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전북은 왜 그렇게 시끄러우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타지에 나가 있는 지인들의 관심어린 물음이다. 지난해 방폐장 갈등이 휩쓸고 지나가더니 이젠 새해 벽두부터 해묵은 새만금 갈등이 삐져나오니 당연한 관심일 터이다.
그들의 물음은 전북지역의 현안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황을 살피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갈등의 구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처지를 비아냥거리는 뜻이 숨어있다. 다른 지역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새 패러다임에 맞는 아이템을 발굴해 나가고 있는 판인데 전북은 해묵은 논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이다.
행정법원은 최근 간척지의 용도와 수질유지, 경제성, 갯벌의 가치 등 이른바 4대 쟁점을 적시하고 민간위원회를 구성해서 이 문제를 논의하되 논의가 끝날 때까지는 방조제를 막지 말라는 조정권고안을 내놓았다. 이해관계가 얽힌 시민단체들을 또다시 갈등과 대립의 한 복판으로 내몬 권고안이다. 내용면에서는 지난 96년 시화호 수질오염 때문에 새만금 수질문제가 불거진 당시로 돌아가게 됐고, 시기적으로는 지난 99년 민관위원회가 환경문제를 공동조사에 나섰으니 시침을 5년 뒤로 되돌린 것이다.
새만금 논쟁은 해수유통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핵심이다. 이에 대한 명쾌한 해법을 내놓는 게 법원의 기능이고, 그럴 여건이 안된다면 소송을 각하시키는 게 나았을 것이다.
사업착수 14년째인 국책사업의 추진여부를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없지 않지만 그 이전에 새만금을 공약으로 내걸며 표를 구걸했던 정치인들은 그동안 무얼 했는지도 따져 보아야 한다. 천문학적인 예산 낭비와 이해당사자간 대립 및 갈등, 도민이 겪는 짜증과 스트레스 등을 초래한 죄(?)가 있기 때문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가 새만금을 공약으로 내건 정치인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1년 11월 기공식에 참석해서 버튼을 누른 주인공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총재 시절 이 사업이 질척거리자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담판을 짓다시피 해서 예산을 따낸 주역이다. 실질적 사업 추진이 가능하도록 단초를 제공했던 정치인이 그였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총선 때마다 정치인들은 새만금을 팔아 도민들의 환심을 샀다. 마치 새만금을 약속하지 않으면 정치인 대열에 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랬던 그들은 뻔히 드러나 있는 쟁점들을 방기했다. 4대 쟁점이란 게 하루 아침에 나온 게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또는 국회의원이 되고 난 뒤 사업비에만 관심을 쏟았지 환경문제를 등한히 했다. 법원의 조정권고안은 원론적인 문제제기이자 이같은 나태함에 대한 질타이기도 하다. 법원에 이르기 전 그같은 사안을 추스렸어야 했다. 갈등을 수습하고 봉합하는 게 정치의 역할과 기능일 것이다. 그러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사안이 원점으로 회귀되고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으니 ‘직무유기’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소이연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해수유통을 이야기했다. 대통령이 된 뒤 전북을 방문해서는 “방조제를 다 막는다”고 했다. 지금은 법원에 맡기고 뒷짐을 진 형국이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요새 유행하는 말로 “까짓것 아무것도 아녀, 안그려?”식인가.
새만금을 팔아 표를 구걸했던 정치인은 다 어디로 가고 붓뚜껑을 꾹꾹 눌러 찍은 도민들만 한파속에 악악 거리며 기를 쓰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 할일은 많고 갈길은 먼데 복습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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