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문화의 달 행사 때의 일. 지역의 한 정치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전국 행사인데도 불참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당초엔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키로 돼 있었는데 무산된 걸 두고 쏟아낸 불평이었다. 그 배경은 청와대 수석 회의에서 “전례가 없다”며 반대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수석 자리중에 전북출신이 단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느냐는 개탄도 나왔다.
대통령의 지역 방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역의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민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하게 되며 정부 관련 부처는 이에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기울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기회를 박탈당했으니 불만이 나올만도 하다.
방폐장 투표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노무현-미 부시 대통령의 에이펙 회담을 군산과 치열한 경쟁지역인 경주에다 결정하는 것이랄지, 대통령의 전남광주 방문이 잦고 그때마다 굵직굵직한 선물을 던져주던 사례들을 바로 코 앞에서 보아 온 전북으로서는 괜한 질투가 아니라 차별성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행태들일 것이다.
부안과 군산에 대한 방폐장 치유책을 놓고도 하세월이고, 치유책을 내놓을 바에는 아예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전북을 방문해 발표하는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는 여론도 많다. 민심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오만함을 갖지 않는다면….
이러한 현안들도 모두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들이 챙겨야 할 일들이다. 그런데 수석 자리엔 전북인사가 단 한명도 없다. 비서관도 1급 1명, 2급 2명, 3급 4명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완기 인사수석, 이용섭 혁신관리수석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인사들은 광주 전남 출신이다. 숫적으로도 전남이 가장 많다. 부산 서울 대구 충청 등도 고루 포진해 있다.
청와대는 인사소외를 얘기할 때마다 김원기 국회의장과 정동영 통일부장관,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등을 꼽으며 가장 커다란 혜택을 받고 있는 지역이 전북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그분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재 풀 운영의 현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상대적 소외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청와대 수석들의 출신지역 숫자나 파악하면서 지역주의를 조장하자는 게 아니다. 권력의 핵심에 지역별 인사가 어떻게 포진해 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고, 불균형 현상이 있다면 바로 잡는 게 통치권자가 할 일이다. 전북출신이 적은 건 능력이 없거나 머리가 둔해서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까놓고 얘기하면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올해 인사권을 행사한 장차관급과 청와대 수석, 공기업사장, 정부 산하단체장 등의 인사에서 부산 경남 출신이 30%(82명중 26명)를 차지했다. 임기 초 16%에 비하면 대단한 약진이다. 야당에 대연정, 선거구제 개편을 요구한 것 등이 모두 지역주의 극복을 명분으로 내건 것들인데 인재등용은 특정지역 편중으로 치달으니 앞뒤가 맞지 않다. 지역주의 타파를 외쳐 온 노무현 대통령이 또 하나의 지역주의를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권력의 핵심에 대한 인재등용이 특정지역에 치우쳐 있다면 ‘분권’이나 ‘균형’ 등 참여정부의 기치에도 맞지않고 민심이반의 요인이 된다. 91.6%의 지지를 보낸 참여정부에서 전북의 인재들은 씨가 말라가고 있다.
/이경재(전북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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