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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火病을 자극하는 일 들 - 김승일

김승일(언론인·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

모든 일에 의욕이 없고 불안하거나 짜증이 난다. 잠을 잘 못자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장래 희망이 보이지 않아 죽고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증상이 바로 의학계에서 흔히 진단하는 우울증이다.

 

어느날 잘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으로 쫓겨난 실업자, 개혁이라는 서슬에 눌려 명예퇴직 당한 공무원, 갱년기 전업 주부 같은 약자층에서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젊은 직장인이나 수능시험을 앞둔 고교생들, 집안에서조차 따돌림 당하는 노인들에게도 우울증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울증은 자신의 무력감이나 심리적 변화와 함께 찾아오는 신체적 증상으로 느낄뿐 폭발력은 그리 크지 않다. 정작 참을수 없는건 한방(韓方)에서 말하는 ‘울화병’이다. ‘울화증’ ‘울화통’ 이라고 하는 이 병은 한마디로 ‘화병(火病)’을 말한다. 심리적인 갈등으로 몸속에 흐르는 기(氣)가 막혀 화병이 생긴다는 것이 한의학적 설명이다. 흔히 ‘기가 막힌다’든지 ‘열 받는다’ ‘울화통 터져 죽겠다’는 말들은 바로 이 화병의 초기 단계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은 이 화병은 인내와 절제, 양보를 미덕으로 삼는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사회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웬만하면 참고 넘기려는 심리적 갈등이 우울증을 넘어 울화통을 키우고 이것이 누적되면서 화병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요즘 우리 정가(政街)나 사회현상을 보면 그런 울화통 터질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경선을 앞둔 한나라당 대권주자들끼리 치고 받는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과정에서 불거진 위장전출입이니 부동산 투기의혹, 장학회 운영상 부정사례 폭로등은 국민들을 화나게 하고도 남는다. 아니 진위(眞僞) 여부를 더나 그런 개연성이 드러난 사실 자체만으로도 울화통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어느 시인이 ‘귀리만한 사람은 귀리’라고도 했지만 여권에서 보이고 있거나 들려오는 소식 또한 ‘도토리 키 재기’식 허장성세(虛張聲勢)가 가관이다. 그러니 어쩌랴. 정치의 ‘정(政)’자에도 근접하지 못하는 포의(布衣)들은 그저 굿은 보되 떡도 못 얻어 먹으면서 속으로 울화를 잠 재울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짚고 넘어갈 일이 또 하나 있다. 엊그제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전세기 추락사고다. 우리나라 관광객 13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은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당사자나 가족들에겐 큰 슬픔이지만 국민들에겐 그저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일 뿐이다. 더구나 당장 끼니 걱정조차 힘겨워 사치스런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는 서민들에겐 가슴속에 삭여 둬온 울화를 자극할수도 있을 법한 불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며칠동안 TV 화면을 통해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국민적 애도(哀悼) 분위기를 강요한(?) 방송사들의 과잉보도 또한 울화통 터지게 하는 일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되돌아 보게된다.

 

/김승일(언론인·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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