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땅의 길흉을 판단하는 풍수사에도 등급이 있다고 한다. 맨 위부터 치자면 신안(神眼)-도안(道眼)-법안(法眼)-명사(名師)-지관(地官)-지사(地士)-작대기풍수-방안풍수-푼수풍수-망가(亡家)풍수 등 10가지로 나눈다는 것이다. 땅속을 유리알처럼 들여다 봐야 하는 풍수사들이 심심파적으로 지어냈는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구분이다.
이 중 신안은 산매나 귀신의 힘을 빌려 대지를 척척 잡아내는 수준을 말한다. 우리나라 자생풍수의 창시자인 도선(道詵)이 유일하게 꼽힌다. 그리고 도안은 언뜻 산세를 보아 진룡을 찾고 혈(穴·명당)이 완연히 들어오는 개안(開眼) 수준이며, 법안은 정법에 따라 혈을 잡고 좌향을 놓는데 안목이 높아 오차가 없는 수준이다.
지관은 조선시대 기술시험인 잡과(雜科)에 합격한 관리를 일렀다. 지관이 되려면 경국대전에 나와있는 지리학에 능통해야 했다. 청오경·장경 등 풍수서를 줄줄 외우고 답산을 통해 현장경험을 풍부히 쌓아야 했다.
문제는 작대기 풍수 이하다. 풍수사로서는 하급에 해당하며 사고를 칠 위험이 큰 경우다. 작대기 풍수는 작대기를 들고 산을 많이 다녀보아서 자리를 잘 잡긴 하나 그곳이 왜 명당인지 모르는 경우다. 오직 자신의 경험에 의지해서 일을 하기 때문에 홀로 주어진 일은 할지 모르지만 남을 설득시킬 수도 없고 더 이상 발전도 없다.
이 보다 못한 것이 방안(혹은 書案)풍수다. 우리 속담에 ‘방안풍수 집안 망친다’는 말이 있듯 집안에서는 큰소리치지만 밖에 나가서는 제대로 일을 못하는 경우를 뜻한다. 방안에서 배운 지식이 나름대로 논리를 갖추었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책에서 배운 어설픈 이론만 가지고 실제로 산에 가보면 명당이고 뭐고 보일리 만무다. 이 보다 아래인 최하 등급이 망가풍수다. 명당을 잘못 잡아줘 남의 집안을 망하게 하는 경우다. 예컨대 반드시 피해야 할 황천살(黃泉殺)을 써줘 사람이 죽고 재물도 잃어버리게 한다.
풍수사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았다. 그것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일꾼을 자처하는 자들이 대부분 방안풍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16개 시도 광역단체장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었다. 등록을 마친 예비후보자는 유권자에게 e-메일로 지지 호소문을 보내고 홍보물을 발송하는 등 제한적인 선거운동을 펼칠수 있게 됐다.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후보자는 선거 개시 60일 전에 예비후보 등록을 받는다지만 이제 120일간의 본격레이스에 돌입한 셈이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전국적으로 1만5000여명, 전북에서 800명 안팎이 나서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내가 적임자”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이들중 누군가는 그 자리를 맡게될 것이다.
지금 전북은 소비시장에서 생산시장으로, 낙후에서 선진으로 방향을 트는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새만금사업이며 세계태권도공원, 혁신도시 등이 추진되고, 여기에 +α의 기운이 움터야할 때다. 이번에 뽑힌 리더들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기상으로 이에 앞장서야 한다. 그런데 정작 후보들 면면을 보면 자역에서만 큰 소리 치는 작대기 풍수나 방안풍수가 대부분인 것 같다. 망가풍수까지 나서 자신이 신안이요 도안을 가지고 있다고 시퍼렇게 장담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방안풍수의 넋두리인가?
/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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