 그의 모습은 그가 처형됐던 서울 종각역 부근(영풍문고 앞)에 동상으로 남아있다. /김화성 전 동아일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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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26 18:04

호모 클리마투스를 위하여

2013년 4월 10일, 지구의 날 기념식 때 삼천변에 만개한 벚꽃 사이로 눈이 내렸었다. 기억하는 가장 상징적인 기후변화 사건이다. 10년 후 4월 중순인 지금 벚꽃은 벌써 졌고, 5월말이나 찾아오던 철쭉이 활짝 폈다. 기후가 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튠베리는 자신의 미래를 빼앗겼다고 일갈했다. 과연 우리에게 시간이 남아 있고, 대처방안도 있는 것일까? 기후는 ‘특정 장소에서 매년 비슷한 시기에 출현하는 평균적인 대기상태’를 가리킨다. 기후는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춥고 덥고 가문 곳 등 기후 특성에 따라 삶의 양식이 달랐고, 그런 역사를 수천 년 동안 반복해왔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이런 패턴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첫째, 온도가 올라간다. IPCC의 제6차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 10년간 지구 표면 온도는 1900년 산업화 이전에 비해 1.09°C나 높아졌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비중이 높아져서 생기는 현상이다. 시베리아 툰드라의 영구 동토층이 녹기 시작했다. 온갖 균이 세상 밖으로 출몰하고 울창한 타이가가 불타 없어진다. 북극권의 성층권이 뚫려서 차가운 공기가 쏟아져 겨울은 더 추워진다. 둘째, 해수면이 상승한다. 2018년 지구 평균 해수면은 산업화 이전에 비해 0.2m 높아졌다. 지구의 온도가 높아져 빙하가 녹으니 바닷물이 넘치면서 투발루 같은 섬나라는 물에 잠겨서 사라질 위기다. 전 인류의 10%가 모여 있는 저지대 해안가가 침수되고 있다. 셋째, 이상 기상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비는 점점 덜 내린다. 남부 지역은 올해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비가 내리면 집중호우로 피해가 막심해진다. 가뭄이 지속되면서 산불은 연중 대비해야할 가장 큰 위협이 되었다. 봄, 가을은 짧고, 여름은 한 없이 길어졌다. 한반도의 아열대 化는 매우 빠르게 진행 중이다. 넷째, 식생이 변화한다. 비가 오지 않으니 농작물이 말라 죽고, 동물들이 괴사한다. 지구상의 많은 지역이 점차 사람이 살 수 없는 땅(unoikoumene)으로 변해가고 있다. 온도가 높아지면서 식물들의 한계선도 거침없이 올라간다. 70년대 사과는 ‘대구 능금’이었지만 지금은 장수사과인데 30년 후면 강원 산간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기후변화를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손쓸 대안이 그리 많지 않다.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한 나라만의 노력으로는 효과가 없다. 또한 각 국마다 경제발전의 정도가 달라서 재원과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그렇지만 당장 해야 한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전 세계에 닥친 홍수를 이겨낸 인류의 신화는 중동의 노아의 방주부터, 인도의 마누, 멕시코의 틀락록 까지 무수하다. 인류학자 파스칼 피크는 이를 호모 클리마투스(Homo Climatus), 즉 기후에 적응하는 인간이라 했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역사상 수많은 생물종 중 인간만이 유일하게 태풍과 빙하기, 폭염과 가뭄을 극복해내고 현재의 문명을 일구었다. 서두르자. 세 가지가 중요하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400ppm이하로 내리기,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 전량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 탄소중립을 위한 온실가스감축 등이다. 이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참여, 솔선수범, 공동 노력, 국제 공조 등이 필요하다. 미래세대와의 공존을 위한 호모 클리마투스의 길이 여기에 있다. /김광휘 행정안전부 지역경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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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9 16:14

새만금 국제공항에 거는 기대

전북도에는 민간공항이 없다. 도민들이 여태것 이용해 온 군산공항은 개항된지 30여년이 넘었지만 미군기지군사공항으로 그동안 이용에 여러가지 제약 요인이 있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이번에도 미군측이 정기 활주로 정비공사로 인해 지난 1일부터 8월말까지 5개월간 운항이 중단돼 도민들의 불편과 원성이 자자하다. 군산과 제주를 오가는 항공편은 편도 기준 하루 6차례 운영되고 있으며 이용객도 하루 평균 1천여명에 달한다. 미군은 이번 활주로 정비를 통해 활주로에 자동제설·방빙이 가능한 제빙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라지만 별다른 대안없이 휴가철을 포함한 장기간 여객기 운항을 중단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청주·광주공항을 이용해야 하는 도민들의 불편은 이만 저만 아니다. 이와 같은 불편사항을 조속히 해소하고 항공오지의 전북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과거를 더듬어보면 전북도의 항공수요는 전주공항과 군산공항(군사공항)이 담당해 오던 것을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이후 전북도 항공수요가 급감하고 전주공항 대체재로 건립 예정이었던 김제공항이 수요와 환경 문제로 백지화되면서 군산공항만이 전북의 항공수요를 담당해오고 있었으나 주한미군 공군기지의 활주로를 빌려서 공항을 운영하는 문제 때문에 일반 국내공항의 착륙료의 3배가 넘는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으며 국제선 취항 또한 불가능하여 새만금 지역의 해외투자 기업유치의 필수 요건인 민간 국제공항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군산공항이 미군 소유의 공항이라 하루에 소수의 여객기만 운항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수의 항공편 이착륙이 가능한 민간공항이 건설되면 아시아의 주요도시와 새만금(전북)을 잇는 중·단거리 항공편 취항으로 접근성이 높아져 해외 한류 관광과 판로 개척이 확대가능하다는 점. 새만금 지역에 국제공항이 신설되면 전북권 뿐만 아니라 공항이 없는 충남, 보령 이남 서남권 지역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아래 군산공항의 기존 활주로에서 1,310m를 이격해 기존 활주로와 독립된 길이 2,500m의 활주로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민간공항을 짓기로 한다. 이렇게 건설하게된 새만금국제공항은 2019년 정부의 예비 타당성조사 면제와 기본 계획 용역을 거쳐 2022년 6월 국토교통부에서 새만금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을 고시 발표했다. 총 사업비 8,077억원으로 2028년 완공하여 2029년 개항을 목표로 지난달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입찰공고를 거쳐 9월 초에 입찰참가 건설업체의 심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새만금 지역내 34만 3,054m²에 활주로 2,500m 1본, 계류장 5개소, 여객·화물 터미널, 주차장, 항행 안전시설 등을 건설하는 사업으로서 여객 터미널과 공항 진입로 등 공사는 랜드사이드 건설공사로 올 상반기 중에 발주된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새만금국제공항은 전북이 공항 오지의 불명예를 씻을 유일한 희망 뿐만 아니라 국가 균형 발전과 새만금 내부개발 및 투자유치 촉진에 없어서는 안될 핵심 인프라이다. 새만금국제공항이 완공되면 새만금 신항과 내륙까지 연결되는 새만금 인입철도로 육·해·공 글로벌 물류 시스템이 구축된다. 새만금국제공항 건설을 위한 행정절차와 공사가 착착 진행되고 있지만 조기 건설에 속도를 내야 하겠다. 새만금국제공항이 준공되고 하늘 길이 열릴때까지 도민들의 뜨거운 성원과 이에 거는 기대가 크다. /유성민 에코에너지원(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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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2 18:10

조선매화

햐아, 숨이 막혔다. 춘분을 앞두고, 올해도 어김없이 구례화엄사 각황전 옆 수백년 늙은 홍매가 몸을 풀었다. 너무 붉어 검은빛마저 감도는 흑매(黑梅)’. 붉고 깜찍한 홑꽃들이 검은 줄기에 ‘꽃등불’을 조롱조롱 매달고 있었다. 발갛게 우꾼우꾼 달아오른 숯불. 마치 두루미가 외발로 서 있는 듯, 허리를 살짝 비틀고 무심하게 먼 하늘을 돌아보고 있었다. 꽃마다 앙증맞은 다섯 장의 선홍 꽃잎. 영락없이 뿌루퉁하게 입을 내민 철부지 막내딸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홍매의 ‘검은빛’을 잡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고 헤덤볐다. 순천선암사 늙은 매화들도 우르르 꽃을 토해냈다. 사람들은 육백 살이 넘는 무우전 담장곁 홍매와 원통전 뒤편의 백매(이상 천연기념물 제488호) 주위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뒤틀린 가지에 부르트고 거무튀튀한 껍질. 나비처럼 매달린 분홍 홑꽃. 녹갈색 꽃받침에다 모시적삼 같은 하얀 꽃잎. 벌들이 잉잉대며 정신없이 꽃 속에 코를 박고 있었다. 매화방창! 선암사는 조선매화의 전시장이었다. 무려 20여 그루의 토종매화(100~300년)가 꽃터널 꽃대궐을 이뤘다. 온종일 매화 향기에 취해 선암사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대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 매화는 역시 고묵은 토종매화가 으뜸이다. 떼로 핀 매화는 ‘양계장 닭’ 같다. 섬진강변 농원매화는 대부분 매실을 따기 위해 ‘대량 양식’하는 일본개량종이다. 꽃이 덕지덕지 달린다. ‘매화’라기보다는 ‘매실나무’다. 아무래도 고고한 맛이 덜하다. 향기도 위쪽으로 붕 뜨는 감이 있다. 후욱! 약간 지분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우르르 피었다가, 우르르 진다. 수명도 짧다. 조선매화는 뿌리가 만수산 드렁칡처럼 서로 얽혀야 좋다. 둥치는 껍질이 트고 구불구불 틀어져야 한다. 나무껍질은 검고 푸른 이끼가 수염처럼 늘어져 있어야 제맛이다. 늘어진 이끼는 바람이 살랑거리면 마치 푸른 실이 너울거리는 것 같다. 조선매화는 꽃이 작고 얇지만 야무지다. 열매가 부실하지만 오래 산다. 꽃이 띄엄띄엄 듬성드뭇하다. 향이 은은하고 오래간다. 저녁밥 짓는 냄새처럼 가만바람에도 낮게 깔려 스며든다. 알근한 암향(暗香)이다. 만고풍상 검버섯 마른명태 같은 몸에서 어느 날 안간힘을 다해 한 점, 두 점 꽃을 밀어 올린다. 깊은 산속에 저만치 홀로 핀 늙고 수척한 조선매화 한 그루. 선암사 ‘뒤깐(해우소)’은 늙은 매화에 둘러싸인 ‘고매 측간(古梅 厠間)이다. 홍매 두 그루와 백매 세 그루가 해우소 앞뒤로 가부좌를 틀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매화향이 그득하여 구린내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조선 땅에서 제일 오래되고, 가장 멋들어진 우물마루의 선암사 뒷간. 누구든 들어서기만 하면 그깟 변비쯤이야 제풀에 스르르 괄약근 빗장이 풀어져 버린다. 오죽하면 정호승 시인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라고 했을까. 문득 전주 경기전 사고(史庫) 앞뜰의 늙은 청매를 떠올린다. 좋이 백 살은 됐을까? 가지가 땅위 2미터쯤에서 누워 퍼진 와룡매(수양매·垂楊梅)라 더 애틋하다. 3겹 꽃잎이 맑고 투명하다. 푸른 빛마저 감돈다. 전주 사람들처럼 누가 알아주건 말건 혼자 벙글고 홀로 진다. 언젠가 달빛 슴베든 봄밤에 다가가, 이리저리 톺아보고 또 톺아봤던 일이 생각난다. 왜 그때 울컥했을까? 코끝에 걸리던 청아한 향기가 새록새록 생생하다. 요즘 서울 창덕궁 매화들이 우우우 한창이다. 하마 경기전청매는 지금쯤 이울었으리라. 타향살이 핑계로 못 본 지 오래됐다. 내년 봄엔 때맞춰 볼 수 있을까? 이렇게 또 봄날은 간다. /김화성 전 동아일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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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9 17:50

호모 주리디쿠스를 위하여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공정이다. 사실 공정은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가치 논쟁 대상이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배분적 정의로부터,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창한 공리주의, 칸트의 도덕주의까지 많은 논의가 있었다. 무엇이 공정인가는 결국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이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공정은 무엇일까? 경쟁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누구에게나 균등한 경쟁의 기회가 주어지고 과정이 공정하다면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른 차등적인 대우는 정의롭다는 견해다. 이는 로버트 노직의 자유주의적 정의론에 가깝다. 정부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경쟁의 공정성을 보장한다. 새겨보면 과정의 공정성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불공정한 게임을 한다면 그 결과를 누가 수용할 것인가. MZ세대에게 공정이 뜨거운 이슈가 되는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들은 극심한 경쟁을 겪고 있어서 개인의 능력 이외의 요인이 경쟁과정에 작용하게 되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평창동계올림픽 업무를 담당했을 때 자원봉사자의 처우와 관련하여 이를 직접 경험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주의(meritocracy)가 정말 공정한가? 두 가지 반론이 있다. 첫째는 출발선이 같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능력주의가 진실로 공정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가진 여건이 같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학비·생활비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된다. 반면에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난 학생은 주경야독을 해야 한다. 능력과 재능이 비슷하여도 가진 게 불균등하기 때문에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로널드 드워킨은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출발선에서 경쟁의 수단이 되는 자원을 평등하게 해주는 것을 공정이라고 보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불운에 대해 적절히 보상하여 같은 조건으로 만든 후에 경쟁을 시작해야 비로소 공정하다는 것이다. 능력주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보상은 특별한 대우라고 할 수 있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은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소득순위 하위권에 장학금을 주고, 인구 소멸지역에 대한 특별한 지원 등이 예다. 하지만 기회를 균등하게 주고, 출발선상의 불평등을 보정한다 하더라도 개인적 성취는 차이가 난다. 결과의 불평등이 심할 때는 내적 통합이 깨지므로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두 번째 반론이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될 때만 정당하다고 했다. 이보다 더 진전된 논의는 아이리스 영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녀는 공정성을 약간 위배하더라도 소수자우대․여성우대정책과 같이 적극적으로 결과의 불평등을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계속 어려운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경쟁에서 진 사람들도 배려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경쟁의 결과로 발생한 불평등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영(Young)식의 정책도 필요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의를 종합해보면 공정은 그 차원이 다양하므로 반드시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금 출발하는 공정이라는 열차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정의로운 인간, 즉 호모 주리디쿠스(Homo Juridicus)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배려와 공감, 인정과 양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공정한 잣대를 만들어나가는 어렵지만 꼭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김광휘 행정안전부 지역경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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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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