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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손자 놈과의 旅行

얼마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 놈 하나만 데리고 서울 나들이 할 기회가 있었다.

 

마침 휴가철이어서 서울에 살고 있는 친척들도 만나고, 볼일도 있고 해서였다.

 

오랜맛에 가는 서울이라 그런지 마음도 몸도 홀가분한 기분으로 기차여행을 택했다.

 

손자 놈 역시 수학여행이라도 떠나는 시골 아이처럼 전날부터 몹시 설레는 모양이었다.

 

사촌들에게 나누어줄 선물이며 먹을 것들을 고루느라 부산을 떨었다.

 

서울이라는 곳이 그렇게 시골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손자 놈은 내 옆자리에 앉아서 연신 신바람이 나서 자랑이꽃이 되어 있었다.

 

얼마전 사촌들을 따라 서울 구경을 한 일이 있었는데도 처음 서울 가는 아이처럼 지도를 펴놓고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다.

 

“할아버지, 63빌딩은 큰아버지 집에서 얼마나 되지요?”

 

“남산타워를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지요?”

 

“서울대공원까지는 또 얼마나 걸리지요?”

 

손자 놈은 서울에 있는 소문난 곳, 몇 군데를 미리 점찍어 놓은 모양이었다.

 

그렇듯 서울을 좋아하던 손자 놈이 서울역에 내리면서 도무지 말이 없었다.

 

손자 놈이 그리던 서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쉴 사이 없이 꼬리를 물고 다니는 자동차들의 행렬, 하늘이 보이지 않을만큼 빽빽히 들어선 높은 빌딩, 숨이 칵 막힐 것 같은 탁한 공기, 발들여놓을 곳도 없이 수많은 인파, 도무지 몇 년전 서울에 왔을 때와는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서울이라는 곳이 옛날과 같이 가보고 싶고, 살아보고 싶은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그저 서울이라는 곳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일뿐 다른 의미는 없는데도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손자 놈도 그런 서울에 차츰 실망하고 있는 듯 했다.

 

이젠 땅으로는 모여 살 수 없으니 자꾸만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 살아야하는 탓일까, 20층 30층 계속 올라가는 아파트숲, 휘발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자동차는 왜 그렇게도 많은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라에 손자 놈도 점점 회의를 느끼는지도 모른다.

 

업드리면 코닿을 곳에 큰 아이가 살고 있는데도 택시 타려고 기다리는데 1시간, 타고 앉아서도 길이 너무 막혀 1시간이 걸리는 서울이다.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던 손자 놈 하는 말이 심상치 않았다.

 

“할아버지, 서울 괜히 왔네요.”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니…”

 

나는 할말이 없어 오늘의 모든 책임을 서울을 따라오겠다고 조른 손자 놈에게 떠넘겼지만, 가슴은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얘야, 조금만 참자. 너의 사촌 누나와 형들도 이런 곳에서 살고 있단다.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에는 시골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맛보게 모두 데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전주로 가자꾸나. 알았지?”

 

손자 놈은 그때서야 손뼉을 치며 즐거워 했다.

 

/서재균(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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