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이는 영국의 경제학자 E.F. 슈마허가 1973년에 쓴 경제비평서의 제목이다. 이 책은 당시 만연해 있던 거대(巨大)주의와 성장지상주의에 경종을 울렸다. ‘중간기술’을 강조하며 작지만 아름다운 존재인 인간의 중요성을 깨우친 것이다. 이같은 제목이 아니라도 우리들은 대개 크고 많은 것을 좋아한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평수가 넓고 돈도 많아야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요즘 선거철이니 이를 선거에 대입해 보자. 많은 선거중에서 흔히 대통령 선거를 가장 중요하게 치고 관심도 많다. 다음이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그리고 지방선거 순이다. 그것은 최근의 투표율이 증명한다. 2002년 대선 투표율은 70.8%였고 2004년 총선은 60.6%였다. 또 2002년 지방선거는 48.8%였다. 사실 ‘나’와의 밀접도 측면에서 보면 그 반대여야 맞다. 기초석 없는 63빌딩이나 만리장성이 가능하겠는가. 지방선거가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총선, 대선이어야 할 것이다.
지방선거 중에서도 도지사나 시장군수 후보들은 널리 알려진 편이지만 지방의원들은 아예 뒷전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다음달 열리는 월드컵 첫 상대인 토고의 시시콜콜한 정보는 꿰고 있어도 우리 동네 지방의원에 누가 나왔는지 관심이 없다. 심지어 지방의회가 뭐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다. 그래서 지방의원은 단체장과 같은 번호에 이어 투표하는 이른바 줄투표(straigt vote) 성향마저 보인다.
하지만 지방의회의 기능을 생각하면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지방의회는 주민들을 대신해 지방자치단체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대표기관이다. 단체장은 중앙권력에 비해 어떨지 몰라도 ‘단체장 독재’가 말해주듯 엄청난 권한을 갖고 있다. 공무원 인사권과 각종 공사관련 권한을 갖고 있어 임기 4년 동안 거의 무소불위다. 선거때마다 공무원들의 줄서기, 업자들의 ‘보험들기’가 성행하는 것도 그 이유다. 내년 7월부터 주민소환제가 도입되긴 하나 요건이 까다롭고 선거비용도 만만치 않다.
또 지방의회는 그야말로 ‘생활정치’의 뿌리요 실핏줄같은 존재다. 나와 내 가족의 실익이 달려 있다. 내가 낸 세금이 잘 쓰이는지, 불용액과 이월액이 어떤지, 왜 연말에 몰아치기 공사를 하는지를 따지는 곳이 지방의회다. 나아가 아파트의 고도제한이며 출퇴근길 도로, 상하수도, 쓰레기 문제도 주민편에서 따져준다. 주민간의 갈등해결과 조정, 대안제시도 그들의 몫이다. 이를 위해 지방의회는 예산안 심의및 확정, 결산의 승인, 행정사무감사, 조례제정권을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지방의회는 아직 발육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제도적 미비 탓도 없지 않으나 근본적으로는 지방의원의 자질문제와 직결된다. 91년 출범이후 전국적으로 800여명의 지방의원들이 임기중 구속되거나 기소되었다. 최근 4년동안 300명이 넘는다. 적발되지 않았지만 각종 이권개입 등으로 뒷돈을 챙기는 경우도 상당수에 이른다.
결국 청렴하고 전문성 있는 지방의원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유급제와 중선거구제 등으로 전문성을 가진 후보와 여성후보들이 눈에 많이 띤다. TV토론 등에서 제외돼 얼굴이나 공약을 알기 힘들지만 약간의 관심만이라도 가져보자. 홍보물 하나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이 알려진 단체장보다 내 가까이 있는 지방의원 후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으면 한다. 작지만 아름다운 지방자치를 위해.
/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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