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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열린우리당 38개월 - 이경재

이경재(전북일보 논설위원)

정풍운동이 밀알이 돼 탄생한 열린우리당. 제17대 총선에서 152석을 확보함으로써 원내 제1당으로 혜성처럼 부상한 열린우리당이 지금 비틀거리고 있다. 임종인, 이계안, 최재천, 천정배의원에 이어 30일 염동연의원이 또 탈당했다. 다섯번째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 처럼 하루 이틀 걸러 당을 떠나고 있다.

 

29일의 당헌개정에도 아랑곳 없이 ‘탈당 도미노’가 재점화할 조짐이다. 신당파와 사수파간 머리싸움은 이제부터 본격 시작된다. 민초들이 이들의 깊은 속내를 읽기란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창당의 주역들이 당을 떠날까 하는 동정도 있고 당을 떠날 용기가 있었다면 왜 진작 당을 개혁시키지 못했는가 하는 추궁도 있다. 전북지역은 지역구 국회의원 11명 전원이 열린우리당 소속이다. 당에 대한 지지율도 항상 전국 최고를 나타냈으니 관심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새천년민주당의 당내 개혁 요구 세력이 떨어져 나와 창당한 정당이다. 2003년 11월 11일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노 대통령 지지 의원 47명이 창당했다. 이듬해 1월 정동영 의원이 첫 당의장, 김근태 의원이 첫 원내대표로 선출됐고 같은 해 4월15일 제17대 총선에서 기세등등한 원내 제1당의 자리에 올랐다.

 

그 근저에는 2001년 민주당에서 '탈레반'으로 불리던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이 추진했던 정풍운동이 있었다. 정치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동교동계와 정치적 헤게모니를 놓고 다퉈야 했고 정풍운동을 계기로 민주당은 동교동계 및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구당파와,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신당파가 맞섰다.

 

2002년 이인제 - 노무현 후보의 대선후보 경선 은 구당파와 신당파의 대결국면이었다. 정풍운동 이후 당의 주도권을 잡은 신당파의 노무현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된 것은 결과적으로 신당파의 정치개혁 실험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후. 민주당을 쪼개고 태어난 열린우리당은 총선 이후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했다.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한 것이다. 등등했던 기세가 창당 38개월만에 탈당러시로 반전되고 있는 걸 우리는 보고 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소수의 고립주의자들이 망쳤는가(정동영). 어떤 희망도 만들어낼 수 없을 만큼 당의 틀이 경직돼 있는가(천정배). 대통령이 걸림돌이 됐는가(노무현).

 

신당파는 지금 열린우리당의 껍질을 벗겨내기 위해 ‘통합신당’을 외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탄생하기 전 민주당의 껍질을 벗겨내기 위해 ‘통합신당’을 외친 것처럼. 하지만 통합신당의 미래는 안개속이다.

 

정치인의 선택은 어차피 이기주의적이다. 개인적 선택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창당 당시의 화려한 수사와 대국민 약속은 어찌할 것인가. 탈당만 있을 뿐 책임을 통감하며 정치 그만두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 '네탓'만 외치고 있으니 이런 오만한 태도야말로 열린우리당의 한계가 아닌가.

 

정당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합집산하는 건 불행이다. 창당의 주역들이 그러는 꼴은 더 볼썽 사납다. 역사와 전통, 뼈대있는 정당을 우리는 언제쯤이나 갖게 될는지….

 

/이경재(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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