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치상 전북의정연구소 이사장
전주시 좁은목 건너편의 산 이름은 승암산 또는 중바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는 잘 모르지만 산정에 천주교 순교자들이 묻힌 이후 자연스럽게 치명자산(致命者山)으로 불리어지고 이젠 고유명사화 되다시피 됐다.
요즘 치명자산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십지가의 길이 있어서 많은 순례자들로 붐빈 다. 광야에서 그리스도가 40일간 금식하고 시험받은 것을 추억하는 사순절(四旬節)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아니더라도 사시사철 수십만의 천주교 신자들이 찾는 성지다. 1784년 세례를 받아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선교사영입과 서양문화를 수용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호남의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처 신희, 동정부부로 순교한 맏아들 유중철(요한)과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둘째아들 유문철,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의 유해가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는 곳이다.
이들은 1801년 신유박해때 전주의 남문밖(전동성당), 전주옥, 숲정이에서 처형되어 멸족이 됐다. 다행히도 그들의 시신은 노복들에 의해 수습되어 은밀한 산 속에 가매장되었다가 1914년 승암산 날 망이에 안장되어 지방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됐다.
특히 세계 최초의 동정(童貞)부부 유중철, 이순이는 세계교회가 “진주중의 진주”라고 찬탄하면서 그들의 순결한 신심과 고매한 덕행, 그리고 숭고한 순교정신을 높이 기리고 있다.
이제 이들이 성인품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성인으로 불리면 세계 가톨릭신자들의 추앙의 대상이 된다. 2002년 월드컵때 전주에서 경기를 가진 나라는 모두 가톨릭 국가였다. 그래서 그때도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은 곳이 바로 치명자산 성지였다.
4년동안 부부로 살면서도 동정을 지킨 지고지순한 사랑의 정신은 이순이 루갈다가 친정어머니에게 보낸 옥중편지에서 밝혀졌다. 물론 그 편지에는 10여 차례의 어려운 고비를 넘겼음도 소상히 기록돼있다. 이혼을 밥 먹듯 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꼭 한번 읽혀 보고픈 편지다.
이제 치명자산성지는 종교적으로만 각광받는 곳이 아니다. 전 세계인들을 전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확보된 셈이다. 치명자산에 묻힌 분들의 거룩한 이력이 만방에 가톨릭을 통해 알려지고 아울러 전주의 전통문화가 소개되면 금상첨화가 아닌가.
전주를 찾는 관광객이 무엇을 보고 느끼고 감동을 받을까 걱정했던 일을 하나 던 셈이다.
관광전주의 모습을 새롭게 가꾸기 위해 전통문화특구까지 지정을 받는다면 치명자산성지를 더 이상 가톨릭에서 해야 될 일로 미뤄서는 안 된다.
종합계획속에 포함되어 체계적으로 전주관광과 어우러지는 성지로 조성해야 된다. 예를 들어 성지 주변에 가칭 동정부부관을 만들어 태부족한 숙박시설을 확보하고, 머무는 기간동안 동정을 체험하면서 사랑의 진리를 깨닫고, 그곳 공연장에서는 전주를 상징하는 작품을 매일 밤무대에 올리고, 행랑은 온통 전시작품으로 메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목전에 다가 선 치명자산 순교자들의 성인품. 그들이 성인품에 오르면 상황은 급격하게 변한다. 삽시간에 그들의 행적이 세계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주객이 전도된 이름값을 충분히 하리라 믿는다.
/문치상(전북의정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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