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안기부 X파일을 둘러싸고 세상이 시끄럽다. 그동안 메스컴을 도배질하던 시베리아 유전개발이나 행담도 개발의혹, 대우 김우중 파일쯤은 일거에 뉴스의 뒤안길에 파묻칠 정도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풍문으로만 떠돌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데 대해 경악하고 있다. 이번에 불법도청으로 밝혀진 우리사회 지도층의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행태는 가히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지금 정치권이 매우 뒤숭숭한 모양이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검찰의 녹음테이프 공개여부와 수위, 테이프 내용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당 어느 쪽도 이 테이프 내용이 공개될 경우 떳떳하다고 자신할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청 당시 민주당이나 신한국당을 뿌리로 하고 있는 두 당이 어떤 형태로든 테이프 내용에 연관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철이 든 국민이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다.
국민 여론은 테이프 공개쪽이 다수다. 하지만 반대측 논리도 만만치 않다. 공익과 사익(私益), 국민의 알 권리와 통신기밀 보호라는 실정법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항상 그랬듯이 TV토론에 나온 달변가(?)들은 침 튀기며 제 주장이 옳다고 열번을 토한다. 실로 어느쪽 주장이 옳은지 국외자들로서는 헷갈리기조차 한다.
그러나 결론은 뻔하다. 지금까지 이런 굵직굵직한 사건이 터질때마다 특검이니 국정조사니 법석을 떨었지만 국민들이 납득할만큼 속시원한 결론을 낸 일이 얼마나 되는가. 옷로비 의혹이나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이 다 그랬다. 가깝게는 대북송금의혹 또한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이번에도 검찰은 한 점 의혹없이 수사할 것이라고 다짐하고는 있다. 검찰총장이 새로 압수한 2백74개의 테이프 내용을 보고받거나 직접 확인하지 않겠다고 공언한것도 그런 믿음을 주기위한 의지로 보인다. 하지만 거듭 강조하거니와 진실은 묻혀 있을때 그 힘을 발휘한다는 역설(逆說)을 이번 X파일에서도 비켜 갈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문득 문학평론가 홍사중(洪思重)이 인용한 ‘공범자의 딜레마’라는 글이 떠오른다. 1994년 ‘게임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존 내시’의 이론에 따르면 이렇다. 어떤 사건을 두고 두명의 공범자가 있다고 치자. 그 둘은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한 가벼운 처벌에 그칠수 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믿을수 없어 한 명이 배신을 하게되면 그의 형량(刑量)은 줄어드는 반면 상대는 가중된다. 그런데 그 상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배신하게 된다면 둘은 사이좋게(?) 중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둘이 서로의 신의를 끝까지 지켜 가장 가벼운 처벌을 받는일 뿐이다.
이번 X파일 사건에서도 지금 공운영, 박인회 두 명의 공범자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수사진전에 따라 수사를 받을 사람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 중심에 정치권이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경우에도 ‘공범자의 딜레마’가 인용 될 수 있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지 않은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지금은 정치권이 서로 으르렁대지만 결론은 그쪽으로 예정돼 있다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래저래 삼복더위에 국민들의 짜증과 궁금증만 부채질하는 ‘네 이 놈 X파일’이다.
/김승일(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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