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도 은행 앞을 지나치려면 까닭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사람들이 있다. 은행 ‘로고’만 봐도 덜컥 겁이 나고 금방이라도 은행 직원이 나와 자신을 다그치지 않을까 뒤가 캥긴다는 것이다.
대명천지에 그런 사람들이 과연 누구일까. 무엇이 그 사람들을 이처럼 까닭있는(?) 두려움에 가슴 쓸어 내리게 하는 것일까. 두 말할것도 없다. 은행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그는 십중 팔구, 신용불량자이다. 아니 신용불량자는 아예 그렇다 치고 그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신용이 달랑달랑 하여 언제 그 명단에 오를지 불안한 금융권 채무자도 포함된다. 도대체 은행 채무만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한 마이너리티들이 어디 한 둘인가.
또다시 입에 담기도 싫은 IMF사태를 떠 올리자면 지금 대부분 신용불량자들은 바로 그때부터 양산(量産)되기 시작했다. 실직으로 인한 가정파탄, 경기불황으로 인한 영세 상공인들의 부도사태, 그래서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쫓긴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때 그들에게 눈에 번쩍 띠는 사탕발림이 바로 신용카드라는 구세주였다. 앞뒤 안가리고 권하는대로 발급받아 웃돌 빼서 아랫돌 막기로 돌려 쓴 사람들이 지금은 대부분 신용불량자가 되고 만 것이다.
기업이 은행 빛을 갚지 못하면 부실 기업이 되고 끝내 부도라는 비극을 맞이할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빚을 제때 제대로 갚지 못한 개인은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힐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금융권에는 아예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게된 신용불량자가 대략 6백만명에 이른다는게 당국의 통계다. 전체 인구의 10여%에 이르는 이 들중 대다수가 주로 50대 퇴직자나 20대 실업자들이라니 사회의 건전성에도 치명적인 타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처럼 흥청망청 카드를 긁어대던 20대 신용불량자들의 경우는 사태가 여간 심각하지 않다. 뒤늦게 정부가 나서 구제책을 내놓는 등 신용카드 정책을 대폭 쇄신했다고는 하지만 한 때 길거리에서 호객행위까지 하며 카드 발급을 부추겼던 금융권은 그러나 지금 꿀먹은 벙어리다. 오히려 이러다간 우리가 망할 지경이라며 신용관리를 강화해 신용불량자들의 퇴로마저 막고 잇는 형국이다.
신용정보회사란것이 설립돼 개개인의 신용평점이 금융기관에 통보되고 그 기록은 컴퓨터에 수록돼 평생을 따라 다닌다고 한다. 그러니 어디 한 군데만 펑크가 나도 전 금융기관에서 신용거래가 정지될 수 밖에 없다. 자신도 미처 기억하지못하고 있던 금융거래 내역을 은행직원이 까발릴때 느꼈던 그 불쾌감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알수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다보니 급전(急錢)이 필요하거나 최소한 생활비 마련을 위해서라도 당장 돈을 구해야 할 사람들이 갈 곳이 어디인가. 사채시장의 불법 탈법과 무지막지한 빚독촉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이나 살인사건에까지 이르는 비극적 사연들을 언제까지 수수방관 할 수는 없다.
물론 당국이 이들의 신용회복을 위해 각종 구제책을 시행하고는 있다. 하지만 가진 돈이 없어서 빚을 못갚는 신용불량자들에게는 그것도 ‘그림의 떡’이다. 그렇다고 ‘내 배 째라’는 식의 자포자기도 물론 안된다. 현명한 대책없이 이대로 그냥 신용불량자들을 핍박하다간 ‘증오’의 심정이 개인감정에서 집단문화로 확대되지 말란법도 없으니 그것이 문제다.
/김승일(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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