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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김영남씨의 문제 - 이경재

이경재(전북일보 논설위원)

한달전 쯤 전주 금암동의 ‘마주보기’라는 조그마한 맥주집에 외신기자들이 북적거렸다. 이 맥주집의 주인은 김영자(47)씨. 고등학생 시절 군산 선유도에 놀러갔다가 납치된 김영남(45)의 친 누나다. NHK 등 외신기자들은 김영남의 누나를 수소문해 이 집을 찾았다. 남한과 북한, 북한과 일본간 미묘한 사안이 된 ‘납북자의 문제’를 놓고 외신기자들이 전주의 한복판에서 취재활동을 벌였지만 국내 기자는 없었다.

 

김영자씨는 단골손님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외국의 언론들은 ‘언제 찾아가면 만날 수 있겠느냐’, ‘10분 정도면 괜찮은데 시간 내줄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정중하게 ‘요청’을 하더라” “그런데 우리나라 기자들은 ‘며칠 몇시에 가겠다’는 식의 ‘통보’만 했지 그뿐이었다”

 

기자들의 취재태도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 이 일화를 끄집어 낸 건 아니다. 납북자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우리나라 언론과 외신의 치열성 차이 때문이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김영남은 한국인이자 전북인이다. 우리나라의 한 고교생이 납북된 사건이 사실로 드러났다면 정부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또는 외교적 노력을 통해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한 의무다. 그 당사자가 전북인이라면 전북 역시 누군가 귀환이 됐건, 상봉이 됐건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북한의 눈치 보는 것 말고는 뚜렷이 한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16살 고등학생을 납치해 공작교관으로 써 먹고, 납치한 일본인 여성과 위장 결혼까지 시켜 아이까지 낳게 한 이 사건은 불행히도 일본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은 언저리에서 머뭇거렸을 뿐이다. 외신들이 전주를 찾아 열띤 취재를 하는 사이 우리 기자들은 거드름을 피우는 것 처럼….

 

전북쪽에서는 강현욱 지사와 이형규 행정부지사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정부가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한 적이 있다. 이럴 때마다 정부는 개별 사안이라 나설 수 없다고 답변했던 것으로 들었다. 자국민의 문제인데도 의제로서 채택하지 못하겠다는 것인데 이게 정부로서 가져야 할 태도인지를 생각하면 자괴스럽다.

 

전주에 사는 김영남의 어머니 최계월씨(82)는 오는 28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행사 때 아들을 만나게 된다. 아들이 납치된지 28년만이다. 모자상봉은 그나마 ‘북한의 배려’였다.

 

김씨 모자는 이산가족이 아니다.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끼워넣은 것도 잘못이다. 그동안 정부가 파악한 납북자는 489명. 김씨 모자상봉은 이들 납북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전기가 돼야 한다. 자국민의 문제를 일본이나 미국에 의존한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기도 하다. 정부는 눈치보지 말고 속시원히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줘라.

 

아들을 그리워하느라 가슴속이 숱 검댕이가 됐을 최계월씨.“할말이 뭐 있겠어요. 더 이상 할말이 없어요. 만나봐야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싶어요. 하루밤 재우면서 무슨 말 할까도…”

 

이들은 통한의 세월을 누구한테 보상받아야 할까. 당사자의 문제인데도 해결할 아무런 수단도 갖지 못한 이들에게 정부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경재(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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