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전북은 법조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특히 사법의 여명기에 틀과 뼈대를 세운 분들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가인(街人) 김병로(초대 대법원장)와 검찰의 양심으로 불렸던 화강(華岡) 최대교(서울 고검장), 그리고 사도(使徒)법관 바오로 김홍섭(서울 고법원장)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법조 3성(聖)’이라는 고귀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 분들 중 가인과 김 바오로는 법관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1·2에 올라 있다.
두루마기에 흰 고무신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가인. 그의 재임 9년 4개월은 우리나라 법원에 주춧돌을 놓는 시기였다. 청빈과 강직, 의연한 자세로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내는데 솔선했던 것이다. 그는 숱한 일화를 남겼다. 언젠가 추운 겨울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손자에게 대법원장 관용차를 태워준 운전기사는 ‘이 사람아, 이 차가 대법원장 차지 대법원장 손자 차인가?’라는 나무람을 들어야 했다. 또 한번은 친구 아들이 한강에서 잡은 잉어 다섯마리를 놓고 갔다. 이를 안 가인은 ‘만에 하나라도 의심받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했지 않는냐’며 이를 돌려 보내도록 했다.
자신의 수범만큼 법관들에게도 철저할 것을 요구했다. 환도 직후인 1953년 열린 제1회 법관훈련회의에서 가인은 ‘법관의 몸가짐’을 제시했다. 그것은 첫째 세상사람으로 부터 의심을 받아서는 안된다, 둘째 음주 근신, 셋째 마작과 화투 등 유희에 빠져서는 안되겠다, 넷째 어떠한 사건이든지 판단을 하기 전에 법정 내외를 막론하고 표시해서는 안되겠다, 다섯째 법률지식을 향상시키고 인격수양을 해야 하겠다는 것 등이다. 이처럼 엄격했던 가인은 퇴임사에서 “법원직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 가슴아프다”고 전제하면서도 “모든 사법 종사자는 굶어 죽는 것을 영광이라 생각하라. 그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는 명예롭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김 바오로 역시 이에 못지 않았다. 궁핍에서 벗어나 본 일이 없는 그는 빈혈기로 업무중 책상 모서리를 잡고 정신을 가다듬는 경우가 잦았다. 이를 안 지인이 영양제 두병을 몰래 놓고 갔다. 나중에 이를 본 김 바오로는 호령을 하면서 갖다 주라고 했다. 심지어 그는 처가에서 보내 준 쌀 가마니도 되돌려 보낼 정도였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한 법관의 심정’ 이라는 글에서 법관의 자세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재직하는 동안 직장이나 동료에게 폐가 되거나 불명예를 끼치지 않도록 할 것, 정당한 보수 이외에 어떤 불의의 이득을 탐하거나, 또는 특권의식을 부려 국민에게 지탄을 받는 일을 피할 것, 기질과 역중에 맞는 자리를 골라 옮기도록 할 것”이 그것이다.
최근 법조비리로 사법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사법사상 처음으로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구속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법조 브로커로 부터 1억3000만 원의 금품을 받고 민사 형사 행정소송을 맡은 판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다. 또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사 3명도 건설업자로 부터 금품과 향응 골프접대를 받은 것이 드러나 옷을 벗었다. 이같은 법조비리와 관련, 이용훈 대법원장이 오늘 국민에게 고개를 숙인다. 가인과 김 바오로 같은 법관이 그리워지는 시대다.
/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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